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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74화


1309화

그렇게 모두가 네트나가 뿜어내는 마나 파동에 경각심을 느끼고 있는 것과 달리 이드의 주변은 실로 고요했다.

사람들의 머리와 옷자락이 폭풍을 만난 듯 정신없이 날리고 있었지만, 그의 근처로는 산들바람조차 스쳐 가지 않는 것 같았다. 

“제법이잖아.”

이런 중에 이드가 비스듬히 웃어 보였다.

네트나에 대한 조롱의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당연하게도 아군을 희생시킨 바보 같은 짓거리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전설의 북명신공이라도 이종진기를 저렇게 완벽하게 하나로 승화시키긴 어려울 텐데.”

그보다는 아군의 힘을 흡수한 방법에 관한 놀라움이었다. 이백이나 되는 타인의 기운을 충돌 없이 빨아들였다는 점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타인의 내공이나 마나를 갈취하는 방법은 많다.

특히 마공이나 흑마법에는 단순히 많은 걸 넘어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썩어난다.

그렇지만 이런 수법들은 주류로 인정받지 못했다.

정도를 벗어난 이들이 보기에도 타인의 마나를 갈취하는 수법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언제든 사냥감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절대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 수법에는 분명한 부작용이 존재했다.

주류가 되지 못한 진짜 이유.

바로 마나의 순수성에 대한 문제였다.

갈취를 통해 타인의 기운이 섞일수록 마나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질이 떨어져 결국에는 혼탁해진 마나들이 내부에서 충돌을 일으켜 버린다. 이때 일어난 충돌의 여파가 작으면 내상으로 고생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통제를 벗어나서 마나 자체가 터져 버린다면?

뭐 있나.

살아 있는 폭탄이 되는 거지.

그리고 운이 좋아 어떻게 살아나도 문제다. 이 경우 대부분이 정신 오염으로 미쳐 버리기 때문이다.

이유는 갈취한 마나에 포함된 사념들이다.

우주에 넓게 퍼진 마나와 달리 타인이 쌓아 올린 마나에는 그 마나 사용자의 성격과 의지, 색깔 같은 것이 입혀지는데, 마나를 갈취할 때는 이 부분만 제외하는 방법이 없다. 그로 인해 흡수된 마나에 깃든 타인의 사념이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보통은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흡수하는 양에 한계를 두거나, 복잡한 정제 과정을 두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당연히 이런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제약에서 그나마 자유롭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전설로 남은 북명신공이다. 이드도 이름만 들어 봤을 뿐인 무림의 전설. 그런데 저 네트나는 이런 북명신공을 익히지 않고도 이백에 이르는 타인의 초인기를 단숨에 흡수, 통합하여 승화시켜 버렸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흑마법사들이 그야말로 꿈에서도 바라던 결과.

그들이 여기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어떨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비밀을 알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에 대해 이드는 부정적이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반쪽짜리지.’

그렇다.

이드가 본 네트나의 능력은 반쪽짜리였다.

네트나가 이백 명의 초인력을 흡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래 이 이백의 초인력은 영혼의 관에서 주어진 것이었다.

즉, 완전히 독립된 타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인공 초인들은 이성이 억압되어 있었다.

주입된 초인력을 개개인의 성격이나 의지로 물들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는 말이다. 그건 다시 말해 이들의 초인력은 주어진 당시의 형태를 유지해 매우 순수했으리라는 것.

그리고 이들의 초인력을 갈취한 네트나 역시 영혼의 관에서 주어진 초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와 같았다는 말이다. 원래부터 하나였던 초인력인 만큼 융합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처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할까.

이러니 네트나의 초인력 갈취는 반쪽짜리다.

물론 그럼에도 대단한 것은 맞다.

저 증폭되어 넘쳐나는 마나가 그 증거다. 당장 초인력의 크기만을 보면 그 양에서 검후를 넘어서고 있다.

‘뭐, 바보처럼 힘만 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지만 말이지.’

