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10화 : 시드는 조위(曹魏)
시드는 조위(曹魏)
공명의 죽음과 더불어 세 나라가 싸움을 그친 것은 촉, 즉 촉한으 로는 건흥(建興)십삼년이요, 위(魏)는 청룡(靑龍) 삼년이요, 오(吳) 는 가화사년 무렵부터였다. 그때 위주 조예는 조조의 손자로 서 즉위 초기에는 볼만한 일도 있었으나 차츰 창업의 어려움을 잊지 않는 정성이나 천하제패의 야망과는 거리가 멀어져갔다. 제갈량의 죽음으로 바깥으로부터의 위협이 없어지자 곧 사치와 향락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조예는 먼저 수많은 궁궐과 전각을 짓고, 아름다운 못과 동산을 꾸며 백성을 괴롭혔다. 공경대부까지 흙을 지고 나무를 날랐다 할 만큼 잦은 토목공사였다.
그다음은 신선사상을 믿어 방림원(芳林園)이란 자신이 만든 동산에다 장안에 있는 백량대(柏臺)에서 승로반露盤)을 옮겨온 일이 었다. 승로반은 한무제가 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마시기 위해 만들었 다는 큰 쟁반으로 구리로 만든 사람이 들고 있었다. 조예의 명을 받 아 그 동인(人)까지 끌어오려다가 동인이 쓰러지는 바람에 깔려 죽은 사람만도 천 명이 되었다.
많은 신하들이 그런 조예를 말려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동심, 장무, 양부 같은 이들이 충직한 상소를 올렸으나, 동심은 서인으로 쫓겨나고, 장무는 목이 잘렸으며, 양부도 무안만 당했을 뿐이었다. 사치와 향락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여자인데, 조예는 그쪽에서도 솜씨를 보였다. 천하의 미녀들을 뽑아 방림원에 모으고, 밤낮없이 여색을 즐겼다. 또 모황후(毛皇后)를 두고 후궁인 곽부인(人)에 빠져 지내더니 마침내는 대단찮은 일을 트집 잡아 모황후를 죽이고 곽부인을 황후로 세웠다.
비록 촉과 오가 가만히 있다 해도 내정이 그 지경이 되면 외환이 일게 마련이었다. 요동에서 대를 이어 세력을 잡고 있던 공손연이 스스로 연왕(王)을 칭하며 난을 일으켰다.
공손연은 원상(袁尙)을 죽여 그 목을 조조에게 바친 공손강의 둘 째 아들이었다. 문무를 겸비했는데, 타고난 성정이 굳세고 싸움을 좋아했다. 어른이 되자 요동 태수의 직책을 맡고 있던 숙부 공손공 (公孫恭)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았다.
그 뒤 손권이 그를 연왕에 봉하고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려 하자 그 사신을 죽여 위에 바치며 충성을 보였다. 그러나 조예가 겨우 대 사마 낙랑공이란 벼슬을 내리자 불만을 품고 군사를 일으켰다.
공손연이 말리는 가범과 윤직을 목 베고 십오만 군사를 휘몰아 중원으로 짓쳐들었다. 조예가 놀라 낙양에 있는 사마의를 불러 공손 연을 막을 계책을 물었다. 사마의가 걱정하는 조예에게 말했다.
“만약 공손연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면 그게 상계(上)요, 요동을 지키면서 많은 군사로 막기만 한다면 그것은 중계(中)요, 근거지 인 양평성에 눌러앉아 버티면 하계(下計)가 됩니다. 그가 하계를 쓰 게 되면 반드시 신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일 년을 기한하며 군사 사만을 이끌고 떠났다.
그런데 결국 싸움은 사마의가 하계라고 본 쪽으로 전개되었다. 사 마의가 온다는 말을 듣자 공손연은 비연과 양조에게 팔만 군사를 주 어 요양성을 맡기고, 자신은 양평성에 의지해 버텨보려 했다. 비연 과 양조는 성 둘레에 도랑을 깊게 파고 녹각을 촘촘히 세워 지키기 만 하면서 사마의의 군량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사마의는 그런 요양성을 두고 비어 있는 공손연의 근거지인 양평 성을 급습했다. 놀란 비연과 양조는 양평성을 구하러 달려가다가 사 마의의 복병에 걸려 군사 태반을 잃고, 구원을 나왔던 공손연도 크 게 혼이 난 뒤 양평성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때 비록 공손연을 양평성 안에 가둬놓고는 있어도 사마의가 이 끈 군사는 공손연의 군사보다 적었다. 에워싸고 적당히 기세만 올릴 뿐 싸움을 서두르지 않았다. 공손연은 마땅히 성을 나와 힘을 다해 싸워보거나 차라리 성을 버리고 달아나야 했는데도 미련하게 성안 에서만 버텼다. 많은 군사로 성안에 오래 갇혀 있으니 군량이 떨어 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때마침 가을 장마가 한 달이나 계속돼 에워싸고 있는 위병들도 결코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물구덩이와 진뻘에서 허우적거리며 추 위에 떨어야 했다. 사마의는 잠시 진채를 높은 곳으로 옮기자는 우 도독 구련()을 목 베어가면서 양평성을 굳게 에워싸고만 있었 다. 그러다가 공손연의 군사들이 군마를 잡아먹는 상태에까지 빠지 자 비로소 힘을 들여 공격했다.
비록 머릿수가 많아도 굶주린 공연의 군사가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 만무였다. 그제야 위급을 느낀 공손연이 사자를 보내 아들 을 인질로 내줄 테니 잠시 군사를 물려달라는 조건부의 항복을 빌었 으나 사마의는 받아주지 않았다.
“군사로 맞설 때는 다섯 가지 큰 원칙이 있다. 싸울 수 있을 때는 마땅히 싸워야 하고[戰戰] 싸울 수 없을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하 고[不能守], 지킬 수 없을 때는 마땅히 달아나야 하고[不能守當 走], 달아날 수 없을 때는 마땅히 항복해야 하고[不能走當降], 항복할 수 없을 때는 마땅히 죽어야 한다[不能降當死耳]는 게 그 다섯이다. 그런데 아들을 인질로 보내 무얼 어쩐다고?”
사마의는 그렇게 공손연의 사자를 꾸짖어 돌려보냈다.
항복조차 하기 어렵게 된 공손연은 마침내 성을 버리고 달아나기 로 마음을 굳혔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아들과 군사 천 명을 이끌고 한밤중에 성을 빠져나가다 사마의의 복병에 걸려 사로잡히고 말았 다. 사마의는 끌려온 그들 부자를 목 베게 하고 성안으로 들어가 백 성들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공손연은 평정되어도 조위(曹魏)에 드리운 어둠은 더 짙어가기만 했다. 뒤이어 닥친 일이 위주 조예의 요절이었다. 사치와 향 락으로 날을 보내던 조예는 술과 계집에 곯아 서른여섯의 젊은 나이 로 죽으며, 사마의에게 여덟 살 난 태자 조방曹)을 돕도록 당부 했다. 선주가 제갈공명에게 그러했듯 자못 애절한 탁고(孤)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위의 정권을 잡고 있는 것은 조씨(曹氏)였다. 조예가 병들어 누웠을 때 연왕 조우(曹)를 대장군으로 세워 정권 을 맡기려 했으나, 조우가 받지 아니해 병권은 조진의 아들 조상(曹 爽)에게로 돌아갔다. 대장군에 오른 조상은 아우 조희(曹羲)를 중영 군으로 삼고 조훈(曹訓)을 무위장군, 조언(曹)을 산기상시로 삼아 각기 어림군 삼천을 이끌게 했다.
