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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36화


1371화

빛기둥의 출현은 갑작스러웠다. 동시에 놀라웠다.

파아아앗!!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하늘 끝까지 뻗어 올라간 빛줄기. 구름이 산산이 흩어지며 그 빛줄기를 감싸고 돌았다. 그건 이 빛의 기둥이 단순한 빛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구름을 가를 수는 없었을 테니까.

이드는 이런 현상에 크게 놀랐다.

“라미아! 무슨 일이야! 괜찮아?”

저 빛기둥 안에 있을 라미아에 대한 걱정에 목소리가 커졌다.

마침 검을 맞대고 있던 존 워스도 빛기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별로 좋지 못한 것을 보면, 이쪽에 나쁜 현상은 아닌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많이 놀랐어요?

-당연하지. 우리 와이프가 얼마나 가냘픈데.

-프히히히.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에 마음이 놓인다.

라미아가 강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안다. 더욱이 현재 그녀가 뒤집어쓰고 있는 몸은 연약한 인간의 육체도 아니다.

그녀의 진짜 육체는 신검 라미아. 대마법사의 마법으로도 흠집을 내기 힘들 정도로 튼튼함 보장이다.

그래도 마음이 어디 그런가. 그런 걸 다 알면서도 걱정이 되고, 마음이 쓰이는 것은 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이 인간 기분이 별로인 걸 보면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바이트 타블렛 접속에 성공했어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폭탄 해체 시작이에요.

-그렇단 말이지.

이드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잘도 얌체 짓을 하더니, 이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군.

아마도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에 필요한 시간만 끌면 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인데, 어쩌나?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자신으로서는 너무 보기 좋은 모습일 뿐이다.

-그럼 이 인간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네?

-아무래도? 그러니 잘 막아요.

-그럼요. 누구 분부신데, 기대해. 막는 걸로 끝내지 않고, 아주 멱을 따서 가져갈 테니까.

-・・・・・・ 전혀 필요 없거든요? 저보단 검후에게 주면 좋아할지도? 아, 그리고 조심해요. 뭘?

라미아의 경고에 의문을 떠올리며 눈을 깜박일 때였다.

갑자기 바닷가 물기를 가득 머금은 습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이상한 일이다. 비도 오지 않는데, 습한 바람이라니?

쏴아아아-

직후 전신을 짓누르는 중압감과 함께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것’은 진짜 파도는 아니었다. 몸을 적시지도 않으며, 짜지도 않으니까.

그것은 무형무색에 형체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파도였다. 빛기둥에서 시작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거대한 마나의 파도. 쿠구구구구

파도는 순식간에 두 사람을 덮쳤다.

“핫!”

파도의 정체를 단숨에 꿰뚫어 본 이드는 저것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아무렴 라미아가 괜히 경고했을 리가 있나.

그렇지만 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존 워스를 두고 혼자 빈틈을 보일 수는 없는 일.

이드는 내력을 이용해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중심을 단단히 했다.

그 순간 파도가 덮치고, 이드는 머리끝까지 파도 속에 잠겼다.

‘몸이 무거워.’

마나의 파도가 덮쳤을 때의 충격도 작지는 않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속에 잠긴 후였다.

우선 몸이 무거웠다. 기본적으로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느낌과 같지만, 몸에 걸리는 저항은 평범한 물의 열 배가 넘었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환경이다.

그러나 이건 큰 문제는 아니다. 이 정도의 저항은 순수 신체 능력만으로도 극복이 가능했으니까.

진짜 문제는 대기 중의 마나의 농도였다.

숨을 쉴 때마다 눅진하게 녹은 초콜릿 같은 마나가 스며들어 온다. 이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마나가 충만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무식한 소리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물리적으로도 ‘과하다’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으로 보지 않고, 그것은 마법에서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마나는 그 자체가 변수가 되고 잡음이 되어 마법의 완성도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심지어 그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차라리 마법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그나마 보완하고, 다시 시전하면 된다. 하지만 과도한 마나로 인해 구성 식이 파괴된 마법진이나, 심각한 손상이 발생한 마나로드의 경우는 회복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하게 만든다.

아니, 회복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괜히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랄까.

그리고 이와 같은 위험은 마법뿐 아니라 마나를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 즉, 무공에도 적용이 된다.

내력 운용이 미숙한 경우 작게는 내상으로 끝날 수 있지만, 심할 경우 주화입마 혹은 경맥의 폭발로 사망하게 된다. 다시 말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긴 하다.

물론 그에게도 이런 환경은 불편한 것이 사실. 하지만 ‘매우 심각’이랄 정도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주의’ 정도?

고농도의 마나에 흔들리기에는 그가 체내에 보유하고 있는 내력이 외부의 그것보다 많았다. 그러니 외부의 마나가 쉽게 침투해서 역류할 위험이 아무래도 적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드에게는 무극신기가 있다.

아무리 야생마처럼 난폭한 마나라 해도, 무극신기라는 목줄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굳이 문제점을 꼽자면, 마나의 내력 변환 과정에서 약 0.5초 정도의 딜레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만큼 격렬한 전투에서라면 분명 주의해야 할 수치이다.

