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3화 : 이번에는 사마의가 서촉으로

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3화 : 이번에는 사마의가 서촉으로


이번에는 사마의가 서촉으로

공명이 답답한 마음을 누르고 연일 사마의를 끌어낼 계책을 의논하고 있을 때 문득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천자께서 시중 비위를 보내 조서를 내리셨습니다.”

공명이 얼른 나가 비위를 맞아들이고 비위는 곧 천자의 조서를 꺼내 읽었다.


‘……가정의 싸움은 허물이 모두 마속에게 있었건만 그대는 스스 로를 나무라 깊이 괴로워하고 벼슬을 깎아내렸다. 짐은 그게 마땅치 않았으나 다만 그대의 뜻을 어길 수 없어 그대로 따라 지켜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대는 지난해에는 군사를 일으켜 왕쌍을 목 베었고 올해는 또 곽회를 달아나게 했다. 저(氐), 강(羌) 오랑캐의 무리를 항복받아 두 군을 되찾았으며, 위엄을 떨쳐 흉측하고 포악한 무리를 억눌렀으니, 그 공이 두드러지다 할 만하다. 이제 천하는 시끄럽고 어지러우며 악의 우두머리들을 아직 다 목 베지 못한 터에, 그대가 나라의 기둥 같은 대임을 맡아 일하면서도 오래 스스로를 낮추고 있 는 것은, 한(漢)의 세상을 되찾고자 하는 매운 뜻을 제대로 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다시 그대를 승상에 올리려 하니 부 디 사양하지 말라’


대강 그 같은 내용을 들은 공명이 비위에게 말했다.

“내가 아직 나라의 큰일을 다 이루지 못했는데 어찌 승상의 자리 에 다시 오른단 말인가?”

그리고 굳게 사양하며 그 조서를 받들려 하지 아니했다. 비위가 그런 공명에게 권했다.

“승상께서 그 자리를 받지 않으심은 천자의 뜻을 받들지 않음이 됩니다. 거기다가 또 장졸들의 마음에도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니 잠깐이라도 우선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그제야 공명도 더 마다하지 못하고 조서를 받들었다. 비위는 공명 이 다시 승상의 자리에 오르기를 허락한 뒤에야 성도로 돌아갔다. 공명은 사마의가 싸우러 나오지 않자 한 꾀를 내렸다.

“모두 진채를 거두고 떠날 채비를 하라.”

이에 군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부산히 진채를 거두었다.

사마의가 풀어 세작들이 그 소식을 탐지하고 돌아가 알렸다.

“공명이 군사를 거두어 물러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꼼짝도 않고 말했다.

“공명은 틀림없이 꾀를 쓰고 있다. 가볍게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제가 보기에는 군량이 다해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뒤쫓아야 합 니다.”

곁에 있던 장합이 팔을 걷고 나서서 우겼다. 사마의가 그런 장합 을 깨우쳐주듯 차근차근 말했다.

“내 헤아림을 들어보시오. 공명은 작년에도 풍년으로 많은 곡식을 거두었고, 지금은 또 밀이 익어가는 때요. 내가 보기에 저들의 군량 과 말먹이 풀은 넉넉할 것이며, 설령 그걸 옮기기가 어렵다 해도 반 년은 버틸 만할 것이오. 그런데 그들이 왜 그렇게 빨리 달아나겠소? 그는 우리가 싸우려 하지 않음을 보고 그런 속임수로 우리를 꾀어내 려는 것임에 틀림이 없소. 사람을 멀리 보내 좀더 살핀 뒤에 움직여 야 할 것이오.”

그러고는 군사들을 풀어 촉군의 움직임을 살피게 했다. 얼마 되지 않아 군사들이 돌아와 알렸다.

“공명은 원래의 진채에서 삼십 리쯤 떨어진 곳에 진채를 내렸습니다.”

그러자 사마의가 그것 보라는 듯 말했다.