하긴 검후와의 비교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차피 저 네트나가 그녀를 마주할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네트나의 눈이 다시 이쪽을 향하는 순간, 이드가 말했다.

“오래 기다려 준 것 같은데. 그만 시작하지?”

“・・・・・・ 바라는 대로.”

세 개의 입이 한목소리를 낸다.

합창 같다.

직후 무릎이 살짝 굽혀진다 싶더니, 네트나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이드 앞에 나타난다.

쉬칵!

이어지는 발차기에 바람이 갈라진다. 극히 단순한 동작이지만, 그 속에 극도로 압축된 힘이 갈무리된 정중동의 퇴법.

그 정갈하기까지 한 힘의 흐름이라니.

네트나가 흡수한 초인력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게 분명하다는 증거나 다름이 없다.

떠엉!

하지만 그 공격은 단단한 주먹에 간단히 가로막혔다.

이드는 네트나의 공격을 막아내며 생각했다.

인공 초인의 초인력을 흡수한 네트나, 그리고 그레이드론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자신. 어쩌면 이 부분이 매우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고. 그야말로 잡념이었다.

[에잇! 그게 어떻게 같아요! 말도 안 돼! 그런 생각 자체가 아버님에 대한 모욕이라고요!]

순간 쨍하고 머릿속을 울려오는 라미아의 목소리.

부모나 다름없는 그레이드론을 인공 초인 따위와 동급으로 취급했으니,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가.

확실히 이건 자신의 잘못이다.

이드는 즉시 사과했다.

그러는 사이 공격이 막힌 네트나가 광풍을 일으켰다. 발끝에서 일어난 광풍이 이드의 주먹을 타고 오르고, 그 속에 숨은 쇠사슬이 이드의 팔다리를 묶었다.

이때 순식간에 이드를 휘감는 광풍의 순간 최대 풍속은 90m/s. 제국 수도의 으리으리한 저택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위력. 이렇게 강력한 광풍이지만, 진짜 노림수는 그 안에 든 쇠사슬이었다. 쇠사슬이 이드의 팔다리를 휘감는 순간.

피피피핏.

네 자루의 창검에서 창백한 빛이 솟아 광풍을 타고 이드를 베려 했다.

그것은 검기와 닮았지만 검기와는 차원이 다른, 예기 그 자체였다.

이드는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예기에 가볍게 몸을 털었다.

촤르르륵.

그러자 그를 우악스럽게 휘감고 있던 쇠사슬이 기름을 바른 것처럼 주르륵 떨어져 나갔다. 단순한 쇠사슬이 아닌 초인기로 만들어 낸 쇠사슬을 너무 쉽게 떨쳐 버린 것. 극에 이른 화경이 만들어 낸 신기였다.

그렇게 손발의 자유를 찾은 이드가 자신을 노리는 네 자루의 예기를 향해 일라이져를 들었다.

끼기기기긱-

귀를 괴롭게 하는 기괴한 소리가 일어나며 일라이져의 검날에 네 자루의 예기가 제압되었다.

이드는 일라이져의 검 끝에 하나로 뭉친 예기에 손을 가져갔다. 손끝에서 일어나는 검기와는 분명히 다른 반발력.

“개념・・・・・・ 이란 것인가.”

그건 마치 극한으로 벼른 날을 만지는 감각이었다. 무기에 존재하는 날이라는 개념을 실체화한 것 같다고 할까. 날카롭다는 부분에서 오히려 검기를 넘어서는 위험한 힘.

다만.

“약해.”

너무 날카로워서 오히려 약했다.

쨍강!

네 자루의 예기가 이드의 손끝에서 부서졌다. 이드의 손에 깃든 철황기의 위력을 견디지 못한 것.

직후 부서진 예기를 흩어 버리듯 일라이져가 움직이자 이드를 압박하고 있던 광풍의 장막 가운데가 쩍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마주치는 눈빛.

쯔즈즈즛!

그 사이로 쏘아지는 두 줄기의 푸른 광선.

하지만 맞지 않는다.

