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49화
1284화
이드도 아쉽지만, 당사자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똥 싸다 중간에 끊은 얼굴을 한 플레타가 바닥에 착지했다.
쿵.
백 톤이라는 이드의 예측이 정확했을까. 바닥에 닿은 플레타의 발끝에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빌어먹게도 아깝네. 진짜 종이 한 장 남은 거였는데.”
입맛을 쩝쩝 다신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 백날 아쉬워해 봤자 바뀔 건 없다. 플레타도 그걸 알기에 멀건 침을 뱉어 내고는 코어를 올려다본다. 마침 검은 코어가 아지랑이의 문을 지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뽕!
밖으로 나온 코어는 어른의 머리통만 했다. 그래서인지 공간을 빠져나오는 소리도 귀엽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방심하기엔 섣불렀다.
고오오오옹-
고래의 울음소리 같은 높고 깊은 소리가 나더니, 코어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풍선처럼 급격히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 저건 뭐야?”
“말했잖아. 코어의 위치를 발각당했다고 얌전히 당해 줄 마법사들이 아니라고.”
뻔한 걸 왜 묻느냐는 듯 라울이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내 일이 아니라는 양 태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제 몫은 다 했다는 것처럼 골든 디스크까지 거둬들이는 모습이, 이후 코어의 파괴는 완전히 플레타에게 내던진 모습이다.
“진정한 친구 사이네.”
이드는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감동했다. 자고로 친구란 저래야지.
그렇게 백색 공간에서는 친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수정구가 있는 석실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코어. 현계에 성공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됐어! 됐다고!”
수정구 앞, 마법사의 선언에 막혔던 숨과 함께 환호가 터졌다.
백색 공간을 채우던 빛이 수정구를 통해서 석실까지 가득 채운 순간, 석실에 있던 이들은 하나같이 코어가 깨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호 장벽이 뭉텅이로 깨져 나갔지 않던가.
그런데 파괴될 줄 알았던 코어가 차원 로드에서 무사히 부상에 성공 현계를 완료했다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이런 환호성을 뚫고서 마법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파괴된 보호 장벽 백이십팔 층입니다……”
코어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 장벽의 상태를 보고하는 마법사의 목소리가 어쩐지 기진맥진하다.
백삼십 층의 보호 장벽 중 백이십팔 층이 파괴되었다. 그 말은, 단 두 개의 보호 장벽만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꼴깍.
새삼 코어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였는지를 확인하자 여기저기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 모두 집중해!”
때마침 이런 마법사들을 향해 조셉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역시 극도로 긴장했던지 음성에는 힘이 없고, 진땀이 가득한 얼굴은 짧은 사이 오 년은 늙어 버린 것 같다.
“가장 먼저 현계한 코어의 안정화 작업을 마쳐.”
“넷!”
석실의 일부 마법사들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정화가 끝나면 곧바로 코어 변이 작업을 시작하겠다.”
“공간 재구성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지만, 코어 변이다. “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시하는 조셉에 마법사들의 눈이 당혹으로 떨렸다.
“하지만…・・・・・・ 그럴 경우 코어가 파괴될 위험성이 매우 높아집니다. 코어를 직접 공격에 사용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플로어 마스터. 우선 공간 재구성을 통해 상황을 초기화시켜 다시 적들을 공격하시지요.”
마법사들은 조셉의 생각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이런 말에도 조셉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만큼 그의 결심이 단단하다는 의미다.
조셉이 그와 마주 선 네 명의 마법사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쳤다.
“공간 재구성?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적은 이미 코어를 찾아낼 방법을 알았다. 공간 재구성을 통해 코어를 숨겨 봤자 찾아내는 건 금방이야. 그리고 차원 로드에 숨겨진 상태로 공격받으면, 이번처럼 무사히 부상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여기에 보호 장벽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적의 공격력을 부정할 사람이 있나?”
“그건 그렇지만…….”
“다시 말하지만, 공간 재구성은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강력한 전력으로 단숨에 적을 밀어붙이는 것이 옳다.”
마법사들은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과격하긴 하지만, 조셉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전투란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이 자리에 있는 마법사들은 그저 매뉴얼에 따라 적을 공격할 뿐, 전투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전투 훈련이 아니라, 초인 마법에 대한 궁리와 연구이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이 조용해지자 조셉이 한 마법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충분히 알아들은 것 같으니, 바로 실행하도록. 변이 코드는 알토.”
“곧바로 최종 코드를 발동하시려는 겁니까?”
“적의 전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봤다. 어중간한 수단이 통하지 않을 놈들이다.”
“…….”
자신들의 공격에 바벨로 예상되는 적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다. 그러한 상황을 수정구를 통해 보았던 마법사들은 말없이 인정했다.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조셉의 말에 따라 적극적 공격으로 대응 방향을 정하는 것까지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코드 알토에는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플로어 마스터. 알토 코드를 사용하면 모든 그림자가 코어로 회수됩니다. 이 경우 알토 코드가 합공을 당할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저 중력원을 품은 초인 하나도 쉽지 않은데…….”
