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처 워커 1권 – 2장 시인의 귀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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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워커 1권 – 2장 시인의 귀환 2


2

미는 눈을 뜨더니 누운 채로 질문했다.

“미는 어디에 있나요?”

운차이는 그 질문이 기이하다고 느꼈다. 미 본인의 입에서 나온 질문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잠시 후 운차이는 그것이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임을 알 아차렸다. 그래서 운차이는 팔을 들어 안개 사이로 보이는 산등성이 아래쪽의 도시를 가리켰다.

“턴빌이오.”

“턴빌…..? 아아, 머리 아파. 도대체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픈 건지.”

미는 일어나 앉더니 두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짚었다. 컹!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미는 깜짝 놀랐지만 곧 그녀의 무릎에 몸을 누이며 얼굴을 핥는 거대한 짐승의 습격에 웃음을 터뜨렸다. 운차이는 까르륵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미의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모닥불에서 주전자를 내려 차한 잔을 따라서 미 앞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수면제요.”

아달탄의 머리를 쥐고 흔들던 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운차이를 바라보았다.

“수면제요? 어머나……………, 미한테 그런 걸 왜 먹이셨어요?”

“내가 아니고 그 나이트호크였소.”

“예? 코렐 씨 말인가요? 그분이 왜?”

“우리가 쫓는 작자의 사주를 받은 녀석이었어.”

“예에?”

미는 당황해 버렸다. 사이들랜드의 양치기 처녀에게는, 그녀가 아무리 미래를 보는 무녀라 하더라도 이건 너무 놀라운 사건이다. 미가 암투에 휘말 려서 수면제를 먹었다니! 미는 쳉에게 이 이야기를 자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곧 다시는 쳉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떠올렸다.

미는 아달탄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고, 아달탄은 미의 뺨을 핥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리기 위해 미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네리아가 두 팔 두 다리 다 벌린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반대쪽 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칼집을 단단히 품에 안은 채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그란의 모습이 보였다.

“에고고, 무거워라.”

미는 아달탄의 머리를 옆으로 치우고는 마지막으로 운차이를 바라보았다. 운차이는 약간 떨어진 바위에 앉은 채 모닥불을 뒤적이고 있었다. 실처럼 가늘게 피어오르는 파르스름한 연기는 주위를 감싸고 있는 희뿌연 안개 속에서 유난히 두드러졌다. 미는 차 한 모금을 힘들게 마신 다음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서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당신은 수면제를 안 먹었어요?”

“먹었소.”

“예? 그런데 왜…………”

“소화를 잘하니까.”

지나치게 짧은 대답에 미는 버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운차이는 질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질문하는 미에게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의 노력 끝에 미는 한두 마디로 이루어진 운차이의 대답들을 끌어모아 간신히 그젯밤의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젯밤이라고요? 그럼 운차이 씨는 어제 하루 종일 잠든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신 거예요?”

“녀석은 수면제를 지나치게 많이 썼어. 거의 마취제로 써도 될 만한 분량을 쓴 것 같더군.”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별로.”

운차이는 바위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버리는 것으로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냈다. 뭔가 더 물어볼 것이 많던 미는 산 아래를 굽어보는 운차이의 뒷모습 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달탄의 목을 간질이며 생각에 잠겼다. 턴빌이라. 그때 운차이는 몸을 돌린 채 말했다.

“미안하게 됐군. 당신은 탄느완으로 간다고 했지? 하지만 잠들어 있어서 놔두고 올 수도 없었소. 그리고……………”

“예? 아아, 괜찮아요. 많이 어긋나는 것도 아닌 걸요.”

“내 말은 끝나지 않았소만.”

“예? 아, 죄송해요. 말씀하세요.”

미는 어째서 자신이 사과해야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 했지만 곧 이어진 운차이의 말에 그런 생각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당신은 우리와 같이 있어야겠소.”

“예?”

운차이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잠든 동료들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할슈타일 후작은 우리 일행이 하나 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테니까.”

“할슈타일 후작은, 그러니까, 여러분이 쫓고 있는 사람이지요?”

