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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09화


1045화

한 번의 공간 이동으로 국경을 넘었다.

두 번째에는 트롬바 자작령에 도착했고, 세 번째는 프렌시스 후작령에, 그리고 네 번째 공간 이동을 마쳤을 때, 일행은 멀리 수도가 보이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제야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요.”

검후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성벽 위로 우뚝 솟아 있는 황성을 바라보았다.

“여기선 인원을 나눠서 이동해야 하니까, 스폴 경이 인원을 나눠 줘요.”

이드가 수도에서 사용하고 있는 저택은 카일란의 것이다.

규모도 작지 않고 수련이 가능한 지하실도 있지만, 지금 이 인원이 한 번에 이동할 정도로 넓지는 않았다.

게다가 저택에 있는 관리인들을 준비시킬 필요도 있었다.

라미아의 말에 스폴이 기사들을 두 조로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보던 에린이 라미아의 눈치를 보며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절대 라미아 님을 의심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지만…. 정말 괜찮을까요? 안티로스의 성벽에 설치된 공간 이동 방어 마법은 상당히 강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오늘만 네 번이나 이동한 사람이 할 말인가 싶지만, 이해 못 할 걱정도 아니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막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컸으니 말이다. 게다가 공간 이동 중 방어 마법에 막히면 그 부작용이 컸다.

가볍게는 마차에 충돌한 정도의 충격에서부터 시작해, 수백 미터 절벽에서 내던진 수박처럼 산산조각나다 못해 한 줌 핏물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데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제국 수도인 안티로스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방어 마법이라면 얼마나 튼튼할까.

하지만 분명히 말해 에린의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아무렴 라미아가 이드에게 위험한 시도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라미아가 말했다.

“그럼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네요. 그런 의미에서 에린은 첫 번째 이동에 같이 갑니다.”

“….”


잠시 후 에린의 이동에는 이드와 라미아, 일리나는 물론, 쉴라와 검후도 함께했다.

전송 마법이 아닌 공간 이동 마법이었기에 다소 번거롭더라도 라미아도 함께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카일론이 소유한 저택의 지하실.

에린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앞선 네 번의 공간 이동보다 이번이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편안했다. 이유는 은은하게 빛나는 바닥의 마법진에 있었다. 

“혹시 이런 일도 있을까 싶어서 말이죠. 딱히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사실 자택도 아니고 남의 저택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할 일은 아니지만, 라미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넘겼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라미아니까 가볍게 말하지, 마법진을 설치하는 데 사용된 재료 값만 해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물론 이를 두고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안전하고 편하게 수도에 들어올 수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저택의 집사는 쉴라 단장이 직접 만나 보는 게 좋겠죠?”

“예. 저와는 안면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검후님을 뵌 적도 있으니, 잘 따라 줄 겁니다.”

검후와 은색 기사단이 저택에 머물기 위해서는 집사를 비롯한 저택의 하인들과 관리인들의 협조가 필수다.

외부의 눈이야 저택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해결된다고 해도, 식사나 빨래 등의 일을 해결하자면 이들의 도움이 꼭 필요하니 말이다. 

“그럼 잠시 기다리고 있어요. 조용히 데리고 올 테니까.”

말을 남기고 지하실을 나선 이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사를 들고 돌아왔다.

이드의 손에 잡힌 그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서는 어깨를 잡혀 허공에 들려 있었으니까.

“이게 뭐예요.”

“생각해 보니까 설명이 복잡하겠더라고요. 어차피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면 이해도 빠를 것 같다 싶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이드의 말도 변명으로만 들린 모양이다. 쉴라는 이드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는 중에 이드가 집사를 내려 주자 그는 곧바로 검후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보면 확실히 시각적인 확인이 이해가 빠른 건 정답이다. 

“검후님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리 반겨 주니 고맙구나.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잠시 머물게 될 것 같다.”

검후가 침착하려 애쓰는 집사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는 지하실이라는 환경과 상황을 파악한 듯,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았다.

“그저 모시게 되어 영광일 뿐입니다. 제가 알아야 할 부분을 알려 주시면 즉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사는 감히 검후에게 직접 묻지 못하고, 이드와 쉴라 사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에 이드가 에린을 불러 해야 할 일을 알려 주게 하고는 말했다.

“그럼 나와 라미아는 나머지 사람들을 데려오죠. 그사이 쉴라 단장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줘요.”

“알겠습니다.”

좁은 지하실에서 공간을 마련하려면 저택으로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쉴라가 에린과 이야기 중인 집사에게 다가가자 검후가 이드에게 소근거렸다.

“이드 님, 여기 너무 좁아요. 저와 은색 기사단이 함께 수련하기엔 어림도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가 가장 적당해. 그렇다고 뒷골목 신세를 질 순 없으니까. 그리고 지하실이 작다는 건 알고 있었잖아.”

검후와 은색 기사단이 함께 머물 만한 곳으로 몇 개의 장소가 후보에 올랐다. 그 중엔 검은 돌이 소유하고 있는 암흑가의 건물도 있었다. 그러나 검후를 찾으려는 자들이 어디 보통 위험한 자들인가.

안전을 생각하면 무조건 이드와 가까운 곳이 베스트였고, 그에 따라 나온 것이 이 저택이었다.

다만 문제라면 검후의 회복을 겸한 수련을 하기에는 지하실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상에 드러난 수련장을 쓸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어요.”

