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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33화


1368화

라미아의 주장대로라면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가짜도 예비도 없다면…… 그럼 저것의 완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겁니까?”

괜한 트집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물었다.

그러나 그가 가지는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눈앞의 바이트 타블렛의 존재는 라미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으니까.

그야말로 라미아가 틀렸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라미아의 대답은 실로 간단했다.

“지금 작업이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잖아요.”

“…….”

말문이 턱 막히는 라울.

문제가 있으니 그 원인을 찾겠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닌데, 동시에 듣는 사람 복장 뒤집는 소리이기도 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고작 저런 대답이 아니었다.

대단히 복잡 미묘해진 라울의 표정. 그걸 본 라미아는 아무래도 추가 설명을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필요한 시간 오분. 어차피 시간도 남았으니, 배려라는 걸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얼굴 펴요. 가짜라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나쁘지 않다? 가짜를 썼다는 건 바이트 타블렛이 오염되었다는 증거나 다름없을 텐데요?”

“그렇죠. 오염은 확정적이죠. 대신 가짜를 사용했으니,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가짜는 나쁘다’라고 말한다. 가짜가 진짜의 가치를 훔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 말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품질.

크게는 형태의 차이에서부터 시작해서 깊게는 성분의 차이까지.

아무리 잘 만든 가짜라도 진짜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가짜가 정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진짜들과 결합해서 사용할 때다.

진짜에 미치지 못하는 가짜의 성능은 결국 불협화음을 내게 되고, 그 결과는 항상 최악의 형태로 나타나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부실 공사다. 가짜가 사용된 심각한 부실 공사의 경우, 건물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폭삭 주저앉는다. 실제로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라미아가 말하는 완성도도 이와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바이트 타블렛이 부실 공사라니…..”

“뭐가 어때서요?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

그 말대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크게 보면 바이트 타블렛도 건물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아니,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다. 이 세상에 혼자서 완전할 수 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하물며 신성력을 내려 주는 신들조차 완전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럼 바이트 타블렛을 파괴할 방법을 찾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에요.”

“…….”

어쩌라고!

말문이 막힌 라울에 라미아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을 했다.

바보 같은 질문이지 않은가, 바이트 타블렛을 파괴할 방법이 있으면 굳이 이러고 있을 이유가 있나. 보자마자 부쉈지.

파괴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

자신들이 바이트 타블렛을 목적으로 한 이유는 결코 그것의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오직 혼돈의 파편이 바이트 타블렛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일 뿐.

“대신 어딘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의미잖아요. 그게 중요하죠.”

라미아는 말을 하는 동시에 탑주와 연결된 마법진의 미세 조정을 이어 나갔다.

마도의 새로운 축을 새우는 것은 실로 위대한 작업이다. 이를 위한 준비는 어렵고, 과정은 복잡했다.

대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만큼, 일단 마법이 발동되면 그것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법칙의 완성은 그야말로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 가짜를 사용했다.

그야말로 멍청한 짓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숨은 약점을 찾는 일이 그리 쉬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무렴 혼돈의 파편이 벌여 놓은 일인데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할 리가 없다.

대신 찾기만 한다면 그 뒤의 일들은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라미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울의 얼굴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모른다.

라미아는 그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왜 그렇지 않을까. 초인 마법만 해도 골치 아플 텐데, 뜬금없이 그 불똥이 각성한 모든 초인에게 번지게 생겼지 않은가.

물론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였다.

“아, 끝났다.”

“나왔습니까?”

마음이 급한 라울이 얼굴을 쑥 들이미는 가운데, 탑주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녹색 돌이 초콜릿처럼 녹아내렸다.

주르륵.

돌이 형태를 잃고 뭉개지자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마법진이 움직였다. 마법진은 곧 장인의 손으로 변해 돌을 당기고, 뭉치고 눌러 길쭉한 열쇠를 빚어냈다.

철컥!

열쇠는 그대로 탑주의 머릿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마치 탑주 그 자체가 어딘가로 향하는 문인 것처럼.

곧이어 바짝 말라붙은 탑주의 입이 덜그럭거리며 열리더니,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닮은 것 같은 듣기 힘든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구우노 브 브렌. 히구서 비주타무 구우・・・・・・・”

“저건?”

“고대 룬어예요. 바이트 타블렛에도 새겨져 있는데, 이제는 거의 사멸된 문자죠.”

