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세계편 1권 15화 – 세크메트의 분노 3 : 상형문자

랜덤 이미지

퇴마록 세계편 1권 15화 – 세크메트의 분노 3 : 상형문자


상형문자

준후는 예기치 못한 소혼술의 반작용으로 충격을 입었는지 곧 바로 잠이 들었고 현암과 박 신부, 승희는 말없이 앉아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홍 박사 실종 사건은 블랙서클 같은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잠깐이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는데 이 일을 겪고 난 후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는 예감이 모두의 분 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말없이 삼사십 분을 앉아 있는데 연희가 도착했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연희는 여느 때처럼 밝고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안으 로 들어섰다. 연희의 키는 훤칠해서 승희보다도 훨씬 컸고, 거의 현암과 비슷해 보였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연희가 들어서자 침 울했던 분위기가 밝게 변하는 것 같았다.

“제가 도울 일이 뭐죠?”

승희가 별말 없이 영기에게서 받은 홍 박사의 편지들을 내밀 었다. 박 신부가 대신 말을 했다.

“연희 양, 여기에 나오는 그림 문자의 뜻을 좀 알려 줘요. 무슨 내용이며, 어떤 유래가 있는지도.”

연희는 생긋 웃으면서 편지를 받아 들었다. 허물없는 연희의 태도와 검고 큰 눈을 보자 모두들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연 희는 나직한 목소리로 편지에 나오는 단어들에 대해 간략히 일 러 주었다.

“홍승표 박사님이라면 저도 아는 분이에요. 이집트학의 권위 자죠. 국내에서는 독보적이에요. 실종됐다던데…………. 그것 때문 에 이 편지 내용들을 알고 싶으신가 보죠?”

현암이 고개를 끄덕였고 박 신부도 미소로 대답했다.

“부탁해요, 연희 양.”

“흠! 하토르의 신전・・・・・・ . 그건 덴데라에 있는 거대 폐허군 가 운데에 있는 신전이죠. 하토르는 이집트의 여신으로 친절하고 마음씨 고운 사랑의 신이기도 해요. 음? 그런데 세크메트? 세크 메트는……………..”

승희가 소리쳤다.

“아까의 외침 중에 분노를 피하라. 세, 세・・・・・・ 라는 말이 있었 어요. 더 듣지는 못했지만, 그게 혹시 세크메트가 아닐까요? 도 대체 세크메트가 어떤 신이에요?”

연희가 눈을 찌푸렸다.

“무서운 신이죠. 투쟁과 살육, 전쟁의 여신. 그리고 피에 굶주린 여신”

현암이 눈빛을 빛내며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나요?”

연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뭔가 생각해 내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세크메트는 하토르의 변신이죠.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의 정 반대의 면모로 전설에 의하면 태양신 라를 배신한 인간들을 벌 하기 위해 라의 명에 따라 하토르가 변신한 여신이라 해요. 암사 자의 모습, 그러니까 하늘 사자의 모습이 되어서 인간들에게 내려왔다고 해요.”

“사자요?”

“예. 그런데 그 사자는 너무나 흉포하게 인간들을 해쳤고, 잔 혹함이 심하여 보다 못한 라가 인간의 전멸을 막기 위해..” “인간의 전멸? 라를 배신한 사람이 아니고요?”

“예. 라가 살육을 중지하라고 세크메트라는 이름을 내렸다던 가 그렇죠. 그러나 세크메트는 ‘인간들을 살육하면, 당신 라의 생명이 내 심장에 환희를 줍니다’라고 하며 계속 인간들을 해쳤다는 겁니다.”

“세상에! 하토르는 사랑의 신이라면서요?”

“친절하고 착한 사랑의 신이니만치 반대의 모습으로 변하자 더욱 격렬해진 것이라 할까요? 하여간 세크메트는 세상을 피로 쓸고 지나가며 인간들의 피에 취했다고 해요. 라의 명령도 전혀 듣지 않고요.”

일동은 멍해졌다. 주신(主神)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살육 그 자체에 탐닉했다는 신의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는 들어 보지 못한 전설이었다. 만약 홍 박사의 영이 소리쳐서 분노를 피하 라고 말한 대상이 바로 세크메트라면 연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라는 결국 인간을 구하기 위해 술과 석류 즙을 섞은 붉은 미 약을 살육의 땅에 칠천 병이나 뿌렸다고 해요. 세크메트는 붉은 음료를 인간의 피로 알고 정신없이 들이켜서 만취한 나머지 잠들었고, 라는 간신히 세크메트의 살육에서 인간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요.”

연희의 이야기대로라면 세크메트는 세계에서도 거의 유래가 없을 만큼 잔인하고 혹독한 신일 것이다. 그런 신의 분노라면 그것은?