“그것 보아라. 내가 헤아린 대로 공명이 정말로 달아난 게 아니지 않느냐? 가볍게 나아가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음이었다. 그 뒤 보름이 지나도록 그쪽의 소식이 딱 끊어짐과 아울러 한 사람의 촉장도 싸움을 걸어오는 일이 없었다.

궁금해진 사마의는 다시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다. 얼마 뒤에 이상한 전갈이 들어왔다.

“병들은 이미 진채를 뽑아 떠나고 없었습니다.”

사마의는 그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얼른 옷을 걸치고 군사들 틈 에 섞여 몸소 공명의 진채가 있던 곳을 살피러 갔다.

정말로 촉병은 물러가고 없었다. 뒤쫓아가며 살펴보니 다시 삼십 리 물러난 곳에 진채를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사마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진채로 돌아오자마자 장합에게 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공명의 계책이오. 뒤쫓아서는 아니 되오.”

그러고는 진채에 틀어박혀 움직일 줄 몰랐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이번에도 전과 같아 사마의는 또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했다.

“병은 거기서 또 삼십 리를 물러나 진채를 내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자 장합이 더 참지 못하고 나섰다.

“공명은 틀림없이 천천히 군사를 물리는 계책을 써 한중으로 돌 아가고 있습니다.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쓸데없는 의심으로 그런 공 명을 뒤쫓지 않으십니까? 정 마음 내키지 않으신다면 나를 보내주 십시오. 가서 한바탕 결판을 내보겠습니다!”

“공명은 속임수가 매우 많은 사람이외다. 만약 함부로 뒤쫓다가 일이 잘못되면 우리 군사들의 날카로운 기세가 꺾일 뿐이니 가볍게 나아가지 마시오.”

사마의가 그렇게 장합을 말렸다. 그래도 장합은 물러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지게 되면 달게 군령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소리치며 나가 싸우기를 고집했다. 사마의도 더 말릴 수 없다고 보았던지 마침내 허락했다.

“장군이 꼭 가겠다면 군사를 나누어 두 갈래로 가도록 합시다. 장 군은 그 한 갈래를 이끌고 먼저 나아가 힘을 다해 싸워보도록 하시 오. 나는 뒤따라가며 접응해 적의 복병에 대비하겠소. 장군은 내일 떠나되, 도중에 군사를 머물렀다가 싸워 뒷날 군사가 모자라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리고 장합에게 군사를 나누어주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장합과 대능은 부장 여남은과 군사 삼만을 거 느리고 씩씩하게 떠났다. 한동안 사마의의 당부도 잘 지켜 한꺼번에 달려가지 않고 중도에 진채를 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마의는 많은 장병들을 남겨 본진을 지키게 한 뒤, 오천 군사만 가려 뽑아 장합의 뒤를 따랐다. 어디까지나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움 직임이었다.

그런 위병의 움직임은 진작부터 사람을 풀어 살피고 있던 공명의 귀에 금세 들어갔다. 위병이 진채를 떠나 자기들을 뒤쫓다가 중도에 쉬고 있다는 전갈을 들은 공명은 그날 밤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드디어 위병이 우리를 뒤쫓기 시작한 듯하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죽기로 싸울 것이다. 그대들은 하나가 열을 당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싸워주기 바란다. 나는 군사를 매복시켜 적이 돌아갈 길을 끊겠다. 그러나 이 일은 슬기와 용맹을 아울러 갖춘 장수라야 하는데 누가 가주겠느냐?”

공명은 그 말과 함께 위연을 보았다. 하지만 위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리를 수그린 채 말이 없었다. 꼭 그가 필요한 때에 나서주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위연이 끝내 말이 없자 왕평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공명이 못 미더운 듯 왕평을 보며 물었다.

“만일 그릇됨이 있으면 어찌할 텐가?”

“마땅히 군령에 따르겠습니다.”

