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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06화


843화

이드는 조원들을 이끌고 첫날 머물렀던 협곡에 자리 잡았다.

조원들이 프리실라를 협곡 안으로 옮겼다. 협곡 끝은 절벽으로 막혀 있어 천연 감옥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런데 더 물러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저들도 장로를 잃었으니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드 옆으로 다가온 알단테가 내심의 걱정을 꺼냈다.

정신의 관 6장로라니! 그녀가 마수의 주인이라는 사실보다 몇 배는 놀라운 정보였다. 그러려니 했던 고위 마법사라는 말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오죽하면 뽑았던 일라이져를 다시 박아 놓자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알단테가 진짜 걱정하는 것은 프리실라가 아니라 그녀를 잃은 정신의 관의 반응이었다.

“걱정되나 보지?”

“솔직히 지금의 위치는 전술적으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기 때문에 안전한 위치는 아니니까요. 중요한 포로가 있으니 좀 더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단숨에 움직이기에는 조금 멀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애매한 거리. 이곳을 먼저 온 감시조와의 합류 지점으로 삼았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틀린 의견은 아니야. 하지만 자네 말대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잖나. 정신의 관도 많은 인원을 움직이지는 못할 거야.”

“……혹시 함정인 겁니까?”

“저놈들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 주기만 한다면 말이지.”

“으음.”

알단테는 기가 막혔다. 고작 아홉 명으로 함정이라니. 그것은 수백인지, 수천인지 모를 적이 숨어 있는 적진을 수 킬로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었다. 보통이라면 상관이 제정신인지 확인하고 긴급 직위 해제를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어이없는 말.

그러나 이미 이드는 적진 코앞에 거점을 만들어 도발하고, 대놓고 마수를 사냥한 결과 프리실라를 생포해 왔다.

이런 힘과 결과가 있으니, 상식에 기대어 무조건 반대할 수도 없었다. 초인을 일반적인 상식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 또한 그레센 대륙의 상식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와 조원들은 적이 습격해 오면 언제든 방어와 탈출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리고 용기사에게 물건을 전달하는 일은?”

“제가 직접 갔다 오려고 합니다.”

“둘만 남기고 조원들과 같이 다녀와.”

정신의 관에서 먼저 와 잠복해 있지는 않겠지만, 대신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충.”

가슴을 두드려 복명한 알단테와 조원들이 협곡을 나섰다.

이드는 협곡 끝에 포박된 프리실라를 확인하고는 협곡의 절벽을 경공으로 거슬러 올랐다.

협곡을 품은 절벽은 마치 첨탑처럼 솟아 있었다. 덕분에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주변을 경계하기 좋았다.

그 말은 경치가 좋다는 의미기도 했다.

“라미아.”

절벽 끝에 주저앉아 경치를 감상하던 이드가 자신이 본 이미지를 담아 라미아를 불렀다.

『이드, 오늘은 일찍 연락했네요. 그런데 여긴 어디에요? 제법 멋진 경친데.

『그렇지? 잘 봐둬. 어쩌면 이번 토벌이 끝나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토벌대와 정신의 관이 부딪히면 산 한둘 사라지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그것도 이렇게 일찍?』

오늘 좀 사건 사고가 많아서 말이야. 일단 먼저 보고 이야기하자.』

이드는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라미아에게 보냈다. 오직 영혼을 나눈 두 사람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말보다 빠르고 왜곡 없이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가능하다.

『축하해요. 대어를 낚았네요.』

기억을 소화하느라 잠시 말이 없던 라미아가 짝짝짝 박수를 치며 말했다.

『대어긴 한데, 불량품이 아닌가 싶어서 좀 찜찜해.』

하긴. 명색이 장로가 잡혔는데 너무 조용하죠. 감시하는 눈도 붙어 있었고, 효용이 다해서 함정 카드로 내놓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실라가 만들어 낸 마수는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었다. 이드가 상대해 본 결과 그레이트 소드라 불리는 절정과 화경의 고수들도 공략법을 모르면 상대하기 곤란한 놈들이었으니까.

