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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13화


1048화

지하실 공사가 끝난 당일.

리모델링된 지하실에 만족한 검후는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신나게 검을 휘둘렀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 감금되었을 때와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강제성이 없다는 사실에 흥이 난 것이다.

그 결과.

“아으으~”

지독한 전신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 소식은 금방 알려졌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은 이드가 미묘한 표정의 스폴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한눈에 봐도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기에 슬쩍 추궁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검후의 상태를 까발려 버렸다. 말을 하면서도 실룩거리는 입술을 누르며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게, 퍽 재미난 모양이었다.

이드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후씩이나 돼서 근육통이라니. 세상이 알면 웃다 까무러칠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다.

그런 생각과 함께 찾은 검후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이걸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웃긴다고 해야 할지.

잠시 갈등하던 이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게 적당히 하라는 말을 들었어야지. 내 말 무시하고 좋다고 날뛴다 싶더라니. 검후라는 이름이 울겠다.”

“진짜 울고 싶은 건 저라고요. 정말이지 어이없어 죽겠어요. 고작 그거 움직였다고 근육통이 이렇게 심하게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검후가 우울한 말투로 말했다.

다른 누구보다 지금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그녀였다.

세상에, 근육통이라니. 언제 겪었는지 이젠 기억도 까마득한 그 통증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이드는 마치 세상이 끝난 듯 암울한 표정의 검후를 보다 그녀의 허벅지를 쿡 찔렀다.

그러자 검후가 언제 우울했냐는 듯 온몸을 바르르 떨며 높은 톤의 목소리로 화를 냈다.

“이드님! 장난치지 마세요. 정말 아프다고요!”

“그래. 찔러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네.”

아니, 그걸 꼭 찔러 봐야 아나? 그냥 딱 봐도 보이는 일에, 궁금하면 물어보면 될 것 아닌가 말이다.

이드는 심히 불온한 눈초리를 한 검후를 무시하고는 진단을 내렸다.

“그간 갇힌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긴 했겠지만, 좁은 공간에 한계가 있었다는 거지. 무엇보다 외부를 신경 쓰느라 어제처럼 전력을 다하지도 못했을 테고.”

게다가 그땐 내공을 봉인 당해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더욱더 한계까지 몸을 몰아붙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건 본능이 시킨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였는지도 몰랐다.

그에 검후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죠.”

“뭐, 그렇다고 해도 어제 무리한 건 사실이지만.”

검후는 환골탈태를 거치며 극한까지 단련된 신체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런 몸이라도 지치지 않고, 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계를 넘으면 지금처럼 근육통도 온다.

그런 면에서 어제 검후는 체력이 바닥을 보일 정도로 흥을 냈다. 당시엔 기분 좋은 탈력감에 상쾌했겠지만, 그 부작용이 착실히 찾아온 것이다.

“상황상 신관을 부를 수도 없고, 라미아가 좀 봐줄 수는 없을까요?”

“안 될 건 없지만 근육통에 마법은 효율이 떨어질 텐데. 그리고 굳이 마법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을까?”

“꼭 그럴 필요는 없죠. 그럼 혹시 이드 님이 직접 봐주실 건가요?”

검후가 물었다. 이 근육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방법이야 무슨 상관인가.

거기에 내공은 신체의 회복에 관해서 마법보다 뛰어난 면이 있다.

당장 내공을 이용한 간단한 응급 처치쯤은 기사들도 모두 배우고 있을 정도다. 수련을 몸에 달고 사는 만큼 당연히 개중에 근육통을 푸는 방법도 있다.

다만 대부분은 신관에게 신세를 지기 때문에 직접 쓰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검후에게는 사용할 수 없었다.

이미 본인의 내공이 봉인된 만큼, 타인의 내공으로 신체를 자극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쉴라나 스폴을 옆에 두고도 앓기만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그런 문제도 이드가 나서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검후의 기대와 달리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원한다면 봐줄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해서 회복할 필요가 있을까? 보기에 따라서 이것도 네가 말했던 회복의 일부라고.”

달리 보면 잠들어 있던 몸을 깨우는 과정 중에 생기는 것이 근육통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고생하는 것에 비해서 효율이 낮아요.’

잠시 혹하던 것도 잠시, 검후가 고개를 저었다.

이드의 말도 옳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황에 적용 가능한 얘기였다.

환골탈태를 거쳐 극한까지 단련한 검후와 같은 경우 근육통이라는 담금질은 큰 의미가 없었다.

말 그대로 효율적이지 못했다.

다만 이드의 생각은 그녀와 조금 달랐다. 그 효과가 크지 않아도 성장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물론 그렇다고 강요할 생각도 없다.

그녀는 검후. 이미 자신만의 수련 방식을 가지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완성된 한 사람의 무인이니 말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더 말하지 않지. 그럼 오늘은 천천히 봉인이나 풀어 볼까? 내공만 회복하면 근육통도 해결될 테고.”

“・・・ 기다리던 순간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언제 풀어 주나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정말 많이 기다린 듯 끙끙거리면서도 벌떡 일어나 앉는 검후다.

“바로 시작할까요?”

“조금 기다려. 안전하게 라미아와 일리나도 불러서 시작하자고.”

“두 분은 제가 모셔 오겠습니다.’

그에 한쪽으로 물러나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쉴라가 본인 일처럼 기쁜 얼굴을 하고는 방을 나섰다.

잠시 후 라미아와 일리나가 방으로 들어왔다.

쉴라는 그 후에도 집사를 불러 관리인들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한편, 기사들을 저택에 곳곳에 배치해 만에 하나라도 이드의 작업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검후는 물론이고 이드가 저택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는 시점에 과하다면 과한 조치였지만, 모두 신나게 움직였다.

