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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25화


862화

구구구구구~

엄청난 폭발이었다. 마치 산 하나가 통째로 허공에 솟아오르는 것 같다. 강력한 폭음은 코앞에서 북을 친 듯 몸을 울렸다.

꾸워어어억!

곧이어 폭발로 인한 돌풍이 몰아치자 와이번들이 급한 날갯짓을 하며 불안하게 운다. 하늘의 지배자라는 놈들도 폭발의 위력을 느낀 것이다.

덕분에 겁먹은 와이번을 진정시키고 땅에 내리기까지 용기사들이 제법 애를 먹었다.

하지만 용기사보다 더 고생을 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그들과 동행한 기사들이었다.

“으어~ 죽는 줄 알았네.”

“누런 땅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내 다시는 와이번은 타지 않으리~”

와이번의 등에서 탈출하듯 떨어져 내린 기사들의 얼굴이 새파랬다. 첫 비행에서 폭발로 인한 난기류를 만나고 와이번의 몸부림까지 겪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휘청이던 것도 잠시.

빠르게 정비를 마친 기사들이 이드 앞에 도열했다.

“토벌대 소속 긴급 파견대가 명예 후작님께 인사드립니다. 충!”

“충!”

“어서 오시오. 급히 오느라 고생들이 많았소.”

가볍게 가슴을 두드리고 끝내도 될 것을 굳이 한쪽 무릎을 굽힌 기사들에 이드가 급히 인사를 받으며 일으킨다.

“명예 후작님께서 친히 감시조의 임무를 받아 세우신 전공에 비하면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당장 조금 전만 해도 저 뒤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만약 비행 중인 와이번 바로 아래쪽에서 터졌더라면, 그에 휩쓸려 기사단 전체가 육편으로 변해 버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다.

지금도 이드와 감시조가 기다리고 있는 걸 보았기에 안심하고 착륙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그대로 방향을 틀어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하하하. 많이 놀랐나 보구려.”

“그럼 역시, 저 폭발은 명예 후작님께서 만드신 작품이 맞는 것이군요.”

“크흠. 단장님께서 적이 깔아 둔 마법 함정을 격발시켜 터트려 버리셨습니다.”

알단테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자랑스럽게 이드의 전공을 꺼내 놓는다. 비록 한 건 없지만, 그 작업에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대작업에 참석한 기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 말에 기사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 후작님께서 적을 혼비백산케 할 한 수를 준비 중이라고 출발 전 주군께서 말씀해 주시기는 하셨지만. 이런 굉장한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마법사도 동행하지 않은 감시조를 이끌고, 대마법사가 함께해도 쉽지 않은 일을 성공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명예 후작님께 감탄했습니다!”

“이거 참…… 하하하.”

한목소리로 외치는 기사들의 눈길이 열광하는 스타를 만난 팬처럼 뜨겁다. 그 앞에 선 이드는 난감한 느낌에 어색하게 웃어 버렸다. 이대로 두면 자신에 대한 칭송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이드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보다 록마틴 후작님께서는 무슨 명령을 내리셨소?”

“저희가 받은 명령은 명예 후작님과 감시조를 찾아 후방 치털링 영지로 후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차적인 명령이었고. 현장에서는 명예 후작님의 명령을 우선하라 명받았습니다.”

“프랑 기사단에 대한 명령권을 내게 말이오?”

“정확히는 긴급 파견대입니다만, 그렇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인데, 감사한 일이구려.”

이드는 록마틴 후작의 결정에 적지 않게 놀랐다. 자신의 기사단. 그것도 와이번을 타는 용기사에 대한 명령권을 온전히 넘긴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현장을 파악할 수도 없는 상황인 이상.

명령권을 가진 사람의 말 한마디에 용기사 전원이 죽고 살 수 있는 일인데, 그걸 온전히 넘겼다니.

특히 용기사는 록마틴 후작이 가진 가장 큰 전력이며, 후작가의 가장 큰 힘이다. 용기사들이 사라진다면 록마틴 후작가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인데도 이렇게 쉽게 지휘권을 넘긴 걸 보면, 대담하다고 해야 할지, 통이 크다고 해야 할지 헷갈렸다.

‘그만큼 감시조를 맡아 준 것이 고마웠나?’

그게 아니고서야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이드가 세운 전공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이드 개인의 것이고,

어쩌면 용기사들이 희생당하는 만큼 이드에게서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음흉한 사람은 아니지.’

일단은 쥐여 준 힘. 거부할 생각은 없다. 거기다 믿어 준 건 고맙지만, 당장 이들을 써야 할 일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이드의 생각과 달리 프랑 기사단. 아니, 긴급 파견대는 당장이라도 칼질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럼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명예 후작님을 도와 어떤 적이라도 베어 내겠습니다.”

“음. 고마운 일이오. 하지만 당장은 벨 적이 없으니. 이대로 앉아 쉽시다.”

“…..예?”

“이만큼 뒤집어 두면 당장 달려 나올 줄 알았는데. 조용하다오. 아마 긴급 파견대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토벌대가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오. 토벌대와의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겠지.”

“하면……..저희들이 싸울 일은…….’

“당장은 없지 않겠소? 아마도.”

·전공이…….”

이드의 말에 기사들이 바람 빠진 인형처럼 노골적으로 실망했다.

긴급 파견대라는 이름을 달고 날아온 만큼 이드를 따라 큰 전공을 세울 기회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거품처럼 스러졌으니까.

‘도대체・・・・・・ 그 고생을 하고 날아온 의미가…………….’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나오지 않는 적을 멱살 잡고 끌어낼 수도 없는 일.