“그럼에도 세크메트의 분노는 가시지 않아서, 태양신 라는 인 간들에게 매년 1월 1일에는 여사제들이 가진 모든 병에 미약을 넣어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명했다 합니다. 그 명령은 어김없 이 지켜졌구요. 그러고 보니 새로 발굴되었다는 신전의 석실이 그런 제사의 용도로 쓰인 것 같다는 기사도 본 듯하구.” 

“세크메트의 분노는 그렇게 무서운 것인가요?”

“그럴 거예요. 그러나 수천 년이나 지난 고대의 전설상의 신일 텐데요. 후후후.”

연희는 천진하게 웃었지만 퇴마사 일행의 마음은 무거웠다. 고대의 전설상의 신이라고 그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아무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승희는 준후가 정신을 차렸나 보려고 방으로 들 어갔고 박 신부와 현암은 말없이 연희에게 부탁한다는 눈짓을 했다.

연희는 편지를 보고 거기에 적힌 상형문자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연희에게는 그런 해독 작업이 상당히 즐거운 일인 듯, 콧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갖고 온 작은 책을 뒤적거리면서 막힘없이 종이에 글을 만들었다. 그러나 세크메트에 대한 무시무시한 전 설을 들은 박 신부와 현암의 마음은 무거웠다. 연희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잠시 후에 번역을 마친 듯, 작은 책의 갈피를 덮 었다.

“상형문자는 세 가지가 있군요. 홍 박사님의 그림 실력은 꽤 좋 은 편이네요. 첫 번째 문구는 ‘그날은 미소를 짓지 말라’이고요.” 

현암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언제의 편지죠?”

“음. 2월 10일. 편지의 내용으로라면 막 석실의 벽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던 것 같군요. 석실의 벽돌에 온통 새겨져 있는 문 구라고 하네요.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연희가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방에서 나온 승희가 독촉했다.

“그다음은요?”

“다음 것은 우연히 발견된 토기 조각에 새겨져 있던 것이라 되 어 있네요. 홍 박사님은 아들에게 상황을 세세히 알려 주려 애쓴 것 같아요.”

현암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아들에게 구태여 상형문자까지 그려가며 상황을 알려 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연희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 내용은 ‘분노 잠들라’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것은…….”

그 편지는 현암이 아까 잠시 들추어 보았던 마지막 편지였다. 연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어디서 발견한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군요. 다만 ‘문 은 이미 열려 있다’라는 뜻이네요.”

현암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편지들을 받아 들고 찬찬히 읽어 보았다. 느낌이 이상해서였다. 다른 편지들은 별것이 없었고, 상 형문자가 어디서 발견되었으며 무엇에 새겨진 것이라는 내용이 었으나 마지막 편지는 좀 이상했다.

내 착한 아들 영기야 보아라.

발굴은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 날씨가 매우 덥지만 이제 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 어려움은 없단다. 커크 교수와 카프너 기사는 열성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런 그들이 두렵다는 생각도 약간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별것 은 아니겠지. 그 석실은 하토르의 숭배를 위한 방이 아닌 세크메 트를 섬기는 방이었던 듯하구나. 벽에 새겨져 있는 문구가 아무 래도 조금 섬뜩하지? 그러나 그런 것이야 그다지 신경 쓸 것은 아 니겠지. 네가 이집트학에 관심을 가졌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상형문자 같은 것을 적어 보낸다고 짜증은 내지 말려무나. 석실의 문은 이미 발견되었고, 조금만 더 있으면 석실의 문을 열 날도 오 겠지. 나는 조만간 한국에 한번 들러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석실 공개를 못 볼 것 같아 아쉽구나. 하여간에 잘 지내기 바란다. 피곤 해서 오래는 쓰지 못하겠다. 이만 줄인다.

그리고 밑에 상형문자가 적혀 있었다. 현암은 이상하다는 생 각을 했다. 이 편지에 적힌 상형문자의 의미가 왜 ‘문은 열려 있 다일까? 혹시 이건 무슨 암호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위 의 본문 중에도 구태여 이번 편지에만 상형문자를 적어 보내도 짜증내지 말라느니, 아들이 이집트학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느니 하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홍 박사는 아들에게 암호로 무언가 전하려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 면 여기서의 문은? 아들에게 상형문자에 짜증내지 말라고 한 구 절 다음에 석실이 곧 공개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다 면 혹시…….

“연희 씨. 홍 박사를 안다고 했는데, 홍 박사가 이집트어에 능 통했던가요? 상형문자로 글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아마도요. 이집트어 한 가지에 대해서라면 저보다 훨씬 나 으셨겠죠. 그러나 상형문자를 말하는 거라면 어떨지.”

“상형문자라면 왜?”