주군을 모심에 있어 여러 가지 상황을 대비하는 자세는 칭찬받으면 칭찬받았지, 하등 욕할 거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방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봉인 해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미 쉐어 가든에서 검후의 상태를 확인했던 이드는 다시 한번 시간을 들여 세세하게 그녀를 묶고 있는 봉인을 살폈다.

‘이게 초인들의 방법인가. 과연 특별한 구석이 있어.’

검후의 내공을 봉인한 방식은 무공과도 달랐고, 기존에 있던 마법적인 방법과도 달랐다. 비슷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일단 무공과 마법은 외력을 주입해 신체에 간섭한다는 점이 같았다.

그에 비해 검후에게 사용된 기술은 내부에 에너지원을 생성시켜 충돌시키는 방식이었다.

물론 초인들의 기술 역시 이 에너지원을 심는 과정에서 외력이 주입되는 것은 같다.

하지만 그 후 유지는 내부 순환 방식을 사용,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돌에서 파생된 에너지를 재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 효용성이 상당할 것 같다고 이드는 추측했다.

그러자 검후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대단하네. 이런 봉인을 몇 번이나 스스로 해체했단 말이잖아.’

전혀 알지 못하는 방식을 풀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연구하고 고생했을까.

그것도 타인이 아닌 스스로의 몸에 걸린 봉인이기 때문에 몇 배나 힘들고 까다로웠을 텐데 말이다.

이드는 검후의 등에서 손을 떼고는 말했다.

“역시나 대단한 봉인이야. 이런 걸 도대체 어떻게 끌러 낸 거야?”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필사적으로 달려들었죠. 처음이 가장 힘들었어요.”

검후는 그렇게 자신이 봉인을 푼 방법과 당시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들이 이드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서였다.

그런 바람대로 이드는 검후의 이야기를 들으며, 봉인을 살피는 동안 고안했던 봉인 해제 방법을 좀 더 안전하고 완벽하게 고쳐 나갔다.

그리고 이 정도면 완벽하다 싶을 때 검후의 36개 대혈을 차례대로 점혈하여 내력을 심어 놓았다. 그리곤 명문혈에 장심을 가져다 댔다. “쬐~끔 아플지 모르지만, 심하진 않을 거야. 시작한다.”

끄덕.

검후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이드는 장심을 통해 무극신기를 뿜어냈다. 그와 함께 36개 대혈에 심어 놓은 무극신기 역시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드가 점한 36개 지점은 봉인의 핵심인 충돌 에너지가 발생하는 곳.

그곳에 제삼의 힘이 개입하자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충돌하던 봉인과 검후의 내공이 폭풍 속에 든 조각배처럼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불협화음은 곧 통증이 되어 신경을 강타했고, 검후는 머리가 삐쭉 설 것 같은 날카로운 고통에 이를 악물며 이드를 원망했다.

‘도대체 이게 어디가 ‘조금’이란 말이야!’

신관도 그렇고, 마법사도 그렇고, 거기에 이드까지.

사람의 몸을 치료하는 인간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검후는 생각했다.

그런 검후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이드는 예상보다 격렬하게 반응하는 봉인의 힘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가 ‘조금’이라고 했던 말은 검후의 생각과 달리 진심이었다. 다만 그의 예상이 틀렸을 뿐이다.

이드는 작업을 서둘렀다.

검후의 내력을 단전으로 돌리고, 그 빈자리를 차지해 봉인을 속였다. 그리고 그 후 충돌 에너지에 무극신기를 심어 봉인의 에너지원을 근원부터 오염시킨다.

핵심은 이 에너지원이다. 이걸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이상, 검후의 봉인은 무한하게 재생한다.

검후가 매번 봉인을 풀 때마다 간단하게 더 강하게 묶어 둘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에너지원 때문일 것이다.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에너지원을 오염시켜 무극신기를 진입시킬 길을 확보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이십여분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사자인 검후는 그보다 몇 배는 더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당장 이드에게 보이는 뒷모습만 해도 식은땀투성이지 않은가.

“잘 참았어. 덕분에 중요한 고비는 넘겼어. 이제 마무리만 하면 끝나니까 조금만 더 견뎌.”

위로를 겸한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검후. 그 모습을 본 이드는 다시 그녀의 내부를 향해 정신을 집중했다.

무극신기를 흡수해 버린 에너지체는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유문혈 위쪽에 자리 잡고 있던 놈은 어느새 혈맥에서 떨어져 위장 아랫부분에서 부유 중이었다.

이드는 그런 에너지체에 무극신기를 좀 더 주입하며 끌어 올렸다.

투두두둑.

그러자 에너지체가 떠오르며 혈맥에 막혀 있던 에너지원의 뿌리가 뽑혀 나왔다. 그건 거미줄처럼 가늘었는데, 자세히 보면 지네처럼 무수한 다리가 나 있어 매우 흉측했다.

좌우간 문제가 될 수 있는 뿌리까지 뽑히자 에너지체에 침투한 무극신기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추르르륵.

우선 강력한 흡입력을 발생시켜 뿌리를 에너지체 안으로 흡수한다. 직후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일어난 삼매의 열기가 티끌만 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에너지체를 소멸시킨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정확히 48분.

일 년이 넘도록 검후를 괴롭혀 온 봉인의 뿌리가 뽑히는 순간이었다.

이드가 말하진 않았지만, 검후도 그런 사실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쿠르르릉!

검후의 단전에서 구름처럼 일어난 내공이 비와 천둥을 몰고 움직이듯 전신 혈도를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나 갑갑했으면 그사이를 못 참고 말이다.

이드가 곧 검후의 등에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검후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내력이 물안개처럼 그녀를 휘감고 돌기 시작했다.

“이제야 진짜 검후가 돌아왔네.”

일 년 만에 경추가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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