그럼에도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이런 조건은 존 워스 역시 비슷하게 적용이 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조건이라면・・・・・・ 내가 이겨.’

분명 존 워스는 강하다. 그것도 메르시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그 차이 덕분에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좀 전 허점을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이 그 증거다.

이드는 차라리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 고농도의 마나를 이용하기로 했다.

스슥.

그렇게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드는 반사적으로 저 멀리 산 위를 확인했다.

일리나는 괜찮을까?

마침 그렇게 돌아본 산 정상에선 사람들에게 붙들린 채로 발악 중인 비올라의 모습이 보였다.

“놔아아아~~!!”

……음. 괜찮은 것 같다.

치지지직!

확인을 끝낸 이드의 검 끝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검강에 의해 고농도의 마나가 절단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라진 전투가 시작되려는 순간.

산 정상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혼의 관의 붕괴.

그 순간 출현한 빛의 기둥.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가는 빛줄기.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놀라움의 절정은 빛기둥의 변화였다.

녹색의 빛기둥이 땅과 하늘을 하나로 연결한 순간이었다.

투명하던 빛기둥이 점점 진한 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정점에 이른 순간, 빛기둥에 변화가 일어났다.

뿌드드드득!

진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빛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던 빛기둥이 물질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보는 사람이 아찔할 정도로 정교한 문양이 빼곡히 새겨진, 아름다운 에메랄드 덩어리로 말이다.

하늘까지 닿는 에메랄드 기둥이라니.

그 위압감은 실로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자리에 경제학자나 보석상이 있었다면 대륙의 보석 시장이 망했다며 절망에 찬 비명을 지르고 말았을 것이다.

에메랄드는 결코 값싼 보석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에메랄드가 말 그대로 하늘 끝까지 닿을 정도로 쌓였으니.

시장에서의 에메랄드의 가치가 어떻게 될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더욱이 이런 갑작스럽고 끔찍한 충격은 에메랄드 하나에서 그치지 않고 보석 시장 전체로 퍼져 금의 가치까지 폭락시키고 말 것이다.

그것이 비록 일시적이라 해도 대륙 경제는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을 터였다.

산 정상에 모여 있던 사람 대부분은 이런 복합적이고 연쇄적인 문제까지는 헤아리지 못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궁금증은 하나였다.

“저거 진짜 에메랄드・・・・・・ 지?”

“각성하기 전에 보석 세공사였던 내 명예를 걸고 장담하는데, 저건 확실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명예였지만, 덕분에 사람들의 놀라움은 구체화될 수 있었다.

“그럼・・・・・・ 저게 도대체 다 얼마야?”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에메랄드 광산을 탈탈 털어도 저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지금 시세면 제국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돈돈돈.

오로지 돈을 기준으로 한 놀라움이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어디 돈만큼 확실한 기준가치가 확실한 것이 있기는 한가.

그나마 돈에 집중한 플레타 부대원이나, 일부 은색 기사단과 달리 책임자들의 대화는 조금 달랐다.

“저거 괜찮을까요? 날이 밝으면 난리 날 것 같은데.”

“그렇게 빨리 알려지진 않아. 높지만 가늘어 드레인은 고사하고 림몬에서도 보이지 않을걸?”

그건 머리카락을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떨어트려 놓고 알아보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스폴이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이, 참. 그거 말고요. 저런 에메랄드라면 마스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겁지 않냐는 거죠. 분명 욕심내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겠어요?”

이건 어디 왕국 안에서 보석 광산이 발견된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선 규모다. 아무리 마스 한가운데서 발생한 일이라지만, 어떻게든 보물을 가지기 위해 탐을 내는 사람이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쉴라의 반응은 지극히 건조했다.

“그럼 어때서? 어차피 마스에서 알아서 할 일이잖아. 우리가 신경 써 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어.”

마스에게 받아야 할 빚은 있어도 갚아야 할 빚은 없다.

어떻게 보면 곤란해질 마스의 상황을 비웃는 것 같은 쉴라의 반응에 스폴은 머리카락을 살살 꼬았다.

과연 우리 단장, 검후님의 일이라면 정말이지 냉정하기가 얼음 같다.

그렇게 생각할 때, 쉴라가 문득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아직 상황을 단정 짓긴 어려워. 과연 저 에메랄드 기둥이 진짜일까?”

“……그렇게 의심하면 저기 명예를 건 대원이 울 거예요?”

“그의 명예를 의심하진 않아. 내 말은, 마법으로 생겼잖아. 마법처럼 사라지지 않겠냐는 말이야.” 

“흐음.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 하겠네요.”

쉴라의 말을 곱씹어 보던 스폴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일리나를 눈에 담았다.

“일리나 님. 혹시 저것에 대해 들으신 것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알려 주세요~

눈웃음을 살살 흘리는 스폴의 애교.

그에 검후가 무슨 짓이냐며 한숨을 쉴 때였다.

“가, 가까이서 봐야 해! 관측! 기록!”

뒤에서 온몸을 벌벌 떨고 있던 비올라가 갑자기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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