합공까지 당하면 알토 코드라도 견디지 못하지 않겠는가.
마무리하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믿어라.”
“플로어 마스터?”
“나와 너희들이 짜 올린 코어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 게다가 우리가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지. 우리가 코어의 서포트만 잘해 준다면 어떤 적이라도 이겨 낼 수 있다. 그러니, 믿어라.”
“……”
코드 알토에 반대 의견을 냈던 마법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믿으라니, 신관도 아니고, 저게 마법사가 할 소린가.
마법사라면 냉정하게 적과 아군의 전력을 계산하고,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큰 숫자를 찾아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속에 든 말을 꺼내 놓을 수는 없었다.
상대는 플로어 마스터고, 자신은 그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무엇보다 이런 자신과 달리 주변의 마법사 중 많은 이들이 조셉의 말에 호응하고 있었다. 어느 때고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고 움직여야 할 마법사들이 말이다.
어쩌면 이게 영혼의 관 소속 마법사들이 가진 마법사로서의 허점일지 모른다. 그들은 누가 뭐래도 초인 마법이라는 꿈을 쫓아온 개척자들이 아니던가. 꿈과 희망, 그리고 믿음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을 위해 모인 자들.
“코어 완전히 안정화 되었습니다.”
“보호 장벽 재구성 완료했습니다.”
“좋다. 그럼 즉시 코어에 코드 알토를 전송하도록.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차원 공간을 침식지형으로 변형시킨다.”
조셉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명령에 입술을 씹어 대던 마법사도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마법사답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어차피 꺼내지 못할 불만이라면 당장은 플로어 마스터의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스스로 조금이라도 손을 빨리 움직여 승리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지금 당장 그가 해야 할 일이다.
스슥. 스스스슥.
그의 손을 따라 수정구 위에 룬어와 마법진들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의 온전한 형상을 완성하는 순간. “코드 알토 전송 완료 했습니다.”
꾸욱 닫고 있던 입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수정구 속에 비치는 코어의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크기만을 키워가던 코어였다. 하지만 그 크기가 오우거의 선키보다 커졌을 때, 변화가 생겨났다.
완벽한 원형의 코어가 보이지 않는 거인이 손으로 쥐어짠 듯 일그러지기 시작한 것.
꾸우우우웅~
동시에 코어에서 울려 나오던 소리도 변했다. 좀 더 날카롭고 선명하게. 마치 공격 준비를 알리는 나팔 소리처럼.
“플레타, 계속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을 거냐?”
“닥쳐, 네가 움직일 생각이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움직이려고 했다고.”
라울의 재촉에 혀를 차면서 답한 플레타가, 대검을 휘돌려 던지듯 앞으로 쏘아 냈다. 그와 동시에 대검에 매달린 것처럼 플레타의 몸이 허공으로 쑥 뽑혀 올라갔다.
이번 점프는 앞의 그것과 조금 달랐다.
거대한 바위를 던져 놓은 양 무게감이 느껴지는 한편, 허공을 가르는 속도는 빨랐다. 노려야 할 목표가 고정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일까.
코어 바로 앞까지 다다른 플레타가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는 어느새 대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이드가 말한 인공 무위검의 상태. 거인의 발자국.
“흐업!”
거친 호흡과 함께 대검이 코어를 쪼갰다.
어느새 복구된 보호 장벽이 코어보다 먼저 부서져 내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플레타는 대검에 힘을 더했다. 보호 장벽은 앞서 경험한 것. 앞서 모자랐던 만큼 힘을 더했다.
‘이번에 닿는다!’
플레타가 눈을 부릅뜨고 힘을 낸다. 곧이어 쩡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보호 장벽이 부서졌다.
백삼십 층의 보호 장벽이 대검을 막아 낸 시간은 단 일 초. 보호 장벽이 약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플레타의 대검에 실린 힘이 강력했다.
백삼십 층으로 벌어 낸 시간은 짧았지만, 변형 중인 코어가 공격에 반응하기까지는 충분했다.
우선 일그러지던 코어의 일부가 대검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 형태는 육각형의 벽과 같았다. 동시에 코어의 몸체 아래쪽으로는 네 개의 다리가 돋아나 굳건하게 몸체를 받쳐 올렸다.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대검과 벽이 부딪혔다.
쿠우웅!
그건 마치 산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소리에 뒤이어 대검과 코어가 충돌한 곳에서 밀려난 공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겨우 그걸로・・・・・・ 내 발자국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대검의 전진이 멈추자 플레타의 얼굴에는 당혹감보다는 가소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그의 초인력이 대검으로 흘러들었고, 까가가각!
대검은 육각형의 벽을 깎아 내는 한편, 어느새 덩치를 두 배나 키운 코어를 통째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대로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면 코어를 벨 수 있다.
하지만 적의 대응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스슥.
갑자기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대검을 막고 있는 벽으로 모여들어 벽의 크기를 키웠고,
끼이이익!
대검에 밀려나던 벽은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게 되었다.
“대장!”
그와 동시에 오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