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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98화


835화

『황녀가 먹는 건데 당연히 맛있는 거죠. 나는 못 먹지만, 먹고 싶으면 좀 들고 갈까요?』

아무렴 제국에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황녀의 식사가 초라할 리가 있나.

“됐어. 우리 조원들이 열심히 준비 중인데 헛수고로 만들 수는 없지.』

이드는 이쪽으로 달려오고 싶은 생각을 노골적으로 숨기지 않는 라미아에 고개를 저었다.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요. 그런데 조원들하고 합류는 했어요?』

아니, 못했어.』

이드는 이곳에 도착한 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특히 검은 마수와 머리만 살아 있던 초인에 대해서는 기억 속에 남은 영상까지 떠올리며 자세하게 전했다.

요즘엔 동화책 속에만 있다는 사악한 흑마법사의 표본이 거기 살아 숨 쉬고 있었네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라미아가 기가 막힌 듯 감상평을 내놓았다.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지. 차라리 멸종되면 좋은데.』

무엇 하나 긍정적인 면이 없는 이 흑마법사라는 족속은 바퀴벌레와 함께 멸종되어야 할 인류의 적이 분명하다.

절절한 진심이 가득한 말에 라미아는 이드에게 찍힌 흑마법사가 불쌍하다 싶었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걸렸네요.』

『뭐가?』

『이드한테 찍혔잖아요. 그러고 보면 이드는 이런 쪽을 굉장히 싫어했죠. 인간으로 실험하는 영화는 잘 보지도 않고. 덕분에 대박 났던 영화도 몇 편 못 보고 넘겨야 했죠.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억울하지. 내가 언제 못 보게 한 적 있어?』

이드가 억울해 죽겠다는 듯 말하며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옆길로 샜지만, 곧 원래 자리를 찾았다.

『아무튼 화난다고 혼자서 막 정신의 관에 뛰어들거나 하면 안 돼요.』

『내가 애냐? 안 해! 그런 엉뚱한 소리 말고 비올라 불러서 정신의 관에 대해서 혹시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는지 확인해 봐. 이놈들 예상보다 더 미친 것 같으니까.』

이드는 생명의 관보다 정신의 관과 영혼의 관이 진짜라고 강조하던 비올라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때는 단순히 세 관에서 진행하는 연구의 중요도와 마법 전력의 차이 정도로 여겼는데, 오늘 본 검은 마수를 봐서는 단순히 힘의 우열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재료로 쓰기는 생명의 관도 마찬가지지만, 여기 정신의 관 놈들은 정말 상상 이상의 것을 만들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알았어요. 비올라 불러서 잊어버린 기억까지 털어 볼게요.』

그렇게 당부를 마친 순간 알단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나 밥!』

『알았어요. 맛있게 먹어요. 참, 그리고 다음에 또 마수를 보면 그땐 무조건 태워 버리지 말고 챙겨 둬요. 바이트 타블렛의 해석에 좀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이드는 짧게 그러마 하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또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상자를 녹여 버린 후 그 생각이 들었다는 게 문제지만.

눈을 뜨자 군침을 삼키며 허기를 참고 있는 조원들이 보였다. 제법 먹음직스러운 냄새도 풍겼다.

“이후로는 기다리지 말고 식사할 수 있도록 하고, 먹지.”

조원들 사이로 가 앉은 이드가 포크를 들었다. 부실한 재료에 비해 요리는 굉장히 맛있었다. 특히 수프 안에 든 고기 육포는 맛과 함께 적당히 풀어져 촉촉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주변에서 채취한 나물 몇 가지와 육포로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는지.

달그락.

순식간에 그릇을 비운 이드가 요리사를 찾아 말했다.

“감시조 은퇴해서 식당을 할 생각 있거든 말하게. 무조건 투자할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식당 같은 건 꿈에도 생각지 않던 조원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드는 그에게 입가심하라며 과일 한 바구니를 넘겨주고는 알단테를 따로 불렀다.

“치털링 감시조 전멸과 오늘 일 보고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단장님께 허락을 받은 후 보고하려 했습니다.”

예정된 보고는 아니지만, 오늘 일은 그런 예정을 다 무시하고 알려야 할 일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그리고 보고에 추가 감시조는 필요 없다고 한다는 내 뜻도 전해 주고.”

“예? 하지만 추가 조원 없이 현재 인원으로 감시조를 운영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말이 어렵다지, 알단테의 얼굴은 불가능을 말하고 있었다. 어디 작은 저택을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마을 단위의 넓이를 여덟 명으로 커버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낸 이드는 태연했다.

“괜찮아. 어차피 토벌대에 위협이 될 만큼 큰 함정을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오늘 마수가 죽은 시점에서 정신의 관 마법사 놈들도 감시조의 전력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을 테니 섣부른 행동은 못 할 거야.”

“정말 그럴까요?”

“물론. 이번 전투는 서로 인지한 시점에서 예정된 것이고, 그런 만큼 전투를 대비한 양측의 계획도 세워져 있을 테지. 그런 상태에서 단순히 감시조를 쓸어버리는 것 이상의 전투가 발생하면 미리 준비해 둔 계획이 어그러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지. 저놈들도 그건 바라지 않을 거야. 분명히.” 

즉, 지금부터 토벌대가 도착할 때까지 감시조와 정신의 관 사이의 감시와 견제는 정확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형식적인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명령하신 대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뭐, 어차피 마지막 결정은 록마틴 후작님이 하실 일이니까. 보고에는 그저 내 의견을 전할 뿐이지.”