“그렇소. 코렐은 말했을 거요. 코렐 이외에도 고스빌의 시민들 중 많은 수가 당신이 우리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소. 후작은 틀림없이 당신에 대 해 알게 되었을 거요. 그렇다면 당신이 우리와 헤어지는 순간 그가 당신을 노리게 된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기 간단한 일이지.”

“미를 노린다고요? 음……, 그럴까요.”

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그래서 운차이가 오히려 약간의 당혹을 느꼈다.

“그럴 거요. 따라서 미안한 일이지만, 당신이 안전하려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좋겠소.”

미는 방긋 웃었고 그 표정은 운차이가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표정이었다. 미는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대신 고개를 돌려 짐을 찾기 시작 했다. 자신의 배낭을 찾아낸 미는 배낭을 뒤지며 운차이에게 말했다.

“물 있나요?”

운차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물통을 찾아서는 미에게 건네었다. 자신이 바보 같은 조언을 꺼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그게 편했으니까. 미 는 배낭에서 물그릇을 꺼내면서 운차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왜 턴빌로 오신 거죠?”

“코렐이 말하길 녀석들이 이곳에 있다고 했으니까.”

“그분은 저쪽의 사주를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 말을 믿나요?”

“믿소. 그 친구도 누굴 속일 땐 사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테니.”

“아, 그런가요. 어렵네요. 자, 다 됐어요. 죄송하지만 조용히……”

운차이는 파이프를 피워 물면서 말했다.

“입 다물고 있겠소.”

잠시 후, 운차이가 파이프 속에 담긴 하얀 재를 비울 때쯤 해서 미는 정성스럽게 물을 버리고는 가면을 벗었다. 그때까지도 운차이나 미 두 사람 모 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는 물그릇을 깨끗이 닦아서 배낭 안에 넣어둔 다음에야 천천히 일어났다.

“배가 고파요.”

운차이 역시 파이프를 윗옷 주머니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턴빌로 내려가서 식사를 하면 될 거요. 그런데 뭐가 보였소?”

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아달탄을 데리고 놀기 시작했다. 땅바닥을 뒹구는 미와 아달탄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키타나 하운드가 무녀를 잡아먹으려 든다고 여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운차이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우리와 같이 있을 거요?”

“까르륵! 하지 마! 너 목욕 좀 해야겠어! 예. 하지마, 하지 마! 에이! 침이다, 침!”

운차이는 날렵한 검사였고, 그래서 비명처럼 내지른 미의 말 가운데서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는 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그래서 그 는 동료들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조금 전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몸을 돌려 안개가 걷혀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래서 운차이는 미가 아달탄의 목에 얼굴을 푹 파묻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의를 집중하고 있더라 도 눈치 채기 어려운 모습이었던 데다가, 원래 운차이는 여자에게 주의를 많이 보내지 않는 자이펀 검사였다.

미는 아달탄의 거친 털을 눈물로 적시며 낮게 되뇌고 있었다. 오로지 비정상적으로 우수한 키타나 하운드의 청각으로만 알아차릴 수 있는 목소리였 다.

“어쩌지……. 아달탄,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윽. 흐윽………. 이젠 그것마저..”


파타로 주점의 테이블들은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해괴한 사건들은 적어도 3년 동안은 계속해서 흥분되는 이야깃거리로 남겨질 모양이다. 하지만 어젯밤에 일어났다는 그 해괴한 사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쳉으로서는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쳉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좀 알아듣게 말해 봐.”

쳉에게 붙잡혀서 테이블 맞은편에 앉게 된 데브는 먼저 컵을 들어올리더니 입에서 떼지도 않은 채 물 한 그릇을 비워버렸다. 그러고는 숨을 몰아쉬 면서 말했다.

“후아, 후아. 정말 그런 건 처음 봤어. 어, 그러니까 말할 테니 잘 들으라고요. 으으, 그 발. 그러니까, 에, 미는 어제 오전에 처음 보는 세 사람과 함 께 나타났어요. 두 명은 남자였고 하나는 여자였어요. 헤엑. 남자 중 하나는 정말 무시무시하던걸요! 그리고 여자가 탄 말은, 맙소사, 난 그런 말은 처 음 봤어요. 그런데 그 네 사람은 말이죠, 그러니까 처음 보는 세 사람과 미는 여기서 코렐 씨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코렐 씨와 함께 그 사람의 집으로 갔어요. 코렐 씨의 집은 네인 강에 있는 폐선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 나루터 가까운 곳에서 코렐 씨의 시체가 발견되었다고요. 그리고 네 사람은 온데간데없고요. 나 조금 전에 그 시체 보고 오는 길이에요. 우와, 세상에!”

