이드 2부 – 265화
702화
활짝 열린 대전 문밖.
대전에 들지 못한 수십 명이 복도를 가득 채우고서 대전 안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기사부터 관리까지 신분도 다양했다. 신분 따라 호기심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대전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이 있었지만,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대전 문을 열어 둔 것부터가 이 일이 비밀을 요하는 일이 아니라는 증명이었다.
대전을 열어 둔다는 것은 공개해도 좋다는 표현이었다. 만약 비밀을 요하는 회의였다면, 대전을 닫고 아무도 근처로 다가오지 못하게 미리
조치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 대전에서 진행되는 검증은 대전을 지키는 기사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자신들이 평생을 배우고 익히는 무공을 처음 대륙에 알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다. 대전 앞으로 모여든 동료, 선후배 기사들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이미 반쯤 검증을 통과한 것으로 거론되는 이드가 오늘 검증을 마친다면 제국 무공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가.
그들은 은근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비록 대전 밖을 향해 돌아서 있지만 귀는 뒤쪽 대전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그때쯤이었다.
짝짝짝짝!
“만세! 황제 폐하 만세!”
이어서 우렁찬 만세 소리가 대전 밖으로 쏟아져 나오자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한 사내가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이야, 미치겠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검증을 통과했으니까 가짜 후예가 진짜 후예가 된 거야?”
“가짜였던 적은 없다만・・・・・・ 그렇지. 그런데 뭘 새삼스레 호들갑이냐? 몰랐던 일도 아니고.”
옆에 있던 그의 친구로 보이는 이들 중 하나가 무슨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하느냐는 얼굴로 답했다.
“그렇기는 한데….. 허허, 어이없네. 막상 마인드 마스터에게 약속된 포상이 저 사람한테 간다고 생각하니까 황당하잖아. 너는 저게 믿겨지냐? 책 몇 줄 외우고 후작이라니! 대단한 후작 나리 나셨다. 나셨어.”
허탈한 얼굴로 혀를 내두르는 사내의 모습에 친구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왜 질투 나냐? 질투 나면 너도 좀 외우고 있던가. 아니다. 외우기 전에 먼저 걸려서 뒤지겠지. 저게 어디 보통 책이냐. 무려 황실의 보물이라고.”
“그래도 너무 날로 먹는다는 느낌이……………”
“네가 평소 사상이 삐딱해서 그래, 인마. 거기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너 아까 문답은 잘도 받아 적더라?”
“커허험…”
사내는 아주 길게 헛기침을 하며 손에 쥐고 있던 종이와 펜을 슬그머니 등 뒤로 감추었다. 꼭 개구쟁이가 사고를 치고 감추는 것 같은 모습에 친구 일당들이 킥킥거려 사내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사내가 애써 그것과 이것은 다르다고 주장해 보지만, 그와 대화하던 친구의 말처럼 황실 보물의 가치가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너도 어디 가서 괜한 소리 하지 마라. 이건 황실에서 약속한 포상이라고. 거기에 불만을 보이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
“잔소리 좀 그만해라. 내가 수도에서 보낸 시간일 얼만데, 그런 눈치는 있다고!”
“하이고, 그러면서 매번 사고는 잘도 치지? 네 눈치는 싸구려냐?”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주변의 친구들이 낄낄거렸다.
“이 꼬맹이들아, 그만하고 저기 좀 봐봐.
그때 그들 사이에 있던 키 작은 여성이 한 곳을 가리켰다. 이제 슬슬 자리를 뜨려던 일당들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 저놈은…….”
그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반짝였다. 대전 앞에 모여 있는 기사들 중에서도 유독 강렬한 존재감을 내보이는 젊은 기사는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다.
“이야, 소드 팰러스의 왕자님 아냐? 유명인 납셨네.”
사내의 말에 주변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일 인테그란. 검후의 제자로, 소드 팰러스의 왕자라 불리며 수많은 관심 속에 황궁에 발을 들인 기린아.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좀 전까지 이드가 받을 포상에 불만을 표하던 사내가 이번엔 게일을 향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기야, 신경이 쓰였겠지. 왜 안 그렇겠어? 지금까지 지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놈・・・・・・ 아니, 후작놈님한테 주인공 자리를 뺏겼는데.”
“후작놈님은 뭐냐? 그리고 아직 작위가 내려지지도 않았어, 인마.”
“알았어. 그럼 놈이라고 부를게.”
사내의 말에 지적했던 남자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처음 게일의 존재를 알렸던 여성이 조금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나섰다.
“장난 그만 치고 잘 봐. 표정하며 눈빛이 보통이 아니잖아.”
“그렇기야 하겠지. 지금까지 다 자기 것인 줄 알고 있다가, 엉뚱한 놈한테 뺏기게 생겼으니 가만있겠어? 원래 줬다 뺏어 가는 게 젤 기분 나쁜
법이야.”
“괜찮을까? 만약 그렇게 되면 분란이 생길 텐데. 더구나 저 사람 뒤에는 소드 팰러스가 있잖아.”
“흥, 언제 황궁에 분란이 없던 적 있냐? 지들끼리 지지고 볶으라고 해. 어차피 기사들 일이야. 우리 초인들은 그냥 재밌는 구경거리에 박수나 치면
된다고.”
냉소적이게 말하던 사내는 곧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장난스런 얼굴로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것이 이 사내가 큰 장난을 준비할 때의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의 친구가 말했다.
“인마, 너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별거 아냐. 그냥 슥 가서, 저 잘난 놈 속이나 살짝 뒤집어 볼까 싶어서. 이때 아니면 언제 저놈 속을 긁어 보겠어? 지금까지는 무시당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날 돕고 있다고, 히히.”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채고는 살벌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목을 그어 보였다.
