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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21화


957화

청색 깃털 기사단은 제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기사단 중 하나다.

기사단의 구성원은 모두 초인으로 한 명 한 명이 제국이 심혈을 기울여 모으고, 기른 기사들이다.

역사는 짧을지 몰라도 오색 기사단에 밀리지 않는 몇 되지 않는 기사단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오색 기사단을 넘어선다.

청색 깃털 기사단을 운영하는 것이 제국이기 때문이다. 제국은 검후라는 등대가 없는 대신 돈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기사단의 시설을 비롯한 모든 것은 최고였다.

오로지 자신과 기사단의 단련에만 신경 쓰면 되고, 뛰어난 초인이 발견되면 알아서 영입하여 충원해 준다. 이런 지원을 받고서도 발전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문제일 것이다.

다행인 점은 역대 청색 깃털 기사단장 중 문제가 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역대 단장은 제국과 대륙의 초인들을 위해 잠도 아껴가며 기사단을 키우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점점 덩치와 힘을 키워 지금에 이른 청색 깃털 기사단의 단장이 바로 발터다.

일반 병사로 이루어진 부대와 달리 기사단의 단장은 첫째도 실력이고, 둘째도 실력이다. 그런 기사단의 단장인 발터의 실력은 제국의 초인들 중 최고인 것이 당연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최소 오색 기사단 단장급은 될 거라고. 또 누군가는 오색 기사단장들도 넘어섰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기사들은 그 말에 펄쩍 뛰며 부정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런 기사들을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며, 내기를 하자며 거금이라도 걸라치면 슬쩍 한 발을 뺀다는 것이다. 즉, 초인들을 경원시하는 기사들조차 제국의 막강한 지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발터의 실력을 내심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는 발터의 공격이 막혔다.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하면 한없이 깊지만, 겉보기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공격이다. 그러나 절대 쉽게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순간 모이고 터지는, 절정에 이른 초인력의 운용은 둘째 치더라도, 강철보다 무겁게 압축된 마상창에 흑마의 무게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마상창 아래 있다면 오우거가 아니라 와이번의 두꺼운 비늘이라도 쉽게 뚫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막혔다.

번들거리는 마상창 끝에서 피와 살 대신 빛과 폭음이 터지더니, 그 끝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초인기로 강화되었지만,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강력 무비한 두 힘의 충돌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런 검강이라니……………..’

부릅뜬 발터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그와 함께 주변에 있던 복면들과 초인들이 충격파에 휩쓸려 조약돌처럼 튕겨 나갔다.

말끔해진 바닥에 흑마의 몸 곳곳이 뭉텅뭉텅 떨어졌다. 살아 있는 말이면 충격파에 피떡이 되어 죽었겠지만, 초인기로 만들어진 흑마는 멀쩡했다. 발터는 그런 흑마 위에서 자신의 공격을 막은 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투구에 전면을 가린 복면,

“그렇군. 아까 암살 기사는 가짜였어. 진짜는 당신이군. 당신이 암살 기사야.”

부서진 마상창을 버리고 멀쩡한 창을 바꿔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주 선 적에게 눈을 떼지 않는다. 동시에 묘한 확신을 담아 말했다.

순간 복면 위로 드러나 있던 눈이 보기 좋게 휘었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단 한 번 무기를 마주한 것으로 그걸 알아차렸나? 역시 머리가 좋군.”

“겨우 그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닙니다. 최소한 당신의 정체 정도는 밝힐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내가 누군지 안단 말인가?”

“모릅니다. 하지만 세 분 중 한 분이라는 확신은 있습니다.”

발터가 말하는 세 인물, 검왕이다.

눈앞에 있는 자가 지금껏 씹어 먹으려 악을 쓰던 암살 기사임을 확신해 놓고도 존대를 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한때 존경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기에.

“좋군.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자세는 좋아. 하지만, 증명되지 않으면 망상으로 끝날 뿐이지. 밝힐 자신은 있나?”

암살 기사로 지목된 복면인, 존 워스는 발터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했다.

“모릅니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때가 오리라 싶어 대비는 하고 있었지요. 다만 이런 자리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솔직히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무엇이 실망스럽단 말인가?”

“모든 기사가 숭상하는 위대한 검이 배덕을 배우더니, 지금은 배신과 협잡에 물들어 비린내 나는 생선 칼보다 저속해진 것이 실망스럽다면 대답이 되겠습니까?”

발터의 말은 독살스러웠고, 내려다보는 눈빛은 신랄했다.

웬만한 사람이면 당장 모멸감에 쥐구멍을 찾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팩트에 두드려 맞은 존 워스는?

“아하하하.”

웃는다. 수치스러워하긴커녕 부드럽게 웃었다.

수치를 알고 화를 내도 모자랄 텐데 웃다니. 자신의 말이 그렇게 우습게 들렸던가? 발터는 그 입에 창을 쑤셔 넣고 싶은 것을 참으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에 웃음을 그친 존 워스가 검을 들어 까딱거렸다.

“그래 그 말. 그 거침없는 성격. 그 때문인가 역겨운 초인 중 그나마 자네는 마음에 들었었는데 말이야. 그럼 와서 증명해 보게. 내가 자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는지 증명하지 못하면, 자네는 여기서 죽을 거야.”

“그럴 일은…… 없습니다!”

스읍 하는 작은 호흡.

그 호흡에 담긴 것은 폭발이었다. 발터의 말이 시작하는 위치와 끝나는 위치가 달랐다. 말이 이어지는 중간 흑마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말이 끝나는 순간 존 워스를 지나치고 있었다.

쩌정!

찰나의 교차.

그 순간의 충돌에서 오는 소리는 한발 늦게 터졌다. 존 워스의 복면이 찢어질 듯 펄럭이고, 망토의 일부가 찢어졌다.

