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16화
1351화
쿠웅!
느닷없는 굉음이었다.
일정한 방향 없이, 그야말로 사방에서 동시에 울려 나오는 울림에 처음에는 다들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위다!”
이때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려는 순간.
쿠쿵!
머리 위에서 또 한 번의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이번엔 방향이 선명하다.
조금 전 것과 다른 점은 그뿐이 아니다.
고막만 두드리던 앞의 굉음과 달리, 위에서 쏟아지는 음파가 폭우처럼 온몸을 무겁게 적셨다.
그리고 그 직후.
콰쿠쿠쿠쿠쿠!
폭풍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우우! 나, 날아간다!”
“내 손 잡아!”
태산 같은 바람에 사람들이 가랑잎처럼 날아갔다.
개중 몸이 가벼운 어떤 이는 정말 수십 미터를 떠올랐다.
평범한 바람이 이렇게 무거울 수는 없는 일.
“충격파다! 엎드려!”
일부는 바닥에 몸을 던지는 등 자기만의 방식으로 폭풍에 맞섰지만, 대처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그중 특히 피해가 큰 그룹이 있었는데, 바로 오탄의 명령으로 부관주를 지키고 있던 부대원들이었다.
부관주가 중요 인물인 만큼 이들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마법사, 기사, 초인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으나, 그런 의도가 무색하리만치 난데없는 돌풍에 속수무책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날아간 현장에 세 명이 남았다.
부관주를 가운데 두고 두 명의 초인이 보호막을 둘러 폭풍을 견디고 있었던 것.
“이게 무슨 일이야.”
보호막을 두른 부대원 중 하나가 황망한 얼굴로 말했다.
겨우 폭풍에 호위대가 붕괴 당할 줄이야.
골라 뽑은 대원의 실력이 겨우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러나 이들도 할 말은 있었다.
날아간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 폭풍이 노린 듯 정확히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버틸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이 폭풍은 어지간한 공격 마법보다 강하다.
그야말로 거스트 윈드 마법에 비견될 정도.
그런데, 과연 이런 현상이 자연스러운가?
아무런 전조 없이 저 정도의 자연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건가?
더구나 그들이 서 있는 이 공간은 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지 않던가. 자연히 이 폭풍도 누군가에 의한 인공적인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그 목적은?
“막아! 적이 부관주를 노린다!”
다급히 외친 오탄이 땅을 박찼다.
두 번째 굉음에 이어 폭풍이 쏟아지고 소리치기까지 걸린 시간, 2초,
분명 빠르고 신속한 판단이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하진 못했다.
“역시 느려. 초인이란 것들은 게을러 빠졌지.”
조롱기를 머금은 냉소적인 말투와 함께, 흐릿한 그림자가 오탄의 경고보다 한발 빠르게 부관주를 지키고 있는 보호막 앞에 나타났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등장이었지만, 보호막은 착실히 반응했다.
부욱!
방어력이 올라간 보호막이 확연히 두꺼워졌다.
이것이 초인기의 가장 뛰어난 점이다.
마치 입안의 혀와 같다. 사용자의 뇌가 상황을 인식한 순간, 생각과 동시에 움직인다.
무공으로 비유하자면 무중생유 검기상인의 경지로, 이 부분만 따졌을 때는 최소 절정에서 화경의 경지에 이른 셈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초인은 이 특성 덕분에 대륙에 우뚝 설 수 있었다고 하겠다.
어중간한 것도 아니고, 절정에서 화경의 경지에 비견되는 이점이다.
그 효용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그리고 여기서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두 초인은 이런 특성이 특히나 도드라진 경우였다.
두 사람의 초인기는 공격 능력은 없는 대신, 요인 보호에 특화되었다.
각자의 보호 본능과 생존 본능에 근간을 둔 초인기는 그야말로 생각 이전의 본능 단계에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용자가 인식만 한다면.
그러한 예감만 든다면.
막지 못할 공격이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둘의 보호막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반응이 빨라도 결국 막을 수 있는 힘의 한계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까깡!
작게 불똥이 튀고, 보호막에 긴 금이 생겨났다.
중앙에서 살짝 좌측으로 기울어진, 희미한 줄.
“어…….”
그것이 발생한 순간.
그 직선상에 서 있던 초인의 목에도 붉은 선이 생겨났다.
‘무언가 이상이 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잘려 버린 그 목이 떨어지기 전.
아직 형체가 온전해지지 않은 적이 다시 무언가를 휘둘렀고, 공격이 보호막을 두드릴 찰나.
갑자기 나타난 작은 소검이 그것을 막아 냈다.
쩌엉!
목표를 이루지 못한 힘이 폭발하며 사방을 할퀴었다.
완성되다 만 힘의 폭주였지만, 그럼에도 그 파괴력은 지극히 강맹했다.
파사사삭!
지척에 있던 보호막이 처참하게 찢겼다.
“우웩!”
그 충격에 남은 부대원이 울컥 피를 토했지만, 전혀 티도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머리가 잘린 동료의 목에서 뿜어진 피를 흠뻑 뒤집어쓴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분노하거나 슬퍼할 정신은 없다.
“역시! 들쑤시다 보면 나타날 줄 알았다니깐, 믿고 있었다고!”
때마침 귀에 들려오는 귀에 익은 목소리.