“아, 좋아. 이해했어.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야?”

데브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쳉을 바라보다가 그의 등 뒤에 서 있는 파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파는 사나운 눈길로 데브를 쏘아보며 고개를 가로저었 다.

‘말하면 죽어.’

데브는 침을 꼴깍 삼키다가 사레가 들려서 콜록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쳉은 측은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 녀석도. 물을 그렇게 급하게 마시니까 그렇지.”

데브의 어처구니없음과 억울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불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데브가 간신히 숨을 고르고 뭐라 말하기 직전, 파는 재빨리 쳉의 어 깨를 툭 쳤다.

“저 녀석은 시체를 봐서 지금 제정신이 아냐. 너완 다르잖아, 아마추어 장의사 씨.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보낼 시간이 없고.”

“그런가. 알았어, 데브, 고마워. 그 시체라는 걸 좀 봐야겠군.”

쳉은 테이블에서 일어났고 데브는 아직껏 콜록거리느라 대답도 못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쳉은 그대로 말을 묶어둔 장소로 걸어갔으며 파는 그 뒤를 따라 걸어가다가 데브에게 살짝 고개를 돌렸다. 파의 눈빛이 데브를 똑바로 향하자 데브는 움찔하더니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해보였다. 단단히 입을 가린 두 손 위로 그의 눈은 불신감과 불안감을 담은 채 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는 씩 웃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쳉은 캐시헌터의 고삐를 쥔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파는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다.

“뭐 생각해?”

“자취에 대해서.”

“자취?”

쳉은 갑자기 손을 들어올리더니 머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그는 짜증과 분노가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미가 만난 녀석들은 뭐하는 녀석들이기에 계속해서 시체를 남겨놓고 사라지는 거지? 그놈들은 왜 그렇게 사람을 죽여 대는 거지? 그리고 미는 왜 그런 녀석들과 계속해서 같이 다니는 거지? 이 모든 자취들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해답이 없어. 제기랄! 마음에 안 드는데……. 왜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거지, 파?”

파는 흠칫했다.

“쳉 같은 감정 결핍증도………… 감정을 표현할 때가 있네.”

쳉의 눈엔 파의 모습이 더 이상하게 보였다. 어쨌든 그 언니가 지금 살인귀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고 있는 동생의 모습으로 보기에는 너무 침착해 보 였던 것이다. 쳉은 수염이 까슬까슬한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빠른 동작으로 말에 올랐다.

“가자. 일단은 그 시체를 좀 봐야겠어. 조금 전에 발견되었다고? 늦으면 경비 대원들이 치워버리겠군.”

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화이트풋에 올랐다. 이미 보았던 시체지만 또 본다니 끔찍스러워. 파는 우울한 얼굴을 한 채 쳉을 뒤따랐다.

두 사람이 고스빌의 시민들에게 물어가며 코렐의 시체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고스빌의 경비 대원들이 가득 모여서서 시체를 조사하고 있 었다. 몰려드는 구경꾼들을 제지하던 경비대원들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쳉과 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쳉이 말에서 내려서 똑바로 걸어오자 미심쩍 은 시선은 이제 분노 섞인 의심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쳉은 그 표정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코렐의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결국 경비 대원들 중 하나가 삼엄한 표정으로 쳉을 가로막았다.

“이봐! 접근 금지다.”

“조금만 봅시다. 난 POG 상단의 호위 무사 쳉입니다. 근처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찾아오는 길입니다만.”

“아!”

둘러선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성이 일어났다. 상단의 호위 무사라는 이 낭만적인 이름이 가지는 뉘앙스가 고스빌의 시민들을 자극시켰던 것이다. 하 지만 경비대원은 얼굴을 더욱 딱딱하게 만들며 말했다.

“POG 상단? 아아, 그 상단 말인가. 그런데 호위 무사가 왜 혼자 이곳에 있는 거지?”

“사정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보여줄 거요, 말 거요?”

