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1화
508화
“크흑!” 에단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드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혀를 찼다. 단순히 느끼는 것을 넘어 마나의 흐름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데도 왜 아직 검사로서 경지에 오르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눈으로만 보면 뭐하나. 컨트롤이 그걸 따라가지를 못하는데, 쯔쯔쯔.’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기는 했다. 모자란 컨트롤 능력은 노력을 통해서 몸에 박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나를 아예 느낄 수 없다거나, 치유 불가의 몸치와 같은 경우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단으로는 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드는 야구장에서 흔들리는 응원 수술로 변해 버린 천 조각을 받아 들고 그 속에서 가장 길어 보이는 실을 몇 가닥 뽑아냈다. 남은 천 조각은 양손에 뭉쳐 들고 창밖에서 손을 살살 비벼 없애 버렸다.
샤르르르-
잠시 동안 이드의 손에서 회색의 안개가 흐릿하게 피어오르며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에단이 손에 쥐고 연습하던 수건의 색과 같은 색이었다. 걸레도 되지 못할 천 조각을 처리한 이드가 에단을 돌아봤다. 에단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었는데, 차라리 그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방금 전 이드의 재주를 봤다면 자신이 배우고 가야 할 길이 너무 까마득하다는 사실에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이드는 길게 뽑은 실을 몇 번 훑어 편 후에 말했다.
“그만 고개 들어. 꼴사납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무심한 듯 툭 내뱉는 말에 에단이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기운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실패하기는 했지만 어제에 이어서 오늘까지 꾸준히 수건에 내공을 주입하면서 내공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까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라서요.”
“고작 그런 일로 그렇게 실망한다면 내가 너한테 실망할 거야. 무인이라면 끝없이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보이란 말이야!”
작지만 힘 있는 말이었다. 중원에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재능이나 자질과는 상관없이 평생 동안 수련하며 산에 뼈를 묻는 사람이 적지 않은 곳이 중원이다. 고작 수건 말리기 이틀로 처져 있다면 개방에서 기르는 개가 웃을 일이다.
에단은 이드의 말에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는 자세와 의복을 바로 했다.
“면목이 없습니다, 마스터. 끝없이 연습하고,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래야지. 이제 겨우 이틀이야. 겨우 물 묻은 천을 털기 위한 그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몇 년을 수련하는 사람도 많아.”
‘그래, 내가 너무 성급했다.’
에단은 몇 년이라는 말에 눈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타인과의 비교는 의욕을 꺾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잘만 사용하면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
“넷! 알겠습니다.”
끄덕끄덕.
힘 있는 에단의 대답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열심히 해. 그리고 얻은 게 전혀 없는 것도 아니잖아!”
에단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은 실패만 했지 얻은 것이 없었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몸에 익히게 된 비기라도 있는 것일까?
“네?”
에단은 눈동자 깊이 기대를 담고 이드를 바라봤다.
“덕분에 네…………….”
[이드, 그건 아니에욧!]
이드가 말하는 순간 그의 생각을 읽은 라미아가 급히 제지하지만 이미 입에 담긴 말을 막기에는 늦은 후였다.
“네 마나 컨트롤이 굉장히 취약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순간 좁은 마차 안을 찬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라미아와 일리나가 에단을 조금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드,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하면 어떻게 해요.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정말 못됐어.]
“실망할 것도 많다. 그런 거에 실망하게. 그런 건 그냥 열심히 노력하고, 수없이 반복하면 해결된다고.”
라미아의 빠른 반발에 절망할 타이밍을 놓치고서 멀뚱거리고 있던 에단이 이드의 말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큰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마스터, 마나 컨트롤이 약하면 마법사는 클래스를 올리지도 못하고,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겁니까?”
이드는 에단의 말에 피식 웃으며 간단히 답했다.
“훗. 그건 마법사의 경우고!”
