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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78화


1213화

이드가 그림자 관을 탈출하는 순간.

대전에 모여 있던 황제와 대신들이 한 목소리로 드래곤을 입에 올리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황궁 앞에 도착한 일리나는 정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현재 그녀는 완전 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허리에는 겉모습만 평범해 보이는 보검이 걸려 있고, 몸에는 미스릴로 만들어진 파츠 아머를 걸쳤다.

또 귀와 손가락, 손목 등.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아티팩트가 장비되어 있었다. 이런 아티팩트의 양과 질은 어지간히 역사 깊은 귀족 가문도 보유하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영지, 혹은 보물 창고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이걸 자랑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일리나가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이유는 갑자기 호출된 라미아 때문이다.

“이드가 또 사고 쳤나 봐요. 큰일은 아닌 것 같으니까, 금방 돌아올게요~

이렇게 말하고 갑자기 사라진 라미아였지만, 일리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드에 대해서라면 라미아를 제외하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가 보기에, 이드가 라미아를 먼저 찾는 일은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도대체 라미아까지 불러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황궁에 혼돈의 파편이라도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불안함이 일리나의 등을 떠민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이미 이드에게 예고하지 않았던가.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황궁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그래서 그런 여러 이유로 황궁에 달려온 일리나였다.

하지만 이런 그녀도 막상 도착하자 그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것이 망설여졌다.

자신을 막아설 전력?

물론 그들과의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걸 두려워할 일리나가 아니다.

무공으로 인해 개개인의 무력이 강해지면서 그에 대응한 황궁의 보안도 무섭게 변했다. 그러나 일리나의 무력은 그런 변화를 무시할 정도로 강하다.

무엇보다 대륙에 전해진 무공의 정수를 누구보다 제대로 전해 받은 것이 바로 그녀니까.

또 이드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는 그녀에게 싸움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어이없게도 이런 일리나의 발길을 붙잡은 건 평화롭게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이었다.

짹짹짹.

웅성웅성. 와글와글,

그리고 용무가 있어 황궁 주변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그 모든 게 당장 황궁으로 뛰어들기 위해 달려온 일리나를 멈춰 세웠다.

‘……이드에게 라미아의 전력까지 필요한 사태가 발생했다면 절대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

조용한 게 뭔가.

황궁의 일각이 무너지고, 비명과 고함이 높은 황궁 벽을 넘어도 진작 넘어야 했을 거다. 일리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지혜로운 그녀는 곧 답에 가까운 결론을 얻어 낼 수 있었다.

‘이드는 전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마법사로서의 라미아가 필요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황궁의 평온한 모습도 설명이 가능했다.

일리나는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걱정을 조금 내려놓았다. 대신 발길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저 그 자리를 지켰다.

전투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짐작일 뿐. 만약의 사태도 대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잠깐’이라는 말에 생이별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은 일리나였다.


그러나 이렇게 걱정과 불안을 경계를 거쳐 안정을 찾은 일리나의 마음과 달리, 그 주변의 사태는 전혀 변하고 있지 않았다.

수도를 찾아 황궁을 구경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 무표정한 얼굴로 정문을 노려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나 오랫동안은!

그에 사람들의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일리나의 무장을 딱히 경계하진 않았다. 그녀의 차림새가 가벼운 것도 이유였지만, 그녀가 아니라도 검을 장비한 용병이나 떠돌이 기사는 수도에 많았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실력이라도 자랑해서 이름 있는 기사단에 들고 싶은 자들이 어디 한둘일까.

좌우간, 그럼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이렇게 일리나를 향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갑자기 황궁 앞에 등장한 정체불명의 여기사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그 미모가 아니었다면 상대가 누구든 황궁을 지키는 병사나 기사가 경고를 해도 벌써 했을 것이다.

“……저거, 저대로 계속 둬도 되는 걸까요?”

그에 나름 가정이 있고, 경력 있는 장년의 병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였다.

그러자 흐뭇한 표정을 하고서 일리나를 바라보고 있던 기사가 짐짓 헛기침을 했다.

“황궁을 보는 것만으로 죄가 될 수 있겠나?”

“없지요. 하지만…….”

“알고 있네. 조심은 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한 마디 해 줄 생각이었어. 저 후배, 딱 봐도 황궁 기사단에 들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지 않나? 황궁을 보며 마음을 다지러 온 거지.”

“……안면이 있으신 분이셨습니까?”

“딱 봐도 기사잖나. 그럼 후배지, 그리고 황궁 기사단에 들어오잖아? 그럼 내 직속이고.”

이게 무슨 장작이 불붙이기도 전에 수프 뜨는 소린가.

말문이 턱 막힌 병사는 뭐라 말을 하려다 포기했다. 그가 좋은 상관이기는 하지만, 어떤 말로도 아름다운 여인을 향한 저 젊은 열기를 막을 수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보라, 누가 봐도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저 불타는 눈을!

