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3화
480화
이드는 고함을 지르며 도끼를 휘두르는 벤의 모습이 사자 같다고 생각했다.
도끼를 휘두르는 기세나, 거칠게 사방으로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모습이 그랬다. 하지만 벤은 사자가 아니고, 이드는 토끼가 아니었다. 거꾸로라면 몰라도.
‘아무런 기운도 담기지 않았다. 기운을 다루지 못하는 건가?’
이드는 벤이 순수한 근력만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도끼는 일반 병사에게는 위협적이다 못해 공포스럽겠지만, 검기를 사용하는 수준의 실력자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이드는 일라이져를 역수로 잡고 뽑아 들었다. 그리고 팔을 접으며 일라이져의 검신을 팔 위에 올려 도끼를 비켜 냈다. 그리고 검 끝으로 도끼의 옆면을 밀며 흘려보냈다. 일라이져가 장검의 절반 크기인 소검이기 때문에 가능한 활용법이었다.
티잉! 지지지지징!
도끼가 검날에 깎여 나가며 불꽃이 튀었다. 실로 간단한 하나의 동작으로 벼락같이 떨어지는 거대한 일격을 무력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쉬울 것 같았으면 국경 도시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산적질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흡!”
짧게 힘쓰는 소리와 함께 땅으로 떨어지던 도끼가 궤도를 바꿔 이드의 무릎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어지간한 실력자라도 기겁할 만한 방향 전환이었다. 내력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나 이드는 어지간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드는 철황기를 두른 다리로 도끼를 차올리고, 거기에서 생겨난 반탄력으로 몸을 종으로 회전시켜 벤의 어깨를 두드렸다. 순간 이드의 발 앞을 도낏자루가 막아서며 바람 빠지는 퍽퍽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철황기에 흐르던 경력도 같이 흩어져 버렸다.
“오호, 이것 봐라.”
이드는 감탄했다. 힘의 흐름을 컨트롤하는 화경 같은 상승의 무공이 아니라 거칠고 난폭한 힘의 분산이었다. 초인에 대해 알고 싶어서 적당한 힘을 쓰기는 했지만, 그 적당한 힘도 제대로만 들어가면 파워 소더급의 검사를 일격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의 공격에도 견디지 못한다면 초인의 힘을 제대로 경험시켜 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드였다. 다행히도 벤은 이드의 그런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는 모습을 보였다.
벤은 느긋하게 자세를 정돈하는 이드와 도끼에 깊게 남은 파인 흔적을 보고 야수처럼 웃었다.
“크흐흐흐. 생각처럼 금방 끝내지는 못하겠어. 기쁜 오산이야. 오랜만에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해 보겠구나.”
이미 그들이 하이탈로 향하는 하나의 관문처럼 인식되어, 최근에는 직접 검을 들고 대항하는 자들이 많이 줄어 있었다. 근 한 달 동안은 칼을 뽑을 상대도 나타나지 않았다. 비슷한 수준의 강자와 제대로 붙어 본 것은 더욱 오래된 상태였다. 싸움의 쾌감에 매료된 벤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생각지 못한 강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붕붕붕-
벤의 도끼가 빠르게 그의 주변을 회전하며 도끼날에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검기? 하고는 좀 다른데.”
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과 기사들이 사용하는 검기와 비슷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이드는 저 기운이 인간을 초인으로 만드는 힘인가 싶었다.
그 순간 벤이 달려드렸다.
“어서 와라. 개싸움은 처음이지? 크하하하!”
퍼퍼펑!
벤의 도끼가 땅을 깎아 내며 쏘아진 흙과 돌멩이가 이드의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그 뒤에 바짝 붙은 벤이 이드의 발목을 노리고 도끼를 휘둘렀다. 아직 경험이 일천한 어린 기사라면 누구나 당하고 말 사악한 한 수였다.
따당!
하지만 제법 경험 많은 기사에게는 통하지 않을 얕은 수법이기도 했다.
“미안한데, 내가 좀 동안이기는 하지만 개싸움은 제법 해 봤어.”