왕평이 다소 꿋꿋하게 대답하자 공명은 비로소 조금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왕평은 제 몸을 던져 돌과 화살을 무릅쓰고 싸우려 하니 참으로 충신이다. 그러나 위병은 군사를 나누어 앞뒤로 밀어닥칠 것이니 우 리 복병은 그 가운데 놓여지고 만다. 왕평이 비록 지모와 용맹이 뛰 어나다 해도 그 혼자뿐이니 몸을 둘로 쪼개지 않고서야 어떻게 앞뒤 를 모두 당해내겠는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목소리를 높여 여러 장수를 보며 말했다. “다시 한 사람의 장수를 얻어 왕평과 함께 보내야 되겠다. 한 사 람 더 목숨을 내걸고 앞서볼 장수는 없는가?”

“저를 보내주십시오.”

공명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 장수가 나섰다. 공명이보니 장익이었다.

“장합은 위의 명장으로 혼자서 만 명을 당해낼 용맹이 있다. 그대의 적수가 아니다.”

공명이 어두운 얼굴로 말하자 장익이 결연히 소리쳤다.

“만약 제가 일을 그르치면 기꺼이 목을 군문에 바치겠습니다.”

공명은 그제서야 장익의 청을 들어주며 말했다.

“그대가 간다면 왕평과 함께 각기 만 명의 군사를 데리고 산골짜 기에 매복하도록 하라. 위병이 뒤쫓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모 두 그대들 앞을 지나간 뒤에야 들고 일어나 그 등 뒤를 친다. 그러다 가 만약 사마의가 뒤쫓아오면 다시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장익이 이끄는 군사는 앞쪽의 위병을 치도록 하라. 두 사람 모두 죽기로 싸 워야 할 것이다. 그사이 나는 따로 좋은 계책을 내겠다.”

이에 두 사람은 각기 군사 만 명을 이끌고 공명 앞을 물러났다. 공 명은 다시 강유와 요화를 불러 말했다.

“그대들 둘에게는 비단주머니 하나와 삼천 군사를 줄 것이니 깃 발을 눕히고 북소리가 나지 않게 앞산 꼭대기에 올라가 숨어 있거 라. 위병이 왕평과 장익을 에워싸 일이 매우 위급해지더라도 구하러 갈 것까지는 없다. 그때 비단주머니를 열어보면 거기에 위병의 에움 을 풀 계책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어서 공명은 다시 오반, 오의, 마충, 장의 네 장수를 불러 귀엣 말로 일렀다.

“그대들은 내일 위병이 이르면 맞아 싸우되, 그들의 날카로운 기 세가 드높을 때는 바로 싸우지 말라. 싸우며 달아나며 하기를 거듭 하여 다만 그들을 유인하면 된다. 그러다가 관흥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 적의 진채를 휩쓸거든 얼른 되돌아서서 뒤쫓도록 하라. 그때 나도 군사를 이끌고 접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불려 온 장수는 관흥이었다.

공명은 관흥에게도 계책을 주었다.

“너는 오천 군사를 이끌고 이 앞산 골짜기에 매복해 있으라. 그러다가 산꼭대기에서 붉은 기가 흔들리거든 얼른 뛰쳐나와 위병을 치 면 된다.”

관흥도 거기 따라 군사를 이끌고 떠나자 촉군의 배치는 완료됐다. 한편 자기들을 빠뜨릴 커다란 함정이 파진 것을 알 리 없는 장합 과 대능은 기세 좋게 군사를 몰아 촉진으로 밀어닥쳤다. 마충, 장의, 오반, 오의 네 장수가 그런 장합과 대능을 맞았다. 촉진에서 네 장수 가 말을 달려 나오자 장합은 전에 없는 투지가 들끓었다. 모든 군사 를 휘몰아 바로 짓쳐들었다. 촉병은 그 기세에 밀린 채 한편으로 싸 우고 한편으로 달아나며 위병을 깊숙이 꾀어들였다.