그래도 조상은 처음 한동안은 모든 일을 사마의에게 물어서 처결 했다. 그러나 세력이 커지자 차차 사마의를 경계하게 권하는 사람들 이 생겼다. 하안何晏), 등양(鄧颺), 이승(李勝), 정밀(丁), 환범(桓 範) 다섯 사람은 특히 조상의 신임을 받는 사람들로 그중에 하안은 드러내 놓고 조상을 충동질했다. 이에 조상도 생각을 바꿔 사마의를 병권이 없는 태부로 돌리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세상은 조상 형제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것이 되 었다. 사마의가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떠나고 그 두 아들 사마 소, 사마사마저 벼슬을 버리자 조정에서는 누구도 조상에게 맞설 자 가 없었다. 거기다가 위주) 조방은 나이 여덟 살의 어린애라 임 금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조상이 권력을 틀어쥐고 사치와 향락에 빠지니 지난날의 죽은 위 주 조예를 넘어서는 데가 있었다. 나라에 바치는 공물은 조상이 먼저 좋은 걸 고른 다음에야 궁궐로 들어갔고, 심하게는 조예의 시(侍)까지 조상의 차지가 되었다.
하지만 조상의 밑이라고 전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눈 밝 고속 깊은 이들이 그런 조상을 말리려 애썼다. 조상은 잡고 있는 병 권만 믿고 그들의 말을 흘려들었으나 사마의만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병을 핑계하고 꼼짝없이 집안에 틀어박혀 있기는 했지만 언 제 무슨 일을 꾸밀지 몰라, 청주자사로 가는 이승에게 문안하는 체 사마의를 찾아보고 그 허실을 살펴보게 했다.
문지기로부터 이승이 찾아왔다는 말을 들은 사마의는 두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번에 이승이 온 것은 내가 정말로 아픈지 아닌지를 엿보러 온 것이다. 너희들도 그리 알고 천에 하나라도 눈치채이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자신은 곧 머리를 풀어헤친 채 시녀들에게 부축되어 앉으 면서 이승을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이승이 사마의의 침상 가까이 가 서 절하고 말했다.
“오래 태부를 뵙지 못했으나 이렇게 환후가 중하신 줄은 몰랐습 니다. 폐하께서 청주자사를 내리시기에 임지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특히 문안드립니다.”
사마의는 짐짓 이승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체 말했다.
“병주는 삭방에 가까운 곳이니 잘 지켜야 하네.”
“병주가 아니라 청주자사입니다.”
이승이 그렇게 고쳐주었으나 사마의는 히물히물 웃으며 또 딴소리를 했다.
“자네 지금 병주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나?”
“산동 청주시다. 그리로 가는 길입니다.”
이승이 다시 한번 그렇게 밝혔다. 그러자 사마의는 무엇이 우스운지 껄껄 웃으며 더욱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아하, 그렇군. 자네가 청주에서 오는 길이란 말이지?”
그런 사마의의 기막힌 속임수에 이승은 깜빡 넘어가고 말았다.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사마의가 오히려 딱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태부의 병이 어찌해서 저토록 심해지셨소?”
“태부께서는 귓병이 나시어 말을 잘 알아들으시지 못합니다.”
곁에서 모시던 사람이 그렇게 대답했다. 이승은 하는 수 없이 종 이에다 자신이 한 말을 써서 보였다. 그제서야 사마의도 알겠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귀가 먹어 잘 알아듣지 못했네. 어쨌든 이번에 가거든 몸조심하게.”
그리고 벙어리마냥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다. 계집종이 그 뜻을 알아보고 탕약을 받쳐 올렸다. 사마의가 마시는데 입가로 탕약이 줄 줄 흘러 소매를 함빡 적셨다. 사마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금방 숨 이 넘어갈 사람처럼 기침을 쿨럭거리고 딸국질을 해대더니 처량한 소리를 덧붙였다.
“나는 이미 늙은 데다 병까지 무거우니 아침에 죽을지 저녁에 죽 을지 모르는 몸일세. 비록 아들 둘이 있으나 못나기 짝이 없으니 자 네가 잘 가르쳐주게. 그리고 대장군(조상)을 뵙거든 그 아이들을 잘 돌봐달라 하더라고 전해주게.”
사마의는 그 말을 마치자 침상에 쓰러져 다시 숨넘어갈 듯 기침을 하며 헐떡였다. 누가 보아도 앞날이 머지않은 늙은이였다.
거기 깜박 속아넘어간 이승은 조상에게로 돌아가 자신이 본 걸 자세히 일러바쳤다. 조상이 기뻐해 마지않으며 말했다.
“그 늙은이가 죽는다면 내게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거야말로 어림없는 속단이었다. 사마의는 이승이 돌아 가자마자 두 아들을 불러 말했다.
“이번에 이승이 돌아가 내 몰골을 전하면 조상은 틀림없이 나를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놓은 그가 성을 나가서 사 냥할 때를 기다렸다가 일을 꾀해보자.”
그런데 하루도 안 돼 사마의가 기다리던 때는 다가왔다. 마음을 놓은 조상이 천자를 모시고 고평릉(高平陵) 쪽으로 사냥을 나선 게 바로 그때였다. 천자와 대신들뿐만 아니라 병권을 나눠 가진 형제들 과 다섯 심복까지 모조리 데리고 떠나는 큰 사냥이었다. 그 다섯 사 람 중에 사농(農)환범이 그 사냥을 말렸다.
“주공께서 금군을 모두 장악하고 계시니 형제분들이 모두 나가셔 서는 아니 됩니다. 만약 성안에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어찌합니까?”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상은 버럭 화까지 내며 기어이 떠 났다.
그 같은 상황을 몰래 살피고 있던 사마의는 조상이 성문을 나가 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옛적 싸움터에서 함께 싸웠던 사람들과 두 아들 및 곁에 두고 부리는 수십 명 장수들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사마의는 고유(柔)에게 임시로 절월을 주어 대장군의 일을 맡긴뒤 먼저 조상의 영채를 빼앗게 했다. 또 태복 왕관(王觀)은 중령군사 로 삼아 조희의 영채마저 빼앗게 한 뒤에, 자신은 옛날의 벼슬아치 들을 끌어모아 궁중으로 들어갔다.
“조상이 선제 폐하의 당부를 저버리고 간사를 떨어 나라를 어지럽 히니, 그 죄 마땅히 벼슬을 떼고 내쫓아야 합니다. 윤허해주옵소서.”
사마의가 궁중의 가장 어른이 되는 곽태후를 찾아보고 그렇게 아 뢰었다. 곽태후가 깜짝 놀라 말했다.
“천자께서 바깥에 나가 계시니 이 일은 어찌하면 좋겠소?”
“신이 천자께 아뢰어 간신을 없앨 것이니 태후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옵소서.”
사마의가 천연덕스레 말했다.