이드는 도끼를 막아 내고는 회전하며 벤의 목을 노렸다. 벤은 재빠르게 도끼를 당겨 이드의 검을 막았고, 위치와 공방의 묘에서 밀린 도끼가 벤의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퍽퍽한 소리가 나며 벤의 얼굴을 때리던 힘이 사라졌고, 오히려 그 반동으로 벤이 몸을 일으켜 이드에게 달려들었다.
거칠고 난폭한 벤의 도끼를 상대하며 이드는 두 가지 신기한 사실을 알았다.
첫째는 벤의 도끼가 너무 가볍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타당. 탕 챙. 채채챙.
이드가 일라이져의 검속을 마스터의 수준으로 한정하여 공격하고 있었는데, 벤은 거칠기는 하지만 그 모든 공격을 막고 반격하고 있었다. 아무리 특수한 힘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도끼는 엄연한 중병기다. 당연히 검보다 무겁다. 그것은 무기의 태생에서 오는 차이로, 도끼는 어쩔 수 없이 검의 움직임보다 거칠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벤의 손에 들린 도끼는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잠시 손을 나누며 파악한 벤에게는 그럴 역량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찌르기와 베기만을 경계하고 모든 공격을 몸으로 막아 내는 벤의 방어 능력이었다. 그는 검의 날만을 조심할 뿐, 그 외 이드의 주먹이나 발, 검면을 포함한 모든 공격은 무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제대로 된 수련법도 없이 실전에서 다져진 실력으로 이드의 검을 막고 있는 이유였다.
벤의 도끼 실력은 파워 소더급이지만 두 가지 특징을 더하면 능히 소드 마스터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연 하이탈에서 이들 세 명의 산적을 처리하지 못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드가 보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힘이기도 했다. 초인의 능력, 즉 초인기(超人技)라는 것이 확실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특이한 것이긴 해도 높은 경지에서 내려다보면 그 힘의 한계가 정확히 보였다.
이드는 급격히 벤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벤의 초인기에 대해서 몇 가지 테스트를 더 해 보고 마무리를 지을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이드의 생각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스터! 헉헉………… 괜찮으시면………… 저 좀………… 도와주세요!”
에단이었다. 슬쩍 돌아본 에단은 두 개의 푸른 구슬을 피해서 사방으로 팔딱거리고 뛰어다니며,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당장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동시에 확인한 일리나는 오히려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곁에는 라미아가 함께하고 있어서 걱정이 없었다. 만약의 경우 라미아의 마법이 상대를 지옥 끝까지 날려 버릴 것이다.
“알았어. 도와 줄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에단은 이드의 느긋한 대답에 애가 탔다. 하지만 돕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라 그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푸른 구슬을 피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에단과 같이 이드에 대한 마음을 불태우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벤이었다. 그는 이드의 도와주겠다는 말에 수년간 여러 실력자와 기사를 통해 키워 온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었다. 벤은 순간 감정의 줄 하나가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놈, 네가 도울 수 있는 놈은 아무도 없다! 네놈들을 죽이고, 저 엘프년을 끌고 가겠다!”
위이이이잉-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전신에서 바람이 흘러나오며 어설픈 휘파람 소리가 났다. 오만해진 자존심이 무시당한 분노로 전력을 모두 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는 중에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저 멍청이가!]
일리나의 머리 위에 올라 있던 라미아가 슬쩍 벤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말았다. 하필 일리나를 두고 그런 식으로 언급하다니. 그것도 숲을 나서며 한창 일리나의 안전에 민감한 이드를 향해서 말이다.
슬쩍 돌아본 이드의 눈매가 분노에 물들어 있는 것이 라미아의 눈에는 보였다.
[화났어. 화났어.]
라미아가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적당한 시점에서 이드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이드의 몸이 밀가루 반죽처럼 쭈욱 늘어나더니 벤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이드의 손에 들린 일라이져가 꽃봉오리가 피어나듯 벤을 향해 피어났다. 라미아가 그 모습에 급하게 외쳤다.
[이드! 죽이면 안 돼요.]
걱정마, 절대 쉽게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이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에단이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산적이라는 것보다 초인기에 더욱 관심이 컸다.
