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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37화


1072화

티리링.

작은 고리 형태로 응축된 빛이 반지로 변해 떨어졌다.

이드는 손바닥에 그걸 올려놓고 자세히 살폈다.

임무를 마친 세레니아가 사라지며 남긴 흔적이다. 그래서일까? 차갑기보다는 따뜻한 느낌이 든다. 

“원래하곤 모양이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지?”

분명 일리나의 반지와 소드 팰러스에서 가져온 반지가 합쳐진 것인데, 생김새는 그 둘과 전혀 달랐다. 

“그럼 어때요? 예쁘기만 하면 되지.”

라미아는 냉큼 반지를 집어서 일리나의 손에 끼워 주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완전 잘 어울릴 줄 알았다니까! 세레니아가 겉보기까지 신경 쓴 게 분명해요. 어때요? 일리나가 보기에도 예쁘죠?”

라미아는 마치 자기 손이라도 되는 것처럼 일리나의 손을 요리조리 흔들며 자랑했다. 그때마다 반지가 푸르게 반짝였다.

모양 자체는 단순한 링 형태지만, 그 표면의 섬세한 문양과 링의 한가운데를 둥글게 가로지르는 머리카락 굵기의 푸른 보석은 절대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 모양을 잠시 바라보던 일리나가 조금 망설이며 말했다.

“이 반지의 반은 시르피의 것이기도 한데, 내가 가져도 괜찮나요?”

“당연하죠. 전 단순히 보관만 했을 뿐인걸요. 게다가 원주인인 로드가 일리나에게 준 거잖아요. 당연히 일리나가 가지는 게 맞아요.”

검후가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말라며 두 손을 흔들었다.

사실 그냥 예쁘기만 한 장식물이라면 이런 말이 오고 갈 이유도 없다.

검후는 제국의 큰 어른이고, 일리나에겐 이드의 아공간이 있었다.

즉, 둘 다 이 정도 장식된 반지를 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건 무려 세레니아가 일리나를 위해 남긴, 강력한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였다.

특히 일리나를 콕 찍어 남긴 이유도 있었다.

세레니아가 보기에 일리나는 이드의 가장 큰 약점이었기에, 그녀를 보호할 필요가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세레니아를 그런 배려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검후도 순순히 포기할 수밖에.

“게다가 제 손은 일리나만큼 그런 게 잘 어울리지도 않으니까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어쨌든, 반지에 대한 용무가 끝났으니 전 이만 수련을 봐주러 가야겠어요.”

그 말을 남긴 검후는 쉴라와 함께 방을 나섰다.

다시 이드 일가만 남게 된 방. 일리나의 손에 끼워진 반지를 바라보던 이드가 문득 입을 열었다.

“이렇게나 신경을 써 주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어쩌시게요?”

“세레니아가 부탁한 것 있잖아. 대응 마법진이 설치된 레어들. 조만간 한 번 돌아보자.”

“그래요, 그럼.”

이미 머릿속으로 방문 루트를 짜고 있는 라미아의 대답에 일리나가 끼어들었다.

“그땐 저도 함께 갈게요. 반지를 받은 건 저니까요.”

그에 이드는 알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인 뒤, 천장을 바라보며 세레니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찬찬히 정리했다.

이런저런 중요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결국 당장 이드가 신경 쓰고 해결해야 할 건 하나였다.

미완의 마탑.

여태까지는 메르시오가 거기에 관심을 가진다는 걸 알고 그를 쫓기 위한 과정으로만 여겼는데, 초인의 성질 변환에 대해 알게 되니 그 무게감이 단번에 달라졌다.

“영혼의 관에 대한 처리를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지?”

원래는 존 워스의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제국과 함께하려 했었지만, 혼돈의 파편이 마탑의 마법이 완성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지 않은가.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러는 편이 아무래도 좋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바이트 타블렛을 헐값에 팔아넘기지 않는 거였는데.’

쩝쩝하고 입맛을 다시며 탑주와의 거래를 후회하는 이드였다.

그땐 메르시오의 정보를 교환하고, 이후 탑주의 행정을 통해 마탑과 혼돈의 파편에 대해 알아낼 의도로 바이트 타블렛을 넘겼었다. 설마하니 그 안에 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서 말이다.

물론 당시 대가로 내놓은 예산 때문에 마탑이 휘청였던 탑주가 들었다면 원통함에 가슴을 쳤을 말이긴 하다.

그러나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헐값도 이런 헐값이 없다.

혼돈의 파편의 뜻대로 일이 진행될 경우 바이트 타블렛으로 이 세상 모든 초인을 조종할 수 있으니, 오히려 그 가격을 정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인 거다.

그런 이드에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넘긴 바이트 타블렛에는 에고가 빠져 있으니 괜찮은 게 아닌가요?”

“그렇긴 하죠. 그렇기는 할 텐데, 그래도 바이트 타블렛의 제작자인 탑주가 있으니 확실히 괜찮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죠.”

거기에 무엇보다 강력한 변수인 혼돈의 파편이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을 바라고 있다.

그들이 개입하게 되면 에고의 문제쯤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이드의 걱정이었다.

그에 라미아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듯 길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에고를 새로 부활시킬 수 있으면 하라고 해요. 어차피 우리가 정신의 관에 있던 바이트 타블렛을 가지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참, 그 바이트 타블렛은 잘 가지고 있지?”

“비올라 손에 있죠.”

