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2화
489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세계적인 차원 진동이 있은 후 텔레포트가 불가능하게 됐다.
애초에 공간 계열의 마법을 통해서 이동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장거리 텔레포트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해서 세상의 흐름이 멈추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극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그들이 바로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걸음을 제약하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노여워했다. 그들이 속한 단체와 각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자연 현상을 인간이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몇 가지 특징은 알아낼 수 있었는데, 좌표를 이용한
장거리 텔레포트는 불가능하지만 한계 시계 안에서의 상대 좌표를 이용한 이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 두 개의 대응되는 마법진을 통해서, 마법진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의 장거리 이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각국에서는 마법진에 의한 장거리 이동을 위한 마법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라미아가 파이온을 데려온 방법도 대응 마법에 의한 이동에 가까운 것이었다. 파이온을 향해 날아간 그녀가 굴뚝 속에 숨은 그를 잡고 이드 쪽으로 이동해 온 것이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마법진은 없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공간을 넘어 공명하는 마법진과는 감히 비교가 불가능한 영혼의 표식이 있었다. 이 표식은 훌륭하게 마법진의 역할을 대체하고도 남았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이드와 라미아는 공간을 넘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물론 이러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실력이 받쳐 주어야 했지만.
[짜짠! 산적 파이온 대령이요!]
라미아가 빛의 물결 속에서 모습을 보이며 화려하게 날갯짓했다.
조용한 곳을 찾는다는 말에 대장은 창이 없어 사방이 막힌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라미아를 기다리던 이드가 그녀와 파이온을 번갈아 보다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 상태가 왜 이래?”
이드가 파이온을 가리켜 보였다. 라미아의 아래에 놓인 파이온은 방바닥에 형편없이 구겨진 형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기절한 것 같습니다. 마스터.”
재빠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간 에단이 파이온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드는 에단의 말을 듣고는 다시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에게 말을 할 때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그였다. 자신이 대장의 안가로 오는 사이 발각된 것이 아니라면, 변화라고 할 만한 것은 라미아뿐이었다.
“라미아, 너 이 사람한테 무슨 짓 했지!”
“마스터, 여기 뭔가 그슬린 자국이 있는데요?”
마침 파이온의 상태를 살펴보러 가까이 다가갔던 에단이 말했다.
그러자 이드를 따라 방 안의 시선이 라미아를 향해 모였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모이자 일라나의 어깨 위로 뽈뽈뽈 날아간 라미아가 태연한 척 말했다.
[코홈! 이 사람 담이 작은 모양이에요. 제가 날아갔더니 기절할 듯이 놀라더라구요.]
이드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에게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라미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놀랐을 것이다. 은밀히 숨어 있는 곳에 금속의 새가 날아와 말을 거는데, 놀라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내 실수다. 네 이야기를 해 뒀어야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드가 자신이 잘못했다고 이야기하자 라미아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스스로 실수했다는 생각에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그 책임이 이드에게 넘어간 덕분이었다.
[에이, 너무했어요, 이드. 그러니까 그러죠. 저 사람, 제가 파이온이냐고 물으니까 놀라서는 다짜고짜 저를 공격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숨어 있는 상황에 시선이 모여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잠깐 마비시키려고 가벼운 쇼크 마법을 사용했죠.]
“하지만 라미아, 쇼크로는 저렇게 그을리지 않아요.”
일리나가 조근조근 말했다. 쇼크는 뇌속성의 기본 마법으로, 가벼운 마비를 일으킨다. 일리나의 태클에 라미아가 슬쩍 빼돌렸던 진실을 끼워 넣었다.
[제가 출력을 높여서 그래요. 하이탈 앞에서 싸웠던 걸 생각해서 좀 강하게 했거든요. 그래야 멈출 것 같아서요. 그런데 출력 데미지가 저항 없이 모두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다음은 라미아의 설명이 없어도 짐작이 갔다. 속성력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마나를 가진 자는 외부의 마나에 대한 저항력을 가진다. 높은 경지에 이른 기사에게 낮은 클래스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헌데 그 저항을 계산해서 출력을 높인 마법이 저항 없이 들어갔단다. 그것도 뇌속성의 마법이 말이다. 심장마비로 죽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라미아는 끝으로 저항하지 못한 이유가 내상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드는 몇 가지 실수와 우연이 겹친 파이온의 불행에 혀를 찼다. 이드와 라미아의 잘못도 있지만, 성급한 그의 대처도 문제였다.