“단장님. 편히 쉴 수 있는 자리를 깔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기사들의 실망에 마침표를 찍듯. 알단테가 편안한 자리와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알려 왔다.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소풍이라도 나온 줄 알았을 정도였다.

“자, 한잔들 합시다.”

“….예.”

누가 보면 찻잔이 아니라 사약을 받는 줄 알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 그 자리에서 토벌대를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만큼 뒤집어 놨으면, 다시 함정을 깔기도 힘든 상황. 괜히 힘들게 노숙하며 눈을 부릅뜨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쉴 때는 쉬어 줘야 하는 법.

혹시 모를 만의 하나를 대비해 용기사 둘을 남긴 이드는 그날 해가 진 후 나머지 용기사와 함께 감시조와 베일록, 페리코를 데리고 치털링 영지로 이동했다.

늦은 밤.

이드의 방문에 영지에는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이드와 감시조는 오랜만에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명예 후작. 고생하셨소. 다른 건 몰라도 이번 토벌대의 최고 전공자 중 하나는 이미 명예 후작으로 정해졌소이다. 하하하하.”

먼지투성이가 된 대병력을 이끌고 치털링 영지에 입성한 록마틴 후작이 머리에 가득한 먼지도 털지 않고서 이드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지요. 그보다 그간 드렸던 보고와 물건을 잘 받으셨습니까?”

이드는 후두둑 떨어지는 먼지에 슬쩍 한 발 물러서 거리를 두며 말했다.

“물론이오. 가장 중요하게 챙겼소이다. 덕분에 저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 잘 알 수 있었소. 그것이 아니었다면 자칫 적을 가볍게 여기다 큰 실수를 할 뻔했소. 이 또한 명예 후작의 공이오.”

록마틴 후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로서는 진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드가 감시조를 통해 전하는 보고 내용과 적의 마수에 대한 정보와 증거. 그리고 어제 있었다는 함정에 대한 폭발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여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록마틴 후작은 토벌대를 지휘하고 책임져야 하는 최고 지휘관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드가 전해 준 작은 정보 하나하나에 기사들 살고 죽는 것이 훤히 눈에 보였으니.

그 고마움은 특히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에서 그렇게 아끼는 프랑 기사단의 지휘권도 내주었던 것이다. 이드가 물러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더하겠다면 돕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한데 이드는 그런 프랑 기사단을 사용하지도 않고, 그대로 온전히 전력을 보전한 상태에서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역시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인가. 전혀 공을 탐하지 않는구나. 일전에 생명의 관에 대한 건도 그렇지만, 공도 명예에도 관심이 없어.’

록마틴 후작은 이드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 전공에 눈이 멀어 엉덩이를 들썩이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모두 이드가 세운 전공에 애가 단 것이다.

그러던 차에 대단한 전공을 세운 이드가 스스로의 전공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믿음직한지.

적이라면 가장 무서운 자이며, 아군이라면 가장 든든하게 믿어야 할 자가 분명하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그런 자일수록 그의 능력을 믿기보다는 질투하고, 밀어내려고 했던 것이 문제이지만.

다행히 록마틴 후작은 그런 역사에 등장하는 소인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토벌대 내부에서는 오늘 당장 진군하여 적진 앞에 진을 치자고 하는 의견이 앞서는데, 명예 후작의 생각은 어떠시오? 아무래도 어제까지 적과 가장 가까이 있던 명예 후작이라면 이 일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소만.”

“제 생각에는 이곳에서 하루 정도는 충분히 휴식하고 그다음 하루 동안 천천히 진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프리실라와 베일록을 통해 정신의 관에서 토벌대를 상대로 철저히 준비했음을 들었다.

거기에 준비했던 함정을 모두 잃고도 거북이처럼 나오지 않던 자들이다.

그만큼 토벌대에 집중하겠다는 의미이고, 힘을 모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상대를 앞에 두고 빠른 진군에 많이 지친 토벌대가 도착해 보았자 좋은 결과를 보긴 힘들다. 오히려 정신의 관에서 좋은 기회라고 물어뜯으러 달려 나오지 않으면 다행이다.

“명예 후작이 그렇게 보았다면. 그런 것이 아니겠소. 토벌대는 치털링 영지에서 하루 휴식할 것이오.” 이드에게 간단한 설명까지 들은 록마틴 후작이 부관들에게 일러 토벌대의 짐을 풀도록 명령했다.

작은 반발은 있겠지만, 최고 지휘관이 결정을 내린 이상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명예 후작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많소만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잡지 않겠소.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저녁때 하도록 합시다.”

이드는 답지 않게 음흉한 얼굴로 눈을 찡긋거리는 록마틴 후작의 말에 크흠 헛기침을 했다.

도대체 이 노인네가 무슨 상상을 하는 것인지.

“배려 감사합니다. 그 전에 혹 포로를 보실 생각이라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장 먼저 확인하려던 참이오.”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장 만만한 것이 프리실라라는 여마법사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잘 구슬리면 베일록이라는 꼽추 역시 쉽게 입을 열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얻어 낼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으니.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제약이 있음은 나 역시 알고 있다오.”

“그리고 포로 중 페리코라는 자가 있습니다.”

“당부할 것이 있소?”

“아주 협조적인 자입니다. 그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럼 다른 자들은?”

“솔직히 다른 두 마법사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여야 한다?”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인간을 그저 마법에 필요한 부품으로 보는 자들입니다. 정신의 관은, 그런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저는 제국이 그들을 중히 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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