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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87화


923화

기회가 있을 거라는 이드의 말에도 실망한 조원들의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반대로 눈을 대체할 기술을 가진 조원들은 신이 났다. 

“우랴! 내가 바로 이때를 위해 기감을 갈고 닦은 것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내 나이트 비전 앞에 어둠은 힘을 잃으리라! 움화화화!”

·저 새끼 감시 확실히 하고 있지? 혹시라도 여기사들이나 황녀 전하를 투시했다가는 진짜 우리 기사단 끝장이다!”

“걱정 마요. 목숨 걸고 감시할 테니까.”

인원이 줄어 공략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드가 있어 두려울 것도 없고 공을 세울 기회는 늘었으니, 신이 나는 것이 당연했다.

뭐, 그중 엉뚱한 소리가 끼어 있기도 했지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저 나이트 비전…….”

“쯧쯧쯧.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 내가 그런 대비도 안 했을까 봐요? 만약 훔쳐보려고 했으면 저 사람 두 눈 뜨고 살아 있지 못했을 거예요.”

이드는 간단한 확인을 마치고서야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까딱까딱 손가락을 흔드는 라미아를 봐서는 아무런 걱정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변태 짓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할 정도다.

‘모르긴 몰라도 다신 두 눈 뜨고 세상 빛 보긴 힘들 것 같지만 말이야.’

사실 제국 법으로 보면 이것도 약과다. 두 눈이 머는 것은 물론이고, 발각되는 순간 온갖 고문을 당한 후에 참수 확정이다. 황족의 옷에 흙탕물을 튀겼다고 목이 잘리는 세상이니,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저 어둠이 블라인드니스 마법을 형상화해서 채워 넣은 거라면. 해제할 수는 없을까요? 조원들이 너무 처져있는데요.”

실망한 조원들에게 경계와 함께 휴식을 명령한 스폴이 조용히 다가왔다.

하지만 이드는 마법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다. 자연 고개가 라미아를 향하자, 시선을 받은 라미아가 마치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말했다.

“지금 조원들을 준비시키는 게 그 때문이에요. 마법을 해제하려면 핵을 파괴해야 하는데, 그게 저 안쪽에 있거든요.”

“그럼 지금 지원자들은 일종의 특전대로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라미아에 이어 이드가 스폴을 향해 말했다.

“그럼 남은 조원들과 황녀 전하의 안전은 스폴 경에게 맡기지. 잘해 주리라 믿어.”

“충!”

아쉽게도 어둠을 뚫어 낼 능력이 없는 스폴은 대부분의 조원과 같이 대기하게 되었다.

황녀 역시 같은 이유로 남겨졌다. 그녀의 경우 능력이 있었어도 너무 위험하기에 데려가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대신 황녀가 수백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덕분에 일리나가 이드와 함께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흐흥~ 흐흐흥~”

황녀 때문에 계속 떨어져 있다가 함께 싸우게 되어 그런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일리나다.

그때 한쪽에서 준비를 마친 지원자들 속에서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지원조 총인원 61명. 전투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충!”

그는 임시로 지원조의 대장으로 임명된 딜런이라는 기사였다.

이드는 그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고 지원조를 바라보았다. 원래 지원자는 61명이 아니라 68명이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또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7명의 지원자는 대기조와 함께 남겨 둔 상태다. 그들은 스폴의 지휘하에 움직이게 될 터였다.

이후 이드는 간단한 주의 사항을 공지하고 어둠 속으로 진입했다.

“후우~”

어둠에 발을 들이자 곳곳에서 긴장한 숨소리가 뿜어졌다. 그걸 보면 시야는 잃었지만, 다행히도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노파심에 이드가 입을 열었다.

“지원조는 특히 조원들 간의 거리 유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 아군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하라.”

“충!”

아무리 각자 능력으로 시야를 대체한다고 해도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드는 지원조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의 기감에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이 인지되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진 공간일까요?”