꾀임에 빠진 장합의 위병은 촉군을 뒤쫓기를 이십 리나 했다. 이 때 계절은 유월 한여름이었다. 날이 찌는 듯 더워 사람과 말은 이내 땀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장합은 멈추지 않고 병을 뒤쫓으니 오 십 리에 이르러서는 사람과 말이 지쳐 헐떡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산꼭대기에 있던 공명은 그걸 보고 비로소 붉은 기를 흔들었다. 관흥이 이끄는 군사가 물밀듯 쏟아져 나가 장합의 위병을 덮쳤다. 마충을 비롯한 네 촉장도 말 머리를 돌려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적 한가운데 에워싸인 꼴이 됐지만 장합과 대능은 꿋꿋 했다. 군사들을 격려해 싸우며 물러날 줄 몰랐다.

다시 그런 위병들의 등 뒤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며 두 갈래 군마 가 뛰쳐나왔다. 바로 왕평과 장익이 이끄는 촉병이었다. 그들 두 장 수는 힘을 다해 장합과 대능이 돌아갈 길을 끊어버렸다.

장합이 자기편 장수들을 격려하며 소리쳤다.

“그대들은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어찌 죽기로 싸워 결판을 내려들지 않는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이 좋은 때를 두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려 하는가!”

그 말을 들은 위의 장졸들은 부쩍 투지가 솟았다. 힘을 다해 병 과 싸웠으나 쉽게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그때 홀연 뒤편에서 다시 북소리 피리소리가 하늘을 메우며 한 떼의 군마가 밀고 들었다. 이 번에는 사마의가 이끄는 위병이었다.

사마의가 여러 장수를 몰아 뒤에서 덮치니 왕평과 장익은 금세 위병들에게 에워싸이고 말았다. 장익이 군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승상은 하늘이 내신 사람이다. 이미 우리가 이리 될 걸 헤아리고 계셨으니 반드시 좋은 계책이 있을 것이다. 겁먹지 말고 힘을 다해 싸우며 기다려보자!”

그리고 군사를 두 갈래로 나누어 사마의와 장합에게 맞섰다. 왕평은 군사 한 갈래로 장합과 대능의 돌아갈 길을 끊고, 장익은 돌아서서 사마의를 막았다. 어느 쪽도 기세가 죽지 않은 군사들의 싸움이라 그 치열함은 극도에 달했다. 창칼 부딪는 소리와 함성이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

그때 강유와 요화는 멀지 않은 산꼭대기에서 그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차 위병의 세력이 커지고 촉군이 위태로워지더니 마침내 는 당해내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갔다. 보고 있던 강유가 요화에게 말했다.

“일이 저토록 위급하니 비단주머니에 든 승상의 계책을 꺼내 보는 게 좋겠소.”

요화도 거기 찬동해, 두 사람이 비단주머니를 열어 그 속에 든 글 을 꺼내 보니 대략 이렇게 씌어 있었다.


‘만약 사마의가 군사를 보내, 왕평과 장익이 적에게 에워싸여 위 급해지거든 그대들 둘은 군사를 나누어 사마의의 영채를 들이치라. 사마의는 틀림없이 놀라 물러날 것이고 그대들은 그 어지러운 틈을 타 적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영채를 뺏지는 못한다 해도 크게 이길 수는 있으리라.’


그걸 본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길을 나누어 사마의의 영채를 덮치러 갔다.

이때 사마의는 군사를 내어 장합을 뒤따르기는 해도 혹시나 공명 의 계책에 빠질까 걱정이 되었다. 길을 가면서도 전령을 늘여세워 언제라도 본채와 연락이 이어지도록 채비를 해두었다. 그런데 그런 빈틈 없는 대비가 오히려 사마의의 군사들을 혼란시켰다.

“큰일났습니다. 병이 길을 나누어 대채로 밀려가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왕평과 장익을 들부수어 놓을 만해 사마의 가 한창 군사를 몰아대고 있는데 유성마가 달려와 그렇게 알렸다. 사마의는 깜짝 놀랐다. 자기의 대채로 밀고 드는 촉병이 얼마나 되 는지도 모르고 낯빛부터 변하며 원망부터 먼저 했다.