도둑은 어느 곳에나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 옆집에, 심지어는 나랏일 하는 곳에도 도둑은 바글거린다. 그런 상황이니 돈을 노리는 도둑이 길목에 하나 더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목숨만 노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죽지만 않는다면 돈은 잃는다 해도 언제고 다시 모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이드의 생각을 벤이 아주 제대로 날려 주었다. 일리나의 자유와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해 온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일리나를 언급한 것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사고파는 물건처럼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문제였다. 산적이 여성 엘프를 끌고 가서 뭘 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그런 점이 일라이져의 날을 세우게 만들었다.
수라참마인, 피 냄새 가득한 수라의 검이 벤의 전신을 저며 냈다.
때마침 자신의 분노를 터트리려던 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급하게 도끼를 휘두르며 앞을 막았지만 아무리 도끼가 깃털처럼 움직이더라도 전신을 한 번에 덮치는 검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치고 두드리는 공격에 대해서는 상식 밖의 방어력을 보이던 벤의 육체에 수십 개의 검흔이 새겨졌다. 어설프던 휘파람 소리가 그치고 찢어진 몸에서 바람이 새기 시작했다.
“자, 잠깐!”
조금 전의 박력은 간데없이 등골을 달리는 소름에 반사적으로 소리쳤지만 이미 벤의 전신은 피로 물든 이후였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한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추춤거리던 벤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죽어도………… 나만 죽지는 않아!”
콰과과과과─
벤의 전신에서 무거운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하나하나가 칼날의 돌풍이 되어 이드를 덮쳤다. 그러나 이드에게 그 돌풍은 너무나 어설퍼 보였다.
“깊은 이치도 찾지 못한 바람이 약하기까지 하구나. 무형기류!”
무형검강결상에서 가장 기묘한 강기무가 생겨나자 이드의 말대로 깊은 이치를 담지 못한 바람의 칼날이 강기무에 녹아 사라져 갔다. 그 사이로 무방비 상태의 벤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이었다.
“이런…………… 시펄……………
불뚝성이 있어 원래 리더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할 사람이 없어 대장을 맡은 이후로 좁쌀만큼 트인 눈에 상황이 아주 더럽게 되었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어떻게 취소하거나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더러운 것이다.
참혹하게 얼굴이 구겨진 벤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간 이드가 그의 전신을 두드렸다.
역시나 일반적인 타격기는 크게 소용이 없었다. 지금 이상의 힘을 사용하면 달라질 듯했지만 굳이 시험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시험하는 순간 벤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요 혈맥에 대한 타격도 생각만큼의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가중수법은 제대로 된 위력을 보였다. 이드는 그대로 벤의 주요 혈맥을 흔들어 한동안 힘을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 버린 벤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한동안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럼 에단 쪽을 처리해 볼까.”
그리고 이드가 에단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쾅콰르르릉!
이들 세 산적이 나타날 때와 같은 천둥소리가 다시 들리며 뿌연 먼지와 폭음이 이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 초인이구나!”
“이런, 헉헉…………. 병신 같은 놈. 그걸, 헉헉………… 이제 알았냐!”
에단은 푸른 구슬을 힘겹게 피하며 제발 이드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를 바랐다. 초인인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역시 초인은 예측불능에 귀찮고, 위험한 놈들이다 싶었다.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이놈만 해도 그렇다. 멀쩡하게 생긴 놈이 날아다니는 폭탄 두 개를 손바닥에서 꺼내서는 자신을 상대로 토끼몰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자신에게는 간파의 눈이 있으니 푸른 구슬의 정체며 공격을 미리 읽고 대비할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소드 팰러스 소속으로 상당한 실력을 가진 에단이었지만 그도 쉬지 않고 날아다니는 공격에는 제대로 된 대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그 공격이 건들기만 하면 터질 듯 보이는지라, 정말 갑갑하지만 답이 없었다.
이드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옆에서 서늘한 기세가 일어나며 이드가 상대하던 인물이 그대로 떡이 되어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을 노리던 폭탄이 떨어지며 땅을 흔들었다.
“이런 또라이 같은 놈들!”
에단은 자신을 덮치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급히 몸을 숙여야 했다. 아무래도 이놈들은 땅을 뒤집는 걸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