등을 보이던 발터가 흑마를 돌렸다.

쿵!

그러자 말의 머리가 비스듬하게 기울더니, 기어코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 가려 있던, 흑마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 검흔이 나타났다. 하지만 흑마는 죽지 않았다. 애초에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니었던 탓이다. 발터는 흑마의 머리를 다시 만들지 않았다.

대신 창 한 자루를 더 만들어 들고, 그대로 돌진했다.

쩌정!

꽈르릉!

검은 바람으로 변한 발터가 종횡무진 사방에서 존 워스를 몰아쳤다. 바닥뿐 아니라, 사방 벽과 천장에 어지럽게 깊은 말발굽이 찍혔다. 검은 폭풍 속에 갇혀 버린 존 워스가 당장이라도 전복될 배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이드는 그 모습에 휘파람을 불며 감탄했다.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방에서 폭음과 고함, 비명이 섞여 혼돈의 카오스다. 휘파람이 아니라 박수를 치고 응원을 해도 모를 것이다.

“굉장한 속도. 그런데 발터 단장의 공격 패턴은 전에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네. 속도전 전문은 아닌 것 같은데.”

발터에 대해서는 그저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일전 암살 기사를 상대로 싸우던 모습이 전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짧은 몇 수였지만, 강력한 기술을 꺼내 보인 발터가 어떤 전투 방식을 선호하는지는 알 수 있었으니까.

한데 지금 그가 보이는 폭풍 같은 공격은 그때 보았던 모습과는 상이한 것이었다. 그때 이드가 발터에게서 본 것은 묵직한 산이었다. 쉽게 움직이지 않고, 한번 움직이면 무엇이건 단숨에 부숴 버릴 것 같은 무거운 패도랄까.

이드는 발터에게서 소림의 무공 같은 묵직한 무언가를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다재다능… 은 아니고, 진짜 모습을 감춘다는 건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건가?”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존 워스도 발터의 진짜 모습을 모르지 않을 텐데. 과연 통할까?

“그나저나 태풍이 일어나니, 작은 바람은 힘을 못 쓰네.”

이드는 급히 두 사람 주변에서 거리를 벌리는 오 조와 복면들을 보았다. 어쩐지 폭풍의 중앙에 있는 존 워스보다 그 주변에서 오조를 공격하다 발터의 공세에 휘말려 죽는 복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어쩌면 존 워스에 대한 공격은 눈속임이고, 진짜 목적은 복면들의 숫자 줄이기인가?


당연히 아니다.

‘좀 더 좀 더!’

발터의 눈은 맹수의 그것처럼 존 워스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흑마의 발굽 아래 곤죽이 되는 복면들은 애초에 관심 밖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발터는 오로지 존 워스에게 전심전력을 다 하는 중이다.

그는 적을 삼검왕 중 하나로 확신하고 있다. 당연히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검왕이라면 어중간한 눈속임이나 공격 따위가 통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단단했다.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수없이 공격하지만, 유효타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 철벽의 방어 중에 간간이 섬뜩한 반격까지 해 온다.

‘소름 돋는 검력이다. 역시 검왕이 확실하다. 이 단단한 방어와 검력. 우선 블러디 혼은 제외로군.’

발터의 머리가 끊임없이 상대를 분석해 냈다.

그에 따라 삼검왕의 일인. 블러디 혼 마르텔 겔로이드가 제외되었다. 그의 검은 이렇게 단단하고, 섬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터로서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나마 블러디 혼이라면 좀 상대하기 쉬울 텐데. 남은 둘은 블러디 혼보다 껄끄러운 상대다.

물론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은 없다. 발터는 경계심을 한 단계 올리고 공격 속도를 올렸다.

그러자 가만히 방어에 치중하던 존 워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리기 지치는군. 자네 실력은 이 정도가 아닐 텐데. 같잖은 수작은 사양하고 싶군.”

뿌드드득!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풀잎만 한 작은 검강이 회오리치고, 흑마의 반신이 절단 났다. 순간 발터는 그 충격을 이용해 뛰어올라 천장에 발을 디뎠다. 

“그렇다면 진짜를 보여 드리지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천장의 일부가 진흙처럼 발터의 몸에 엉겨 붙었다. 마치 강화 장갑처럼 발터의 몸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건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시에 존 워스의 머리를 향해 뻗어진 손에 새로운 창이 생겨났다.

“가두어라!”

발터가 크게 외치며 천장을 박찼다. 그런 발터의 속도는 총알의 속도를 넘어 있었다.

“계속 날 기만한다면 자네는 여기까지야.”

그러나 존 워스에게 그런 속도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짜증이 일어난 존 워스의 검이 발터를 향하는 순간.

쿠웅-

그간 발터가 사방에 발굽을 찍으며 뿌려 둔 초인기가 발동하며, 존 워스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발터의 초인기 엑스카베이터의 극의 중력을 조종하는 초중기였다. 초중기는 단순히 중력을 더해서 무겁게 하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래에서 잡아당기고, 사방에서 밀고, 위에서 내리누른다.

그러는 중에 잡아당기는 힘 속에도 또 강중약이 쉼 없이 교차하며 적을 흔든다.

탱탱볼 속에 들어간 상태로 적을 공격해야 한다면 이해가 쉬울까?

같다고 하긴 힘들지만 그와 같은 상황.

휘청.

존 워스도 쉽게 버틸 수 없었던 듯 흔들렸다. 예상 밖의 공격이었을까.

“당신의 검막이 일그러지는 순간을 기다렸지!”

그 머리 위로 발터의 창이 내리박혔다.

아까와 같이 검막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면 초중기의 영향도 약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검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검막이 일그러지고, 초중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형태가 되었다.

“이것으로 내 말을 증명하겠소!”

쿠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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