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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71화


907화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 던전 진입을 위해 삼 조가 부지런히 준비 중이다.

전날 쉴라의 활약에 힘입어 7층을 정복했다.

그리고 이어 진입한 이 조가 8층의 문을 열었다. 2층의 실패가 있어 각오를 단단히 다진 진입이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다시 실패했다. 층의 절반도 정복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와 달리 이번 실패에 대해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8층.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초인이 사용하는 초인기에 커다란 장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조에 포함된 거의 모든 초인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게 된 것. 이조 전력에서 초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삼분의 일을 조금 넘는 정도.

즉 절반에 가까운 전력을 잃은 것이다.

거기에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힘을 잃은 그들을 버릴 수 없으니,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배치해야 했고 그로 인해 다시 적과 싸울 수 있는 힘은 더욱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맛보기 층과 달리 8층은 그렇게 전력을 줄이고, 줄여 공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에 모이엔은 깔끔하게 공략을 포기하고 8층을 탈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져온 소식에 토벌대는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초인기를 쓰지 못하게 한다니.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이야!


“초인기를 봉인한다니, 이건 혁명입니다!”

“던전 같은 특수한 공간이 아니라, 평야에서도 가능한 방법이라면 그대의 말대로요. 혁명이며, 엄청난 사건이 맞소.”

“다음 진입 때 무조건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후작께서 막으셔도 절대로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시구려.”

토리빈 마법사의 어이없는 하극상에 록마틴 후작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라미아의 도움으로 상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니 허락했지. 그것도 없이 무작정 욕심만 부렸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서 주저앉혔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반응일 뿐.

정작 초인기에 제약이 걸린 초인들은 심각하기가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초인기를 제약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의 마법도 막고, 기사의 내공도 제압할 수 있는데, 초인기라고 방법이 없을까. 초인기도 그 근본에 마나를 두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응용하면 충분히 초인기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초인을 완전히 제압한 뒤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수를 한 번에 포괄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개인을 제압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에 8층에서 발현된 제약의 범위는 개인이 아닌 공간 그 자체.

“만약 이 제약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초인들의 위치가…….”

“우리가 키워 온 지위가 무너질 겁니다.”

“기사가 아닌 용병이나 해 먹고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초인들은 한데 모여 불안에 떨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방법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미완의 마탑이란 자들을 땅에 묻어야 합니다.”

초인들 사이에서는 불안의 대상을 제거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

그리고 그런 모습을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묵묵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발터였다.


“인원 재배치 완료했습니다.”

스폴이 보고했다.

“문제 될 만한 부분은?”

“완벽합니다.”

초인 전력의 무력화가 확인된 이상 원래의 인원 구성으로 8층 공략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삼 조는 대부분의 초인을 빼고, 그 빈자리를 기사들과 마법사들로 채웠다.

모이엔이 주장했던, 전력 교류를 뜻하지 않게 시작하게 된 것.

하지만 잘 돌아가던 인원 구성을 바꾼 것인 만큼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스폴의 보고를 들어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당연한가. 황녀가 끼어 있는데, 후작이 어련히 신경을 썼으려고.’

이드가 황녀를 바라보며 괜한 걱정이었다 생각할 때였다.


“흐흐흐, 꼴좋군. 갑자기 얻은 힘을 갑자기 잃다니. 당연한 거야!”

“이봐 조심해. 잘못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말이라고.”

“내 말이 틀렸나? 노력 없이 얻은 힘의 한계를 말한 건데.”

“그럼 자랑스럽게 소리치고, 징계받고 왕도로 소환되어도 난 모르는 일이야.”

“…..•큼큼. 마, 말이 그렇다는 말일세. 말이.”


조용한 귓속말이었건만, 이드의 감각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드는 혀를 찼다. 초인과 기사 간의 알력은 알지만, 어쨌든 지금은 함께 싸우는 전우다. 그런 전우의 사고에 기뻐하다니.

개인적인 사고방식에까지 관여하고 싶지 않고, 그럴 권리도 없지만.

“웁. 며, 명예 후작님…….”

