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91화
828화
출발 30시간 후, 이드는 목적지 상공을 날았다.
록마틴 후작의 장담대로 이틀이 걸리지 않았는데, 와이번의 비행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던 덕분이다. 전투기나 여객기와 비교하기는 턱없이 느리지만, 작은 경비행기보다는 빠르게 느껴졌다.
거기다 하늘로 이동했기에 다른 트러블에 휘말리지 않았던 것도 빠르게 이동하는 것에 한몫했다. 와이번에 시비를 걸고 싶으면 상대도 하늘을 날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과연 록마틴 후작님이 용기사를 보물처럼 아끼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마법으로도 이런 장거리를 단번에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이동할 수 있는 인원도 한정적이다.
그에 비해서 용기사로 이루어진 프랑 기사단은 와이번 한 마리에 최대 3명까지 태우고서 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3개 기사단 전력을 급파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굉장한 매력이다.
한데 이드의 칭찬에 미노스는 오히려 죄송하다는 표정이다.
“명예 후작님의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 비행은 생각보다 느렸습니다. 원래는 오늘 새벽이나 아침경엔 도착을 했어야 하는데 벤틀리 녀석이 평소답지 않게 얌전을 떠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이 명예 후작님을 알아본 모양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완벽하게 사실을 찍어 낸 미노스의 말이다. 참고로 벤틀리는 미노스가 타는 와이번의 이름이다.
“하하하,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 녀석이 알아준 덕분에 편하게 오기도 했고 말입니다.”
벤틀리가 얌전을 떨어 댄 이유에 라미아가 있음을 알고 있는 이드는 벤틀리나 미노스를 탓할 수 없었다. 오히려 최대한 얌전히 비행하느라 등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 걸 느껴서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다.
‘도대체 라미아가 뭐라고 했기에 이렇게 겁을 먹은 건지.’
거기다 토벌대의 도착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 몇 시간 정도 자신과 추가 감시조의 합류가 늦는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
“지금 착륙하겠습니다. 꼭 잡아 주십시오.”
말을 마친 미노스가 같이 비행하고 있는 용기사들을 향해 신호를 보내고는 땅으로 내려섰다.
쿵.쿵.
벤틀리를 시작으로 와이번들이 땅에 내렸다. 흙먼지와 함께 날개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요란하게 흔들렸다.
적의 시선을 의식해서 일부러 적이 확인하지 못할 거리의 적당한 숲에 착륙한 탓이다.
땅이 울퉁불퉁해서 헬리콥터나 비행기라면 착륙할 수 없겠지만, 와이번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점. 그것이 자연에서 태어난 생물의 장점 아니겠는가.
이드와 함께 감시자들을 내린 용기사들은 꾸물거리지 않고 곧장 다시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갯짓했다.
“그럼 저희는 바로 다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데이트나 경이 치털링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불러 주시면 즉시 날아오겠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필요하면 연락하죠.”
미노스의 말에 간단히 답한 이드가 뒤로 물러서며 용기사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용기사지만 사실상 쓸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록마틴 후작의 걱정처럼 미완의 마탑의 방해로 마법 통신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해도 라미아와 이드의 연결을 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연결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말 상황이 급박해진다면 바보처럼 감출 생각도 없었다. 그때는 과감하게 라미아를 통해 말을 전할 것이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와이번을 토벌대까지 날려 보내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니까.
나중에 문의는 있겠지만, 그땐 또 적당히 둘러대면 그뿐이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군부와 마탑에서야 탐을 내겠지만, 아무래도 명예 후작을 상대로 깊게 추궁이 들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생각난 김에 잘 도착했다고 알려 둘까.”
라미아에게 간단히 도착의 보고를 전하고 있을 때 장비의 점검을 마치고 도열한 감시조의 병사들 중 하나가 이드 앞으로 다가왔다.
“충, 조장 알단테 외 추가 감시조 7인. 명예 후작님께 출발 준비를 마쳤음을 보고합니다.”
딱딱한 군대식 보고였지만, 감시조의 특징인지 묘하게 주변으로 퍼지지 않는 희미한 목소리였다.
“오랜 비행 수고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명예 후작이 아니라 단장이라고 부르기 바란다.”
아무래도 명예 후작이라는 호칭은 너무 튄다. 제국은 물론 타국을 더해도 명예 후작은 이드 하나뿐이다. 명예 후작이라 불리는 순간 이드라는 개인이 특정되는 것이다.
반면 단장이라는 호칭은 수많은 곳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그 하나로 개인을 확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내가 나라는 것이 밝혀져도 불리할 것은 없지만, 굳이 소문내고 다닐 필요도 없으니까.’
“충,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단장님.”
알단테의 대답과 함께 도열해 있던 병사들도 수신했다는 의미를 담아 가슴을 두드렸다.
“좋아. 그럼 먼저 도착한 감시조와 합류할 곳을 확인하도록 하지.”
“예, 치털링의 감시조와 합류할 지점은 이곳 협곡입니다.”
알단테가 미리 준비한 지도를 꺼냈다. 제국 전도가 아닌 치털링을 중심으로 국경선까지 상세하게 그려진 지도였다. 그는 그중 붉은 점이 찍혀 있는 협곡을 가리켰다.
이드는 붉은 점과 정신의 관의 거리를 살피고는 말했다.
“정신의 관과는 오 킬로미터 거리군. 현재 우리가 내린 곳은?”
“이곳입니다.”
알단테가 정신의 관과 합류 지점의 두 배 정도 거리에 있는 숲을 가리켰다.
확실히 거대한 와이번 다섯 마리가 비행하는 모습을 가리려면 최소한 이 정도 거리는 필요한 것이 당연했다.
거기다 중간에 숲과 산을 포함한 협곡을 생각하면 합류 지점까지는 빠르게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바로 이동하지.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있나?”
