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97화
933화
그에 따라 마치 마술의 한 장면처럼 마수의 몸이 머리부터 검막에 닿으며 소멸되었다. 마치 검막 안으로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타탁.
그리고 이드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우오~! 명예 후작님께서 거대 괴수를 물리치셨다!”
“봤어? 자네도 봤어? 괴수가 통째로 사라졌어!”
“저게 무공이야 마법이야?”
“말이라고 하나. 무조건 무공이야. 무공이라고! 그래야 나도 수련을 하면 저런 무공을 쓸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질 게 아닌가!”
“행여나!”
“헛소리들 말고 만세나 외쳐! 명예 후작님 만세!”
“만세!”
기사들이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방으로 들어섰다. 하나같이 지키고 있는 라미아만 아니라면 있는 힘껏 달려오고 싶은 표정들이다.
“수고했어요. 다친 곳은 없죠?”
기사들을 대신해 한걸음에 달려온 일리나가 이드를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어렵지 않은 전투인 걸 보고 있었으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걱정해 준 덕분에 티끌만 한 상처도 없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저거부터 살펴볼까요?”
일리나가 제단과 그 뒤의 문을 향해 다가간다. 참으로 담백한 화제 전환이다. 하지만 이드는 이런 엘프식 대화가 마음에 들었다.
쓸데없이 길게 늘이는 형식적인 대화보다는 가장 진심에 가까운 이런 대화가 좋았다.
제단 위에는 세 가지 물건이 삼각 형태로 놓여 있었다. 가장 위에 왕관이 있고, 그 아래로 황금 잔과 도끼가 있다.
“아티팩트겠죠?”
“그렇겠죠. 자세한 건 라미아가 살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지난번 획득한 검처럼 제단 위에 놓여 있으니, 탑주가 내놓은 상품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때 이드를 따라 제단으로 다가온 라미아가 앞으로 나섰다.
한 걸음 뒤에 물러나 멈춰 선 기사들은 애써 덤덤한 표정으로 눈만 번쩍인다.
황금 둥지가 쉴라의 손에서 얼마나 큰 활약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토벌대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이 난 상태.
저 세 아티팩트도 그런 대단한 물건이 아닐까. 자신이 가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해도 궁금한 것이 당연했다.
“그럼 살펴볼게요.”
그런 눈빛 속 라미아의 손에서 마법진이 번뜩였다.
마법사들의 물건은 조심에 또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는 법. 라미아는 우선 제단부터 아티팩트까지 혹시 함정이 없는지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런 후에야 세 가지 물건에 손을 댔다.
“황금 둥지나 대검과 같은 초인력의 흐름이 있어요. 작동법이나 기능은 자세히 살펴야겠지만, 탑주가 내놓은 상품이 확실한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래도 세 개를 한 번에 내놓은 건 좀 이상해서 혹시나 했지.”
1+2의 파격 행사 중인 세일 물건도 아니고 말이다.
“아니면 저 문 뒤에 있는 공략에 대한 보상을 미리 한 걸지도 모르죠. 갑자기 문이 세 개나 나오다니, 수상하잖아요.”
맞다. 수상해도 보통 수상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아티팩트는 밑밥일지도 모른다. 죽을 자리라는 걸 알면서도 탐욕으로 인해 뛰어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밑밥 말이다.
“들어가 볼까요?”
일리나의 물음에 모두의 눈이 이드를 향했다.
그에 이드가 큰 고민 없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돌아가죠. 큰 변수가 생긴 만큼 공략보다는 보고가 먼저예요. 전리품도 전달해야 하고, 이미 충분히 빠르게 토벌 중인데 굳이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봐요.”
거기에 이드의 결정에 반대할 사람은 이 자리에 하나도 없다. 기사들이 아쉬운 듯 다행인 듯 한숨을 쉬었다.
그때 이드가 캄캄한 벽 너머를 보고는 말했다.