그런 이드의 곁으로 일리나가 다가서며 물었다.

“의도는 모르지만, 목적은 던전에 들어온 토벌대의 목숨이겠죠.”

결국 이 어둠도 토벌대의 목숨을 노리는 하나의 공격 방법일 뿐이다. 어떤 방법을 쓸지 몰라도 목적을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철저하게 대비한 채 방어하고 있으면, 의도를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어이없이 죽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좀 전 이드가 시험 삼아 들어왔던 것보다 더 깊이 들어왔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거 설마 그냥 어두운 미로인 것은 아니겠지.”

바짝 긴장하고 있던 지원조의 긴장이 슬그머니 풀리려고 할 때,

그 소리가 들렸다.

뭐가 무거운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정돈된 아군의 것과는 다른 무언가 거친 숨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동시에 설마, 하고 말을 꺼냈던 기사를 향하는 조원들의 눈빛이라니.

“어…… 미안하다!”

그에 말이 씨가 되는 기적을 행한 기사는 짧은 사과와 함께 자신의 입술을 찰싹 때렸다. 모든 화의 근원을 응징한 것이다. 

“충분히 긴장이 풀렸으면 전투 준비!”

뒤이어 딜런이 검을 쥔 손을 단단히 조이고는 이드를 바라보았다. 언제든 명령만 하면 당장 달려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그때 이드는 나타나는 적을 살피고 있었다.

5개의 문이 열리며 사방에서 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현재 나타난 인원만 200이 넘고 있다. 숨소리가 거칠게 들릴 만했다.

무엇보다 숨은 거칠지만, 그만큼 기세가 사납다. 앞서 초인기로 벽에 숨어 기습만 하던 어리숙한 노예들이 아니다.

싸움을 알고, 피 냄새에 익숙한 자들. 전투 노예 혹은 용병이 분명했다. 거기에 무장을 갖췄음에도 동료의 무기와 부딪혀 나는 소음이 없다. 즉, 놈들은 어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 당연했다.

적과 함께 어둠에 빠져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보이고 적은 보이지 않아야 어둠을 쓴 의미가 있지.

그에 이드가 지원조을 향해 소리쳤다.

“지원조는 적이 보이나!”

“확인했습니다!”

“200이 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놈들이 나오는 문까지 보입니다!”

60명이 넘는 기사들의 외침에 층 전체가 웅웅 울렸다. 순간 다가오던 적들의 발길이 주춤거렸다.

토벌대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어둠을 꿰뚫어 보는 것에 당황한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은밀하던 움직임이 거칠어졌다. 신중하게 걷던 걸음이 날 듯이 바뀌었다.

동시에 이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원조는 사인 일 조로 서로의 등을 지켜라! 위층 놈들과 달리 싸움을 아는 놈들이지만, 토벌대에 비빌 수 있는 놈들은 아니다!”

“물론입니다. 토벌대는 제국 최고 기사들이 모인 곳. 어둠에 기댄 등신들에겐 지지 않습니다!”

딜런이 이드의 말을 받아 외치며 기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이드가 알기로 딜런은 기사단장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제법 센스가 있는 대처다.

그리고 그런 센스는 적의 심기를 거스르기 마련.

“까드득. 어둠에 기댄 등신의 검에 죽을 병신들이 네놈들이다! 죽여!”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거칠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신호로 검을 휘둘렀다. 누가?

화르르륵!

이드가!

붉은 검기가 흩날렸다. 난화십이식의 시작인 난화의 검초. 하지만 어둠에 가려져 아무도 보지 못한 화려함.

그러나 화려함이 사라진 난화는 실로 섬뜩한 무서움을 만들었다.

“모두 죽・・・・・・ 켁!”

“끄악!”

“막아! 막…… 크억!”

수십의 비명이 아리아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개중에는 검기를 막으려 시도하는 자도 있었지만, 그 작은 검기에 든 섬세한 변초에 허무한 헛손질이 될 뿐이다.