겁이 난 태후는 사마의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이에 궁중을 차지 하고 태후라는 방패막이를 끼게 된 사마의는 곧 태위 장제蔣)와 상서령 사마부(司馬孚)에게 표문을 쓰게 하여 천자께 아뢰는 한편 군기고(軍器庫)를 점령했다. 사마소는 그런 아비를 호위하여 성 밖 낙하(河)에다 진을 치고 부교를 지켰다.
이때 성안에는 아직도 조상의 사람들이 많았으나 적절하고 합당 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사마노지(司馬魯之), 신창 같 은 장수와 조상의 꾀주머니라고 불리는 환범 등이 약간의 군사를 이 끌고 성을 나가 천자와 조상을 찾아간 것뿐이었다.
사마의는 시중 허윤(允)과 상서 진태(陳)를 불러 일렀다.
“너는 조상에게 가서 내게 딴 뜻이 없고 다만 그들 형제의 병권만 거두려 할 뿐이라고 말해라.”
그리고 다시 전중교위 윤대목(目)에게 글을 주며 한 번 더 조상에게 전하게 했다.
“나와 장제(蔣)는 낙수(洛水)를 두고 맹세한다. 이번 거사는 다 만 조상의 병권을 거두기 위함일 뿐임을 거듭 말해주어라.”
한편 한창 흥겹게 사냥을 하다가 뜻밖의 소식을 들은 조상은 놀 라 어찌할 줄 몰랐다. 그때 궁 안에서 내시 하나가 사마의의 표문을 천자께 올렸다. 태후의 명을 받들어 조상의 병권을 거두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태부가 이런 표문을 올렸으니 경은 어찌할 작정인가?”
위주 조방도 어찌할 바를 몰라 조상을 돌아보며 물었다. 조상은 먼저 두 아우와 함께 의논했다. 아우들은 싸울 생각보다 사마의에게 항복할 생각부터 먼저 했다. 이어 성안에서 달려 나온 신창과 사마 노지도 사마의의 엄청난 세력을 전하며 은근히 항복하기를 권했다. 다만 사농(農) 환범만이 천자를 허도로 모시고 외병(外兵)을 불 러들여 사마의와 싸울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가족들을 모두 성안에 남겨둔 조상이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때 성안에서 사마의가 보낸 허윤과 진태가 와서 말했다.
“태부께서는 다만 장군의 권세가 지나치다 하여 병권만 깎으려하실 뿐 딴 뜻이 없습니다.”
이어 윤대목도 달려와 말했다.
“태부께서는 낙수를 두고 맹세하시기를 딴 뜻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장태위의 글이 있으니 읽어보시고 어서 성안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런 소리를 들은 조상의 마음은 더욱 흔들렸다. 환범이 거듭 사마의와 싸울 것을 권했으나, 하룻밤 내내 탄식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겨우 한다는 소리가 이랬다.
“나는 군사를 일으키지 아니하겠다. 모든 벼슬을 다 내놓고 그저 한 부가옹(家翁)으로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환범이 울며 그런 조상을 말리고 주부 양종도 통곡으로 가로막았 으나 소용이 없었다. 조상은 끝내 대장군의 인수를 사마의에게 넘기 고 말았다.
조상이 대장군의 인수를 넘기는 걸 보자 군사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지고 몇 사람만 그들 형제 곁에 남았다. 사마의는 조상 형제에 게 집으로 돌아가 조칙을 기다리라 일렀다.
얼른 보아서 일은 조상이 믿은 대로 매듭지어진 것 같았으나 실 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마의는 내관 장당이란 자를 잡아 문초 하여 조상이 하안, 등양, 이승, 필범, 정밀 등과 함께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었다. 사마의는 조상 형제와 그들 다섯에다 환 범을 더해 모두 잡아들인 뒤 저잣거리에 끌어내 목 베었다. 낙수를 두고 한 맹세도 끝내 속임수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았다.
사마의가 조상을 죽이고 승상에 구석(錫)을 받을 무렵, 하후패 는 옹주에 있었다. 사마의는 그가 조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킬까 두려웠다. 곧 글을 하후패에게 보내 의논할 게 있으니 낙 양으로 올라오라 했다.
사마의의 속셈을 알아차린 하후패는 거느리고 있던 군사 삼천과 함께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사마의를 편드는 옹주자사 곽회에게 패해 하는 수 없이 촉의 후주에게 항복해버렸다.
하후패의 투항을 받은 강유는 그걸 위를 칠 좋은 계기라 보았다. 하후패와 함께 성도로 가서 후주를 찾아보고 아뢰었다.
“사마의가 조상을 죽인 뒤에 다시 하후패를 노리니 하후패가 우 리에게 온 것입니다. 지금 위는 사마의 부자가 나라의 권세를 모두 틀어쥐고, 위주 조방은 나약해 형세가 매우 위태합니다. 그러나 우 리는 여러 해 한중에서 힘을 길러 지금 군사는 날래고 양식은 넉넉 합니다. 신은 이제 하후패를 길잡이로 삼고 크게 군사를 내어 중원 을 치고자 합니다. 위를 쳐부수고 한실을 중흥시켜 위로 폐하의 은 혜를 갚고 아래로 돌아가신 승상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비위가 그런 강유를 말렸으나 강유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후주가 마침내 강유의 뜻을 따르니 여러 해 만에 촉은 다시 위를 치 게 되었다.
강유는 먼저 사신을 강인들에게 보내 동맹을 맺고 서평으로 나아 가 옹주 근처 국산 아래 두 성을 쌓게 하여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룬 뒤, 천구로 나아가려 했다. 장수 구안(安)과 이흠(李歆)에게 군사 만 오천 명을 주고 먼저 국산 동서에 성을 쌓아 하나씩 맡게 했다.
위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옹주자사 곽회는 병이 쳐들 어온 일을 조정에 알리는 한편 진태에게 군사 오만을 주어 구안과 이흠을 치게 했다. 구안과 이흠은 군사를 이끌고 진태를 맞아 싸웠 으나 워낙 머릿수가 모자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성안으로 쫓겨 들어가 굳게 지키기만 했다.
뒤따라 대군을 이끌고 온 곽회는 병의 양식 날라오는 길을 끊 음과 아울러 성안으로 흘러드는 개울 상류를 막아 성안에 마실 물이 없게 했다. 성안에 갇힌 채 군량과 물이 떨어지니 병은 견뎌낼 재 간이 없었다. 의논 끝에 이흠이 포위를 뚫고 나가 그곳의 위급한 소 식을 강유에게 전하기로 했다.
이흠은 거느린 군사를 모두 잃고 스스로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채 겨우 포위를 뚫어 강유에게로 달려갔다. 강병이 이르기를 기다리 다가 국산의 위급을 들은 강유는 크게 걱정이 되었다. 이흠을 서천 으로 보내 몸을 치료하라 이른 뒤, 하후패를 불러 의논했다.
“위병이 국산을 에워싸 지금 형세가 몹시 위태롭다 하니 어찌했으면 좋겠소?”
하후패가 잠깐 생각하다가 한 계책을 내놓았다.