경비 대원은 쳉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즉 상대의 말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경비 대원은 옆으로 비켜났다. 어쨌든 노련한 호위 무 사는 마나를 쓰지 않는 마법사인 것이다. 쳉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길 한가운데 놓인 시체로 다가섰다.

그는 손은 대지 않은 채 시체를 꼼꼼히 관찰했다. 구경꾼들 뒤에 서 있던 파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었다. 시체의 관찰을 끝낸 쳉은 그 주위의 땅 을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단한 오솔길에 발자국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쳉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폈 다. 그 동안 구경꾼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쳉을 바라보았고 경비 대원들 역시 기대감이 섞인 얼굴로 쳉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쳉은 천천히 일어나서는 코렐의 옆에 똑바로 섰다.

“오크와 복수의 화렌차의 이름을 걸고, 당신의 억울한 죽음은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편히 잠드시길.”

쳉은 그렇게 말한 다음 몸을 돌려 경비 대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빠르게 열렸다.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수고들 하시길.”

쳉이 살해자의 수효, 칼을 쓰는 버릇, 어쩌면 살해자의 고향이나 머리카락 색깔, 심지어 그 이름이나 그의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까지도 말해 줄지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던 구경꾼들에게 쳉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경비 대원들 역시 입을 딱 벌린 채 쳉을 바라보았지만 쳉은 가볍게 고개만 숙여 보 이고는 곧장 파에게로 돌아왔다. 쳉이 캐시헌터에 올라타고 나서야 경비 대원들은 불평을 터뜨렸다. 하지만 쳉은 살해자에 대해 말해 주겠다고 약속 한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불평은 처음부터 목적을 잃은 셈이었다. 그때 쳉은 가볍게 말했다.

“저쪽 나무에 꽂힌 나이프는 그 친구의 것일 거요. 유품을 원하는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

경비대원들은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무슨 나이프요?”

쳉은 손으로 약간 떨어진 나무를 가리켰다. 경비 대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고, 그제서야 나무에 꽂힌 코렐의 나이프 를 발견했다. 구경꾼들은 탄성을 질렀고 먼저 와서 조사했던 주제에 나이프를 발견하지 못했던 경비 대원들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들이 뭐라고 말을 걸려 했을 때 쳉은 이미 살해 현장에서 멀리 떠난 후였다.

쳉은 말을 돌려 그대로 시내 쪽으로 돌아왔다. 파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다가 살해 현장에서 꽤 멀어지고 나서야 쳉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쳉은 고삐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아니. 너무 많이 알았어.”

“뭐?”

쳉은 살해 현장 쪽으로 머리를 휙 돌렸다. 한동안 씁쓸한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시선을 거두어 안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 친구는 죽기 전에 누군가와 싸웠어. 목에 말라붙은 소금 자국은 저 친구에게 상당한 운동량이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데, 나무에 꽂힌 나이프 는 그 운동이 싸움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하지만 그 싸움 때문에 저 친구가 죽은 것은 아니야. 싸움과 살해는 별개야. 살해자는 제3자지.”

파는 그만 소스라쳤지만 그것을 쳉의 추리에 대한 놀라움으로 바꾸면서 말했다.

“우와……, 어째서?”

쳉은 느릿하면서도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싸움 도중에 그렇게 등을 찌를 수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거든. 게다가 나이프를 던졌으니까 저 친구는 그 싸움의 상대를 보고 있었다는 의미야. 그 런 상황에서 등 뒤를 그렇게 찌를 수는 없지. 그건 완벽한 불의의 일격이었으니까. 싸움은 어떻게든 끝났어. 다른 핏자국이 없는 걸로 봐서는 상대가 이긴 것 같다. 어려운 추리지만, 상대는 저 친구를 제압하고는 그냥 떠났다고 봐야겠어. 그리고 싸움이 끝나고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뒤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저 친구를 찔렀지. 그런데 상황이 꽤 복잡해.”

“복잡해?”

“응. 왜냐하면 살해자가 떠난 후 또 다른 사람이 저 시체에게 찾아왔어. 적어도 명복을 빌어주려는 목적은 아닌 사람이. 그 사람은 말을 타고 있었 어. 시체를 뛰어넘을 때 날린 털이 낮은 나뭇가지에 붙어 있더군. 다갈색 털이었어.”

