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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01화


937화

선후배의 아름다운 믿음 속에서 해가 졌다.

그에 따라 밝아졌던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표정도 조금씩 어두워졌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처음 그 자리를 지켰다. 일 조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달려갈 거란다.


스폴은 벌써 자리를 비웠다. 빈둥거리는 이드를 대신해 그녀가 아이넬 기사단과 삼조의 실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막사로 들어갈 때도 그녀에게서는 일말의 걱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사단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크고, 마음이 단단하다는 의미이기에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은근히 스폴에 대한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빨리 강해져서 그녀를 닮고 싶다고. 만약 쉴라가 그 마음을 알았다면 즉각 무력을 사용해 교정 작업에 들어갔을 법한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스폴을 대신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드가 어두워진 하늘을 보다 일어났다.

“난 잠깐 가 봐야 할 곳이 있는데. 계속 기다리고 있을 거지?”

“네. 계속 기다릴 겁니다.”

“그래. 그럼 볼일 보고 올 테니까. 계속 수고해.”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해 준 이드가 지휘부 막사로 향했다. 일리나는 황녀의 호위를 위해 스폴과 함께 자리를 비운 후다. 황녀의 호위가 그녀의 주요 임무이기 때문인데, 이드는 그 귀찮은 일을 맡아 준 것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드는 빠르지 않게 걸었다. 지휘부를 향하고 있지만, 진짜 목적은 지휘부 막사 뒤에 자리한, 마법사를 갈아 넣고 있는 연구실이다. 라미아가 그곳에 붙잡혀 있으니 구출해 올 생각이다.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사조에 대해서, 던전에 대해서,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일 조와 오 조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야기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어느 조의 피해가 가장 클까 하는 것이었다.

“소드 팰러스의 은색 기사단이 중심이 된 일 조와 초인 기사단이 중심이 된 오 조. 그리고 평범한 기사단이 중심이 사조의 실력 차이가 흥미진진하구만.”

“이 한심한 친구야. 사조의 핵심인 빌리어드 기사단이 어딜 봐서 평범한데?”

“그럼. 그럼, 평범은 아니지. 그래도 오색 기사단에 제국 초인 기사단에 비하면 아무래도 좀 딸리는 것도 사실이지?”

“어허, 그런 문제야 둘째 아닌가. 어차피 각 조에 소속된 기사단들은 우리들과 비슷하다고. 그래서 자네들 생각은 어때? 역시 가장 먼저 돌아온 사

조가 가장 실력이 달리는 거겠지?”

그들끼리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춘 목소리. 혹시나, 복귀한 사 조 소속의 기사가 들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조 기사는 피했어도 이드의 귀는 피할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불행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는군.”

갑자기 끼어든 이드의 말에 소곤거리던 기사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며, 명예 후작님!”

“충!”

“인사는 됐네. 그보다 지금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 치열하게 싸우고 돌아온,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을 동료들을 두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노골적으로 잘못을 지적한 것도 아닌,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듣는 기사들에겐 천둥소리나 다를 바 없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그 모습을 이드에게 발각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수치스러울 뿐이었다.

기사들의 얼굴이 마치 터질 듯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명명백백한 상황에 할 말이 있을 수가 없다.

“대답은?”

“그, 그렇습니다!”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드는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와르르 쏟아 내는 기사들을 살폈다. 자신에게 들켰다는 점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래도 모두 자신의 잘못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드는 그들에게 기사답지 못한 벌로 물과 응급 약품 등을 들고 던전 앞에 대기하도록 했다.

그것은 하인들과 병사들이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 반발하는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후다닥 달려나갔다.

“이 정도면 일 조와 오 조가 복귀해도 딴소리가 나오진 않겠지.”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이 모습을 보고 있는 기사들도 있으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금방 소문이 날 것이고,

그럼 이후에는 알아서들 조심할 것이다.


“꺅~ 마중 나와 준 거예요?”

문이 열리고 라미아가 환호성과 함께 뛰어나왔다.

막사를 지키던 기사들은 소식을 전하지도 않았는데 라미아가 어떻게 알고 뛰어나왔는지 몰라 놀란 모습이지만, 영혼으로 이어진 두 사람에겐 이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헛, 명예 후작님? 설마 진짜 오셨다니.”

“도망가려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는데.”

그때 열린 문 안에서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마치 도망자를 추격하는 형사 같은 것이, 도망치려는 라미아를 잡으려는 의지로 가득했다. 그들로서는 이드가 마중 왔기 때문에 돌아가겠다는 라미아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연구실은 마법적으로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마법사들에게 의문이 하나 더해졌다.

그리고 아쉬웠다. 명예 후작이 마중까지 온 이상 사정하며 라미아를 붙잡고 있는 것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워하는 마법사들 사이에 다른 감정을 표하는 여마법사들도 상당했지만 말이다.

“어마나~ 부인 마중이라니. 자상도 하시지. 부럽네. 부러워.”

“저도 다음엔 남편을 데려와야겠어요.”