“강병이 기다리다가는 그 두 성을 다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곽회가 옹주의 군사를 모조리 이끌고 국산으로 갔으니 옹 주가 비었을 듯한데, 그곳을 쳐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장군께서 곧 군사를 일으켜 우두산으로 가서 옹주성의 뒤를 친다면 곽회와 진태 는 옹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되면 국산의 포 위는 절로 풀리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강유는 몹시 기뻐하며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진태와 곽 회도 만만한 장수가 아니었다. 이흠이 빠져나가자 강유가 그렇게 나 올 줄을 알고 대비를 했다. 곧 곽회는 조수로 나가 촉병이 양식 실어 오는 길을 끊고, 진태는 우두산으로 달려가 강유를 치기로 의논을 맞추었다.
한편 아무것도 모르는 강유는 군사를 휘몰아 우두산으로 나갔다.
그러나 옹주성 뒤로 이르기도 전에 한 떼의 군마가 길을 막았다. 위 장진태가 이끄는 군사들이었다.
“네가 우리 옹주를 몰래 들이치려 하는 모양이다만 내가 이곳에 서 너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다. 어서 목을 내놓아라!”
진태가 칼을 비껴들고 그렇게 강유를 꾸짖었다. 성난 강유가 창을 휘둘러 그런 진태와 맞붙었다. 그러나 진태는 몇 합 싸워보지도 않 고 산꼭대기로 달아나더니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게 싸움을 끌었다.
“이곳은 오래 있을 곳이 못 됩니다. 적의 속임수가 있는 듯하니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계책을 세워보는 게 좋겠습니다.”
하후패가 그렇게 강유에게 권하는데 홀연 탐마가 달려와 곽회가 조수를 점령했음을 알렸다. 양식 나르는 길이 끊겼다는 것과 다름없 는 소리였다.
놀란 강유는 얼른 군사를 돌렸다. 그 뒤를 곽회와 진태가 뒤쫓았 다. 강유가 겨우 그들을 막으며 한 가닥 길을 열어 달아나는데 다시 한 떼의 위병이 앞길을 막았다. 언제 왔는지 사마의와 사마사가 강 유의 돌아가는 길을 끊고 있었다.
이에 강유의 병은 한층 풍비박산이 나 쫓기었다. 죽기로 싸워 양평관까지 달아났다가 거기서 공명에게 배운 연노법(連弩法)에 힘 입어 겨우 사마사가 이끈 위병을 물리칠 수가 있었다. 미리 관 위에 벌여두었던 백 벌의 연노가 한꺼번에 천 개씩이나 살을 날려준 덕분 이었다.
한편 국산에서 구원병만 기다리던 촉장 구안은 끝내 구원병이 오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성문을 열어 위에 항복하고 말았다. 강유는 숱 한 군사와 장수를 잃고 가까스로 한중으로 돌아갔는데 사마사도 그 곳까지 뒤쫓지는 않았다.
사마의가 늙고 병들어 죽은 것은 가평 삼년 팔월의 일이었다. 그 는 죽음을 앞두고 두 아들을 불러 말했다.
“나는 오랜 세월 위나라를 섬겨 태부 벼슬까지 받았으니 신하로 서는 더 오를 곳이 없는 자리다. 사람들이 모두 내게 딴 마음을 품었 다 의심했기 때문에 늘 두려워하고 삼갔다. 내가 죽은 뒤 너희 둘이 국정을 맡아 다스리되 부디 삼가고 또 삼가거라!”
그때 이미 두 아들은 아비의 병권을 모두 물려받고 있었다. 맏아 들 사마사는 대장군이 되고 둘째 아들 사마소는 표기상장군이 되어 사마의의 뒤를 이으니 위의 정권은 여전히 사마씨의 수중에 있었다. 사마의에 이어 손권도 오래잖아 죽었다. 오나라 태화 원년 팔월에 병이 난 손권은 이듬해 사월 태부 제갈각(諸葛恪)과 대사마 여대(呂 岱)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죽었다. 나이 일흔하나, 임금 자리에 오른 지 스물네 해 만의 일이었다. 뒷사람이 그의 삶을 노래했다.
붉은 수염 푸른 눈에 영웅이라 불리었고, 紫碧眼號英雄
신하를 잘 부려 모두 충성을 다하였네. 能使臣僚肯盡忠
스물네 해 동안 대업을 일으키어 二十四年興大業
용과 호랑이가 버티고 앉았듯 강동을 지켰네. 龍蟠虎鋸在江東
이로써 삼국을 일으킨 첫 세대는 온전히 사라지고, 이제 시대는 올망졸망한 다음 세대들에게로 넘어간다.
오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 다스리던 제갈각은 손량(孫亮)을 세워 손권을 잇게 하고 연호를 대흥(大興) 원년으로 고침과 아울러 천하에 대사령을 내려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손권에게는 대황제라는 시호가 올려지고 그의 시신은 장릉陵)에 모셔졌다. 손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위의 사마사는 욕심이 일었다. 곧 군 사를 일으켜 동오를 삼킬 의논을 했다. 상서 부하(傅)가 말렸으나, 아우 사마소가 찬동하고 나서자 아무도 막을 사람이 없었다.
사마사는 정남대장군 왕창(王)에게 십만을 주어 동흥을 들이치 게 하고, 진남도독인 관구검에게도 십만을 주어 무창으로 밀고 나가 게 했다. 그리고 아우 사마소는 대도독이 되어 중군을 이끌며 그 세 갈래 위병 모두를 거느리게 했다.
하지만 싸움은 처음부터 위에게 이롭지 못했다. 사마소는 호준( 遵)이란 장수에게 대군을 주어 동흥을 공격하게 했으나, 군세만 믿 고 방심하던 호준은 도리어 오의 제갈각이 보낸 정봉에게 기습을 당 해 대패하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사마소와 왕창, 관구검은 오를 치는 일이 글러버렸음을 알고 군사를 북쪽으로 물렸다.
첫 싸움에 크게 이긴 제갈각은 강유에게 사람을 보내 함께 위를 치자고 권하는 한편,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북쪽으로 밀고 올라갔 다. 장연(蔣)이란 장수가 제갈각의 지나친 서두름을 말렸지만 소 용없었다. 장강을 건넌 제갈각은 기세 좋게 위의 신성을 에워싸고 들이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제갈각을 편들지 않았다. 신성을 지키는 위 장장(張)의 힘을 다한 수비에다 지연 전술에 말려 여러 날이 지 나도 소득이 없었다. 이에 다급해진 제갈각은 몸소 진두에서 싸움을 돋우다 화살에 이마를 맞아 상처를 입게 되었다. 거기다가 군사들 사이에는 병이 들고 장수 중에는 위에 투항하는 자까지 생기니 더 싸울래야 싸울 수가 없었다.
제갈각이 군사를 돌리자 그때를 기다리고 있던 위장 관구검이 그 뒤를 후리쳤다. 그 바람에 제갈각은 많은 물자와 군사만 잃고 동오 로 쫓겨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갈각은 그 책임을 지기는커녕 모든 허물을 거느리고 있 던 장수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자신은 오히려 어림군까지 거두어 권 세를 키웠다. 심복인 장약과 주은을 어림군의 우두머리로 세운 게 바로 그랬다.