물론 아무리 록마틴 후작이라도 직접 현장에 나가 있는 명예 후작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드의 말처럼 어차피 결정은 후작과 작전부의 몫.

통신구를 꺼낸 알단테가 보고를 시작했다. 주먹보다 조금 더 큰 통신구는 멀리 떨어진 토벌대가 아니라 치털링 영지에 비상 대기 중인 용기사와 이어진 것이었다.

알단테의 보고는 용기사가 중계하는 방식으로 토벌대에 전해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번거로운 형태를 하고 있는 이유는, 토벌대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대출력 통신의 경우 정신의 관에 방해될 수가 있고, 무엇보다 긴급 상황 발생 시 용기사를 호출하는 용도의 통신구를 따로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는 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하자 하늘에 걸린 하얀 달이 눈에 들어왔다.

참 정신없는 반나절이었다.

이드는 몽롱하게 눈이 풀리기 시작하는 조원들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오늘은 고생했으니 일찍 쉬도록. 내일부터는 즐거운 사냥 시간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열심히 체력을 회복하도록 해. 일단 첫 불침번은 내가 맡도록 하지.”

“아닙니다. 불침번은 저희가……..”

부담스러운 불침번에 거부가 있었지만, 이드의 반응은 단호했다.

“잔말이 많다. 전원 내가 다음 불침번을 깨울 때까지 눈감고 눕는다. 실시!”

“충!”


다음 날 아침.

지도를 손에 든 이드는 거점을 만든 산의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중 특히 눈여겨보고 있는 곳은 마수가 있던 곳과 치털링 감시조의 거점이 있던 곳이었다.

이드는 그 거리를 기준으로 마수의 영역을 가늠해 봤다.

분명 어제의 마수가 중급의 소드 마스터도 씹어 먹을 정도로 강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마리만 있는 것은 어딘가 이상했다. 보통은 특이 상황을 대비한 예비를 두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드는 그 이유를 마수가 호랑이와 같이 자신의 영역에 홀로 살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추측도 없이 막연하게 이 주변을 탐색하는 것도 무식한 일이기 때문에 무언가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치털링 감시조가 몰살당한 거점에서 두 마리의 흔적이 함께 발견된 것으로 봐서는 틀릴 가능성도 있지만, 그거야 흑마법사의 조율이 있을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확인되지 않은 일에 너무 빡빡하게 따지고 들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일단 이 기준으로 치털링 감시조 거점이 두 마리의 겹치는 영역이라고 하면 어제 마수의 영역은 이 정도…. 지이익.”

지도에 작은 동그라미 하나를 그린 이드, 그는 그 옆에다 앞의 동그라미를 일부 공유하는 또 하나의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이게 작은 이빨을 가진 놈의 영역이라고 하면…….”

대략 놈의 위치가 나온다. 영역이 있다면 보통은 그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니까.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말이다.

“그런데…………….”

하지만 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이드는 두 동그라미보다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공간에 눈이 갔다.

설마하니 생뚱맞게 두 곳만 지키지는 않았을 테고, 당연히 다른 곳도 마수와 같은 것들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 넓이를 모두 커버할 만큼 마수를 배치한다면 대략・・・・・・

“사룟값 장난 없겠네.”

픽 웃은 이드가 지도를 접고 돌아섰다. 확인하지 못한 곳도 살피긴 해야 하지만 우선 목표는 이빨 작은 놈이다.

돌아선 이드의 눈이 그를 향해 달려오는 조원을 향했다.

“단장님, 찾았습니다.”

마침 이드의 예측도 틀리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잡았다 요놈.”

이드는 숨을 헐떡이는 조원에게 산 정상을 맡기고는 알단테와 조원들이 가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알단테가 말 없는 눈빛으로 이드를 반겼다.

“여긴가?”

“예. 앞쪽 십 미터 지점부터 악취가 납니다.”

백이면 백 미향이라고 할 향기지만, 그 효과 때문인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린 알단테는 악취라고 말했다.

“향기에 당한 조원은?”

“향기를 인식한 순간 끌어냈기 때문에 감시조의 피해는 없습니다.”

전날의 경험을 살린 감시조는 선두에 선 두 사람의 허리를 줄로 묶어 두 사람이 향기에 당한 순간 끌어당긴 것이다.

덕분에 향기에는 당하지 않았지만, 성대하게 넘어진 두 조원의 엉덩이와 등이 시퍼렇게 변했다.

이드는 알단테의 말에 따라 십 미터 앞으로 나갔고, 익숙한 향기를 접할 수 있었다. 달콤하면서 사람을 홀리는 향이 어디 또 있을까.

“맞군. 알단테와 조원들은 여기서 대기하도록.”

쿵.

이드는 알단테들이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향기의 근원을 향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날 보았던 검은 나무를 볼 수 있었다. 역시나 그 주변에는 시신들이 가득했다.

“쭛.”

이드가 혀를 차는 순간 놈도 이드를 감지한 듯 주변의 향이 강해졌다.

“잔재주는 그만하고 네 이빨이나 보자. 변해 봐.”

콰릉!

변신을 재촉하듯 이드의 손끝에서 번뜩인 번갯불이 검은 나무에 구멍을 뚫었다. 어차피 놈의 속성상 그 정도의 공격에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는 이드가 가만히 기다리자 검은 나무가 꿀렁이며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신을 끝냈을 때,

서걱!

놈이 인식하지 못한 사이 공간을 넘은 일라이져가 놈의 꼬리를 잘라내고, 이드가 허공섭물의 진기로 놈을 제압하며 혀를 찼다.

“작은 놈인 줄 알았는데, 큰 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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