“참, 돌아가기 전에 어둠 마법부터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여기선 어려울 것 같아요. 마법의 핵이 층 끝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다시 살펴보니 아무래도 아래층에 있는 것 같거든요.”
잠시 잊고 있던 지원대의 목적을 떠올린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조금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리도 멀고 던전의 마력이 라미아의 탐지를 방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신 어둠을 피할 다른 방법은 구상해 뒀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구상해 놓은 방법을 쓰려면 오래 걸려?”
“아니요. 별로 어렵진 않아요. 그냥 이드가 마나를 펑펑 쓰면서 천천히 복귀하기만 하면 돼요.”
“마나를 쓰면서 천천히 가자고?”
그게 무슨 말인가? 이드의 고개가 갸웃했다.
그런 의문은 곧 풀렸다. 벽 너머 어둠 앞에 선 라미아가 이드의 마나를 뭉텅이로 뽑아내며 주문을 외웠다.
“너는 노래하고, 엮어 새기는 자. 스펠 바인더.”
비이이이잉~
주문이 끝나자 라미아의 양손 위에 성인 주먹만 한 크기의 빛의 구슬이 생겨났다. 자세히 보면 무언가 그 안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단순한 빛의 구슬은 아닌 것 같다.
하기야 라미아가 단순 시동어도 아니고 주문까지 외워 가며 만들어 낸 마법이 단순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
스펠 바인더의 역할은 곧 드러났다.
“자, 앞장서요.”
이드를 앞에 세운 라미아가 두 손을 쭉 뻗자 그녀의 손에 마나로 연결된 두 개의 스펠 바인더가 길 양쪽에 이중 나선과 룬어를 새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네가 말한 방법이야?”
“네. 어둠을 해제할 수는 없지만, 어둠을 밀어내는 방법은 있단 말이죠. 들어올 때는 환경도 끝도 몰라서 못 썼지만, 지금은 달라요. 제가 특별히 스타 로드라고 이름 붙여봤어요.”
누군가 자기 이름을 길에 붙였다고 불만을 가질 것 같은 이름이다.
“그럼 혹시 이대로 입구까지? 힘들지 않겠어?”
“별로요. 어차피 반복 작업이고, 그것도 스펠 바인더가 대신하고 있으니까요. 전 마나만 통제하면 돼요. 그러니 입구까지 보급 잘 부탁해요. 마나 탱크씨.”
별거 아니라는 듯 말하는 라미아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작업이다. 입구에서 여기까지 6킬로나 되는 거리에 마법진을 새기겠다니. 실로 무시무시한 스케일이다. 그것도 논스톱으로 한 번에 해결하겠다니, 감히 그녀가 아니면 누가 떠올리고 실행할 수 있을까.
마탑에서 보고 기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보는 눈을 다 치웠으니,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나저나 마나를 펑펑 쓰라는 말이 이런 뜻일 줄이야.
이드는 피식 웃으며 길을 걸었다.
입구까지 돌아가는 길은 무난했다.
함정도 기습도 없었다. 진입 때 모두 파괴했기 때문이다. 꼭 그게 아니라도 이 던전은 한 번 사용한 방법은 재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략하는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운용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백 프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방심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입구를 나서자 황녀를 시작으로 모두가 이드들을 반겼다.
하지만 이드는 그들을 살짝 뒤로 물렸다.
그러자 넓어진 어둠을 뚫고 나온 라미아가 입구에서 6킬로에 이르는 거대한 마법진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입구를 중심으로 바닥과 벽, 그리고 천정에 이르는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 낸 것이다.
“이제 이 마법진을 시동하고 유지할 마나석만 끼워 넣으면 스타 로드가 빛을 밝혀 줄 거예요.”
“마나석?”
“네. 이만한 마법진인데 대기 중의 마나만 흡수해서 운용하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그렇다고 이드나 제가 마나를 공급하고 있을 것도 아니고. 그러니 토벌대가 보유하고 있는 마나석을 사용해야죠.”