이드는 라미아를 통해 그에게 가벼운 회복 마법을 걸어주고는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부상을 완치시키지는 않았다. 그와의 관계는 아직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우…… 핫!”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지루하다 싶어질 때가 되어서야 파이온이 몸을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돌아보다 이드와 라미아를 발견하고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편히 몸을 뉘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이드가 말했다.
“깨어났으면 그만 일어나는 게 어떻습니까?”
그 말에 파이온이 슬쩍 이드를 바라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사람을 참 요란하게 초대하는군. 쇼크 때문에 아직 몸이 뻣뻣해서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소.”
솔직히 이대로 한숨 더 자고 싶은 것이 솔직한 파이온의 심정이었다. 꼬박 이틀을 쫓기면서 잠은커녕 똑바로 앉아서 쉬지조차 못했다. 비록 딱딱한 나무 바닥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고생하다가 누운 바닥이 너무 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드는 그 모습을 더 봐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만하면 충분히 쉰 것 같은데요. 이쪽도 하염없이 기다려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만 일어나세요.”
“……집주인 인심이 야박하군.”
“제가 집주인이었으면 좀 더 누워 있게 해 드렸을 텐데, 제 집이 아니라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쯧, 알았소. 일어나겠소.”
이드가 그렇게 말하자 파이온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의자에 앉았다.
“……이런, 모르는 얼굴도 같이 있었군.”
파이온은 본 적 없는 대장의 얼굴에 살짝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장은 그 모습에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아무에게나 친절한 남자가 아니었다.
“네놈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내가 이 집의 주인이다. 불만이면 여기서 나가든지.”
“……아니오, 좋은 집이오. 잠시 신세 지겠소.”
강하게 나오는 대장의 모습에 파이온이 고개를 숙였다. 하이탈을 탈출하지 않는 한 지금처럼 편하게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은 이곳 말고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정리되자 이드가 말했다.
“자, 그럼 어째서 영주성으로 가면 죽을 거라고 했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죠. 물론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 이유라면 내일 영주성의 방문 선물은 당신이 될 겁니다.”
“……후, 당신들보다는 내가 살기 위해서 당신들을 가지 못하게 한 거니까 그럴 일은 없소. 그 전에 물을 좀 주겠소?”
도망치느라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듯 물을 찾는 파이온에게 일리나가 물 잔을 건넸다. 파이온은 자기 처지에 엘프에게 물을 얻어 마시게 될 줄 몰랐다며 쓰게 웃고는 물을 들이켰다.
“…………당신들이 성으로 가면 죽을 것이라고 한 이유는 하이탈 자작이 당신들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오.”
•끄덕끄덕.
그것은 이미 짐작했던 내용이다. 영주성에서 손님을 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주인뿐이다. 감히 자작의 눈을 피해 영주성에서 살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이탈 자작이 그럴 이유는?”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지만 하이탈 자작은 초인이오. 그런데 초인의 능력은 각성하는 순간 결정되고, 고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오. 다양한 사용 방법을 개발할 수는 있으나 힘의 총량은 처음과 달라지지 않소. 하이탈 자작도 이에 속하오. 능력이 성장하지 않는 초인들은 자신들 능력의 한계를 부수기 위해 수없는 시도를 했고, 그러다가 한 가지 방법을 찾았소. 바로, 다른 초인을 잡아먹는 방법이 그것이오.”
“앗! 포식자!”
파이온의 입에서 초인이 강해지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순간 에단과 대장의 입에서 경악성과 함께 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포식자.
이드는 그 말이 어떤 것을 가리키는지 듣지 않아도, 방 안의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성으로 가면 죽을 것이라고 말했던 이유도.
………맞소, 포식자. 그렇게 부르지. 그리고 하이탈 자작역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다른 초인을 잡아먹는 포식자요. 그는 당신들을 성으로 불러서 저쪽에 있는 초인을 잡아먹고 남은 당신들을 죽일 생각일 거요.”
아니나 다를까 생각대로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럼 당신이 영주성을 부수고 쫓기는 이유는 그런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오?”
