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15화
852화
프리실라를 폄하하는 소리에 베일록이 불끈해서 소리쳤다.
“그 아둔한 머리통으로 그녀를 재단하려 하지마라. 그녀가 연약한 것은 전투보다는 연구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듣는 이드는 기가 막혔다. 사람 머리 수십 개를 상자에 넣어 들고 다니는 여자가 연약하다니. 아무리 사랑의 콩깍지가 두꺼워도 정도가 있지, 이런 개소리는 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난 여린 그녀와 다르다. 곧 프리실라의 발바닥을 핥으며 용서를 빌게 만들어 주마.”
베일록이 입가에 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혀를 찼다. 아마 프리실라를 구하고, 감사의 키스를 받는 상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 테지.
하지만 혐오감에 치를 떨던 프리실라의 모습을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진짜 그가 프리실라를 구출하더라도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드는 불쌍한 중생이 어서 망상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을 썼다. 풍령장에 역류하던 회오리바람이 흩어졌다.
휘리리릭-
그중 한 줄기에 올라탄 이드가 마각철황격의 경력으로 베일의 다리 위에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뽀각!
오래된 고목 같이 굵은 다리가 갈대처럼 힘없이 부서졌다.
“아니, 어떻게?”
그 모습을 보고 이드의 얼굴을 박살 낼 상상에 히죽거리던 베일록의 얼굴이 의문과 놀라움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왜 다리가 부러졌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의문이 강했다.
“누가 누구와 다르다고?”
이드는 부러진 다리 위에서 비릿하게 웃으며 베일록을 쳐다봤다.
경력을 파훼하는 수법인 철사파경에도 끄떡없는 몸뚱이와 권로를 되집어 역류하는 반격기는 확실히 놀랍다.
그에 당황해서 허둥대다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음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특히 바람길을 타고 역류하는 바람은 모습을 감춘 암살자도 충분히 곤란하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수법이 모두에게 통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그레이트를 넘어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이른 검사라면 이런 공격에는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검사들의 반격이 베일록의 것보다 더 즉각적이고 날카로우면서, 은밀하다.
그에 비해 베일록의 반격에는 비릿한 혈향을 두른 오만과 자만의 냄새가 났다.
그간 그 능력으로 톡톡히 재미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야 싸움을 알아도 프리실라와 다를 게 없다.
“다르긴 하네. 미녀와 꼽추라는 점에서 확실히 달라.”
으드득!
베일록이 말없이 이를 갈았다. 그러나 전처럼 쉽게 흥분하지는 못했다. 믿고, 자랑하던 신체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는 프리실라와 달랐다. 그는 우선 부러진 다리를 복구했다.
뿌드득.
“하하. 무슨 레고로 만든 다리도 아니고.”
이드는 발아래서 느껴진 진동을 통해 부러진 다리가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고, 붙어 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황당한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제법 많은 적과 싸웠지만, 이런 회복력은 처음이었다. 회복력의 대표 주자인 트롤도 이 정도는 아니다.
“아, 최근에 하나 있구나.”
순식간에 복구된 다리가 풍차처럼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가볍게 회피한 이드는 프리실라의 검은 마수를 떠올렸다. 그러다 곧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회복력이 뛰어나지만 마수 정도는 아니다.
우선 베일록은 두드려 팰 제대로 된 육신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저 회복력은 프리실라를 스토킹하면서 따라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실로 궁금하다.
그런 느긋한 모습에 베일록이 자존심이 상한 듯 소리쳤다.
“오만한 놈!”
“오만과 실력 정도는 구별하자고. 그보다 이게 다라면 실망할 거야. 프리실라보다 못하잖아.”
실망 가득한 눈빛을 한 이드가 순간 바닥을 찍었다.
쿵!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멈춰 버렸다 싶은 순간.
또 다른 두 사람의 이드가 베일록과…………….
“이러면 내가 신경 써서 보는 눈을 치운 의미가 없잖아.”
“설마, 어느 사이에…………….”
그 제자 앞에 나타났다. 뇌령전궁보가 만들어 낸 환상 같은 이형환위였다.
“낄끼빠빠?”
“으윽! 뭐, 뭐?”
“나설 때와 얌전히 있을 때도 분간 못 하면 죽는다는 말이야.”
그런 이드의 뒤로 바닥을 바닥에서 치솟은 흙의 손이 이드의 잔상을 움켜쥐려 하고 있었다.
두 명의 이드가 똑같이 손을 들었다.
꽈르르릉!
뒤에 있던 잔상이 사라지고, 철황파산 특유의 두꺼운 철판이 울리는 소리가 두 사람의 가슴 앞에서 울려 나왔다.
“크억!”
답답한 신음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중 제자 쪽은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철황파산의 경력이 가슴을 치는 순간 심장이 가루가 되어 절명했기 때문이다.
튕겨 나간 두 사람의 몸은 마치 노린 듯, 한데 엉켜 바닥을 굴렀고, 그런 두 사람 위로 철황유성탄이 떨어져 내렸다.
꽈앙!
순수한 힘의 집합인 강환이 폭발하며 땅이 뒤집어졌다. 곧 비산하던 흙이 가라앉자, 푹 파인 구덩이가 드러났다. 그 중심에는 온전한 곳 한 곳 없이 부서진 고깃덩이가 뭉개져 있었다.
“크아악~ 퉤!”
그런 구덩이 뒤에서 베일록이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 내며 일어났다. 강기에 당한 크고 작은 상처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자신을 몸을 내려다보며 거친 숨을 내쉰 베일록이 이드를 견제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변신 후에도 남아 있던 꼽추의 흔적인 혹에서 마법진이 빛나더니, 굵은 마나의 촉수를 전신으로 뻗어 냈다.