“장난도 시간과 때를 봐 가며 해라. 지금 갔다가는 네 목이 ‘슥’ 잘린다?”
“흥! 내 골든 리에라가 있는 한 누구도 내 목은 못 잘라!”
그러나 그 곁에 있는 초인 친구들은 누구도 그의 말에 공감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경고했던 친구와 같은 살벌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저 자식이 여길 보는 것 같은데. 우리 이야기 들은 거 아냐?”
누군가의 말대로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무표정한 게일의 고개가 그들을 향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게일의 눈은 곧 다시 대전을 향했다.
그에 게일을 따라 고개를 돌린 여성 초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끝난 거 아니었어?”
그녀의 말에 함께 몰려 있던 사람들은 물론 대전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까지 대전 안의 소리를 듣기 위해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대전 밖에서도 이상을 알 만큼 대전 안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완벽하게 검증을 통과함은 물론, 황제가 직접 나서서 이드의 신분에 대해 선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약속된 포상을 내리는 것뿐. 한데 포상을 내려야 할 황제가 침묵했다.
생각지 못한 황제의 모습에 귀족들은 의아한 듯 서로를 돌아보기 바빴다. 그러나 서로 이유를 모르긴 마찬가지.
‘도대체 무슨 일이신가?’
‘윗사람이 새로 생기지 않는 게 좋기는 한데……………..’
‘혹 약속한 포상이 아까우셨나?’
감히 황제를 좀생이로 여기는 불경한 자도 있었지만, 좌우간 만세를 부르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런 중에 이드는 그 모든 것을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황제 앞에서 검증을 받기는 했지만 이후 후작을 통해 전해진 자신의 요구 조건을 황제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한 발 들어갈 수도, 두 발 물러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드는 황제와 후작을 번갈아 가며 살폈다. 과연 두 사람은 포상을 어떻게 할까. 밖에서 떠들던 어떤 사내의 말처럼 이드에게 약속된 포상 중에는 후작이라는 고위 작위도 끼어 있다.
공후의 작위는 황실의 친인척이거나 나라의 위험을 구한 이가 아니고서는 쉽게 받을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지만,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의 이름으로 제국을 위해 한 일들은 이런 작위를 내리기에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문제는 작위를 내림과 동시에 황제와 이드가 주고 받아야 할 충성서약이었다.
이드는 자유를 내세워 사실상 이 충성 서약을 거부한 상태였다. 만약 작위를 내리며 충성서약을 강요하면 이드가 떠날 것이고, 충성서약을 빼면 귀족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시려나?’
그리고 마침 이드의 얼굴에 떠오른 흥미진진한 표정을 황제가 보고 말았다.
‘황제를 시험하려 하다니, 참으로 괘씸한 자로다.’
황제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드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행동이 괘씸하기는 하나, 이미 후작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에 이제야 새삼 화를 내거나 분노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입장이 우위에 있다고 마음껏 황제의 머리 꼭대기에 서려는 이드를 앞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그러나 상대보다 내가 얻을 것이 많다면 그 골치 아픈 대상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것이 황제가 할 일이었다.
[어, 저 황제…… 이드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은데요? 뭔가 골칫덩이를 보는 듯한…….]
황제의 눈빛을 캐치한 라미아가 정확한 분석을 내놓았다.
‘뭐?!’
[히히, 아니에요. 그런데 쓸데없이 분위기 잡네요. 레오날도가 허락했다는 걸 보면 이미 다 정해 놓았을 텐데.]
‘네 말대로 분위기 잡는 거겠지. 미리 정해 둔 걸 바로 꺼내 놓으면 미리 짜 뒀다는 게 티 날거 아냐.’
무공으로 인해 제국 황실이 큰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귀족들 입장에서는 황실의 힘이 끝없이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드가 비록 황제 앞에서 검증을 받았지만, 귀족들은 그것을 이드가 황제의 사람이 되었다기보다는 소드 팰러스를 떠나 황제를 지지한다는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시점에 마치 미리 짜 놓은 듯 즉시, 그것도 충성 서약을 제외하고 작위와 포상을 내린다면 황제와 이드의 관계에 반기를 드는 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 황제의 침묵은 바로 그것을 상쇄하기 위한 절차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이 충분히 익었을 때쯤 황제의 입을 다시 열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황제의 침묵이 길어지자 이상하게 생각한 황녀가 나선 것이다. 귀족들과 달리 아버지 황제에게 말을 거는 황녀에게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아바마마, 무슨 일이신가요?”
“아무것도 아니란다. 잠시 한 가지 문제를 고심했다.
이제 막 검증이 끝난 시점에 고심했다는 것은 이드와 관련된 일일 것이 분명했다. 황제의 말에 황녀와 귀족들이 이어질 황제의 말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내 고심에 밀리아리아와 경들이 무슨 생각을 하였을지 능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의심치 마라. 이드에게 내려질 포상은 분명히 내려지리라. 그러나 그 포상이 과연 이드에게 좋은 것인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귀족들은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돈을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따로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받을 수 있는 포상도 아닌데 좋지 않을 리가 있나?
점점 황제가 포상을 내리기 아까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깊어지는 순간, 황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드는 나와 경들 앞에서 오래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도와주리라 약속하였노라. 나는 그의 해결하지 못한 일이 무엇인지 신경 쓰인다오. 어쩌면 약속된 포상이 그의 일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오.”
무슨 일을 하건 제국의 이름이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방해가 될 리는 없다!
‘역시 아까우신 거야! 우리 황제께서 이리 좀생이셨을 줄이야!’
귀족들의 오해가 깊어지고, 황제를 향한 존경의 눈빛이 20%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