원래 오의 어림군을 장악하고 있던 것은 손준(孫)이란 사람이었 다. 제갈각의 심복에게 어림군이 빼앗기자 펄펄 뛰었다. 거기다가 전부터 제갈각을 미워해오던 태상경 등윤이 손준을 거들어 제갈각 을 은근히 두려워하던 오주 손량을 달랬다. 거기서 나온 것이 오주 가 제갈각을 술자리로 부르고 손준과 등윤이 불시에 덤벼들어 그를 죽인다는 계책이었다.
제갈각은 그 며칠 여러 가지 상서롭지 못한 조짐과 심복 장약의 귀띔으로 꺼림칙하면서도 마지못해 궁궐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주 가 권하는 술까지 사양해가며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나 끝내는 손준의 칼날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사마의와 조상의 싸움에 못지 않은 오의 내분이었다.
제갈각의 요청으로 촉이 위를 치고자 군사를 낸 것은 촉 연희(延 熙) 십육년, 제갈량이 죽은 지 꼭 스무 해 만이었다. 위장군(衛將軍) 강유는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요화와 장익을 좌우 선봉으로 세우고 하후패는 참모, 장의는 운량사(糧使)로 삼아 양평관으로 나아갔다. “지난번에 주로 나아갔다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이번에 다 시 그리로 나아간다면 저들의 대비가 여간 아닐 것이오. 공의 생각 은 어떠시오?”
강유가 하후패에게 상의하듯 물었다. 하후패가 대답했다.
“농서 여러 고을 중에 남안이 곡식과 돈을 거둬들이기에 가장 넓 은 땅입니다. 먼저 차지하여 밑천으로 삼을 만합니다. 또 지난번에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 것은 강병이 오지 않아서였으니 이번에는 사 람을 보내 강인들과 농우에서 먼저 만난 뒤에 석영으로 군사를 나아 가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거기서 동정 길을 따라 곧 바로 남안을 빼앗으십시오.”
“공의 말씀이 매우 뜻이 깊소!”
강유는 크게 기뻐하며 그렇게 말하고, 극정(正)을 사자로 삼아 황금과 보석 비단을 싸들고 강왕(王)을 찾아보게 했다.
강왕 미당은 강유가 보낸 예물을 받고 곧 군사 오만을 일으켰다. 아하소과何燒)란 장수를 대선봉으로 세워 군사를 이끌고 남안 으로 왔다.
위 좌장군 곽회는 그 같은 일을 듣자 나는 듯 낙양에 알렸다. 사마사가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누가 가서 촉병을 막아보겠는가?”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보국장군 서질(質)이 선뜻 나섰다. 사마사는 서질의 영용함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몹시 기뻐하며 그를 선봉으로 세웠다. 그리고 사 마소를 대도독으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농서로 떠나게 했다.
위의 대군은 동정에서 바로 강유의 군사들과 맞닥뜨렸다. 양쪽 군 사들이 진세를 벌린 뒤 위의 선봉 서질이 산이라도 쪼갤 듯한 큰 도 끼[開山大斧]를 들고 나가 싸움을 걸었다.
촉진에서는 요화가 나와 서질을 맞았으나 몇 합 싸우기도 전에 칼을 끌고 달아났다. 그걸 본 장익이 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아 갔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그도 몇 합을 견디지 못하고 서질에게 쫓겨 자기편 진채로 달아나버렸다.
힘이 난 서질이 군사를 휘몰아 촉진을 들이쳤다. 촉진은 크게 뭉 그러져 삼십 리나 쫓겨났다. 그제야 사마소도 군사를 돌려 양군은 다시 각기 진채를 세웠다.
“서질의 용맹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어떤 계책으로 그를 사로 잡을 수 있겠소?”
첫 싸움에서 진 강유가 걱정스레 하후패에게 물었다. 하후패가 꾀를 냈다.
“내일 싸움에서 거짓으로 진 체하여 매복계를 써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마소는 중달仲)의 자식인데 어찌 병법을 모르겠소? 조금이 라도 지세가 좋지 않아[掩] 보이면 뒤쫓지 않을 것이니 차라리 딴 꾀를 써봅시다. 지난날 위군은 우리의 군량 나르는 길을 끊어 자주 재미를 보았으니, 이번에도 그걸 계책 삼아 꾀어낸다면 서질을 목 벨 수도 있을 것이오.”
강유가 그렇게 딴 꾀를 내놓았다. 하후패도 그걸 낫게 여겨 군말 없이 따랐다. 이에 강유는 먼저 요화를 불러 계책을 주어 보내고, 다 시장익을 불러 계책을 준 뒤 어디론가 보냈다.
두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떠난 뒤 강유는 군사들을 시켜 길에 쇠로 만든 가시 [鐵蒺藜]를 뿌리고, 영채 밖에 수많은 사슴뿔 같은 나 무울타리 [角]를 둘렀다. 한 자리에서 오래 버티며 싸울 것처럼 보 이기 위해서였다.
첫 싸움에 이겨 기세가 오른 서질이 매일 와서 싸움을 걸었으나 병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촉진을 살피러 갔던 군사들이 돌아와 사마소에게 알렸다.
“촉군이 철롱산 뒤편으로 목우와 유마를 써서 군량을 운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대로 오래 버티면서 강병이 이르기를 기다려 싸 우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을 들은 사마소가 서질을 불렀다.
“지난날 우리가 촉군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군량 나르는 길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병이 철롱산 뒤로 군량을 나르고 있다 하니 너는 오늘밤 군사 오천을 거느리고 그 길을 끊어버려라. 그러면 병은 절로 물러갈 것이다.”
명을 받은 서질은 초경 무렵 하여 군사를 이끌고 철롱산으로 갔 다. 가서 보니 정말로 이백여 명의 병이 백여 대의 목우와 유마에다 군량과 말먹이 풀을 싣고 나르는 중이었다.
위군이 함성을 올리며 그런 병을 덮쳤다. 서질이 앞장서 달려 나가 길을 막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놀란 촉병들은 군량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모조리 달아나버렸다.
서질은 군사의 절반을 잘라 빼앗은 군량과 말먹이 풀을 자기네 진채로 옮기게 하는 한편 나머지 절반은 자신이 이끌고 촉군을 뒤쫓 았다. 그런데 채 십 리도 뒤쫓기 전에 수레와 장비들이 가로로 늘어 서 길을 끊고 있었다.
서질은 군사들에게 말에서 내려 길을 막고 있는 것들을 끌어내게 했다. 그때 갑자기 길 양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놀란 서질은 급히 고삐를 당겨 말 머리를 돌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편 산 골짜기 좁은 길도 수레 같은 것들로 막혀 있고 여기저기 불길이 일 었다.
서질과 그가 이끄는 군사들은 연기를 무릅쓰고 불길을 헤치며 말 을 달려 빠져나갔다. 갑자기 한 소리 포향이 들리더니 두 갈래 인마 가 쏟아져 나왔다. 왼쪽은 요화요 오른쪽은 장익이 이끄는 촉군이 었다.