“나는 틀림없이 공명이 이런 속임수를 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대 들이 믿지 않고 사람을 부추겨 이렇게 뒤쫓게 하고 말았구나! 이제 큰일을 그르쳐놓았으니 어쩔 것인가?”

그렇게 여러 장수들을 나무라고 얼른 군사를 되돌렸다. 하지만 한 번 흔들린 군심이라 되돌아간다기보다는 어지럽게 흩어져 달아나는 데 가까웠다. 그 뒤를 장익이 뒤쫓으며 짓두들기니 위병은 여지없이 뭉그러지고 말았다. 장합과 대능도 적병 사이에 외롭게 남겨진 자 신들의 처지를 알아차렸다. 역시 산기슭 샛길로 달아나버렸다.

촉병은 더욱 기세가 올랐다. 그런 적병을 뒤쫓는데 다시 관훙이 군사를 이끌고 호응하니 크게 이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바탕 정신 없이 얻어맞은 사마의가 자신의 대채로 돌아오니 촉 병은 이미 절로 물러나고 난 뒤였다. 사마의는 싸움에 진 군사를 수 습해 영채로 들어간 뒤 장수들을 불러놓고 꾸짖었다.

“너희들이 병법도 알지 못하면서 혈기만 믿고 사람을 졸라 억지 로 싸우게 하더니 끝내는 이 꼴로 지게 만들었다. 앞으로는 결코 함 부로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다시 이 말을 지키지 않는 자가 있으면 군법에 따라 다스리겠다.”

그러자 싸우자고 우긴 장수들은 놀랍고 부끄러워 코를 싸쥐고 물 러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한바탕 싸움으로 수많은 군사가 죽었고, 그들이 버리고 온 말이며 군량 병기도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편 공명은 싸움에 이긴 군사를 되불러들여 진채로 돌아갔다. 그 러나 그 승리를 바탕으로 또 한번 크게 군사를 내려 하는데 성도에 서 사람이 달려와 알렸다.

“장포가 병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공명은 크게 목놓아 울다가 문득 입으로 피를 토하며 혼절해 쓰러졌다. 사람들은 슬픔이 너무 커서 그러려니 보았으나 실은 그때 이미 그의 병은 깊어 있었다. 거기다가 충격을 받자 쓰러 진 것인데 그 병은 여러 가지로 미루어 폐결핵쯤이 되지 않나 보고 있다.

공명은 그렇게 쓰러진 뒤로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오직 장포의 죽음 때문인 줄만 안 장수들은 그토록 장수를 아끼는 공명에 게 감격해 마지않았다.

공명이 병상에 누운지 한 열흘쯤 지난 뒤의 일이었다. 동궐과 번 건을 부른 공명이 나직이 말했다.

“나는 정신이 아뜩하고 몸이 나른해서 더 일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한중으로 돌아가 병을 다스린 뒤에 다시 좋은 계책 을 세우도록 하는 게 낫겠다. 하지만 너희들은 결코 이 말이 새나가 게 해서는 아니 된다. 만약 사마의가 알게 되면 반드시 우리를 치고 들 것이다.”

그러고는 가만히 영을 내려 군사를 돌리게 했다. 명을 받은 촉의 장졸들은 그날 밤으로 진채를 거두고 모두 한중으로 돌아가버렸다. 공명이 떠나간 지 닷새나 된 뒤에야 비로소 사마의는 공명이 돌 아간 걸 알았다.

“공명은 실로 그 나타나고 사라짐이 귀신 같구나. 내가 미칠 바 아니다!”

사마의는 그렇게 탄식했다. 그리고 장수들을 곳곳에 남겨 험한 길목을 지키게 한 뒤 자신은 데리고 온 군사들만 이끌고 낙양으로 돌 아갔다.

한편 공명도 대군은 한중에 남겨두고 자신은 병을 추스르려 성도로 돌아갔다. 문무 벼슬아치들은 모두 성 밖까지 나와 공명을 맞아 들이고 오래 비어 있던 승상 부중으로 들게 했다. 후주도 몸소 승상 부중으로 가서 공명을 문병하고 어의를 보내 치료케 했다.