“아니, 저………… 마스터, 기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내가 해 보니 많이 달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거기다 넌 마나 컨트롤이 완전히 바닥인 것도 아니잖아. 좀 서툴 뿐이지 불가능한 게 아니라고. 검기도 잘 뿜잖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연속된 실패로 잠시 생각 자체가 마이너스 성향으로 기울어 있었던 모양이다. 에단은 어어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검기. 예, 확실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단은 검기, 검기하고 몇 번 말을 되새기며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그렇다. 자신은 아나크렌 제국 트와이스의 기사였으며, 현재 소드 팰러스 6급 검사다.
절대 약한 존재도 아니고, 재능 없는 실패자도 아니다. 애초에 능숙하게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실망하고 앉아 있단 말이다.
이드는 아래로만 떨어지던 에단의 어깨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에단의 성격을 알고 있던 이드로서는 그 말에 에단이 이렇게까지 실망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에단이 이드를 얼마나 크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그의 인생에 이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반대로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을 확실히 캐치하고 있는 라미아와 일리나를 생각하면 역시나, 이드가 둔한 것인지 여자의 감이 뛰어난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었다.
이드는 라미아와 일리나를 슬쩍 한 번 바라본 후 다시 말했다.
“그래, 그거면 됐어. 나머지는 부단한 노력으로 몸과 정신에 마나 컨트롤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박아 넣으면 되는 거야. 그렇게 앞으로 나가다 보면 마나 컨트롤도 점점 좋아진다. 그리고 이게 마나 컨트롤을 좀 더 세밀하게 하기 위한 연습이다. 젖은 수건을 털기 위한 기본이기도 하고. 자, 받아라!”
순간 말과 함께 쑥 내밀어진 이드의 손에는 길게 늘어진 회색 실이 들려 있었다.
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에단은 쑥 내밀어진 이드의 손에 들린 물건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순간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또・・・・・・ 이겁니까?”
손수건이나 수건이나 실이나, 모두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손수건과 수건을 거치면서 쓴맛을 본 에단의 얼굴은 결코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 마나 컨트롤에 대해서 수련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 중의 하나지. 거기다 앞서 수건 털기를 못 했잖아? 성공해야지? 이걸로 기본부터 하자고.”
에단은 이드에게서 실을 건네받고 물었다.
“이걸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시범을 보여 주지. 이렇게 하면 된다.”
이드는 다른 실을 손에 들고는 미세하게 꼬인 실의 골을 따라 내공을 흘려보냈다. 끊이지 않고, 끈끈하게. 맥동하지 않고, 균일하게 뻗지 않고, 무궁하게 떨치지 않고 휘몰아치게.
다음 순간, 바람이 빠져 축 늘어졌던 막대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회색의 실이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에단은 그 모습에 이드와 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 못하는 일이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에단도 내공을 이용해서 실을 세웠다.
핑-
한순간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에단의 손에 들린 실이 어느새 허공을 찌를 듯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이드가 실과 에단을 번갈아 보더니 악동 같은 미소를 만들어 내며 말했다.
“이야, 잘하는데, 그럼 나머지도 쉬울 거야. 잘 봐!”
출렁출렁ᅳ
곧게 서 있던 실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 파도치듯이 출렁인다.
곧게 서 있던 실이 끝에서부터 힘이 빠지면서 중간까지 하늘거리다 다시 서고, 하늘거리다 다시 서고를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곧게 서 있던 실의 끝을 다른 손으로 당기자 꼿꼿하던 실이 대나무처럼 이리저리 휘어지기까지 한다.
동시에 이드는 네 가지 핵심 요결과 주의점을 알려 주었다. 내공의 흐름이야 이미 그 간파의 눈으로 보고 있을 에단이었기에 따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에단의 요청에 내공의 흐름도 다시 설명해야 했다. 흐름이 너무 작은 공간에서 일어나서 에단이 보지 못한 때문이었다.
“손수건의 물을 털어 낸 모든 원리가 여기 들어 있다. 이 네 가지 동작이 전부 가능하게 되면 너도 손수건의 물을 털어낼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내공의 흐름이 세밀해진 만큼 무공 실력도 늘겠지?”
당연히 늘어날 것이다. 마인드 로드가 알려진 이후 검의 실력과 내공의 흐름은 늘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에단의 목소리는 전혀 밝지를 못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마스터.”