순간 친구의 말에 불안하게 주변을 돌아보던 기사가 이드와 눈을 마주치고는 그대로 굳어 버린다.

이드는 그를 보며 삼조 뒤를 가리킨다. 나가라는 뜻이다.

그에 우물쭈물하다 결국 고개를 숙이고 뒤로 빠지는 기사를 보며 이드는 스폴을 불렀다.

“군기를 헤치는 기사를 처벌할 의무는 있단 말이지.”

거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받지 않을 권리도. 이드는 저런 생각을 가진 자를 삼 조에 두고 싶지 않았다.

“초인기를 각성해서 그런가. 괜히 이전보다 더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그나저나 속으로 저런 생각을 할 기사들이 한둘이 아닐 것 같은데.”

한순간에 무력화된 초인. 어쩌면 새로운 분란의 조짐일지 모른다. 부디 록마틴 후작이 문제없이 잘 조율하기 바랄 뿐이다.


준비를 마치자 록마틴 후작이 나왔다. 첫 진입과 복귀 이후 출진 현장에 굳이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갑자기 구성이 바뀌면서 신경이 쓰인 것 같다. 

“부디 큰 피해 없이 복귀하기를 바라겠소. 명예 후작.”

그리고 덕담에 이어서 조용히 최대한 황녀의 안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움직여 달라 당부하는 후작이다.

“걱정 마십시오. 겨우 8층에서 고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명예 후작을 믿소.”

그에 편한 미소로 답한 이드가 크게 출발을 외쳤다.

“삼조 출발!”


정신의 관 각 층의 입구와 출구는 끝과 끝.

층의 반대 방향에 위치했다. 그것이 한 층 한 층 쌓이니, 이동만도 보통 일이 아니게 되었다. 특히 6층부터 던전이 거대한 넓이를 자랑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그랬다.

때문에 이드가 8층 입구에 도착하는 데에는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렸다.

8층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6층과 비슷한 구조지만, 다른 점은 어서 들어오라는 듯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다는 점일까.

이드는 그런 8층에 거침없이 발을 디뎠다.

하지만 자신에게 깃든 초인기에 이상이 생기는 느낌은 느낄 수 없었다.

“크흐~ 여기군요. 이 공간에 초인기에 간섭하는 새로운 기법이!”

그때였다. 뒤에서 두다다거리는 발소리가 나더니 토리빈 마법사가 쌩하니 치고 나왔다. 저 나이에 어디서 저런 속도가 나오는지.

이드가 잡지 않았으면, 혼자 끝까지 달릴 기세다.

“켁!”

이드이 손에 잡힌 토리빈 마법사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한 충격에 혀를 빼물었다.

“던전 안에서 그렇게 조심성 없이 행동하면 위험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마음이 들떠서,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마법을 보면 당최 진정이 되질 않아서 그만. 허허허허.”

“열정은 좋지만. 조심하십시오. 그보다 8층에 들어서면 초인기가 막힌다고 했던가요?”

“정확히는 발동 시에 문제가 생깁니다. 때문에 전투가 있기 전에는 당사자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제약이 생기는 지점은 좀 더 안쪽입니다.”

토리빈 마법사는 한시라도 빨리 해당 범위 안으로 가고 싶은지 계속 말이 빨라졌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적 초인들은 영향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혹시 짐작이 가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에 관련해서는 몇 가지 톨릴의 법칙이나 퀠른 마나 역학에 따른 마나 교란에…………….”

“최대한 간단한 답을 원합니다만.”

“….큼.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없습니다.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는 있어도. 이들이 가진 이론의 뼈대를 알지 않고서는 힘듭니다. 상자에 대한 해석이 끝나면 제대로 된 가설을 세워 볼 수 있겠지만. 그리고 그런 의문은 저보다는 후작 부인께 묻는 것이 빠르실 겁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저 따위보다 더 높은 마법의 세계를 탐구하시는 분이니.”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고 빨라지는 토리빈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동산에 와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과 똑 닮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저 나이가 되어서도 마법이라는 학문에 저만큼 순수하게 열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토리빈의 믿음에 따라 라미아가 나섰다.