여럿의 보살핌을 받으며 편히 쉬자 공명의 병은 차차 나아졌다. 하지만 병상에서 몸을 일으킨 공명이 다시 움직이기도 전에 이번에 는 위에서 풍운이 불어닥쳤다. 조진이 일으킨 풍운이었다.

건흥 팔년 가을, 오래 병상에서 누워 지내던 조진은 일어나기 바 쁘게 위주에게 표문을 올렸다.


‘촉병이 여러 차례 국경을 넘어들어와 중원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일찍 쳐 없애지 않으면 반드시 뒷날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 제 가을이 되어 날은 시원하고 사람과 말도 힘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으니 바로 군사를 일으켜 적을 칠 때인 듯싶습니다. 바라건대 신과 사마의로 하여금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들어가도록 윤허해 주십시오. 간악한 무리를 쳐 없애 변경을 깨끗이 하겠습니다.’


그 표문을 읽은 위주는 매우 기뻤다. 몇 해째 촉에 시달린 뒤라 말 만이라도 시원하게 들린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허락하고 싶 었으나 그래도 나라의 큰일이라 유엽을 불러 물었다.

“자단)이 짐에게 촉을 치라고 권하고 있소. 경의 생각은 어떠 시오?”

“대장군의 말이 옳습니다. 만약 지금 촉을 쳐 없애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큰 화근이 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어서 그의 말을 따르십시오.”

유엽이 얼른 그렇게 찬동하고 나섰다. 위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었다. 유엽이 집으로 돌아가니 여러 대신들이 찾아와 궁금한 듯 물었다.

“듣자니 천자께서 공과 더불어 촉을 칠 의논을 하셨다는데 어떻게 되었소?”

유엽이 시치미를 딱 떼었다.

“그런 일은 없었소이다. 촉은 산천이 험해 쉽게 도모할 수가 없소. 공연히 사람과 말만 수고롭게 할 뿐 나라에 이로울 게 없는데 뭣 때 문에 그러겠소?”

그 말에 대신들은 더 묻는 법 없이 모두 돌아갔다. 그들 중에 있었 던 양기(楊)란 이가 위주를 찾아보고 아뢰었다.

“듣기로 유엽은 어제 폐하께 촉을 치라고 권했다 했는데 이제는 또 여러 대신들에게 말하기를 촉을 쳐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이 는 바로 폐하를 속인 게 되는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불러 물 어보지 않습니까?”

위주 조예도 어리둥절했다. 얼른 유엽을 불러들여 물었다.

“경은 짐에게 촉을 치라고 권해놓고 이제 와서는 다시 안 된다니 어찌 된 일인가?”

“신이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촉을 쳐서는 아니 될 듯했습니다.”

유엽이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위주는 어이없었으나 무슨 뜻이 감추어진 것 같아 그냥 크게 웃어넘겼다.

얼마 후 양기가 자리를 뜨자 유엽은 비로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신이 어제 폐하께 촉을 치라고 권한 것은 나라의 대사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함부로 남에게 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군사를 부리는 일은 속임수에 있다[者 詭道也]했습니다. 아직 일을 벌 이기 전에는 결코 그게 새나가서는 아니 됩니다.”

위주 조예는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경의 말이 참으로 옳소. 내가 살피지 못한 탓이오.”

그렇게 뉘우치며 그 뒤로 더욱 유엽을 중하게 여겼다.

한 열흘 뒤에 사마의가 도성으로 돌아왔다. 조예는 조진이 표문을 올린 일을 들려주며 그의 의견을 들었다. 사마의가 선뜻 대답했다. 

“신이 헤아리기에도 동오(東吳)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듯하니 지금이야말로 촉을 치러 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자단의 말이 옳습니다.”

