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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94화


831화

“칫.”

치털링 감시조의 거점 앞에 도착한 이드는 진한 피비린내에 혀를 찼다.

분명 일분일초의 시급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었던 것 같지만, 늦어도 한참은 늦어 버린 것 같았다.

“당한 것 같습니다.”

알단테가 침음하고는 거점의 입구를 막고 있는 위장 문을 열었다. 땅굴을 파고 만든 거점 안에 가득 차 있던 악취가 쏟아져 나왔지만, 알단테는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안에 산 자는 없다.”

“그래도 뭔가 단서가 될 것이 있을지 모릅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적들이 뭔가 흘리지 않더라도 시신에 남은 흔적을 통해 적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하도록.”

반대로 생각하면 적도 그런 사실을 알 것이다. 알단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참혹한 현장으로 들어갔다.

“그럼 난 주변을 살펴볼까.”

감시조가 특별히 쓰는 물건이 있을 수 있어 안은 알단테에 맡겼지만, 밖은 다르다.

입구 주변을 살피기 시작한 이드는 거점에 출입한 희미한 발자국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중 싸움의 흔적이나, 다급하게 힘을 쓴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생물인 이상 힘을 쓰면 땅 위에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그런 것이 없었다.

즉, 적은 흔적 없이 접근해서 거점 안의 감시조가 제대로 반항하지도 못하는 사이 도륙해 버린 고수라는 것.

그러나 분명히 말해서 이건 마법사의 방식은 아니었다.

“정신의 관에는 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었나?”

확인 차원에서 안력을 높였지만, 침입자의 족적은 물론, 족적을 지운 흔적도 없다. 그 말은, 흔적을 남기지 않을 만큼 암살의 고수라는 뜻. 이드가 고민하는 사이 알단테가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의 두 손에서는 진득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드와 눈이 마주친 알단테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치털링 감시조 열아홉 중 아홉의 시체를 확인했습니다.”

열아홉에 아홉. 열이 빈다.

“생존자가 있다는 말인가?”

“감시 임무 중 당한 것이 아니라면, 살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지만, 거점이 당했을 시간을 계산하면 그렇게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생포의 가능성도 있지 않나?

제3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드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저은 알단테가 시체 하나를 꺼내 놓았다.

시체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팔다리가 하나씩 중간에서 끊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깊은 손톱자국이, 옆구리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는데, 그 상흔들이 모두 너덜너덜했다.

그에 자세히 살피던 이드는 특히 옆구리의 피부에 남은 울퉁불퉁한 치흔을 발견하고 알단테를 바라보았다.

“이건…… 인간이 아니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시체의 상태를 보면 아시겠지만, 감시조를 습격한 괴물과 괴물을 부린 놈들에게 생포의 의도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시체도 마찬가지고, 거점 안에 멀쩡한 물건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남은 치흔은 두 개로군.”

팔과 옆구리에 남은 이빨의 크기를 가늠한 이드가 말을 이었다

“한 마리는 그레이 울프 정도고, 다른 건・・・・・・ 곰인가.”

“안에 남은 흔적도 둘이었습니다.”

“두 마리라. 그런데 그 덩치 큰 놈들이 날뛰기엔 거점이 좁지 않나?”

치털링 감시조는 총 열아홉이지만 거점은 열 명이 겨우 휴식할 정도로 좁게 만들어져 있었다. 감시라는 임무가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효율을 위해 만들 때부터 십인 용으로 만든 것이다.

그레이 울프나 곰이 들어왔다가는 좁은 공간에서 날뛰긴커녕 이코노미석에 탄 농구 선수처럼 몸을 구기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예. 거기에 이상한 것이 물고 할퀸 흔적은 있는데, 괴물들의 족적이 없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레이 울프나 곰이 아니라 진짜 괴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

“그레이 울프나 곰이 위험하긴 하지만 그놈들에게 당할 정도로 감시조가 약하지는 않습니다.”

알단테가 자존심 상한다는 듯 말했다.

‘하기야 록마틴 후작이 그렇게 아끼던 감시조가 고작 맹수에 당할 리는 없겠지. 감시조를 몰살하고, 족적도 남기지 않는 괴물이라. 마법사가 소환한 마수일 가능성도 있겠네.’

수십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정신의 관인 만큼 소환 마법사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곤란한데, 놈들이 마수를 부리는 거라면 우리도 발각될 수 있겠어.”

마계의 마수도 중간계의 동물만큼이나 그 종류가 다양하다. 마수 중에는 개보다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지닌 마수도 있다.

“최대한 빨리 감시조와 합류하고, 마수에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이드가 바닥에 눕혀진 시체를 허공섭물을 이용해 거점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짐승의 먹이가 될 뿐이다. 시체를 거점 끝까지 밀어 넣은 이드는 곧 파옥수의 공력을 모아 발끝으로 쏘아 냈다.

구구궁-

지하로 쏘아진 파옥수의 공력은 단단한 지반을 부수며 뻗어 나갔고, 그와 함께 이드의 발끝에서 시작한 미세한 흔들림이 파문처럼 거점 일대로 번져 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점을 중심으로 십 미터 정도의 공간이 뿌연 먼지를 뿜으며 한 뼘 정도 가라앉아 거대한 무덤으로 변했다.

“부디 평안히 잠들기를.”

“충.”