파는 굳어버렸다. 쳉의 말보다는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쳉은 어느새 캐시헌터를 뒤로 돌려세워 파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파는 고개를 떨궈 화이트풋의 다갈색 갈기를 내려다보았다.

“고개 들어.”

파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쳉은 눈빛으로 파를 잡아놓고 있었고 그래서 파는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하얗게 된 얼굴로 쳉을 마주보았다.

“따라와.”

쳉은 말에서 내려서는 고삐를 쥔 채 오솔길 옆의 공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솔길에서 충분히 멀어지고 나서 쳉은 고삐를 나뭇가지에 묶었다. 파 는 아무 말 없이 쳉의 동작을 따라했다. 쳉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앉았고 파는 쳉에게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앉아서 땅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쳉은 그런 파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은 빠른 속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상공에는 굉장한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스빌 교외의 이 숲에는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았다. 들리 는 것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숲의 신음 소리뿐, 사위는 고요했다. 쳉은 자신의 등이 나무에 비벼지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아침 네게서 땀 냄새를 맡았지. 그리고 화이트풋의 발굽에 묻은 흙은 초원의 것이 아니었어. 어젯밤에 여기 왔지?”

“응.”

그래서 초원에서 쉬자고 주장했군. 쳉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말했다.

“왜 혼자 먼저 온 거지?”

파는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자 파는 여전히 무릎을 모은 채 앉아서는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

파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잔인해지기로 결정한 후였다.

“먼저 말할 게 있어. 언니는 쳉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언니는 물을 들여다봤고, 쳉이 상단을 떠나서 스카니아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봤 어. 그리고 쳉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떠났던 거야.”

쳉은 아무 대답도, 어떤 몸짓도 보여주지 않은 채 나무를 닮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파는 하늘을 바라보는 쳉의 모습을 흘긋 바라보고서는 다시 고 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언니는 쳉을 만나길 원하지 않았어.”

“아아.”

“내 말 이해한 거야?”

“음.”

파는 의아쩍은 눈으로 쳉을 바라보았다. 쳉의 모습에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초점 없는 눈은 그대로 하늘을 향해 있었고 무릎 위에 던져진 두 팔은 누가 버리고 간 것처럼 거기 있었다. 질문하지 않아. 되묻지 않아. 왜 그럴까? 파는 온갖 의심과 의혹을 느끼면서 말했다.

“그래, 좋아. 나는 언니에게 말해 주고 싶었어. 쳉보다 먼저 언니를 만난 다음 쳉이 언니를 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어.”

쳉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그래서, 또다시 달아나게 만들려고? 나와 미가 만나지 못하게?”

“그렇게 말하지 마! 이 감정 결핍아! 난, 나는 그냥, 그러니까, 어, 언니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싶었던 거야. 쳉은 언니를 사랑하지? 그렇잖아. 하지만 언니는 그냥 떠났다고. 알겠어? 그래서, 그래서 나는 쳉이 없는 자리에서 언니와 이야기해 보고 싶었던 거야. 그거야. 그러니까……..”

“알았어. 미를 봤어?”

뺨을 맞은 기분을 느꼈지만, 파는 현실적으로 10큐빗도 넘게 떨어진 거리에 앉아 있는 쳉이 자신의 뺨을 때릴 수는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파는 피 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 쳉을 노려보았지만 쳉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는 쳉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쳉은 헛된 추적을 하고 있단 말이야!”

“조금 전에 말한 거야. 미를 봤어?”

“못 봤어!”

“알았어. 그럼 다시 원점이군.”

쳉은 부스스 일어났고 파는 제자리에 앉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쳉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파를 보고 낮게 말했다.

“빨리 가자. 언니를 찾아야지.”

“언니를 찾을 거야? 언니가 쳉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데?”

“그거? 거짓말이잖아. 빨리 일어나.”

파는 입을 딱 벌린 채 쳉을 바라보았지만 쳉은 어느새 캐시헌터의 등에 올라앉아 있었다. 말 위에 앉아서 파를 내려다보고 있던 쳉은 잠시 후 파로서 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가자, 파.”

파는 일어나서 화이트풋에 올랐다. 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출발했고 파 역시 아무 말 없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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