두 갈래 촉군이 들이치니 위병은 크게 져 몰렸다. 서질은 죽기로 제한 몸을 빼내 달아났으나 사람과 말이 아울러 지쳐버렸다. 한창 달아나고 있을 때 한 갈래의 군사가 쏟아져 나왔다. 바로 강유가 이 끄는 군사들이었다. 서질은 크게 놀라 허둥거리는데 강유의 창이 서 질이 타고 있던 말을 찔렀다. 말이 쓰러지며 서질이 땅에 굴러떨어 지자 촉군이 덤벼들어 베고 찔렀다.
서질의 명에 따라 빼앗은 군량과 말먹이 풀을 저희 진채로 운반하던 군사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모조리 하후패에게 사로잡혀 촉군 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하후패는 위병들의 갑옷을 촉군에게 입히고 그 말에 타게 한 다 음 그 깃발을 들린 채 샛길을 달려 곧장 위군의 영채로 갔다. 위군은 자기편 인마가 돌아오는 줄 알고 영채 문을 열어 맞아들였다. 촉군 은 영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위군을 들이치기 시작했다.
그 뜻밖의 변괴에 사마소는 깜짝 놀랐다. 급히 말에 올라 달아나 려는데 요화가 앞길을 막았다. 사마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여 겨 물려나려 할 때였다. 강유가 다시 인마를 이끌고 샛길로 치고 들 었다. 사방 어디로도 갈 길이 없자 사마소는 군사를 몰아 철롱산으 로 올라가 산세에 의지해 겨우 자신을 지켰다.
원래 철롱산은 한 줄기 길이 있을 뿐 사방이 험준해 오르기가 어 려웠다. 거기다가 산꼭대기에는 샘이 하나 있어 겨우 수백을 먹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사마소가 이끈 인마는 육천이나 되 었다. 강유에게 그 한줄기 길이 끊기자 산 위에서는 물이 모자라 사 람과 말이 모두 목마름에 시달려야 했다. 사마소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했다.
“내가 여기서 죽어야 하는가!”
그때 주부 왕도(王)가 말했다.
“옛적 경공(恭)은 고단하게 되었을 때 우물에 절을 하여 물 많 은 샘을 얻었다고 합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그렇게 해보지 않으십니까?”
사마소는 그 말을 따랐다. 산꼭대기로 올라가 우물가에서 두 번 절하고 빌었다.
‘이 사마소는 조서를 받들고 촉병을 물리치려 왔사옵니다. 만약 제가 죽어야 한다면 단 이 샘물마저 말라붙게 하소서. 그러면 저는 스스로 목 베어 죽고 군사들은 모두 항복하라 이르겠습니다.
하오나 제목숨과 복록이 아직 다하지 않았다면, 바라건대 푸른 하늘이시여. 어서 이 단 샘물을 크게 더하시어 저와 이 무리의 목숨 을 살려주옵소서!’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마소가 빌기를 마치자 갑자기 샘 물이 콸콸 솟아 아무리 퍼마셔도 마르지 않았다. 따라서 이후 사마 소와 그의 장졸들이 목말라 죽는 일은 없게 되었다. 뒷날 한 왕조 [晋]를 개창하게 되는 인물이라 하늘이 도운 것일까.
이때 강유는 산 아래에서 위병을 고단하게 만들어놓고 장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날 승상께서 상방에서 사마의를 잡지 못하신 게 내게 매 우 한스러웠소이다. 하지만 이제 사마소는 반드시 내 손에 잡힐 것 이오.”
한편 곽회는 사마소가 철롱산 위에서 고단하게 되어 있다는 말을 듣자 군사를 몰아 곧장 그리로 달려가려 했다. 진태가 가만히 말렸다.
“강유는 강병과 연결하여 먼저 남안을 빼앗으려 합니다. 이미 강 병이 가까이 와 있어, 만약 장군께서 철롱산을 구하러 가신다면 반 드시 그 빈틈을 타고 우리 등 뒤를 후려칠 것입니다. 우선 사람을 시 켜 강인들에게 거짓으로 항복하게 하시고 그들 속에서 일을 꾸며보게 하십시오. 만약 그들 병마만 물리칠 수 있다면, 철롱산의 에움은 쉽게 풀 수 있습니다.”
곽회는 그 말을 따랐다. 진태에게 군사 오천 명을 주며 강왕의 영 채로 가게 했다. 진태는 갑옷까지 벗어버리고 강왕의 진채로 들어가 울면서 말했다.
“곽회는 턱없이 저만 높고 크게 여기어, 늘 이 진태를 죽이려 함 으로 이렇게 항복하러 왔습니다. 곽회의 군중 일은 제가 낱낱이 다 알고 있사오니 오늘밤 한 갈래의 군사를 내시어 들이쳐보십시오. 대 왕의 군사들이 위군 영채에 이르면 안에서 호응하는 자들이 절로 있 을 것입니다.”
강왕 미당은 쉽게 속아 넘어갔다. 턱없이 기뻐하며 아하소과에게 진태와 더불어 위병의 진채를 들이치게 했다.
아하소과는 진태를 따라 항복해 온 군사들은 뒤에 서게 하고, 진 태는 앞장서 강병을 이끌게 했다. 그들이 위병의 진채에 이른 것은 그날 밤 이경 무렵이었다. 활짝 열린 진문으로 진태가 말을 달려 뛰 어들었다.
아하소과도 창을 비껴들고 말을 달려 뒤따랐다. 그러나 몇 발자국 내닫기도 전에 아하소과는 한마디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말과 함 께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졌다. 그때 진태가 뒤에서 치고 들고, 곽 회는 왼편에서 군사를 몰아 들이치니 강병은 큰 혼란에 빠졌다. 서 로 밟고 밟히어 죽는 자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살 아남은 강병들은 모조리 항복하고 아하소과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곽회와 진태는 틈을 주지 않고 곧장 군사를 몰아 강왕의 진채로 쳐들어갔다. 강왕 미당은 크게 놀라 군막을 버리고 말을 타려다가 몰려든 위병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곽회는 그렇게 끌려온 미당 을 부드럽게 대하고 좋은 말로 달래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미당을 앞세워 철롱산으로 달려갔다.
미당의 군사들이 철롱산에 이른 것은 삼경 무렵이었다. 미당은 먼 저 강유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편 인마가 이른 것을 알리게 했다. 강 유가 기뻐하며 미당과 강병들을 맞아들이게 했다.
그때 강병들 속에는 위병이 반수 넘게 섞여 있었다. 그들이 촉군 영채에 이르자 강유는 군사들을 영채 밖에 머물게 하고 미당과 백여 명만 불러들였다.
미당과 그 졸개들이 중군장(中軍帳)에 이르자 강유와 하후패가 나 와 그들을 맞았다. 그러나 미당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그 졸개들 속에 섞여 있던 위나라 장수들이 등 뒤에서 들고 일어났다. 그들의 함성에 따라 영채 바깥에서도 위병들이 움직였다.
놀란 강유는 급히 말에 올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강병과 위병들이 영채 안팎에서 한꺼번에 치고 드니 나머지 촉의 장졸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저마다 살 길을 찾기에 바빴다.
