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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48화


1183화

서류를 살피기 시작하자 피터가 말했다.

“그 자료는 그냥 참고 정도로만 써 주십시오.”

“어째서요?”

“톤 자작과 솔론 단장 때문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사 결과로는 카논무파와 그 둘의 관련성이 매우 적았거든요.”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거로군요?”

“죄송합니다.”

피터가 얼굴을 들기 민망한지 이마를 쓸었다.

열심히 살피고 조사한 결과가 엉터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드의 도움을 받아 카논무파의 인물들이 밝혀져 이제 드디어 단서를 잡았다고 자신했거늘,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 정도면 됩니다. 그리고 계속 이 상태일 건 아니잖아요?”

“네?”

“재분석하셔야죠. 설마 이 서류를 그대로 라울 쪽에 보고하려고요?”

“다, 당연히 아닙니다!”

순간 호흡마저 멈춘 피터가 부르르 몸을 떨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짧은 상상 속에서 이 엉터리 서류가 올라갔을 때의 결과가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럼 저도 그걸 기대하고, 이건 참고 정도로만 보죠. 톤 자작을 끌고 황궁에 들어가기 전까지 가능하겠죠?”

“……가능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지부장이라는 직책의 자존심일까.

피터가 독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기세로 봐서는 분석 요원들 잠도 재우지 않고 괴롭힐 것 같지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자신이 바벨 소속도 아니고, 이드는 적당히 못 본 척하기로 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신 나름대로 기대를 담아 말했다.

진심이었다.

현재 카논무파로 의심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준은 주류에서 소외되고, 재능에 절망한 부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제 파티를 통해 이 기준의 신뢰도는 크게 하락했다.

그러나 완전히 쓸 수 없게 된 건 아니었고, 앞서 밝혀진 인맥도도 있었다.

점조직화된 카논무파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톤 자작과 솔론 단장이라는 굵은 줄기도 밝혀낸 만큼, 새로운 데이터를 기준 삼아 분석할 재료는 충분했다.

그렇게 압박이 되는 응원의 말을 던진 이드가 서류의 마지막 장을 살필 즈음이었다.

“이제 곧 약속 시간입니다.”

마리가 라울과의 통신 시간을 알려 왔다.

그에 이드가 서류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피터가 이드를 따라 일어섰다.

이드는 자신보다 서두르는 피터의 모습에 고개가 갸웃했다.

“피터 씨는 왜?”

“어・・・・・・ 두 분께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전 저택 밖으로 나가 있으려고요. 아무래도 저택에 있으면 라울 님을 피한 것이 들통날 것 같아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통신구가 있는 방에만 없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라울이 무서워도 그렇지, 너무 유난이라는 듯한 이드의 말투에 피터와 마리가 서로를 돌아보고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과거 시리카의 어느 지부가 통신구가 있는 건물에서 멍청한 짓거리를 하다가 그 지부 파견 인원들이 몽땅 갈려 나간 적이 있거든요.”

“저희끼리는 그 일을 시리카의 악몽이라고 불러요.”

“그 일을 통해 저희는 라울 님이 통신구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살필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어지간해서는 통신이 연결되는 날은 술도 안

마십니다.”

“그래서 간혹가다 방심하는 파견원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죠. ‘라울 님 손바닥 위에서 잠이 오냐.’고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척척 말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지만 어쩐지 눈에 초점이 없었다.

‘평소에 아랫사람을 얼마나 쪼아 대면 저런 노이로제 반응이 나와……’

이드는 짧게 혀를 찼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피터가 도망치듯 저택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드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마리와 함께 통신구가 있는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은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가 마나를 주입하자, 잠시 후 통신구 위로 라울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입니다. 이드 님의 활약은 잘 전해 듣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드 님의 노고에 다시 한번 바벨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공짜도 아니잖아요. 일단 현재는 협력 관계기도 하고.”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피터 지부장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천천히 방안을 살핀 라울이 말했다.

좌에서 우로, 사냥감을 노리는 뱀이 떠오르는 모습이랄까. 마침 한 쪽에 서 있던 마리의 두 어깨가 접힐 듯 움츠러들었다.

“피터 자작이라면, 새로운 정보에 대한 자료 조사를 나갔습니다.”