이에 드디어 조예도 마음을 정하고 출진의 진용을 짰다. 조진은 대사마에 정서대도독으로 삼고, 사마의는 대장군에 정서부도독이요, 유엽은 군사(軍師)였다. 거기에다 사십 만 대병을 딸려주니 세 사람 은 곧 위주에게 작별하고 장안을 거쳐 검각으로 갔다. 그리로 해서 한중을 뺏을 작정이었다. 그들 외에 곽회와 손례 등도 각기 길을 잡 아 한중으로 밀고 들었다.

한중 사람들이 그 놀라운 소식을 나는 듯 성도에 알렸다. 그때는 공명도 병이 나아 매일 인마를 조련하며 팔진법[八陣之法]을 익히게 하고 있을 때였다. 모두 제법 잘 알게 되어 이제 중원을 엿볼까 하는데 그 소식을 들으니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공명은 곧 왕평과 장의 두 사람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 둘은 먼저 군사 천 명을 데리고 진창으로 가서 옛길을 지 켜라. 내가 곧 대병을 이끌고 뒤따라가서 응하겠다.”

두 사람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위병은 사십만이나 되고 부풀려서는 팔십만 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군사 천 명을 데리고 그런 대 병이 오는 길목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위의 대병이 한꺼번에 밀고 오면 어떻게 버티란 말씀이십니까?”

그러나 공명은 알 듯 말 듯한 소리만 했다.

“나는 많이 주고 싶으나 사졸들이 고생할까 봐 걱정이 돼 그리 못한다.”

장의와 왕평은 그 소리에 서로 얼굴을 빤히 쳐다볼 뿐 떠나려 하 지 않았다. 공명이 조금 알아듣기 좋게 한마디 보탰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도 그대들의 죄가 아니다. 여러 말 할 것 없 이어서 달려가기나 하라.”

그래도 두 사람은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죽으러 가라는 줄 만 알고 슬피 빌었다.

“승상께서 저희를 죽이시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주십시오. 아무래도 그곳에는 못 가겠습니다.”

그제야 공명이 빙긋 웃으며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무슨 어리석은 소리. 내가 그대들에게 그렇게 시키는 데는 다 생각이 있어서다. 어제저녁 천문을 보니 필성(畢星, 이십팔 수 중의 하나)이 태음(陰) 사이에 있어 이달 안으로 반드시 큰 비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병이 비록 사십만이라 해도 어찌 그 모두를 이끌고 험한 땅 깊숙이 들어오겠느냐? 결코 많은 군사를 움직이지 못할 것 이니 그대들이 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대군을 거느리고 한 중에서 한 달을 편안히 쉬면서 위병이 물러가기를 기다리겠다. 그래 서 그들이 물러갈 때를 틈타 재빨리 대군을 이끌고 그 뒤를 후려칠 작정이다. 우리 편은 편히 쉬면서 적이 고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우리 십만 군사면 적의 사십만은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왕평과 장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환해진 얼굴로 군사를 이끌고 나갔다. 공명도 뒤이어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간 뒤 각처 에 영을 내려 일렀다.

“마른 나무와 말먹이 풀, 군량을 넉넉히 마련해 한 달은 쓸 수 있 도록 하라. 가을비가 길어져도 낭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군사에게 한 달 치의 군량과 의복을 먼저 내어주고 싸움에 나서게 했다.

그때 조진과 사마의가 이끈 대군도 진창성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 안에는 군사들은커녕 장수들조차 누울 방 한 칸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조진이 그곳 토박이를 불러다 물었다. 그 토박이가 대답했다.

“지난번 공명이 돌아갈 때 모조리 불태워버렸습니다.”

이에 조진은 그곳에 머물 수 없어 바로 대군을 진창 길로 내몰려 했다. 사마의가 그런 조진을 말렸다.

“가볍게 나아가서는 아니 되오. 내가 밤에 천문을 보니 필성이 태음 사이에 있어 반드시 이달 안으로 큰비가 올 것 같소. 대군을 이끌 고 적지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이기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 이 그릇되면 군사들이 고생하게 될 뿐만 아니라 물러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오. 차라리 성벽에 의지해 움막이라도 얽고 큰비에 대비하 는 게 좋을 듯하오.”