“일단 기다려 봐. 이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

검후가 미간을 모으고 제외했던 후보지를 다시 생각하고 있자, 이드가 걱정하지 말라며 그녀를 달랬다.

그리고 곧 집사가 달리듯 지하실을 빠져나간 후, 쉴라가 말했다.

“저택을 비우는 데 2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 후 올라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그사이 우린 나머지 사람들을 데려오죠. 아, 그리고 두 사람은 저택의 정보가 새지 않도록 집사를 돕고, 라미아, 이동하자.”

“바로 갈게요.”

에린과 에단에게 일거리를 던진 이드가 라미아와 함께 지하실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조용해진 지하실에서 에단이 일리나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들과 함께 움직여 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일을 확실히 처리하자면 일리나 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이에요.”

선선히 승낙한 세 사람이 지하실을 나갔다.

그러는 사이 스폴이 어디서 찾은 것인지 의자 하나를 찾아와서는 말했다.

“조금 지저분하지만,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죠.’

“…… “

하지만 그 의자에는 문제가 있었다. 먼지가 쌓여도 너무 두껍게 쌓여, 대충 청소하는 데만 20분은 걸릴 정도로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집사는 우수했다. 또 저택과 하인들에 대한 관리도 확실했다.

그는 15분 만에 하인들과 관리인을 모아 저택을 비우고, 검후와 은색 기사단에게 방을 내어 줬다.

그 후 뒤따라 올라온 에린과 에단의 도움을 받아 확실히 비밀을 지킬 수 있는 하인들과 외부로의 출입을 금지시켜도 문제가 없는 관리인을 가려

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부를 때까지 일을 쉬게 된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순순했다.

일단 쉬는 시간 동안 급여가 나왔으며, 일을 쉬게 된 이유를 알진 못했지만 일리나가 잠시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스스로 납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에게 일리나가 저택에 돌아와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물론 혹시라도 말이 샐 염려가 있어 내보내는 사람들이니만큼 비밀이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소식이 없던 검후의 출현보다는 놀랍지 않은 일이니 그들의 입도 그리 값싸게 열리지는 않으리라.

무엇보다 현재 제국에서 이드의 명성과 토벌전에서 보인 압도적인 힘에 대한 소문을 생각할 때, 그들도 이드의 정보를 흘리는 것에는 망설임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사실 이런 고단한 방법 말고 의심되는 인물을 강제로 감금하거나 처리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의심으로 애꿎은 피를 보는 일은 이드도, 검후도 원하지 않았다.


남은 기사들까지 전부 저택으로 데려와 쉬게 한 이드와 라미아는 다시 지하실로 내려왔다.

검후에게 자세히 말하진 않았지만, 이드는 이 저택에 검후가 머물기로 결정한 순간 이미 지하실의 확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저택의 크기를 생각하면 이 지하실이 그렇게 작은 것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당장 지하실을 수련장으로 사용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당장 한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을 생각해 보라. 팔다리만 흔드는데도 적지 않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 무기까지 드는 것은 물론이고, 수 미터씩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넓은 공간이 필요할지 한숨이 나올 정도다.

그걸 생각하면 마스에서 구한 저택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하로 더 깊을 필요는 없지?”

확장 공사에 들어가기 전 확인 차 이드가 라미아에게 물었다.

“네. 어차피 수련 중 발생할 충격을 대비해서 이, 삼중으로 보강할 거니까요. 그 작업을 마치면 지하가 붕괴될 일은 없죠.”

“알았어. 그럼 넓히기만 하면 된단 말이지. 노르캄.”

확인을 마친 이드가 이름을 부르자 땅의 중급 정령인 노르캄이 이드의 발 앞에서 솟아올랐다.

“오랜만이지? 오늘 나하고 같이 여길 좀 넓혀야 하는데, 같이 해 줄 거지?”

착!

이드의 질문에 노르캄은 재미있겠다는 듯 활짝 편 이드의 손바닥에 손을 마주쳤다.

하지만 그냥 땅을 파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지하실 한가운데 선을 그은 이드가 말했다.

“여기 선을 기준으로 누가 더 빨리 지하실을 넓히는지 시합이다. 어때?”

까딱까딱.

그 말에 노르캄에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땅의 정령을 앞에 두고 땅을 파는 걸로 이런 내기라니.

노르캄이 이드가 그어 놓은 선을 옮겼다.

대충 1대2 정도. 당연히 노르캄이 감당해야 할 넓이가 훨씬 넓다. 녀석은 이정도는 되어야 시합이 된다는 듯 가슴을 내밀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드와 라미아가 깔깔 웃었다.

“정말 괜찮겠어? 후회 안 해? 나 절대 봐줄 생각 없다?”

……!

스스로 패널티를 지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그래도 은근히 묻는 이드에 고민을 하던 노르캄.

아무래도 이드가 정령왕의 계약자라는 것이 떠오른 모양이다.

녀석은 제가 그어 놓은 선을 슬쩍 옮겼다. 그렇다고 원래대로 해 놓은 건 아니고, 2대 3 정도다. 작아도 자존심은 있다는 걸까. 

“좋아. 그럼 시작할까?”

그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와 노르캄이 각자 양쪽 벽 앞에 서서는 동시에 라미아를 돌아보았고, 그녀의 손이 떨어졌다. 

“시작!”

쿠르르릉!

그와 동시에 수도의 극히 일부분에 지진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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