그러면서 조용히 ‘마나석 소모가 격렬할 거예요.’라고 속삭이는 라미아의 말을 들으니. 토벌대 돈 까지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했다.
그때 무슨 일인가 하고 물러나 있던 황녀들이 다가왔다.
이드는 그들에게 안에서 있었던 일과 라미아가 마무리한 마법진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대부분은 이드가 확보한 세 가지 아티팩트에 관심을 보였지만, 한발 물러나 있던 마법사들은 라미아가 만든 스타 로드의 규모와 대담함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상대가 후작 부인만 아니라면, 황녀만 없었다면 거짓이라고 소리치며 악을 썼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복귀하시죠. 던전과 전리품에 대해 보고도 해야 하고, 스타 로드에 불도 밝혀야 하니 말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대를 하고 싶어도 뭐가 보여야 들어가자 말자 말을 할 것이 아닌가.
삼조의 빠른 복귀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혹시 사고가 있어 빨리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해서다.
황녀가 나서 소동을 빠르게 진압한 후 핵심 인사들이 지휘부로 모여들었다.
“문이 세 개에 아티팩트도 세 개라.”
이드의 보고가 끝나자, 록마틴 후작이 팔짱을 끼고 핵심이 되는 내용을 되새겼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놓인 아티팩트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없는 정보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단 직접 들어가 최소한의 정보라도 확인을 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생포한 포로들을 다시 만나 보든가.
“그나저나 왕관이라니. 실로 괘씸한 행태로군.”
왕관은 감히 함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왕관은 권위와 지배의 상징이다. 사사로이 그런 것을 만든다는 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다. 귀족도 권위에 대한 도전에 민감하지만, 한 나라의 주인인 왕은 그런 문제에 특히나 민감하다.
그런데 이 정신 나간 놈들이 그런 왕관을 아티팩트로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이건 기능을 알아낸다고 해도 사용할 수 없었다.
과연 왕이 보고 있는데, 누가 이 왕관을 쓸 수 있을까.
그렇다고 왕이 사용할 수도 없다.
어떤 위험이 있을 줄 알고, 정체가 불분명한 이런 물건을 왕이 사용하게 둔단 말인가.
“결국 사용법을 알아내도 쓸 수 있는 건 이 두 개로군요.”
“그 두 개도 살아 있는 초인의 머리 같은 끔찍한 무언가가 섞여 있지 않아야겠지만요.”
“황녀 전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잔에 무언가를 넣어 마시기가 겁이 납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래서 궁금하기도 해요. 이 잔이 어떤 아티팩트인지. 설마 그냥 물이 자동으로 생겨나는 물건은 아닐 테죠.”
“뭐, 그건 후작 부인께서 알아내 주시기를 바라야지요.”
그 말과 함께 록마틴 후작이 라미아 앞으로 세 가지 물건을 밀어 주었다. 연구의 부탁도 있지만, 앞서 논의된 대로 아티팩트의 최초 발견자이므로 가장 큰 권리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에 그 모습을 보던 막사 안의 귀족들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끄응. 명예 후작은 운도 좋으시지. 나는 아직 하나도 발견 못 했는데. 벌써 몇 개를 찾아내신 건가.”
“여기 그런 사람 어디 한둘인가.”
잠시 자신들의 불행에 대해 한탄하는 소리가 오간 후 회의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핵심은 새롭게 나타난 세 개의 문이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절대 단순히 아래층으로 향하는 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래층으로 향하는 문이라면 세 개가 있을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의견은 다른 층에 비해 작은 13층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다른 함정으로 연결된 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하지만 문 앞에 놓인 아티팩트가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단순히 함정으로만 여길 수도 없다고 봅니다.”
“맞습니다. 제 생각엔 하나하나의 문을 아래층으로 향하는 입구로 생각하고 한 조씩 공략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자의 말에 순식간에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토벌대의 회의가 벌어진 가장 빠르게 결혼이 났다.
세 개의 초가 세 개의 문을 공략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