너무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강유의 손에는 무기가 없었다. 허리에 차고 있던 활과 화살통이 있었으나, 그나마 화살통은 급하게 달아나 느라 화살이 쏟아져버려 빈 통이었다. 그 바람에 더욱 다급해진 강 유는 산 속으로 달아났다. 그런 강유를 곽회가 알아보고 뒤쫓아왔다. 곽회는 강유의 손에 쇠토막 하나 없는 걸 보자 더욱 힘이 났다. 창을 꼬나들고 말을 휘몰아 뒤쫓으니 둘 사이는 차츰 가까워졌다. 강유는 그런 곽회에게 빈 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곽회가 몸을 피하며 보니 시위 소리만 날 뿐 화살이 날아오지 않았다.
강유가 급한 김에 여남은 번이나 빈 시위를 당기자 마침내 곽회 는 강유가 화살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창을 안장에 걸고 이번에는 자신이 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시위에 살을 먹여 강유를 쏘았다. 강유는 몸을 뒤집어 피하면서도 손을 뻗어 날아오는 화살을 잡았 다. 그런 다음 그 화살을 시위에 먹여 들고 기다리다가 곽회가 다가 오기를 기다려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그 얼굴을 겨냥하고 있었다. 시위소리에 대답하듯 곽회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말에서 떨어졌다. 강유는 말을 되돌려 그런 곽회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위병들이 떼를 지어 밀려드는 바람에 손 쓸 틈이 없었다. 겨우 곽회의 창만 거 두어 달아났다. 위병도 더는 강유를 쫓지 못하고 서둘러 곽회를 구 해 저희 진채로 돌아갔다. 곽회는 얼굴에서 화살촉을 뽑아도 피가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 진중에서 죽고 말았다.
사마소는 철롱산에서 내려와 군사를 이끌고 촉병을 멀찌감치 쫓 아버린 다음에야 돌아왔다. 하후패도 정신 없이 쫓기다가 강유를 뒤 따라 겨우 목숨만은 건졌다.
강유는 수많은 인마를 꺾인 채, 돌아오는 길 내내 모은 약간의 패 군만을 이끌고 한중으로 돌아왔다. 비록 싸움에는 졌지만, 그래도 서질을 베고 곽회를 쏘아 죽여 위나라의 기세를 꺾어놓았으니 조금 은 죄를 덜 만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정사를 살펴보면 싸움의 경과는 많이 다르다. 서질이란 인물은 보이지 않으며, 곽회는 강유의 화살에 죽은 게 아니라 그 몇 해 뒤 집에서 병으로 죽었다. 남안 싸움은 강유가 일방적으로 곽회에게 몰려 되쫓겨 온 것 같은데, 『연의』를 지은 이 는 강유에게 유별난 편애를 보이고 있다. 아마도 제갈량의 진전(眞 傳)을 이어받았다는 설정에 충실하기 위한 허구인 듯하다.
오와 촉을 모두 물리침으로써 위는 한숨을 돌렸지만 안으로는 한 층 빨리 시들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두 번의 싸움이 사마 의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사마사, 사마소 형제의 위세를 굳건하게 만 들어주었다는 데 있었다.
위주 조방은 사마사가 궁궐로 들어오는 것만 보아도 무서워서 몸 이 떨리고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하루는 사마사가 칼을 차고 전 상으로 오르자 조방은 겁이 나 옥좌에서 일어나 사마사를 맞이했다. 그러나 사마사가 돌아가자 이내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들었다. 마 침 곁에는 믿을 만한 신하 세 사람만 있는 걸 보고 조방은 그들을 밀실로 불러들였다. 태상 하후현(夏侯), 중서령 이(李), 광록대 부장집(張)이 그들인데, 특히 장집은 장황후(張皇后)의 아버지로 조방의 장인이었다. 조방은 장집의 손을 잡고 울며 말했다.
“사마사는 짐을 어린아이 보듯 하고, 모든 벼슬아치들을 짚 검불 보다 못하게 여기고 있소. 오래잖아 이 나라가 온전히 그의 손으로 넘어가버릴 듯하구려.”
조방이 그 말을 마치고 크게 소리내어 우니 이풍이 그를 달래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옵소서. 신이 비록 재주 없으나 폐하의 밝으신 조서가 계시면 아니 될 일도 없습니다. 사방의 영걸들 을 불러모아 그 역적 놈을 죽여 없애겠습니다.”
하후현도 곁에서 거들었다.
“신의 형 하후패가 촉에 항복하게 된 것도 사마씨 형제가 해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이제 만약 그 역적들을 죽여 없앤다면 형은 반드 시 돌아올 것입니다. 거기다가 신은 또 위의 옛 친척이 됩니다. 어찌 가만히 앉아서 역적들이 나라를 어지럽히는 걸 보고만 있겠습니까? 저도 함께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치겠습니다.”
조방이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경들의 충성된 마음이야 어찌 모르겠소? 다만 힘이 닿지 못할까 걱정될 뿐이오.”
그러자 세 사람이 모두 울며 아뢰었다.
“신들은 마땅히 마음을 합쳐 역적을 쳐 없애기를 맹세합니다. 그리하여 폐하의 크신 은덕에 보답할 것이옵니다!”
이에 조방은 용과 봉이 수놓인 적삼을 찢어내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조서를 쓴 뒤 그걸 장집에게 당부했다.
“나의 할아버지 무황제(皇帝)께서 동승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을 꾸미는 데 치밀하지 못했던 까닭이었소. 경들은 삼가고 조심해 결코 이 일이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하시오.”
이풍이 그런 조방을 안심시켰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 희들은 동승과 같은 무리가 아니올시다. 또 사마사를 어찌 무황제와 견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그렇지만 세 사람이 미처 궁궐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일은 터지고 말았다.
그들이 동화문(門)왼편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마사가 칼을 차 고 오는 게 보였다. 그 뒤에는 군사 수백 명이 병기를 지닌 채 따르 고 있었다. 세 사람이 길가로 비켜서 있자 사마사가 다가와 물었다.
“세 분은 어째서 퇴조가 이리 늦으시오?”
“폐하께서 안에서 책을 읽으시기에 우리 세 사람이 곁에서 거들었습니다.”
이풍이 나서서 그렇게 둘러댔다. 사마사가 그런 이풍을 차갑게 살피며 물었다.
“어떤 책을 읽으셨소?”
“상(尙), 주(周), 하(夏) 삼대의 책이었습니다.”
“그 책들을 읽으시면서 어떤 옛일을 물으셨소?”
사마사가 다시 물었다. 이풍이 계속해 둘러대었다.
“폐하께서 물으신 것은 이윤伊)이 상나라를 받든 일과 주 공(公)이 섭정하시던 일이었습니다. 저희는 모두 사마 대장군이야 말로 오늘날의 이윤이며 주공이라고 말씀 올렸습니다.”
그러자 사마사가 차게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어찌 나를 이윤과 주공에 견주었겠는가? 그 마음으로는 틀림없이 왕망이나 동탁에 견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장군 문하의 사람들입니다. 어찌 감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세 사람이 그렇게 뻗대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사마사가 갑자기 버럭 성을 내며 목청을 높였다.
“너희들은 모두 입으로만 듣기 좋은 말을 쏟아놓는 것들이다. 그 렇다면 천자와 함께 밀실에서 무엇 때문에 목을 놓고 울었느냐?” 누군가가 그 일을 사마소에게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세 사람은 뜨 끔했으나 그냥 뻗대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너희 세 사람의 눈은 아직도 새빨갛다. 그게 운 흔적이 아니고 무엇이냐?”
