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00화
837화
지금까지 이드가 잡은 마수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홀리는 최음향과 폭발하는 가루, 그리고 몸에서 무기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뱀 마수는 앞의 마수들이 가진 능력과 전혀 다른 능력들만 보이고 있다. 땅을 녹이는 독에, 사자후와 같은 음파 공격, 그리고 검기에서 목을 보호한 변형 능력까지.
‘아, 변형 능력은 몸에서 무기를 만드는 것과 일맥상통하려나?’
순간 그에 대한 답이라는 듯 몸을 부풀린 뱀 마수가 전신에 도끼날 같은 것을 만들며 몸을 굴렸다. 단순한 구르기지만,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그 속도가 상당했다.
콰콰콰콱!
뱀 마수의 구르기에 돌과 나무가 박살이 나며 땅이 완전히 뒤집혔다. 얼마나 땅이 곱게 갈렸는지, 당장 씨를 뿌리면 무엇이든 쑥쑥 잘 클 것 같다.
“꾸와와와!”
“하지만 성질이 나빠서 농가에서 쓰긴 힘들겠다.”
이드는 산더미처럼 덮쳐 오는 뱀 마수의 살벌한 육탄전에 태연한 표정으로 풍운보의 보법을 밟았다. 바람과 구름의 흐름을 닮으려는 보법이나, 그 속내를 살피면 성난 바람과 산허리를 빽빽이 둘러싼 구름까지 피해 가겠다는 뜻이 담긴 것.
잡으려면 도망가는 구름처럼, 뱀 마수가 구르는 만큼 뒤로 물러나며 수백의 도끼날을 뚫고 이드의 철황파산이 틀어박혔다.
빠앙!
침투경의 무리에 따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그 힘을 폭발시킨 철황파산에 뱀 마수의 허리가 폭발했다. 워낙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놈은 아까와 같이 허리를 두껍게 만드는 수도 쓰지 못하고 몸이 동강 나고 말았다.
앞의 놈들을 생각하면 본체에서 떨어진 몸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반으로 줄어든 몸은 본래 크기로 회복하기 전까지 힘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약 빤 놈은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달랐다.
스스스슥.
놈의 전신에 생긴 붉은 선이 음울하게 빛났다. 그러자 사라져야 할 반신이 둥글게 말리며 가시가 빼곡히 솟은 모닝스타로 변해 이드를 향해 굴렀고, 그 사이 머리가 달린 반신이 빠르게 본래의 몸을 회복하고는 독을 뿜으며 달려들었다.
이드는 가시에 독기를 묻히고 굴러오는 놈을 향해 수라섬광단의 강기를 뿜어냈다. 애초에 검기도 막아내지 못하던 몸이 강기를 막아 낼 수 있을 턱이 없다.
서거거걱.
집체만 하던 모닝스타가 한순간 깍둑썰기한 무가 되는 듯하더니 금방 원래 형태로 회복했다.
“역시 상성이 나빠.”
뼈와 살이라는 온전한 육신이 없는 놈을 상대하려니 찌르고 자르는 공격이 거의 무용지물인 상태. 권보다 검을 선호하는 이드에게는 영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편히 가라고 해도 싫다는데. 두드려 패 달라면 패 줘야지.”
그렇다고 이드가 권각에 영 소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주 무기가 검일 뿐 이드의 주특기는 강기공이 아니던가.
독을 쏘아 내는 뱀 대가리를 향해 일라이져를 날린 이드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원래 모습을 회복하고 다시 구르기 시작한 성게 같은 놈을 철황권의 유일한 각법인 마각철황격으로 냅다 차올렸다.
펑!
순간 가죽 북이 아니라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놈의 몸이 허공 높이 떠올랐다. 덕분에 훤하게 트인 앞으로 놈의 뒤에 숨어 독과 음파를 뿜던 뱀 마수의 꼬리가 나타났고, 이드는 놈의 꼬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뿌드드득.
단순한 악력이 아닌 내력으로 꼬리 전체를 압축하듯 쥐어짜자 나무줄기만 한 놈의 꼬리가 야구방망이 정도로 압축되었다.