슈우우우~
그 직후 베일록의 몸에서 뿌연 수증기가 뿜어지며, 그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재주가 그거뿐이라면 실망인데.”
이드는 그 모습에 혀를 차고는 스물여덟 개의 주먹을 한순간에 뻗어 냈다.
“나의 노예여, 적의 검으로부터 너의 주인을 수호하라!”
이드의 주먹이 베일록을 묵사발로 만들기 직전, 주문이 끝나며 그의 전신으로 뻗어 있던 마나의 촉수가 바람을 두르고 일어나 권영을 요격했다. 혹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촉수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닥터 옥토퍼스를 연상시켰다. 마나의 촉수와 권영이 부딪히며, 폭음이 이어졌다. 연속된 폭음이 드럼의 북 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이드는 권영을 마주치는 촉수에서 계산적인 기계의 느낌을 받고는 철황십사격의 출력을 높였다. 과연 촉수가 어디까지 견딜지 궁금했다. 하지만 애초 마나의 촉수가 강기를 견디는 것이 가능한 일이던가.
공격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며 베일록을 향해 접근하는 이드에 반해 마나의 촉수는 점점 깎여 짧아졌다.
당연히 베일록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극도로 압축되어 뿌연 안개처럼 보이는 바람의 갑옷을 두르고서 이드를 공격했다.
“미치겠구만.”
콰콰콰쾅!
티엔은 폭음을 따라 전신을 은은히 울리는 충격에 식은땀을 흘리며 침음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도대체 저런 괴물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겁니까?”
“바로 그걸 알아보려고 우리가 나온 겁니다만, 통신구는 부서지고, 팔도…….”
비히더가 묵묵한 눈으로 잘린 팔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게 바로 해더웨이가 두 사람을 베일록과 동행시킨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리 전투 경험이 없어도 정신의 관의 장로인 프리실라가 당했다면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베일록을 믿기는 했지만, 정보의 확보는 그의 전력과는 다른 문제기 때문이다. 뭐, 지금은 정보의 확보는 고사하고..
“당장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가 문제죠.”
“장로님이 이길 것 같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무리라고 봅니다. 딱 봐도 저 괴물에겐 여유가 넘칩니다. 하지만 장로님은・・・”
이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티엔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럼 장로님을 도울 수는 있겠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저런 실력이 있었다면, 옛날에 용병 일 때려쳤을 겁니다.”
티엔이 어림도 없다는 듯 양손을 저었다. 당장 그가 나섰다가는 무슨 짓을 해 보기도 전에 저 폭발에 휘말려 가루가 되어 버릴 것이다.
개죽음도 그런 개죽음이 없다.
그는 실력은 모자라도 눈치는 있었다. 자신이 가진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시도하려는 순간 죽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한순간 세 명으로 늘어나던 이드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리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적에게서 그가 추구하는
무술의 극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극도의 빠름이 가져다주는 묘용.
그리고 반응할 사이도 없이 쓰러진 베일록과 그 제자를 보며 자신의 목표가 틀리지 않았음을 기뻐했다.
물론 살아나야 그 기쁨도 이어지겠지만,
“우리만 빠질 수 있겠습니까?”
비히더가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베일록도 중요하지만, 그의 최우선 사항은 정보를 확보하라는 해더웨이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저런 괴물이 정신의 관 밖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저런 괴물은 따로 떨어져 있을 때,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는 것이 나았다. 괜히 토벌대가 도착해서 같이 움직이면, 정신의 관이 입는 피해만 늘어난다.
지금은 정신의 관에 머물고 있는 탑주를 믿지만, 그 믿음 하나로는 지금 충격만으로 심장의 마나를 흔들고 있는 이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티엔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주지 않았다.
“비히더 마법사님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저 괴물의 시선은 한시도 우리에게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움직이려는 순간 우리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릴 겁니다.”
“후~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장로님을 도와야지요.”
“움직이면 죽는다면서요.”
“어차피 죽는다면 발악을 해야죠. 그보다, 이제 비히더 마법사님도 숨긴 걸 꺼내 보십시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제가 눈치가 좀 있습니다. 급한 중에도 비히더 마법사님이 은근히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단 말입니다.”
“……”
비히더는 티엔의 말에 그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베일록의 찢어지는 비명에 급히 고개를 돌려야 했다.
피리리리릭!
요란한 바람 소리가 났다. 초대형 태풍이 상륙한 듯 바닥에 있던 돌멩이가 풍압에 휩쓸려 사방을 날아다녔다. 그 속도가 마치 총알 같았다. 그냥 맞았다가는 사망 확정이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런 돌멩이 따위가 아니었다.
강력한 바람결을 따라 흐르는 고압축의 삭풍이 문제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삭풍이 스치자 돌멩이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이드는 그 속에서도 여유로웠다.
총알 같은 돌멩이도, 고압의 삭풍도 이드의 영역 안에 드는 순간 시냇물 위를 떠가는 나뭇잎처럼 고요하게 변해 넘어갔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정령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냐!”
“당신 눈에는 정령 마법으로 보이는 모양이지?”
아무래도 베일록의 눈에는 절정의 운신법인 수신과 제공권이 마법으로 보인 것 같았다. 그가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한 무투파라 해도, 마법에 근본을 둔 마법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결국 그게 당신의 한계라는 거겠지.”
말하는 중에도 이드의 권영은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이미 촉수는 단창 길이로 줄어 있었다. 겨우 그것이 베일록이 온전히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베일록의 전신은 식은땀으로 가득했다. 이미 공격은 포기한 상태였다.
간간이 주문을 외워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프리실라도 없었다.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