사마사가 이번에는 그렇게 몰아세웠다. 하후현은 이미 일이 새나 갔음을 알고 문득 목소리를 높여 사마사를 꾸짖었다.
“우리가 목을 놓아 운 것은 너의 위세가 주인보다 높기 때문이었 다. 장차 역적질을 할 것 같아 참으로 걱정되는구나!”
그러자 사마사가 성난 목소리로 무사들에게 하후현을 잡으라 했 다. 하후현이 주먹을 휘둘러 사마사를 치려 했으나 한번 팔도 뻗어 보지 못하고 무사들에게 묶이고 말았다. 이어서 이풍과 장집도 묶게 한 사마사는 그들 세 사람의 몸을 뒤지게 했다. 장집의 몸에서 용봉 적삼에 쓰인 혈서가 나왔다.
‘사마사 형제가 함께 대권을 쥐고 장차 역적질을 하려 한다. 지금 베풀어지고 있는 조서나 관제는 모두가 짐의 뜻이 아니다. 모든 신 하와 장졸은 충의를 짚고 일어나 역적을 치고 기우는 나라를 붙들 라. 공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벼슬과 상을 무겁게 내리리라’
그 같은 내용을 읽은 사마사가 발연히 노해 소리쳤다.
“너희들은 우리 형제를 해치려고 했구나.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무사들에게 영을 내려 그 세 사람을 저잣거리에 끌어다 목 베게 하고, 아울러 그 가솔도 모조리 죽이게 했다.
세 사람은 끌려가면서도 사마사를 꾸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무사 들이 그런 그들의 입을 때려 동시(東市)에 이르렀을 때는 그들의 이 빨이 모조리 부러져나갔으나 그래도 꾸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마사는 그들을 죽인 뒤에 바로 궁궐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마침 위주 조방은 황후와 함께 그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장집의 딸인 장 황후가 걱정했다.
“내정에도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습니다. 만약 이 일이 사마사에 게 새어나간다면 그 화가 먼저 제게 미칠 것입니다.”
그러는데 사마사가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게 보였다. 황후는 깜짝 놀라 낯이 새파랗게 질렸다. 사마사는 칼을 뽑아들고 조방을 노려보 며 말했다.
“신의 아비는 폐하를 임금으로 세웠으니 그 공덕은 주공에 못지 않습니다. 또 신이 폐하를 섬김에 있어서도 이윤과 다를 게 무엇 있 었습니까? 그런데 이제 폐하는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고, 공을 허 물로 바꿔 뒤집어씌우려 하십니다. 보잘것없는 신하 두셋과 신의 형 제를 해치려 하심은 무슨 까닭입니까?”
조방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짐은 조금도 그런 마음이 없소.”
그러자 사마사는 소매에서 혈서가 적힌 적삼을 꺼내 땅바닥에 내던지며 목청을 높였다.
“그럼 이건 누가 쓴 것이란 말이오?”
그걸 본 조방은 넋이 빠져나가 하늘 밖을 날고, 얼이 흩어져 땅 끝을 헤매는 듯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며 발뺌을 했다.
“그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 억지로 쓰게 한 것이오. 짐이 어찌 그 런 마음을 먹을 리 있겠소?”
그러자 사마사가 차갑게 위주를 노려보며 물었다.
“나라의 대신을 함부로 모함해 반역을 꾸민 죄는 어떻게 벌주어 야 하겠습니까?”
“짐에게 모든 죄가 있으니 아무쪼록 대장군께서는 너그러이 보아주시오.”
조방이 사마사 앞에 무릎을 꿇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사마사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폐하께서는 일어나십시오. 그러나 국법은 아니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장황후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특히 저 여자는 이번 일에 주동이 된 장집의 딸이니 마땅히 없애 야 합니다.”
깜짝 놀란 조방이 울며 살려주기를 빌었으나 사마사는 듣지 않았 다. 좌우의 무사를 시켜 장후(張后)를 끌어내 가게 한 뒤 동화문 안 에서 흰 비단으로 목을 졸라 죽이게 했다. 뒷사람이 그 일을 두고 시를 지었다.
지난날 복황후 궁문을 나설 때 當年伏后出宮門
맨발로 슬피 울며 천자께 하직하더니 跣足哀號別至尊
사마씨 이번에는 그걸 본떴네. 馬今朝依此例
하늘이 그 업보를 손자에게 돌렸구나. 天敎還報衣兒孫
조방의 할아비 조조가 복황후를 죽인 일이 그대로 사마사에 의해 되풀이된 걸 말함이다. 하지만 그게 진실로 하늘이 있어 응보를 그 자손에게 내린 것인지, 아니면 권력의 속성이 원래 그렇게 비정하고 잔혹해 우연히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게 된 것인지는 누구도 알 길이 없다. 실은 그게 같은 현상을 두고 하나는 종교적으로 해석하고 다 른 하나는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사마사의 전횡은 장황후를 죽인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 조정의 여러 벼슬아치들을 모아놓고 조방을 옛적 창읍왕(昌邑王)에 비기면서, 스스로를 이윤, 곽광(光)으로 올려 임금을 바꿀 의논을 했다.
천하의 사마사가 하는 말을 누가 감히 거스르겠는가. 단 한 사람 의 반대도 없이 찬동을 하자 사마사는 처음 팽성왕(彭) 조거曹 據)를 세워 조방을 대신하려 했다. 그러나 조거가 궁궐의 어른인 태 후의 아저씨뻘 되는 사람이라 그걸 거북하게 여긴 태후는 조카뻘 되 는 고귀향공(高貴鄕公) 조모(曹髦)를 천거했다.
조모는 위문제(조비의 손자요, 동해정왕(東海) 조임曹 霖)의 아들로 태후의 부름을 받아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사마사에 게 먼저 절을 하고 태극전에 오를 만큼 이름뿐인 천자니 사실상 그때 이미 조씨의 위나라는 망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방은 조모가 제위에 오르기 전 태후의 꾸짖음으로 궁궐에서 쫓겨났다.
“네가 음란하고 절제가 없으며, 창기와 배우를 가까이 하니, 천하 를 이어 다스릴 수 없다. 옥새를 내어놓고 제왕(齊王)으로 돌아가라. 곧 길을 떠나도록 하되, 부름이 없으면 결코 조정으로 돌아와서는 아니 된다.”
비록 죄목은 그럴듯했으나 실은 그게 사마사의 뜻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뒷사람이 그 일을 두고 또 시를 지었다.
지난날 조조가 한 승상 노릇할 제, 昔日曹瞞相漢時
남의 과부와 고아를 업신여겼다. 欺他寡婦與孤兒
그 누가 알았으리 마흔 해 뒤에 誰知四十餘年後
그의 과부와 고아가 또한 업신여김 받을 줄 寡婦孤兒亦被欺
조조가 업신여긴 남의 과부와 고아는 후한의 태후들과 어린 천자 들이었고, 사십 년 뒤 업신여김을 당한 과부와 고아는 그의 손부(孫 婦)인 곽태후와 증손뻘인 조방, 조모였을 것이다. 그게 참으로 천도 (天道)라면, 두려워할진저, 권력을 다투는 사람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