대장이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파이온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한발 물러선 태도는 이미 없었다. 지금 파이온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귀중한 정보였다.
“자작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도 있을 거요. 하지만 나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 도망친 거요. 자작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파이온을 남은 물을 한 번에 들이키고서 강렬하게 외쳤다.
파이온, 그는 원래 용병으로 자작과 계약하고서 하이탈에 왔다.
하이탈 자작은 그에게 산적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많은 것을 약속했다. 그 대가 하나하나가 작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파이온은 자작의 요구를 허락했다.
무엇보다 자작의 은밀한 요구를 거절했을 경우의 뒷감당이 두렵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그와 같은 생각으로 계약하는 초인 용병이 한 명 있었고, 이미 앞서 일을 하고 있던 초인 용병도 있었다.
두 신입은 선배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일을 시작했다.
세 명의 초인이 팀을 이뤘기 때문에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이탈의 길목을 지키며 여행객을 사냥하고, 그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그렇게 나온 돈은 모두 그들의 부수입으로 분류되었다. 자작은 그런 돈을 원하지 않았다.
자작은 여행객들 중에 섞여 있는 강자와 초인들의 정보를 원했다.
세 용병은 그런 강자와 싸워 그들의 정보와 초인들을 분류해서 자작에게 알렸다. 상대가 강하다면 도망쳐도 상관이 없었다. 자작이 원하는 것은 상대의 정보였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잡혀도 상관이 없었다. 의뢰인이 자작이기 때문에 죽을 염려가 없었다.
대신 제압이 가능한 상대일 경우 잡아서 자작에게 넘기면 한 사람당 천 골덴의 거금이 주어졌다. 여행객들의 돈으로 인한 부수입에 짭짤한 보너스까지 있으니 파이온은 아무런 생각 없이 산적질에 빠져들었다.
앞서 계약 기간이 끝나고 떠났다는 두 용병도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위험한 일에서 손을 털고 인생을 즐기러 떠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돈에 눈이 멀어 자작이 자신들을 통해서 손에 넣은 정보와 초인들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파이온은 매일매일이 느긋했다. 오히려 매일 수련에 빠져 있는 선배가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그때도 당신들과 비슷했소. 한 명의 초인이 섞여 있는 용병들은 강자였고, 우리는 정신없이 도망가야 했소.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이들의 정보를 가지고 자작을 찾았고, 그대로 제압당해서 두 명의 동료는 내가 보는 앞에서 자작에게 잡아먹혔소.”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것은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 행위다. 인육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하고 불쾌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잡아먹히는 입장이 되어서 다른 사람이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불쾌함과는 차원이 다른 극한의 공포였다.
파이온은 두 명의 동료가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면서 토하고, 울고, 오줌을 지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자작은 기분 좋게 웃으며 그를 살려 주었다.
대신 그에게 새로 충원될 초인 용병들을 이용해서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협박했다. 만약 도망친다면 자신의 권력과 초인의 연락망을 이용해서 자신을 찾아 산 채로 먹어 주겠다고 했다.
이미 동료가 먹히는 것을 본 파이온에게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그리고 파이온이 자작에게 고개를 끄덕인 그날, 그들이 보고했던 초인이 잡혀 와 그가 보는 앞에서 잡아 먹혔다. 파이온은 그들이 전한 정보와 제압한 초인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파이온은 도망가기를 포기했다. 공포에 발목이 잡힌 것이었다.
“나는 새로 고용된 초인들과 산적질을 하면서 쉼 없이 수련했소. 능력의 성장은 둘째 문제였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해 봐야 했으니까. 그러던 중에 내 모습이 앞선 선배와 같다는 것을 알았소. 그리고 내가 어떻게 될지도 짐작이 되더군. 아니나 다를까 당신들의 일이 있고 성을 찾았을 때 자작이 우리를 제압하려 했소. 나는 죽을힘을 다해서 그의 손에서 도망쳤지. 아마 지금쯤 하이탈 자작은 나와 당신을 찾아 잡아먹으려고 군침을 흘리고 있을 거요.”
파이온은 능글맞게 말을 마치며 에단을 가리켜 보였다.
순간 에단은 그 손가락에 찔리기라도 한 듯 움찔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한 점도 핏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싸아아악-
새하얗게 탈색된 그의 얼굴에서 피가 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