이드와 알단테가 그 앞에 가 잠시 눈을 감고는 곧장 조원들이 만들고 있을 거점을 향해 달렸다.

“크으으윽. 단장님, 조장님.”

거점 포인트에 도착한 이드와 알단테를 맞은 것은 허벅지에 검을 박고서 고통스러워하는 조원 하나였다.

바닥에는 거점을 만들다 팽개친 작업 도구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그를 제외한 다른 조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사이 당할줄이야.”

“잠깐만 참아. 바로 포션을 써 줄 테니까.”

포션이 비싼 물건이긴 하지만, 감시조는 임무 특성을 고려해 상비 물품으로 지급받고 있었다.

“안 됩니다. 지금 치료하면………….”

조원은 고통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포션을 사용하려는 알단테를 말리고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향깁니다! 갑자기 달콤한 향기가 났고, 그 냄새를 맡은 조원들이 마족의 사악한 마법에 당한 것처럼 정신을 잃고 향기를 따라갔습니다. 저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고 허벅지를 찔렀습니다. 두 분도 빨리 조치를 하셔야…………”

“단장님!”

과연 허벅지의 검을 뽑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인가. 이드는 다급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진정하도록. 아까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 이 주변에는 아무런 향기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그런 향기가 났다면 다가오면서 당연히 알았겠지.”

당장 정신이 멀쩡한 알단테가 그 증거다.

아마 허벅지를 찌른 조원은 당혹스러운 상황과 허벅지에서 올라오는 고통과 혈향에 수상한 향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일단 지금은 괜찮은 것 같으니까. 조장은 포션으로 치료부터 하도록. 그나저나 사람을 유혹하는 향기인가. 치털링 감시조도 향기에 당한 것일지 모르겠군.”

물론 단정할 수는 없다. 치털링 감시조에서는 적이 거점으로 침입했지만, 지금은 향기로 꾀어냈으니까. 수법이 너무 다르다.

그 사이 알단테가 검을 뽑고 포션을 부어 조원의 상처를 치료했다. 지급받은 포션이 효과가 좋은 듯 쩍 벌어졌던 상처가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조장은 이대로 부상자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가라. 그 후 위험하다 판단되면 협곡까지 물러나서 기다리도록.”

“단장님 혼자 가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혼자가 편하다. 무슨 수법인지 모르지만, 다른 조원들처럼 조장도 향기에 취하면 오히려 짐만 된다. 무엇보다 대놓고 흔적이 남았어. 조장이 길 안내를 해 줄 필요도 없어. 만약의 경우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감시조의 일을 해야 할지 모른다. 최대한 사망자가 나오는 건 피해야 해.”

분명 틀린 말이 없다. 알단테는 분했지만 도저히 반박할 수 없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충. 조심하십시오.”

가슴을 두드리고 부상당한 조원을 업고 산에서 내려가는 알단테를 보며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은 조장이 해야지. 그리고 정체 모를 조향사 놈도 감히 내 조원을 꾀어 갔단 말이지.”

설마 부하들을 이끌고 적진에 발을 디딘 첫날 여덟 명의 조원 중 여섯 명을 잃게 될 줄이야. 아무리 부하를 이끌고 움직임 경험이 적다지만 충격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방심을 반성하게 됐다.

1차 감시조가 전멸하고, 치털링 감시조도 연락이 끊어져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너무 작전부의 스케줄 대로만 움직였다.

상황이 달라졌다면 그에 따라 대응도 달라야 했는데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적들이 마수나 향기 같은 기괴한 방법을 사용할 줄 몰랐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이드는 그렇게 비겁할 생각이 없었다. 싸움에서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을 준비하고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적의 방법은 훌륭했다. 하지만 적의 대단한 점을 칭찬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내 허락도 없이 부하를 훔쳐 갔으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대여료는 비싸다고.”

살아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아온다.

이드는 향기에 홀려 사라진 조원들의 흔적을 따라 움직였다.

향기에 홀린 덕분인지 조원들이 남겨 둔 흔적은 사방에 가득했다. 그런 흔적이라면 벤이 없어도 따라가기는 쉽다.

스스스스

부운귀령보를 사용한 이드의 신형이 귀신처럼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숲속을 날듯이 이동한 이드는 빠르게 조원들과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조원들은 산을 빙 둘러 산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알단테가 내려갔던 반대 방향이란 것이다.

‘다행도 아닌가. 놈이 그쪽에 있었거나, 우리가 그쪽으로 접근했으면 당하기 전에 먼저 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우연에 입맛을 다시던 이드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향기에 급히 멈춰 섰다.

“이 향기인가.”

이드는 조원의 말을 떠올리며 향기를 깊이 들이켰다. 조원들을 확인하려면 더 향기에 가까이 가야 하는데, 숨을 쉬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꿈틀.

과연 흡입된 향기는 일반적인 것이 아닌 듯 이드의 전신으로 퍼지려 했다.

파스스스.

하지만 곧 이드의 몸에 가득한 무극신기를 접하고는 한여름 태양 아래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워낙 빨리 사라져서 효과도 모르겠군.”

대신 하나는 확실하다. 이드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다.

“우우우~”

그때 전방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여섯 명이 내는 소리.

“다행이네. 사망자가 없으니 대여료만 내면 되겠어.”

대여료는 가볍게 사망 정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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