“끼에에엑!”
제대로 된 육신도 없으면서 꼬리에 예민한 동물 특유의 본능은 남은 것일까. 그때까지 정신없이 일라이져를 상대하고 있던 뱀 마수가 갑작스러운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독을 뿜으려 했지만…….
“좀 늦었다. 웃자!”
부웅.
악마 같은 미소를 보인 이드가 거창한 기합을 지르며 손에 쥔 뱀 마수의 꼬리를 잡고 휘둘렀다. 환골탈태의 몸과 거대한 내력에서 뿜어진 힘도 힘이지만, 허공섭물을 이용한 덕분에 수백 년 된 고목같이 거대한 뱀 마수의 몸이 채찍처럼 구불거리며 허공에 떠올랐다.
이드는 허공에 놈을 몇 번 흔든 후, 아까 차올려 이제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반신을 향해 뱀 마수의 몸을 휘둘렀다.
빠아아악!
“끼엑…….”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이드의 손에 둔탁한 통증이 전해졌다. 동시에 하늘 저 높이 검은 공이 빠르게 멀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완벽한 장외 홈런이다. 홈런 후에는?
“당연히 배트플립이지!”
꽈꽝!
이드가 방망이를 던지듯 손에 쥔 마수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거대 질량의 낙하에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고 국소 지진이 발생하며 땅이 흔들렸다. “켁!”
뱀 마수가 엄청난 충격에 불 위의 오징어처럼 몸을 꼬았다. 하지만 놈에겐 불행하게도 그게 시작이었다. 이드는 뭄바이 도비왈라들의 빨랫감처럼 충격에 튀어 오른 뱀 마수를 쉬지 않고 패대기쳤다.
쿠구구구궁.
연이어진 충격에 태풍이 온 듯 나뭇잎이 떨어지고, 뒤집어졌던 땅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다져질 정도가 되자………………
부스스스스.
뱀 마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재가 되어 흩어졌다. 아무리 뼈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라지만 내구가 한계에 이른 것이다.
“역시 최고의 무기는 지구지.”
물론 여긴 지구가 아니지만,
어느 유도가가 했을 법한 말을 뱉은 이드가 곧 하늘을 날고 있는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원심력에 멀리 날아가던 상자는 이드의 손짓을 따라 하늘을 나른 일라이져 위에 차곡차곡 쌓여 날아왔다.
상자를 받아 든 이드는 거침없이 상자의 뚜껑을 땄다.
푸쉬-
그러자 상자 안에서 뿌연 열기가 새며 미라처럼 바짝 말라 버린 사람의 머리가 나타났다. 여전히 숯에 남은 불씨처럼 희미한 생기는 남았지만, 이전보다 더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되고도 살려 두는 정신의 관의 기술이 무서울 정도다.
“놈이 마신 약물 때문인가.”
개연성을 생각하면 그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약물 먹고 헐크로 변했는데, 당연한 추측이 아닌가?
본래 그런 약물 중에 부작용 없는 물건이 없는 법이니까.
“문제는 그 부작용을 이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거지만.”
그렇지 않아도 머리만 남아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사람들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걸레 쥐어짜듯 짜내다니. 정말 인정사정없는 놈들이 아닐 수 없다.
“그냥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말도 못 하겠네. 할 수 있으면 악령이 되어서라도 이 짓을 한 놈을 죽여 버리라고.”
이렇게 당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잊으라는 것도 개소리라는 생각이 든 이드였다. 흔히 상처받고 다친 사람들에게 용서하고 잊으라 하는데,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용서하고 잊으라는 건지.
그때 마지막으로 주변을 돌아보던 이드의 눈에 뱀 마수표 롤러에 눌리지 않은 한 평 정도의 땅과 그 위를 뒹구는 깨진 병의 일부가 들어왔다. 깨진 주둥이 부분에 약간의 붉은 액체가 남아 있는 것이 뱀 마수가 복용한 약물이 분명한 듯 보였다.
“원혼의 도움인가? 설마 이게 남았을 줄이야. 진짜 천운이네.”