이미 시범을 보이는 이드를 따라 하다가 모조리 실패한 에단이었다. 그 짧은 시도에서 이 실을 이용한 훈련의 난이도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렵다, 어려워. 아무래도 완벽한 매뉴얼을 기준으로 가르치는 제국과 마스터의 교습 방법은 확실히 다르다. 이쪽이 훨씬 어려워!’
에단은 자율 학습의 괴로움을 절절하게 느껴야 했다.
이드는 그런 에단에게 얇은 동아줄 하나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익히는 중에 모르는 것이 있거든 물어도 좋아. 단, 하루에 하나만 물을 수 있으니 의문점은 신중하게 고르는 게 좋아.”
“감사합니다. 마스터!”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머지 실을 에단의 손에 쥐어주었다.
“여기 나머지 실. 이건 아무리 끊어 먹어도 괜찮아. 아직 많으니까.”
“….예.”
그때 두 사람의 모습에서 눈을 떼고 밖을 바라보던 일리나가 말했다.
“그런데 얼마나 돌아가는 걸까요? 사전에 들었던 것보다 좀 더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대로 그들이 달리던 본래의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약 세 시간 전 정찰을 나간 인원들로부터 길이 막혔다는 보고가 있어서 길을 돌아갈 거라는 전달을 받았다.
일리나는 그 보고 이후의 흐름이 꽤나 신경이 쓰는 모습이었다.
사실 다른 일행들도 전날 있었던 타르코지와의 일로 혹시나 하는 생각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으면 좋은데.”
나른한 이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
“결과가 좋아야 할 텐데.”
타르코지의 명령을 받고 밤을 새워 말을 달린 코시는 아나크렌과 일리나스의 대로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서 있었다. 이곳은 주변에서 하룻밤 야숙을 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였다. 이를 보여 주듯이 주변 군데군데 장작불을 지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야영지의 한곳에서 짙은 갈색의 로브를 걸친 두 명의 마법사가 바닥에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코시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어쩐지 예감이 별로란 말이야. 이럴 때 주사위를 굴리면 항상 돈을 잃었는데 말이지.”
“너는 지금 바로 대로 밖의 쉼터로 가라. 거기서 기다리면 상단에서 보낸 용병들이 도착할 거다. 너는 그들의 작업이 확실하게 이루어졌는지 시험해 보고,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어라. 당연히 잘 알겠지만 이 일은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
지난 밤 타르코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던 코시에게 흙바닥에 엎드려 있던 두 마법사가 다가왔다. 마법으로 처리된 로브인 덕인지 땅바닥을 굴렀는데도 한 점의 흙도 묻어 있지 않았다.
“마법진의 설치는 끝났습니다. 시험해 보겠습니까?”
“그래야 할 것 같소. 그러기 위해 상단주께서 날 보내신 거니까 말이요.”
“한 번 발동시키는 데 최소한 소형 마나석 세 개가 들어갑니다. 가격이 제법 될 텐데요.”
“그 정도는 부담 없소.”
코시는 말을 하고는 숙영지를 꾸미면 그 중심이 될 부분을 가늠하고 섰다.
“시작합시다!”
코시의 외침에 두 마법사가 각자 지팡이로 바닥을 찍고 약속된 시동어를 외쳤다.
“고요의 바람.”
슈우우웁!
단 두 마디가 끝나는 순간, 코시는 야영지 주변 일곱 포인트가 빛나고 공기가 어떤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고는 몸이 무거워졌다.
“……제기랄. 이건 어떻게 해도 싫은 느낌이야.”
코시는 전신의 탈력감과 함께 내공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인상을 찡그렸다. 이어서 그대로 야영지를 한 바퀴 돌아 본 코시가
마법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한다는 신호였다.
두 마법사가 지팡이를 뽑아 들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찾을 수 없었던 내공이 다시 느껴지며 몸에 활력이 돌아왔다.
코시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풀었다.
“오늘 밤도 무사히!”
“침묵의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