마수들의 특성을 생각하면 기사들보다는 마법사들이 상대해야 할 놈들이다.

그런데 또 마법사들이 싸우기에는 육체적인 능력이 너무 높아 곤란한 놈들이 마수들이었다.

대신 이놈들에게는 전투 본능이라거나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이드는 마수라는 결과를 내어놓은 프리실라에게 더 이상 가치를 느끼지 못한 정신의 관에서 그녀를 토벌대를 혼란시킬 도구로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고, 라미아도 그 의견에 일부 공감한 것이다.

『함정 카드라도 일단 뒤집어 봐야겠지?』

『그렇죠. 손에 들어온 카드를 그냥 버릴 순 없잖아요. 그리고 꼭 전투 관련이 아니라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분명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을 테니까요.』

가령 정신의 관의 전력이라거나, 마법사들의 특기와 특징.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 낸 마수에 대한 공략 방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또 버리는 건 말도 안 되고 말이야.』

『아직 생포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았으니까 반응은 더 지켜보면 확실해지겠죠.』

『그렇지? 정신의 관에서 구하러 오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 쩝.』

그러면 다시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대신 확보한 카드에 대한 믿음이 좀 생길 것 같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몇 시간 있다가 이쪽으로 좀 올 수 있어?』

『당연히 갈 수 있죠. 왜요. 제 얼굴이 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정보를 캐내려면 네가 필요할 것 같거든.』

『겨우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답인지 대번에 날카로워지는 목소리에 이드가 급히 말을 더했다.

『물론 네 얼굴 보고 싶은 게 첫 번째고.』

『흐음. 뭐, 세이프로 봐줄게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시간 되면 불러요.』

이드는 라미아의 목소리가 멀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지구에서 나쁜 것만 배웠어.”

지구에 가기 전엔 저렇게 애정 표현을 강요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만 많이 가르친 지구가 갑자기 미워졌다.

오래지 않아 배달을 나갔던 조원들이 돌아왔다. 다행히 중간에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전달할 수 있었던 듯했다.

그들의 복귀와 함께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친 조원이 프리실라에게 저녁을 먹였다.

이드는 한쪽에서 토벌대에 전달할 내용을 통신구를 통해 전했다.

조금 있다 라미아가 오겠지만, 그녀가 왔다 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밀로 공공연하게 밝힐 수 없는 일이니까.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자 이드가 일어나며 말했다.

“불침번은 포로의 신문도 겸해서 내가 먼저 서도록 하지.”

“윌슨과 노말이 신문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좋아 신문 기술이지 결국 고문 기술과 같은 말이다.

그의 말에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자르고, 뽑고, 뜯으며 피를 보지 않아도 되는 세련된 고문 방법은 무림에 많았고, 이드도 몇 가지는 알고 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 배우기도 했고, 무공을 익히며 자연히 깨닫게 된 것도 있었다. 그 모두 손톱을 뽑고, 살을 지지는 것보다 강한 고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들이다.

“아니. 오늘 신문은 혼자 하지. 낮에 잘 달궈 둬서 그런가. 제발 물어 달라고 빌더라고.”

절인 배추처럼 늘어져 이드에게 끌려오던 프리실라의 모습이 떠오른 알단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필요하면 언제라도 불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짧게 답한 이드는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협곡 끝에는 조원 둘이 잠든 프리실라를 지키고 있었다.

“수고, 지금부터 신문 시작할 테니. 그동안 두 사람은 나가서 잠이라도 좀 자두도록.”

“충.”

두 조원이 두 말없이 가슴을 두드리고 자리를 비웠다.

이드는 잠든 프리실라에게 다가가 수혈을 점하고는 그녀를 들고 절벽을 올랐다.

신문의 방법이나 내용은 조원들이 알아도 문제가 아니지만, 라미아에 대해서는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라미아 지금 오면 돼.’

『알았어요.」

기다리고 있었던 듯 즉답과 함께 라미아의 모습이 자신의 가슴에 쑥 하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은 이드는 곧이어 라미아의 향기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얍! 우리 왔어요.”