“톤 자작과 솔론 단장 말씀이시군요.”

“지금까지 밝혀진 카논무파 소속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이니까요.”

안타깝다는 듯한 이드의 말에 라울이 긴 한숨과 함께 두툼한 서류 뭉치를 흔들어 보였다.

그 자체로 둔기에 못지않은 위력을 보일 것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이 분량을 전부 새로 갈아야 할 판입니다. 잠깐이지만 이드 님이 원망스럽더군요.”

“죄송하다고 해 드릴까요?”

피식 웃는 이드의 말에 라울이 들고 있던 서류뭉치를 툭 던지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 원한은 이후에 밝혀질 카논무파와 혼돈의 파편 놈들에 받아 내도록 하죠. 당장은 서류를 다시 꾸미느라 시간이 아깝습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쪽에도 정보 분석에 필요한 인원을 더 보충해 줄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가요? 아니, 확실히 부족하긴 하겠군요.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한 것도 있지만, 느립니다. 지원 요청을 받을 때도 말했지만 토벌이 시작되면 저도 더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피터 자작에게 물었더니, 최선을 다하겠지만 현재 수준으로는 대략적인 자료를 늦지 않게 줄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지부에 있는 인력만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많지요. 음. 알겠습니다. 그러면 지부에서는 정보 탐색과 획득만 하고. 자료에 대한 분석과 정리는 저희 쪽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라울의 결정은 추가적인 지원 없이 조사 인력을 늘리는 방법이었다.

설령 인원을 지원한다고 해도 그 이동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랄 수 있었다.

“…..”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

마리가 환호성 대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한쪽에 서 있던 통신을 관리하는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

‘아니, 댁은 왜?’

사실 이드는 모르지만,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 정도로 일이 바쁜 지부에서 통신 담당일지언정 머리 좋은 마법사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좋은 방법이네요. 카논무파에 대해 좀 더 빨리 밝혀지겠어요.”

“이드 님이 해 주신 일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 마리 팀장.”

“네? 네!”

이 시점에 자신의 이름이 불릴 이유가 있나?

맘속으로 키득거리고 있던 마리가 화들짝 놀라 답하자, 라울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밖에 나가서 피터 지부장을 끌고 오게. 아무리 힘들어도 보고는 직접 해야 할 거 아냐!”

“히이이익ᅳ 어,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발이 멈춰 있지!”

“아닙니다. 뛰고 있습니드아아!”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대답 이전에 마리의 몸은 이미 지하실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이드는 퍼렇게 질린 건 둘째 치고, 허공을 날리는 눈물에 혀를 찼다.

아무래도 트라우마 확정일까.

뱅커올슨 영지에선 그렇게 당차고 냉정해 보이던 사람이 저런 반응이라니.

라울.

적으로서도 무서운 남자지만. 어쩌면 부하에게 있어선 적보다 더 무서운 상관이 아닐까.

“……저 그렇게 못된 상관 아닙니다.”

“전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그런 이드의 시선을 알아차린 듯, 억울함을 항변하는 말투의 라울에 이드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좋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아직 연락받지 못하셨지요?”

“무슨 연락 말입니까?”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은 둘째 치고, 라울의 눈빛이 베일 듯 날카롭게 변해 있다.

“마스와 아나크렌 제국이 충돌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아나크렌 제국이 아니라 제국에서 파견한 기사, 그리고 검왕과 충돌한 거지만요.” 

“그 말은, 마탑 탐색을 막아섰다는 겁니까?”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정보에 이드는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카논으로 오기 전에도, 또 온 후에도 탐색이 무난하게 끝나면 이후 토벌이 벌어질 날짜를 정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마스가 그 앞을 막았다고?

“마스에서 훼방을 놓고 있는 걸 풀기 위해 검왕이 갔던 것 아니었습니까? 더욱이 마스와 검왕은 협력 관계로 알고 있었는데요.”

“협력 관계라는 건 결국 득이 된다면 언제든 끊어 낼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거니까요. 아무래도 마스 측에서는 검왕보다 마탑이 자국에 더 득이 된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럼 마탑의 탐색도 실패겠군요.”

과연 토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드가 생각도 하지 못한 사건에 머리를 잡았다.