“상형문자로 글을 전달하기 위해 썼다면, 아마 단순히 알파벳 에 대응하는 글자들로 상형문자를 그려 놓고 어순이나 문법적인 것은 요즘의 말과 비슷하게 썼을 거예요. 그러나 여기의 문장들 은 그렇지 않아요. 특히 ‘문은 이미 열려 있다’는 문장은 문법적 으로 어순이 뒤바뀌어 있는데, 그건 고대의 특정한 시기의 문법 으로나 맞는 것이더군요. 몇 단어 되지 않는 문구이니 분명 문법 상의 오류예요.”

“그건 무슨 말이지요?”

“글쎄요. 제 생각이기는 하지만 홍 박사님 정도의 분이 이 문 자를 적은 것이라면 문법적으로 뒤집힌 문장을 적었을 것 같지는 않군요. 어차피 상형문자로 글을 만들려면 사전이나 참고 서적을 보고 적어야 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그랬을 리는 만무하고.” “아! 잠시만요. 그러면 홍 박사가 상형문자를 외워서 그냥 적 었을 가능성은 없는가요?”

연희는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현대 이집트어도 아니고 고대어인 상형문자인데, 이 집트의 상형문자는 그 자체가 알파벳에 대응되는 것이기는 하지 만 그 체계는 복잡하지요. 자세히 알 순 없지만 홍 박사님이라도 책을 참조하지 않고 그냥 글을 쓰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렇다면・・・・・・ “

현암은 말없이 편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뭔가가 있는 듯했다. 그랬다. 자세히 편지를 살펴본 현암은 편지에 그려진 상형문자가 종이를 거의 뚫을 정도로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맞아요. 이 종이의 자국……………”

가만히 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박 신부가 물었다.

“왜 그러나, 현암 군?”

“보세요. 이 편지의 글씨들은 모두 종이의 뒷면이 볼록할 정도 로 자국을 남기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이 상형문자 부분만은 깊 숙이 자국이 남아 있지요. 이건 이 상형문자의 글귀가 원래 편지 가쓰인 곳과는 다른 곳에서 쓰였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겁니다.” 

박신부는 현암에게서 편지지를 받아 들고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죠. 홍 박사는 편지를 써서 부치기 전 에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뭔가 급하게 알려야 할 것을 보게 되 었다고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편지지를 손바닥이나 벽같이 우 둘투둘한 곳에 놓고 글을 써서 급히 부친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아까 연희 양이 하는 이야기도 들었네만, 그렇다면 세 번째 상형문자의 글귀가 문법적으로 조금 그르게 된 것도 홍 박사가 급하게 썼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인가?”

“그렇죠.”

그러나 박 신부는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렇게 급한 일이었다면 왜 상형문자를 썼을까? 그건 쓰기가 훨씬 어려운 글이 아닌가?”

“남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였겠죠. 누가 편지를 보면 안 된다 고 생각을 했을지도…………….”

“그곳은 한국이 아닐세. 오히려 상형문자보다 한글로 쓰는 편 이 비밀을 보장하기엔 더 좋았을지 몰라.”

“그건・・・・・・ 음! 그것도 그렇군요.”

“현암군, 자네의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네. 자네 말대로 그 문 장은 마지막에 새로 추가된 것이 분명한 듯하군. 그러나 ‘문은 이미 열려 있다’는 뜻은 분명 의미가 있는 말일 거라고 생각해. 오히려 내 생각으로는 뭔가 이유가 더 있는 것 같아. 연희 양?” 

“예? 신부님?”

“그 문장이 특정 시기의 고대어로만 맞는 문장이라 했는데 홍 박사가 그것까지 알고 썼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야 모르는 일이지만……………. 방금 현암 씨의 말대로 그 문구 를 급하게 쓴 것이라면, 그런 문장 구조까지 알고 썼다는 건 거 의 불가능한 일일 듯하네요. 단순한 문법적 오류가 우연의 일치 로 그렇게 된 것 아닐까요?”

박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우연의 일치란 건 물론 있을 수 있지만, 이 문장은 뭔가 내용이 심각한 것 같아. 문은 이미 열려 있다……………. 이미 열려 있다…………. 무슨 뜻일까? 그리고 왜 굳이 홍 박사는 이 내용을 말미 에 적어 보낸 것일까?”

현암과 박 신부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연희가 말을 꺼냈다.

“하여간 내일부터 바로 그 유물들의 전시회가 시작된답니다. 크게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유물들을 둘러보는 것 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어때요?”

박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가 약속이 있어 가 보아야겠 다며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뜨려 하자 현암이 불쑥 말을 꺼냈다. 

“제게 뭔가 짚이는 것이 있어요.”

“뭔가?”