“대신 추측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있어요. 사실 완벽하게 적아를 구분하는 것은 기존 마법으로도 쉽지 않아요. 그걸 봤을 때 마탑이 초인들을 인공 각성시킬 때 어떤 특별한 장치를 한 것으로 생각돼요. 6층이나 7층에 배치된 초인들보다 한 단계 발전한 기술일 거예요.”

그녀의 대답도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 마법 이론을 기반으로 나온 답이었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

어쨌든 초인 전력을 교체한 삼 조에게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다음 층에서도 계속해서 이와 같이 초인기를 제약하는 마법이 사용되고 있다면 많이 곤란해요.”

황녀가 우려를 표했다.

그녀의 말처럼 그 순간 던전 공략에 초인은 투명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초인 무용론 같은 루머가 돌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로.”

“어째서요?”

“그럴 일이 있지요.”

마탑은 몰라도 모이엔과 소드 팰러스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초인이 무력화되어 던전에 내려오지 않아서는 곤란하다.

‘여기는 그냥 저들의 장기자랑의 장일 뿐이니까. 또한 초인들이 간절하게 달려들게 만들 미끼이기도 하고.’

통로는 이 조가 앞서 함정을 파괴해 준 덕분에 거침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던 때였다.

주물주물.

손에 쥔 강철을 찰흙처럼 주무르던 이드는 갑자기 초인기의 흐름이 잡음 낀 주파수를 수신한 라디오처럼 지직거림을 느꼈다. 동시에 말랑말랑한 찹쌀떡 같던 강철이 단단해졌다.

“여기서부터인가?”

“단장님?”

갑자기 멈춰 선 이드에 급히 주변을 경계하는 삼 조와 스폴이다.

“아, 여기서부터인 것 같아서, 초인기를 제약하는 마법의 범위.”

이드는 말과 함께 토리빈과 라미아를 돌아본다.

그에 두 사람이 동시에 감지 마법과 분석 마법을 발동시켰다.

“음, 미묘합니다. 특별한 이상은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인공적인 마나의 흐름은 잡았어요. 하지만 이건 너무 약한데.”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한 라미아는 다시 마법을 사용하며, 이드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이드의 초인기는 어때요?』

막혔어. 목에 먼지가 가득 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드도 풀 수 없어요?』

사실 풀었어.

역시! 어떤 방법이에요?』

「호신강기로 외부 간섭을 차단하니까 바로 해결되던데?』

어느새 다시 말랑말랑해진 강철을 주물럭거리는 이드의 대답이다.

“…….”

호신강기라고?

라미아는 무섭게 도끼눈을 뜨고 이드를 노려보았다. 초인들 중에 그 경지까지 무공을 익힌 초인이 얼마나 있다고 호신강기란 말인가!

그 정도 경지에까지 올랐으면, 그 사람은 초인이라기보다는 기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나마 무의미한 정보는 아니라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주먹이 날아갔을지도.


그에 이드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호신강기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실수가 분명하다.

이드는 반성하는 차원에서 얌전히 강철을 들고 내공을 운용했다. 이드의 내공 운용은 거의 정점에 다다랐다.

대맥과 세맥은 물론 피부 위로 흐르게 할 수도 있다.

이드는 운용법을 응용해 보았다.

호신강기를 대신할 방법을 찾기 위해.

물론 이 앞에서 그 연구만 할 생각은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9층부터 이런 제약이 없다면 8층에 대한 공략을 끝내는 순간 모든 게 자연히 해결될 테니까.

하지만 토리빈과 라미아의 분석을 위해 남는 시간 동안 시도는 해 볼 생각이다.

휘리리링.

눈 깜짝할 사이에 휙휙 바뀌는 내력의 흐름에 이드의 몸에서 묘한 음악 같은 울림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분석을 마치기 직전. 이드도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건 못 쓰겠네.’

그리고 곧 폐기했다. 내공이나 마력으로 외부의 간섭을 막는 방법. 내공이나 마력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

그래도 혹시 몰라 라미아에게 결과에 대한 보고는 잊지 않는 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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