라미아의 말에 라울은 과연 사멸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발음이 어렵고 운율이 복잡해서야 배우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어의 중요성은 얼마나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느냐…… 지만.

지금 중요한 건 언어의 가치 따위가 아니다.

“탑주가 뭐라고 하는 겁니까?”

마법사도 아니면서 룬어까지 공부한 라울이지만, 고대 룬어는 현대의 룬어와는 완전히 달랐다.

“진단 결과를 말하고 있어요. 바이트 타블렛의 제조 과정과 목적. 연구 성과 등등…….”

“그건 참으로・・・・・・ 쓸데없는 내용이잖습니까.”

“그렇죠. 앞으로 좀 당겨 볼게요.”

말과 함께 조율에 나선 라미아. 그에 따라 탑주의 입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말소리는 잡음으로 들릴 정도.

그러다 원하던 내용을 찾은 것일까. 탑주의 입이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아니, 조금 빠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라미아만 알아들으면 되는 일이다. 지금 이 자리에 고대 룬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니까.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쯧.”

라미아가 갑자기 혀를 찼다. 궁금증을 참고 있던 라울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많이…… 안 좋습니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바벨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초인이 아니라, 바벨에 좋지 않다는 말씀은?”

라미아의 말속에 든 미묘한 차이를 라울은 놓치지 않았다.

라미아는 잠시 내용을 정리하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초인 마법은 조금 수정되긴 했지만, 원안대로 올려졌어요. 대신 초인 마법으로 초인의 각성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은 삭제되었어요.” 

“그건…… 다행이군요.”

라울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리고 혼돈의 파편에 대해 일어나는 면역 반응. 그러니까 버서커도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되는 것 같네요.”

“……정말입니까?”

이보다 기쁜 소식이 있을까.

창백하던 라울의 얼굴이 기쁨으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냉정한 이성이 눈을 번뜩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미완의 마탑이, 그리고 혼돈의 파편이 왜 버서커를 막는단 말인가? 누굴 위해서?

그들이 버서커를 막았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유가 초인들에 있어 버서커보다 더한 피해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혹시 버서커를 막는 대신 다른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까?”

“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납득하기 어렵군요.”

라미아는 갈팡질팡 중인 라울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정말 부작용은 없어요. 사실 혼돈의 파편 입장에서도 원하던 걸 거예요. 이제 우연히라도 초인들이 자신들을 보고 미쳐 날뛸 일은 없어질 테니까. 반길 일이죠.”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별로 감이 좋지 않은데요. 지금까지는 좋은 소식뿐이지 않습니까. 분명 명예 후작 부인께서는 바벨에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이제부터 나쁜 소식을 전하려고요.”

“……듣고 싶지 않은데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그런 표정을 한 라울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럼 하지 말까요?”

“듣겠습니다. 들어야지요.”

어떤 일인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라미아는 한숨을 푹 내쉬는 라울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 지금부터 각성되는 초인들의 능력이 하향 조정되었어요. 동시에 특정 조건 아래서 초인력의 증가와 감소가 동시에 일어나게 되었어요. 또 정기적으로 초인기의 정지 현상이 일어나도록 조정되었고…….”

“자, 잠시만! 뭐가 그렇게 많은 겁니까!”

막힘없이 줄줄이 이어지는 말에 라울이 질겁을 하고 나섰다.

그럴 만했다. 듣기만 해도 초인에 대한 명백한 악의가 느껴지는 조치들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악감정을 가진 심판의 편파 판정을 받은 기분이랄까. 페널티도 이런 페널티가 없다.

“특히 특정 조건 아래서 초인력의 증가와 감소는 뭡니까! 그래서야 버서커와 다를 게 뭐냔 말입니다!”

전투 중에 갑자기 초인력의 감소가 일어나 봐라.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보다 어이없는 죽음이 또 있을까.

결과적으로 눈이 뒤집혀 날뛰다 죽는 버서커와 다를 게 없다.

아니, 다른 누군가, 아마도 혼돈의 파편이 되겠지만, 그들의 뜻대로 놀아나다가 죽는다는 점에서는 버서커보다 비참하다.

버서커가 되면 그래도 목숨을 걸고 달려들어라도 보지, 이쪽은 갑자기 힘을 잃고 개죽음을 당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라울의 얼굴이 다시금 참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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