조진도 그 말을 못 알아들을 만큼 미련하지는 않았다. 그 말을 따 라 군사들에게 성안에 움막을 얽어 큰비에 대비케 했다.

미처 그날 밤 달이 뜨기도 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대 같 은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진창 성 밖 평지에는 물이 석 자나 괴었다. 그 비 때문에 군기는 모조리 물에 젖고 사람도 잠잘 수가 없 어 밤낮으로 괴롭기 그지없었다.

비는 무려 한 달간이나 줄기차게 내렸다. 말은 먹일 풀이 없어 수 없이 죽어 자빠지고 비에 시달린 군사들의 원망 소리 또한 끊어질 줄 몰랐다. 조진과 사마의는 견디다 못해 그 소식을 낙양에 전했다. 위주 조예는 그 말을 듣고 제단을 쌓아 비가 그치도록 빌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럴 때 황문시랑 왕숙(王肅)이 상소문을 올려 아뢰 었다.


‘옛 글에 천리 밖에서 군량을 가져다 먹이면 군사들의 얼굴에 주 린 빛이 있고, 나무를 찍고 풀을 베어 (그걸로) 음식을 끓이면 군대 는 편히 잘 수도 배불리 먹을 수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평평한 길에서의 행군을 가리킨 것인 바, 험한 땅 깊숙이 들어가 길 을 뚫으며 나아가야 하는 우리 군사의 괴로움과 수고로움은 그 두배가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장마까지 겹쳐 산 언덕길은 미끄 럽고, 군사들은 나아가기 힘든 데다, 멀리서 보내는 양식은 뒤를 대 기가 어려우니, 이는 모두가 군대를 움직일 때 크게 꺼리는 일입니 다. 듣건대 조진은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었으되, 아직도 (촉으로 드는) 골짜기의 반을 지나지 못했으면서도 길을 뚫는 데 싸울 군사 들의 힘을 모조리 써버렸다 합니다. 이는 바로 촉에게 편안히 있으 면서 힘들여 오는 적을 기다리는[以逸待勞]이점을 주는 것이니 이 또한 병가에서 피하는 일입니다. 오래된 일로 말한다면 무왕은 주 (紂)를 치러 관을 나갔다가 되돌아왔고, 가까운 일로는 무황제(조 조), 문황제(조비)께서도 손권을 치러 대강까지 내려가셨다가 되돌 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늘의 뜻을 따름이며,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앎이요, 변화를 깊이 알고 대처함이 아니었겠습니까?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저들이 빗속에 겪는 어려움을 헤아리시어 잠 시사졸들을 쉬게 하셨다가, 뒷날 좋은 틈을 타 다시 쓰도록 하옵소 서. 이는 바로 뒷날 저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아가게 만드는 길 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곧 촉을 치러 나가 있는 조진과 사마의의 군사를 불러들이라는 권유였다. 그 표문을 읽은 위주는 은근히 마음이 움직였으나 얼른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 화흠과 양부가 상소를 올려 왕 숙과 같은 뜻을 아뢰었다.

마침내 마음을 정한 위주는 조진과 사마의에게 영을 내려 군사를 되돌려오게 했다.

그때는 조진과 사마의도 생각이 바뀌어 있을 때였다.

“비가 내리 한 달이나 퍼붓고 있으니 군사들은 싸울 마음이 없고 그저 돌아갈 것만 생각하고 있소이다. 실로 어떻게 막아야 될지 모르겠소.”

어느 날 조진이 사마의에게 그렇게 걱정했다. 사마의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돌아감만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조진이 물었다.

“공명이 뒤쫓아오면 어떻게 물리치시겠소?”

“두 갈래 군사를 숨겨두어 뒤를 막게 한 뒤에 물러나면 될 것입니다.”

사마의가 그렇게 의견을 냈다. 그때 문득 천자에게서 사신이 와 두 사람을 불러들이는 뜻을 전했다. 이에 두 사람은 전대는 후대로 삼고 후대는 전대로 세워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