“문은 이미 열려 있다. 여기서의 문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상징적이거나 추상적인 의미 같지는 않아요. 그건 아마…………… 석 실의 문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석실의 문? 그러나 이 편지의 발신 일자는 석실의 문이 개봉 되기 훨씬 전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지만 홍 박사는 석실의 문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하 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문의 이미지를 떠올렸 을 여지는 없지요.”

현암이 말을 마치고 있는데 준후가 정신을 차렸는지 밖으로 나왔다. 현암은 소혼술을 함부로 쓴 것에 대해 준후를 야단치고 난 다음, 왜 기절까지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별생각 없이 물어본 것인데 준후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저는 분명 홍 박사님의 영만 부른 것인데………… 그 괴물 같은 형상을 한 영이 바로 따라 나왔어요. 둘은 서로 붙어 있는 거예 요. 떨어지지 않게요.”

“뭐? 둘이 붙어 있다고?”

박 신부도 아까 보았던 광경을 생각해 내었다. 아누비스의 형 상의 영이 홍 박사의 영과 붙어서 나타났었다. 연희는 괴물 같은 형상의 영이라는 말에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관심을 가지는 듯 했다.

“어떤 형상이었지?”

승희가 대신 답했다.

“개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였어요.”

연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누비스는 그리스식 발음이고 원래의 이름은 인푸(Inpou) 지요. 그 신은 개의 머리를 하거나 황금빛 늑대의 모습을 하며 죽은 자의 안식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신인데. 아이쿠! 그런데 그 영이 진짜로 모습을 나타냈다고요? 으으윽.”

박신부가 억지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연희 양, 우리의 일에는 그런 일들이 많아요.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예. 인푸는 저승 세계의 문을 지키고 미라를 발명한 신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세상을 놀라게 했던 투탕카멘 묘 발굴과 관련해 연속된 의문의 죽음도 아누비스의 분노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나돌았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것이라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승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홍 박사님의 영과 아누비스, 아니 인푸가 연관이 있을 리는 없잖아요. 이번에 발굴된 것은 단순한 석실이지 미라의 묘 가 아닌데, 만일 아누비스가 죽은 자의 신이라면 죽은 자를 지켜 야지 어째서 관련도 없는 홍 박사님의 영에 달라붙었을까요?” 

준후가 승희의 말에 덧붙였다.

“저는 잘은 모르지만 아까 나타난 것은 신이 아니에요. 어떤 고대인의 화신 정도라고 할까요? 신이라 이름 붙일 만큼 초월적 인 것은 아니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지?”

“헤헤, 영에 대한 건 제가 잘 알죠. 느낌으로 알 수 있어요. 어 떤 사람의 영이든 간절한 신념을 가지면 그런 화신의 성격을 띠 게 될 수 있고, 다른 영들보다도 상급의 위치에 서서 반신(半神) 이 될 수 있지요. 바로 그런 정도의 존재였어요. 그 아누…………… 뭐 라는 신을 몹시 섬기던 사람이었나 보던데요? 분위기는 무시무시했지만.”

준후의 말을 듣고 현암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복잡하군.”

“왜 그러나, 현암 군?”

“거의 풀릴 것 같은데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가설이라도 좋으니 이야기하게나.”

“그럴까요? 그럼……”

현암이 좌우를 둘러보다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준후의 말에서 암시를 얻었지요. 아까 나타난 아누비스?” 

말을 하다 말고 현암이 연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연희가 대답했다.

“인푸예요, 이집트어로는.”

“그래요. 인푸의 영이 준후의 말대로 힘이 있는 고대인의 영 이라면, 그 영이 홍 박사의 영에 아직까지 달라붙어 있는 것으로 볼 때, 홍 박사의 세 번째 상형문자는 고대인의 영이 빙의되어서 씐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박 신부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제대로 성 립된다. 구태여 상형문자를 쓴 것, 그리고 어순이 고대어의 문법 과 닮은 것 등등이. 그러고 보니 세 번째 상형문자의 글씨는 다른 두 개에 비해 다른 사람이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현암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해요. 인푸가 죽은 자의 수호신이라니. 홍 박사의 영에 빙의된 그 영도 역시 최소한 인푸를 섬기던 자의 영 이었을 텐데 하필 이런 신전의 지하 석실을 발굴할 때에 빙의되 었다는 것이 이상하고, 또 홍 박사가 빙의된 후에 편지를 붙였다 는 것도 이상하군요. 죽어서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영인데 살아 서 다른 행동을 하게 놓아두었을 것 같지 않거든요?”

승희가 일어섰다.

“홍영기 씨에게 연락해 볼게요. 편지 겉봉의 필적이 과연 홍 박사님의 것이었는지를요.”

일행은 승희가 영기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겼 다. 아직 알 수 없는 점이 많았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왜 홍 박사 에게 인푸의 영이 빙의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상형문 자의 의미도 모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여겨졌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