“우리?”

의아해하며 돌아본 이드는 라미아와 나란히 서 있는 일리나를 볼 수 있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같이 왔어요.”

하긴 엘프보다 거짓을 잘 가려낼 사람이 없기는 하다.

“잘 왔어요. 일리나.”

“라미아에게 들었어요. 고생했다면서요? 어디 다치진 않았죠?”

이드는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며 확인하는 일리나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이나 혼돈의 파편급의 적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다칠 일이 없다는 걸 알 텐데 걱정해 주는 모습이 참 고맙다.

‘이런 거 좀 보고 배워라.’

“흥!”

은근한 이드의 눈짓에 라미아가 콧방귀를 뀌었다.

“고생이랄 건 없고. 오랜만에 바쁘게 뛰어다녔죠. 그보다 토벌대에는 별일 없죠? 훈련도 잘하고 있고?”

“훈련은 잘하고 있는데, 별일은 있었어요.”

“음? 있어요?”

습관적으로 물었을 뿐인데. 이드가 눈을 크게 뜨며 일리나를 보았다.

“네. 게일 경이 황녀에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일리나의 말을 바로 라미아가 이었다.

“이드가 없으니까 바로 움직이더라고요. 결국 일리나에게 퇴치당했지만요. 쿠쿠쿡.”

“퇴치?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헤어진 애인에게 질척대는 거야 흔하디흔한 이야기지만, 그러다 일리나에게 퇴치당했다고? 귀가 쫑긋거릴 정도의 궁금함에 이드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자 일리나와 라미아가 번갈아 가며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게일이 나타난 건 토벌대의 가장 큰 행사인 황녀의 기사단 방문이 끝난 후 돌아가는 길이었단다.

길을 막아선 그는 황녀에게 조용한 대화를 요청했다. 자신의 잘못과 여러 가지 오해를 풀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생각일 뿐이고. 이미 그의 바닥을 확인한 황녀는 게일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거절에 스폴이 나섰지만, 아무리 명성을 잃고, 신뢰를 잃었어도 실력이 어디 가지 않은 게일을 막을 수는 없었고, 자연히 무너진 그녀를 대신해서 일리나가 나섰다고.

일리나와 마주한 게일은 이드에 당한 복수심 때문인지 바로 검을 뽑아 달려들었고, 일리나는 그런 그를 가차 없이 제압해 버렸다.

사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황녀의 거부에 물러나지 않은 그의 자업자득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제압 과정에 있었다.

일리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게일의 명성과 남녀 간의 문제라는 특성을 헤아려 적당히 체면을 세워 주며 게일 스스로 물러설 기회를 주었겠지만, 인간 사회 특유의 체면, 체통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우리 엘프 일리나 님께서는 그런 거 없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게일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항상 황녀를 따르는 많은 시선들 앞에서 제대로 개망신을 당한 것이다.

일리나가 강하다 소문이 나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젊은 여성에게 쪽도 쓰지 못하고 패했으니까.

“사실 게일 경이 좀 추하게 질척거렸기 때문이기도 하다고요.”

라미아는 그 사태의 원인을 게일에게 돌렸다.

좌우간 흙투성이가 된 게일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도망갔고, 그가 일리나를 두려운 듯 바라보며 남겼던 검후라는 말만 남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일리나는 완전히 소검후라는 별명이 굳어진 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검후의 제자인 게일이 일리나를 보고 검후를 떠올렸다는 부분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이야기가 끝나자 이드가 혀를 찼다.

“차라리 조용히 엎드려 있을 것이지. 괜히 욕심을 부려서 망신을 자초했네. 자초했어.”

“토벌대에 끼면서 자신감이 좀 회복된 김에 나섰나 봐요.”

“부부에게 똑같이 망신을 당했으니 더 이를 갈겠네.”

그래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지만 말이다.

“이 여자가 포로인가요?”

이야기가 끝나자 일리나가 바닥에 누운 프리실라를 살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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