“저 양반 때문에 오늘 한 따까리 하는 거 아니야?”

경비대장이 이 꼴을 보는 순간 오늘 하루는 굉장히 피곤해질 것이다. 역시 한 마디 해 봐야 할까.

그렇게 마음이 기울어 갈 때, 갑자기 기사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무공이 최고야! 무공 만세라고!”

“……예?”

“무공 말이네. 무공! 무공 덕분에 저런 후배도 생기는 거란 말이지. 무공이 없던 옛날엔 여기사가 얼마나 귀했는지 자네는 몰라. 드물게 보이기라도 하면 또 얼마나 우락부락했는지.”

기사는 말하다 말고 끔찍하다며 몸을 떨었다.

그가 본 옛날 그림 속 여기사는 언뜻 봐도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우락부락했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들기 전까지 살아남을 힘을 얻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는 그걸 남자로서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공이 퍼진 후엔 모든 게 달라졌다. 이 말이야! 내가 무공이 알려진 세대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자네도 알겠지?”

“네…… 뭐…….”

병사가 짜게 식은 눈으로 대답했지만 젊은 기사는 그런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에게 당장 시급한 일은 저기 높은 목표를 눈에 새기며 의욕에 불타는 후배를 다독이고, 인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는 내공을 주입해서 가슴 근육을 있는 대로 부풀린 후, 최대한 근엄한 얼굴을 하고서 앞으로 나섰다.

“나는 황궁 기사단 소속 셀레바르 일든이다. 후배의 이름은 무엇인가?”

“…….”

“아,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름을 묻는 까닭은 후배의 재능이 매우 뛰어나 보여서다. 또한 황궁 기사단에 들고자 하는 후배의 마음도 느꼈다. 황궁 기사단에 속한 내 눈은 속일 수 없지. 어떤가. 원한다면 내 직속 후배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껏 부풀린 가슴 때문에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자체 확성기를 사용한 것 같은 현상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리나의 시선에 젊은 기사는 전혀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젊은 기사는 주절주절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마치 자신의 말에 취한 듯, 아주 망상에 빠진 전형적인 미치광이의 모습이랄까.

“자, 들어가서 단장님께 같이 인사드리도록 하자. 사랑하는 후배여.”

도대체 그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랑’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는 단계까지 와 버린 기사가 일리나의 어깨를 감싸기 위해 팔을 들 때였다.

쿠콰콰콰쾅!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황궁에서 시작된 무형의 충격파가 사방을 때렸다.

“꺄악!”

“우우!! 저, 저게 뭐야~!”

사방에서 난리가 나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황궁으로 향했다. 젊은 기사 역시 다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어도, 고환이 쪼그라들 정도로 전신을 압박하는 마나의 충격에 딴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헙!”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든 것은, 회색의 기둥과 그 속으로 날아오르는 거대한 그림자.

그야말로 짐작 불가의 현상. 하지만 젊은 기사는 하나는 알았다. 절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수비대는 정문을 닫아라! 후배도 어서 이쪽으로……?”

정신이 번쩍 든 기사가 명령과 함께 고개를 돌린 순간. 그는 지금 상황도 잊고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사방에 비명이 터지는 이 상황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게.

완벽하게만 보이던 자신의 후배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미소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미소를 보고 누구인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젊은 기사를 완벽한 사랑의 늪에 밀어 넣은 직후.

일리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잡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 어? 잠깐만! 왜 날 두고 그냥 가는 건데!”

그에 화들짝 놀란 기사 일리나를 쫓으려 할 때였다.

“미치셨습니까?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여자를 쫓아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황궁 기사단에서 쫓겨나고 싶으세요?”

“뭐?”

그런 기사를 어느새 달려 나온 병사가 붙잡았다. 그 뒤로 완전히 닫히기 직전의 성문이 보였다. 단단한 성벽 위로도 활과 각종 병기를 든 병사와 기사들이 올라서고 있었다.

“쫓겨나고 싶으시냐고요! 빨리 들어오십시오! 곧 경비대장님도 오신단 말입니다!”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쫓겨나면 저 여기사도 기사님 후배 아니라고요!”

“그・・・・・・ 럴수는 없지! 어서 가세!””

기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정문을 향해 달렸다. 아니, 병사에게 끌려갔다. 그런 그의 얼굴은 마치 금방 꿈에서 깨어난 듯한 모양새였다.

“아…… 내 사랑은 이제 그 후배님뿐이구나.”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기사가 사랑의 열병으로 타락하는 순간이었다.

후에 병사는 말했다. 이 알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고 한 달 후, 상사병에 빠진 기사는 황궁 기사단을 나간 후 알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 버렸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내 병사 생활 동안 본 미친놈 중에 그놈이 아마 최고일 거야. 장담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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