그에 라울이 고개를 저었다.

“그 문제는 현재 반반입니다. 마탑의 위치가 거의 밝혀지기 직전에 마스가 나선 것이라서요..”

“그럼?”

“마탑의 위치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는 거지요. 다만 토벌을 위해 마스의 국경 너머로 전력을 투입할 정도의 명분으로는 조금 약한 상태입니다. 제국 입장에선 실로 답답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겠군요.”

모든 일에는 명분이 중요한 법이다.

특히 공식적인 경우나, 나라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명분이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아나크렌 제국은 강성한 국력으로 대륙의 모든 국가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제국의 전력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걸 반길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각국이 마탑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륙에 해가 될 존재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그 직접적인 대상이 된 마스에서 마탑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나선다면 일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좋은 방법이네요. 카논무파에 대해 좀 더 빨리 밝혀지겠어요.”

“이드 님이 해 주신 일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 마리 팀장.”

“네? 네!”

이 시점에 자신의 이름이 불릴 이유가 있나?

맘속으로 키득거리고 있던 마리가 화들짝 놀라 답하자, 라울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밖에 나가서 피터 지부장을 끌고 오게. 아무리 힘들어도 보고는 직접 해야 할 거 아냐!”

“히이이익ᅳ 어,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발이 멈춰 있지!”

“아닙니다. 뛰고 있습니드아아!”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던가.

대답 이전에 마리의 몸은 이미 지하실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이드는 퍼렇게 질린 건 둘째 치고, 허공을 날리는 눈물에 혀를 찼다.

아무래도 트라우마 확정일까.

뱅커올슨 영지에선 그렇게 당차고 냉정해 보이던 사람이 저런 반응이라니.

라울.

적으로서도 무서운 남자지만, 어쩌면 부하에게 있어선 적보다 더 무서운 상관이 아닐까.

“……저 그렇게 못된 상관 아닙니다.”

“전 아무 말 안 했습니다.”

그런 이드의 시선을 알아차린 듯, 억울함을 항변하는 말투의 라울에 이드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좋습니다. 지금은 이런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요. 아직 연락받지 못하셨지요?”

“무슨 연락 말입니까?”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은 둘째 치고, 라울의 눈빛이 베일 듯 날카롭게 변해 있다.

“마스와 아나크렌 제국이 충돌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아나크렌 제국이 아니라 제국에서 파견한 기사, 그리고 검왕과 충돌한 거지만요.’ 

“그 말은, 마탑 탐색을 막아섰다는 겁니까?”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정보에 이드는 놀람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카논으로 오기 전에도, 또 온 후에도 탐색이 무난하게 끝나면 이후 토벌이 벌어질 날짜를 정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마스가 그 앞을 막았다고?

“마스에서 훼방을 놓고 있는 걸 풀기 위해 검왕이 갔던 것 아니었습니까? 더욱이 마스와 검왕은 협력 관계로 알고 있었는데요.”

“협력 관계라는 건 결국 득이 된다면 언제든 끊어 낼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거니까요. 아무래도 마스 측에서는 검왕보다 마탑이 자국에 더 득이 된다고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럼 마탑의 탐색도 실패겠군요.”

과연 토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드가 생각도 하지 못한 사건에 머리를 잡았다.

그에 라울이 고개를 저었다.

“그 문제는 현재 반반입니다. 마탑의 위치가 거의 밝혀지기 직전에 마스가 나선 것이라서요.”

“그럼?”

“마탑의 위치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는 거지요. 다만 토벌을 위해 마스의 국경 너머로 전력을 투입할 정도의 명분으로는 조금 약한 상태입니다. 제국 입장에선 실로 답답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겠군요.”

모든 일에는 명분이 중요한 법이다.

특히 공식적인 경우나, 나라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명분이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아나크렌 제국은 강성한 국력으로 대륙의 모든 국가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제국의 전력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걸 반길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각국이 마탑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대륙에 해가 될 존재보다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그 직접적인 대상이 된 마스에서 마탑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나선다면 일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약자로서 억울함을 호소한다면, 제국을 견제하고자 하던 나라들이 마스의 편을 들게 될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제국과 마스 간에 전쟁이 벌어진겁니까?”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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