그것도 얌전히 보관 중이 아니었다.

비올라라면 분명 금지된 방법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전과 달리 지금은 그 안에 에고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걸 깨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뭐, 간간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랜달을 괴롭히기도 하고 말이다.

이드도 그런 비올라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에 말을 꺼내기가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럼 그 바이트 타블렛을 다시 받아서 아공간에 넣어 두자. 아무래도 그쪽이 안전하겠지?”

“그거야 그렇지만, 비올라가 굉장히 슬퍼할 텐데요. 당장 약속 위반이라고 달려올걸요.’

“그땐 혼돈의 파편에 대해 이야기해 줘야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마 자기가 혼돈의 파편과 싸우겠다고 할 건 아닐 거 아냐.”

비올라가 비록 연구에 미치긴 했지만, 그래도 위험을 자초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구도 살아 있어야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라고 할까?

아니, 그보다는 자신과 같은 천재의 죽음은 마법 역사의 후퇴라고 여길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떼를 쓰면요?”

과연 이드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한지, 라미아가 채근하듯 물었다.

“그럼・・・・・・ 같이 아공간에 넣어 준다고 해. 거기서 연구하라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공간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넣을 수는 없다. 즉, 계속 떼를 쓰면 좋을 거 없다는 뜻이다. 

“정말 연구를 하지 못해 죽을 것 같으면 아공간에서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연구하겠지.”

유독 비올라에게는 냉정한 이드의 말에 라미아는 내심 비올라를 위해 기도했다.

아마 이 말을 전해 들으면 억울해서 울지 않을까 싶었다.

아공간에서 연구라니. 바이트 타블렛의 연구를 위해 그보다 난이도가 더 높은 연구 결과를 내놔야 한다니!

비올라가 어찌 생각하든, 일을 그렇게 결론 내린 이드는 곧 다음 문제인 영혼의 관을 언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장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영혼의 관을 처리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명의 관과 정신의 관을 기준으로 따져 보면 따로 토벌대를 꾸릴 필요도 없이, 현재 이드 일가의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공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좀 더 안전을 염려한다면 검후와 은색 기사단, 거기에 존 워스의 일로 협력하기로 한 바벨의 힘까지 빌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문제는 영혼의 관과 엮여 있는 마스와 소드 팰러스, 그리고 현재 황제의 골머리를 앓게 하는 존 워스에 대한 논란이었다.

당장 영혼의 관이 공격당하면 문제들이 어떻게 뒤죽박죽 꼬이게 될지 이드도 예측이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래 끌어서 좋을 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 지금은 준비라도 해 둘까요?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에단과 에린을 불러야겠지?”

영혼의 관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와 함께 세레니아에게 들었던 이야기에 대한 전반적인 상태 확인까지. 두 사람이 해 줘야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다.

에단과 에린이 바쁘게 저택을 드나들기 시작한 이유 말이다.

당연히 검은 돌 역시 그런 두 사람을 따라 덩달아 바빠졌다. 아무래도 세레니아와 관련된 일은 대륙 전역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에 모자란 인원을 수혈하며 검은 돌의 덩치가 빠르게 커져 갔다. 같은 업계에 있던 조직들이 심각하게 경계를 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정작 검은 돌에선 그런 것에 신경 쓸 정신도 없을 정도로 바빴지만.

그리고 이런 검은 돌과 함께 바빠진 것이 바로 전 팀 트와이스에 속했던 기사들이다.

아무래도 같은 검은 돌과 비슷한 계통에 있던 이들인 만큼 검은 돌과 일을 나눈 것이다.


그렇게 검은 돌과 기사들이 진땀을 흘리며 사방을 뛰어다니기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이드는 그날도 서재에서 일리나의 다리를 베고 누워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다.

평소라면 라미아도 함께였겠지만, 그녀는 지금 바이트 타블렛을 회수당해 절망 중인 비올라를 달래기 위해 고위 마법을 교육하는 중이었다. 쉴라가 찾아온 것이 딱 그때였다.

“쉴라 단장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방문에 일리나가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시 배움에 열정적인 쉴라는 검후의 호위를 제외하고는 수련 시간에 빠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검후도, 수련도 두고 서재를 찾은 것이다.

“다름이 아니라, 황녀 전하 때문에 찾아뵈었습니다.”

“황녀 전하가 왜요?”

이드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검후 님을 만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해 오셨습니다. 며칠 전에 저희 쪽에서 조심스럽게 연락을 시도했는데, 사실을 알게 되신 그때부터 부탁하셨지만 이드 님께서 워낙 바쁘신 듯해서 이제야 말씀을 드립니다.”

“하하. 바쁘긴 했죠.”

이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그 자신이 바빴다기보다는 상황이 그랬을 뿐이다.

자택을 방문한 인물들이나, 세레니아를 통해 알게 된 정보나.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으니.

물론 그래봤자 실제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은 에단과 에린을 포함해 이드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은색 기사단을 제외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검후를 찾으려 애쓰던 사람이 황녀가 아니었던가. 검후가 구출되었다니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 전하라면 믿을 수 있지요. 그 정도는 제 결정이 없어도 될 일인데요.”

“크흠. 그렇기는 하지만, 황녀 전하의 방문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드 님의 도움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무슨 도움이요?”

“…..황녀 전하께서 은밀히 황궁을 빠져나오기가 어렵다고 하십니다. 아무래도 마중을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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