“예. 사전에 작전부로부터 최적의 경로를 받았습니다.”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작전부가 일을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드가 자원한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세세한 곳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티가 나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방향은 알단테 조장에게 맡긴다. 출발.”
퉁.
이드의 명령에 알단테와 조원들이 구호 없이 가슴을 두드려 답했다. 과연 감시의 프로답게 명령이 떨어진 순간부터 감시조로서의 스위치를 켠 것 같았다.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작전부가 선택한 최적의 경로는 대부분이 험로였다. 지형이 험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어서 자연이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연의 거부도 록마틴 후작이 추리고 추려 뽑아 준 추가 감시조와 이드의 발길은 막지 못했다. 이들은 십 킬로미터의 험로를 평지처럼 빠르게 이동해 나갔다.
물론 직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이드의 신호에 따라 경로를 조금씩 벗어났다가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드가 경로의 전방에 동물이나 몬스터가 있음을 느끼고 회피한 것이었다. 오우거나 트롤 같은 대형 몬스터나 위험한 맹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이놈들을 죽여 피 냄새와 소음을 발생시킬 필요가 없어 조심을 한 것이다.
때문에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던 합류 지점까지 삼십 분이 더 걸렸다.
그랬더니 알단테를 시작으로 감시조의 시선이 바뀌었다. 물론 좋은 쪽으로다. 그들이 이드를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상급자에서, 감시라는 임무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 믿고 따라도 괜찮을 것 같은 상급자가 되었다고 할까?
“뭐, 사이가 좋아져서 나쁠 건 없지.”
토벌대가 도착할 때까지 함께 먹고 자며 일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좋은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저 협곡이 합류 지점입니다.”
알단테가 말했다. 그가 가리킨 협곡으로 들어선 이드는 얼마 들어가지 않아 큰 돌 뒤의 교묘한 위치에 그려진 기묘한 그림을 발견했다. 협곡의 입구도 아니고, 중간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장난이라고 하기엔 복잡한 그림. 아니, 애초에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이런 장난을 치고 돌아가는 미친놈이 있기는 할까?
“알단테 단장, 아는 그림인가?”
“제국에서 사용하는 표식으로, 합류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식입니다. 치털링 감시조에서 남겨 둔 것 같습니다.”
과연 예상대로다.
“단순히 합류 지점을 표시한 표식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복잡하게 생겼는데?”
“정확히 보셨습니다. 여기에는 표식을 남긴 시각과 상황의 변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 남긴 것으로, ‘상황에 변화 없음’이라는 내용입니다.”
표식은 단순히 복잡할 뿐 아니라 보는 방법도 특이했는데, 알단테가 동서남북 네 방향을 돌아가며 바라본 후 해석했다.
“그럼 우리는 치털링 감시조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면 되겠군.”
“그렇습니다. 표식을 남긴 시간을 짐작하면 대략……………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치털링 감시조가 올 때까지 휴식과 함께 간단히 식사를 하도록 하지.”
와이번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느라 아직 점심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주변 경계는 두 명씩 돌아가면서 하겠습니다.”
“아니, 편히 쉬도록 하게. 이 일대는 내 감각권 안에 있으니 경계는 필요 없다.”
“네?”
알단테가 노골적으로 놀랐다. 언덕과 나무들 때문에 평지보다야 못 하지만, 경계병이 살필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넓다. 그런데 그 범위를 앉은 자리에서 커버한다니?
태연한 얼굴로 참 엄청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자신들과 함께 쉬고 있는 이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새삼 실감이 났다.
‘과연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는 건가. 최고 수준의 기사나 초인들 중에는 괴물 같은 능력자들도 있다던데, 이분이 그런 괴물인 모양이군.’
어설픈 의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이드에 대한 검증과 실력에 대한 확인이 끝났기 때문에 황궁에서 명예 후작이라는 영광을 내렸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단장님께서 쉬지 못하십니다.”
“걱정은 고맙지만, 그저 귀에 조금 더 많은 소리가 들릴 뿐이다.”
“그럼・・・・・・ 알겠습니다. 단장님의 배려다. 경계 임무는 없다. 편히 쉬어라.”
조금 더 많은 소리가 들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알단테에겐 그걸 확인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수긍한 그가 말하자 조원들이 이드를 향해 감사를 담아 가슴을 두드리고는 각자 편한 자세로 쉬었다.
이드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았다.
보통은 쉬라고 해도 이드와 같은 최고 지휘관이 있으면 겨우 등을 기댈 뿐 정말 편히 쉬지는 못하는데, 이들은 정말 편하게 눕기도 하고 다리를 펴기도 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시조가 특별한 건가?’
확실히 감시조라고 하면 일반 병사들과 달리 특별한 병과이기는 했다. 일단 병사보다는 스파이에 가까운 형태이니까.
이들과 함께 임무를 하는 시간이 생각 외로 새로울 수 있겠다 싶은 이드였다.
그렇게 각자 편한 자세로 쉬며 체력과 정신력을 충전하기를 두 시간.
치털링 감시조는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시간이 더 지났다. 알단테가 말했던 세 시간이 되었지만, 치털링 감시조는 오지 않았다.
“단장님.”
알단테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밤놀이 약속도 아니고, 작전 시간에 늦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동 중에 사고가 있을 수도 있지. 감시조에서는 보통 얼마 정도의 시간 여유를 두지?”
“삼십 분입니다.”
“삼십 분. 기다려 보지. 하지만 그때까지 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조원들을 준비시키도록.”
“충.”
이드의 명령에 알단테가 가슴을 두드리고 따랐다.
그리고 예고했던 삼십 분 후, 치털링 감시조는 여전히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휴, 어쩐지 예감이 별로인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드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