일라이져의 검면으로 광선을 비껴 낸 이드의 손에서 철사출격의 일 수가 뿜어졌고,

끼기기긱!

교차한 두 자루의 검에 공격이 막혔지만, 나머지 철황권의 절초들이 물 흐르듯 터져 나왔다.

쾅! 콰콰쾅!

눈 깜빡할 사이에 수십 번을 오가는 공방.

주먹과 검, 검과 창이 충돌할 때마다 충격파가 일어나 공간이 일렁인다. 날카롭게 조각난 바람의 조각들이 제공권을 타고 흘렀다.

이드는 마주한 네트나의 대응을 보며 점점 공격의 속도를 높였다.

이에 대응하는 것은 각각 두 자루의 검과 창. 그리고 두 개의 주먹과 두 개의 다리.

대응할 손발은 네트나 쪽이 압도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

그러나 공방이 이어질수록, 창과 검이 교차하고 쉼 없이 위치가 바뀌어 감에 따라 오히려 손발의 움직임에 파탄이 나기 시작한 쪽은 네트나였다. 이백 명을 잡아먹은 네트나는 분명 빠르고 강했으나, 그 움직임에는 깊이가 모자랐다. 무엇보다 철황권의 절초와 예측 불허의 검격이 네트나의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네트나는 밀어붙여도 보았으나.

“힘이라면 나도 자신 있지.”

수차례의 환골탈태를 거친 이드의 근골은 결코 네트나의 그것보다 못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도 면에서는 이드의 근골이 더 질기고 단단했다. 그리고 그 질긴 근육에서 나오는 힘은 네트나의 헛된 희망을 너무도 간단히 내리눌러 버렸다. 그렇게 무위와 힘에서 격차가 나고, 결국 패배한 네트나는 그제야 그가 가진 진짜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삼두육비의 네트나는 분명 강력하다.

휘두를 수 있는 무기도 많고, 신체가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속도 역시 그레이트 소드의 강자를 압도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네트나의 기본은 초인기를 부여받은 초인이다. 그의 진정한 힘은 어디까지나 초인기를 사용할 때 발휘되는 것. “나는 완벽한 존재다!”

네트나는 마지막 남은 신체 강화 능력으로 몸을 검게 물들인 후, 분신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넷으로 불어난 네트나.

스물넷으로 늘어난 손에서 여섯 종류의 초인기가 휘몰아치듯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그야말로 초인기의 폭풍이라고 할 만했다.

하나의 의지를 공유하는 그들에게 빈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일순간 폭풍 속에 갇혀 버린 이드.

하지만 그 순간 폭풍 속에 선 이드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짧은 실망이었다.

“아쉽네. 좀 더 끄집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미숙해서 그런가. 집중해야 할 상황에 힘의 분산을 선택하다니.”

넷으로 나뉜 네트나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러나 하나일 때보다 능력의 출력에서 약간의 저하가 발생했다. 크지 않은 차이. 하지만 고수의 싸움에선 그 작은 차이가 매우 큰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

지금도 그랬다.

네트나의 바닥을 보고자 한 이드였지만, 이렇게 나뉘어 버린 이상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어차피 나뉘어버린 힘.

그 한계는 분명할 것.

“그만할까.”

“누구 마음대로!”

“당연히 내 뜻대로지.”

콰르르릉!

그 직후 발끝에서 터지는 마각철황격에 바닥이 절벽처럼 치솟아 올랐다. 순간에 바뀌어 버린 이드와 네트나의 위치.

“……!!”

그리고 그런 네트나를 향한 이드의 눈빛. 그야말로 일말의 흥미조차 사라진 무심함 그 자체.

그 눈을 마주한 네트나가 본능적인 섬뜩함을 느꼈지만, 무어라 대응하기 전 눈앞이 검게 물들었다.

이드의 손끝에서 터진 철황권.

철황파산과 철황포를 융합한 네 발의 철황파산포가 네트나의 휘감아 천장에 때려 박아 넣었기 때문이다. 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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