부대원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오늘 몇 번이나 굉장한 활약을 보였던 명예 후작이다.
그의 전투는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자신의 임무는 부관주의 보호.
‘여기서 물러나야……..”
급히 부관주의 팔을 잡아채지만, 생각만큼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 보호막이 찢긴 충격이 남아서다.
이래서야 빨리 움직일 수 없다.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
“이미 왔으니까. 큰소리 내지 마라.”
“부대장님…….”
나지막한 말소리와 함께 단단한 손의 부축에 부대원은 감격했다.
이제 살았구나.
하지만 그런 기분은 잠깐이었다.
“조용히.”
이어진 경고에 돌아본 오탄은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은 정면을 향해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그의 시선을 붙잡은 것처럼.
그렇게 오탄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선 두 사람.
그중 이드는 후방의 기척에 걱정을 덜었다.
역시 오탄 부대장은 믿음직하다. 그라면 부관주를 잘 챙길 것이다.
‘그에 비하면 대장이라는 플레타는. 쯧쯧’
오탄보다 무려 두 호흡이나 시작이 늦었다.
덕분에 지금은 더 접근하지 못하고 중간에 멈춘 상태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새롭게 나타난 인물이 뿜어내는 기도는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는 수준이니까. 그래도 한 부대의 대장이니 알아서 잘 대처하겠지.
어차피 이드는 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들보다는 당장 눈앞의 인물에 온 정신이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것 참, 오랜만입니다. 존 워스 경.”
교차한 두 자루의 검.
이드는 그 너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10년 만에 재회한 고향 친구를 향했다고 하기엔 좀 사나운
그래, 친구보다는 돈을 빌려 놓고 말없이 10년이나 잠수한 개자식을 다시 만났을 때의 미소라고 해야겠다.
한데 이런 반가움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나 역시 반갑소, 명예 후작. 날 많이 찾고 있었다고 들었소.”
“아무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지 뭡니까.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에 꽤 관심이 많은 모양입니다? 눈을 떼지를
못하십니다?”
“후후, 나야 별 관심이 없는데, 부탁을 받은 게 있어서 말이오. 넘겨주겠소?”
“미안해서 어쩝니까? 경이 부탁을 받은 부관주의 신병은 제 소관이 아니라서요. 부관주를 원한다면 저 뒤에 있는 두 분께 허락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볍게 엄지손가락으로 어깨 넘어를 가리키는 이드.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에는 정확히 라울과 검후가 나란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그중 검후의 표정은 매우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이내 그 상태로 라울에게 무언가를 작게 속삭였고, 그에 따라 라울의 표정 역시 덩달아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존 워스의 정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둘 다 나와는 껄끄러운 관계인데, 명예 후작이 대신 부탁해 줄 수는 없겠소?”
“나야 그러고 싶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거절일 게 뻔한데.”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드의 말은 진심이었다.
탑주를 잡고, 바이트 타블렛을 확보한 후에도 혼돈의 파편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던 차에 이렇게 나타나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마음 같아서는 부관주에 더해 플레타도 같이 넘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아쉽군요. 평화롭게 대화로 상황을 풀고 싶었는데.”
“……개소리도 참 정성스럽게 하십니다.”
이드는 상대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픽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대화로 평화롭게’라니.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혼돈의 파편이?
차라리 마계의 마왕이 저런 말을 했다면 더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역시 어려운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지. 그나저나, 그 가면은 언제까지 뒤집어쓰고 있을 생각이냐?”
“가면이라. 그렇게 생각하나?”
갑자기 변해 버린 이드의 말투. 그럼에도 존 워스는 눈썹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여전히 후방의 오탄 등을 꼼짝하지 못하게 묶어 두고 있다.
이드는 그쪽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으로 존 워스의 얼굴을 노려봤다.
과연 저 뒤에는 어떤 낯짝이 숨어 있을까.
처음 그를 봤을 때 그가 혼돈의 파편임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까지 그를 쫓으며 시간을 낭비한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도 이제는 끝이다.
드디어 존 워스를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지 않은가.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는다.’
마침 마법으로 만들어진 이 공간은 전장으로 쓰기엔 최고의 상태.
이드의 내부에서는 기맥을 따라 도도한 내력이 면면부절 맥동하기 시작했다.
“이름부터 가짜니까. 진짜 이름은 뭐지? 쿠쿠도? 아시렌? 아니면 모르카나이거나 칸타인가? 아, 이쪽은 둘이 아니라 한 세트였던가?”
스르릉.
연이어지는 추억 속 이름들에 존 워스가 교차하고 있던 검을 내렸다. 그에 검이라는 벽이 사라진 상태에서 마주한 두 사람.
“지긋지긋한 형제들의 이름이로군.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냥 존 워스라고 불러 주면 좋겠어. 가장 오랫동안 불린 이름이 그거였으니까.”
‘쳇. 본명은 밝히지 않으시겠다?’
이드는 내심 혀를 찼다.
상대의 이름을 통해 혼돈의 파편으로서의 특성을 살펴보려 했는데, 이래서야 실패다.
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는 페르세르가 가장 유력하지만.
글쎄.
상대가 혼돈의 파편인 만큼 단정하는 것도 힘들다.
이드는 존 워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몸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