“꿈깨 이것아. 네 남편 사전에 자상이란 단어는 없으니까.”

“아…… 좀 넣어 두시지 그랬어요. 형님.”

“미안.”

아무래도 시누 간인 마법사도 있나 보다.


“나나나~ 나나~ 나나나~ 나나~”

팔짱을 낀 라미아가 콧노래를 불렀다.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이드는 가족을 기쁘게 하는 것은 비싼 선물이 아니라 사소한 배려라는 어떤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말했다.

“다음에도 마중 올게.”

“호호, 그럼 좋죠. 하지만 그러지 말아요. 이런 것도 가끔 있어야 반가운 거니까.”

좋은 것도 매일 먹다 보면 질리고, 신선함이 떨어지는 법이다.

“그게 그런가.”

“그래요. 그보다 은색 기사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죠?”

주변을 둘러본 라미아가 말했다. 사조의 복귀 소식은 기사를 통해 들었지만, 그 후 소식은 듣지 못했단다.

“그래서 케마란과 네리베르도 아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지.”

해도 졌고, 허락된 공략 시간도 지났다. 공략 시간을 지나 복귀하지 않는 것은 사고를 당했다는 말과 같다. 슬슬 지휘부에서도 지원조를 꾸려 구조에 나설 준비에 들어갔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드도 가 볼 거예요?”

아무래도 계획을 세우고 지원조를 꾸리다 보면 늦을 수가 있다. 그에 비해 이드가 홀로 움직이면 지금 당장도 진입이 가능하다.

은색 기사단, 그리고 쉴라와의 친분을 생각하면 그냥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 중이야.”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색 기사단도 걱정이지만, 시간이 더 지났다가는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기다리지 못하고 던전 안으로 달려들 것 같아서다.

그때였다.

던전 앞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드와 라미아의 눈이 던전 입구를 향했다. 곧 던전 안에서 기사들이 밀려 나왔다.

동시에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환호성을 지르며 득달같이 기사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은색 파츠 아머의 여기사들. 일 조가 복귀한 것이다.

“아무래도 들어갈 필요는 없겠네.”

“아직 모르죠. 오 조가 있잖아요.”

마탑과 소드 팰러스가 함께 노리고 있는 가장 맛있는 먹이가 바로 오 조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여겼지만, 더 늦어지면 아무래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음・・・・・・ 따라가 볼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복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가장 먼저 반겨 준 것은 삼조의 기사들이었다.

모든 기사단이 복귀하고 나서야 겨우 가슴을 쓸어내린 록마틴 후작이 회의를 내일로 미루고, 고생한 기사들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대신 삼조 기사들이 고생하게 되었지만, 엉뚱한 짓을 하다 이드에게 걸렸던 기사들의 일이 있어서인지 불만을 표하는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사조의 피해가 가장 크고 오 조의 피해가 가장 적었습니다.”

조용한 막사 안. 오 조와 함께 복귀한 모이엔이 존 워스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어느 조의 피해가 더 큰가를 두고 쑥덕거리다 이드에게 걸려 벌을 받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모이엔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기사들의 말에 따르면, 피해가 적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이유?”

“공략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던전 공략보다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후후. 날 기다리는 것 같았다는 말이냐?”

낮은 웃음소리에 모이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트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발터와 기사들이 저 땅속에서 기다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것도 살기를 품고서.

그들은 갑자기 등장해 조원들을 학살하고 사라진 존 워스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워스 님이 예측하신 대로인 것 같습니다.”

딱 존 워스가 노리던 반응이었다. 존 워스가 조용히 술잔을 비우고는 말했다.

“본래 힘을 가진 자들의 습성이지. 당하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 그런 마음의 기다림이 조급함을 만들고, 조급함은 결국 성급한 실수를 낳게 되는 법.”

“그리고 그때가 바로 놈들을 정리할 때란 말씀이시죠.”

“그렇지. 그러니 은밀히 준비해 두어라. 사냥을 나갈 준비를.”

“맡겨 주십시오.”

자신 있게 답하는 모이엔이다.

그는 머릿속으로 청색 기사단에 대한 준비와 이 조 조원 중 뜻을 함께하기로 한 기사들의 리스트. 마지막으로 마탑과의 조율을 빠르게 계산하고 있었다.


각 조의 성적은 알게 모르게 알려졌다.

극비 사항도 아니고, 각 조에 속한 기사들이 토벌대에 섞여 있으니, 알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각 조의 성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드의 경고가 있어 그나마 대놓고 말이 나오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만 돌았다.

거기에 오조의 피해가 적기는 했지만, 워낙 주변을 경계하며 깊이 나아가지 않은 탓도 있어서 당장 각 조의 실력을 단정하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대략적인 실력은 나왔다.

그러자 자연 남은 두 개 조로 시선이 모였다.

과연 이 조와 삼조의 실력은 어떨까?

하지만 당장 확인할 수는 없었다. 문은 세 개이고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조는 두 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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