“크르・・・・・・ 르륵…….””

일순간이었다. 끊임없는 비명의 끝. 그나마 숨이 붙은 적의 피가래가 끊는 소리를 제외하고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시간이 멈춘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

“무, 무서운……”

억지로 쥐어짠 듯한 목소리.

이드는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함이 사라진 난화십이식은 실로 무섭다. 난화십이식의 모태가 된 수라삼검이 철저한 살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난화십이식이 그토록 화려한 것은 그 무서움을 숨기기 위한 것이리라.

그리고 13층의 이 어둠에 쓰고 있던 가면을 빼앗긴 난화십이식은 그간 숨겨 둔 진짜 흉악한 송곳니를 꺼내 놓았으니.

“결국 자업자득인거지.”

“오른쪽은 제가 정리할게요.”

짧게 말을 남긴 일리나가 오른쪽으로 날아가며 검을 뽑아 든다. 그녀의 검 끝에도 이드와 마찬가지로 가면을 벗어던진 난화십이식이란 맹수가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럼 자연 왼쪽은 내 몫인데. 일리나에게 질 수 없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드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짧은 일라이져의 검신에 붉은 검강이 쭈욱 솟아올랐다.

어둠에 가려 그 파괴적인 빛은 보이지 않지만, 강맹한 기운이 적들의 피부를 따갑게 찌른다.

그에 적들 중 상급자로 보이는 놈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레이트 소드급의 강자가 끼여 있다! 준비한 놈들을 내보내!”

“고작 그레이트 소드급이라고 봤다면 섭섭한데. 그리고 준비한 놈들이 나올 동안 누가 기다려 준다던?”

이놈들이 끝은 아닌가 보다. 역시 이런 어둠을 깔아 놓고 이게 끝이라면 아쉽지.

이드는 적들 사이로 파고들며 사방으로 혈화를 피워 올렸다. 은밀하고 끈끈한 난화십이식의 사초식. 이보다 이 어둠과 잘 어울리는 초식이 있을까. 동시에 일리나가 날아오른 반대쪽에서도 비명과 고함이 끊어지지 않는다.

양쪽에서 울리는 소리에 지원조의 피도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대장. 이대로 있다가는 명예 후작님과 소검후님께 공을 모두 뺏기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구경만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대장!”

“알아! 대신 명예 후작님의 명령이 최우선이다. 무조건 사 인 일 조로 움직인다. 단 두 개 조는 라미아 후작 부인을 지킨다.”

“아니, 절 지킬 필요는 없어요.”

딜런의 말에 라미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 부하의 입장에서 후작 부인의 안전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말하려 할 때였다.

부우우우.

공기가 우는 소리와 함께 라미아를 중심으로 수십의 탄환이 날았다. 기초 마법인 매직 미사일. 하지만 역시 쓰는 사람에 따라 하급 마법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는 듯, 매직 미사일은 하나도 빗나가지 않고 사방의 적들을 저격한다.

“봐요. 지킬 필요 없죠?”

“….!”

이런 모습을 보고 고집을 부릴 수는 없다.

지원조는 서른 명씩 갈라 이드와 일리나를 따라 적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사냥이다.

어둠의 도움 없이 같은 조건이라면 피나는 훈련을 거친 기사들을 이길 수 있는 용병이나 노예는 없다.

그들 중에 천재는 있겠지만,

그런 천재가 이런 곳에 있을 턱이 있나.

“이런 놈들 상대로 다치는 바보는 가만두지 않는다”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이드가 그런 지원조를 확인하고는 적들이 뛰쳐나온 문을 바라보았다. 분명 준비한 놈들이라고 했었다.

“자, 준비한 놈들이 누군지 빨리 나와보라고. 아군이 전멸하기 전에.”

그런 이드의 말을 들은 것일까.

쐐애액!

섬뜩한 파공음이 어둠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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