아무래도 채집한 향기와 함께 용기사 특급 해송으로 옮겨야 할 배달품이 늘어난 것 같다.
“다, 단장님! 무사하셨군요.”
병을 갈무리하고 돌아가자 알단테들이 하나같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뜨겁게 이드를 반겼다.
“고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렸습니다. 저희는 정신의 관 마법사들이 모조리 몰려나와 단장님과 싸우기라도 하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그랬다면 지진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그런데 그런 줄 알았으면서도 용케 자리를 지켰네?”
“도망칠 때 치더라도 유의미한 정보를 가지고 후퇴해야 한다는 것이 감시조의 신념입니다.”
“후후, 마음에 드는 신념이군.”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저 의리를 내세우며 자리에 남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인 신념이 아닌가.
“그런데 안에 마수 말고 다른 놈이 있었던 겁니까?”
“아니, 마수는 맞아. 종류가 달라서 그렇지. 아무래도 정신의 관 쪽에서도 지금처럼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더라고.”
이드는 간단히 뱀 마수가 삼켰던 약에 대해 말해 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뱀 마수의 모습도 능력도 아닌 약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니까.
“으음, 그렇다면 단장님의 예상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알단테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아직 틀릴 건 없어. 아직 진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저런 마수도 놈들의 인형일 뿐이다.”
어차피 마수 따위. 정신의 관 입장에서는 쓰고 버릴 인형일 뿐이다. 마법사와 재료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는 인형 말이다.
“그러니 자네는 걱정하지 말고 이것부터 받아.”
이드는 심각한 표정의 알단테에게 마수의 향기를 압축해서 넣은 병과 붉은 약병의 주둥이가 담긴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건?”
“지금부터 이 앞은 나 혼자 돈다. 그 사이 자네는 용기사를 불러 이걸 토벌대에 전해. 자세한 건 따로 보고할 때 전하겠지만, 각각 마수의 최음향과 마수가 먹고 폭주한 마법 약이다.”
“중요한 물건입니다. 옮기는 중에 저들에게 당하면 큰일이 아닙니까.”
“괜찮아. 이제부터 날 상대하다 보면 자네들에게 관심을 가질 정신이 없을 테니까. 저쪽에서 힘을 주는데, 나도 설렁설렁할 수 없지.”
흠칫.
시원하게 미소 지으며 말하는 이드의 모습을 본 알단테들은 묘한 한기에 몸을 떨었다. 좀 전의 폭음과 진동으로 이드가 고전을 했다고 여겼는데, 지금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그 반대였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단장님이 고전한 것이 아니라, 마수 놈이 단장님에게 두들겨 맞느라 고생한 것인가!”
정확하다.
그렇다고 마수가 불쌍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드에게 철저하게 박멸될 마수를 생각하니 짜릿한 쾌감에 떨렸다. 남아 있는 마수들은 모조리 동료의 원수가 아니겠는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 죽을 지경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즉시 용기사의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충!”
“충!”
가슴을 두드리는 조원들의 인사를 같이 가슴을 두드려 받아 준 이드는 그들을 보낸 후 다음 마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저점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 나도 속도를 좀 올려 볼까.”
설렁설렁하지 않겠다는 것은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도 이상의 힘을 쏟아 내면 정신의 관에서 화들짝 놀라 몰려나올 것이다. 적당히가 중요한 시점.
부우우우-
꽉 말아쥔 주먹에 검은색 철황강기가 어렸다.
그 상태로 이드가 훌쩍 몸을 날리자 마치 검은 유성 두 개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본래 하늘을 나는 유성은 떨어질 때가 있는 법.
순식간에 다음 마수의 머리 위에 도착한 이드가 주먹에 담아 가져온 철황유성탄을 쏟아 냈다.
콰쾅! 쾅! 콰쾅!
검은 유성우가 비처럼 휩쓸고 간 자리에 너덜너덜해진 마수가 꿈틀거렸다.
“과연 질기다. 그럼 이건 서비스!”
이드는 허공에서 낙하하며 마수의 이마에 발끝을 박아 넣었다.
퍽!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과연 이것이 적당히 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