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검 – 185화 : 천궁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은 노래한다.
천궁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은 노래한다.
마령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던 연합군 수뇌들을 향해 옛용의 치료의 손길이 머물렀다.
진중에 넓게 퍼진 그 기운은 너무도 따스했다. 마치 화해를 청하기라도 하는 듯 마령을 달래 끌어내어 한곳으로 모아들였고 본주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벼렀다.
하나로 모은 마령의 잔재를 옛용은 그대로 삼켜버렸다. 그의 영역 안에서 마령은 정상을 되찾게 될 것이 분명했다.
옛용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 케플러는 메덴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궁리해보다 별 생각 없이 마르시온을 불렀다.
그가 보기에 마르시온은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았다. 한 순간도 가만두지 못하고 이리 저리 눈알을 굴려대는 것만 봐도 그가 자기 못지않게 욕심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으면 언제든 뜻을 굽힐 수 있는 자. 그래서 넌 그 욕심을 감추고 그 오랜 기간 제왕의 지배를 인정했던 것이고, 결국은 그 그늘을 박차고 지금의 자리를 쟁취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난 네게 그런 기회를 주진 않는다. 이용가치가 없을 때 넌 제일 먼저 내 손에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
속내를 감추고서 마르시온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케플러.
그런 케플러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대한하는 마르시온. 둘은 사실 똑같은 부류의 인물이었다. 케플러가 넌지시 마르시온을 떠봤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의견을 물었다.
“어떤가? 이 장벽을 뚫을 방법이 있을 것 같은가?”
“글쎄요. 제왕께서 모르시는데 저 같은 자가 어찌 알겠습니까!”
“제왕?”
“하하하하…….”
마르시온도 그가 아는 한 최고의 권좌가 제왕이었다. 케플러도 그리 싫지 않은 기색이다.
마르시온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한껏 몸을 낮추며 은근히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한 번 해볼까요?”
상대의 심기를 상하게 할지도 모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케플러는 별 생각이 그러라고 했다.
마르시온이 돌아서서 메덴을 노려본다. 메덴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서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꼴을 떠올리자 좀 어이없는 심정이었다. 비굴하긴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일단 목숨을 건지기 위해 선택한 굴욕이긴 했지만 딱히 그런 이득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마령의 본주가 앞장서서 적들을 물리쳐주니 그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가만있기만 해도 버거운 상대들을 쓰러뜨려 주니 그로서도 불만을 가질 일이 아니란 생각이었다.
‘가장 좋은 건 공멸이지. 기다리면 기회는 또 온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 발을 내딛었다. 그는 계속 걸어가며 생각했다.
‘옛 용까지 나설 줄은 예상치 못했던 일이지. 비밀 차원으로 간 메타트론과 파천등이 그곳과 공멸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데.
아니다 어느 쪽이든 반드시 하나는 돌아올 거야. 때를 봐서 최후까지 이기는 자의 손을 들어주면 되는 것을. 그리고 기회를 틈타…….”
뭔가 이상했다. 앞으로 걸어가던 마르시온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멈춤 없이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막아서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마르시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케플러의 얼굴이 굳어 있다. 그도 시험을 해본다.
“윽.”
그는 또다시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마르시온이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옛용의 차별이 심하곤. 나는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된다는 뜻인가?”
케플러가 비꼰다.
“너 정도는 들어와도 상관없다는 뜻이겠지.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하찮다는 의미일 테고.”
하여튼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확실했다. 들어오라니 못 들어갈 마르시온도 아니다.
그는 원래의 자리로 갔다가 조심스럽게 케플러의 허락을 구했다.
“제가 군대를 이끌고 메덴을 공격할까요?”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없었다. 사실 그들이 적의 편에 서는 꼴은 못 보지만 그 자신에게도 그다지 쓸모 있는 전력은 아니다. 그리고 정작 강자들과 상대할 땐 거추장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겐 아직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정예들이 있었다.
“좋다. 메덴을 향해 총공격하라.”
마르시온은 거침없이 진군명령을 내렸다. 마계의 반역자들까지 포함된 제왕의 군대가 메덴으로 진격했다. 그들 역시나 제지없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제왕의 군대가 메덴으로 진입한 바로 그때였다. 눈이 있는 자라면 모두가 놀랄 일이 그때 벌어졌다.
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
아름다운 선율이 먼저 들렸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소리에 모두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만이 아니다.
메덴의 중앙에 진 치고 있던 연합군들도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영계로 들어선 수호자와 선발대도 멈춰 서며 귀를 기울였다.
이런 일은 영계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미처 하룬으로 가지 못했던 곳곳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하늘을 살피고 있었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여계 전체에 퍼지고 있는 이 선율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곧 밝혀지고 있었으니.
천궁이 문을 열었다. 천궁의 천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천궁이 드디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신의 대리자로 알려진 천궁의 천사들이 영계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선율에 뒤이어 투명한 장막이 하늘을 뒤덮은 채 펼쳐지고 있었다.
천사들의 진군.
파천의 계획에 이 변수가 포함되어 있을까?
바라보는 시선들, 거기에 담긴 의미들은 제각각이었다.
옛용의 음성은 무언가를 기대하며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신의 의지가 우리들에게로 오는 것인가? 길고도 긴 내 기다림이 이제야 실현되겠구나.”
마령의 본주 케플러는 숨을 곳을 먼저 찾았다. 수를 헤아린다는 것이 불가능할 천사의 대군 앞에 그는 저절로 움츠러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틀렸다. 천궁이 설마 개입을 하게 될 줄이야.”
연합군은 환호했고 제왕은 아연 긴장했다. 선발대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수호자는 의외라는 낯빛이었다.
이때 메타트론이 영계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영계를 단번에 함몰시킬 듯이 큰 고함을 질렀다.
“왜인가, 왜 그대들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진정 신이 나, 메타트론을 막으려는가? 나는 질 수 없다. 나는 지지 않는다. 난 끝까지 굽히지 않겠다.”
옆에 있던 루시퍼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큰 싸움이 있겠구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간다. 천궁의 천사들 모두를 상대해 이길 군대는 그 어디에도 없다. 또 그들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가!”
그들은 진정 대단한 환영과 그보다 더 큰 증오를 감당하며 영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계의 어디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천사들의 수는 사람들의 수보다도 많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그들 중 몇몇의 특히 두드러지는 대 천사들이 그들 중을 오가며 큰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막 아래로 내려오진 않았다. 단지 모습을 보였을 뿐이었다. 무슨 의도로, 무엇을 하고자 함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겠지만 영계를 지배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은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웠다.
하룬에 도착한 선발대는 폐허로 변한 대지를 한 번 쳐다보고 장막 위를 거니는 천사를 보았다.
높은 하늘에 걸려 있던 대지가 떨어져 산산조각 난 현장은 을씨년스러웠다. 장막 위의 천사들은 위풍당당하기만 하다. 사람의 자취도,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거기서 어떤 싸움의 소리가 울렸을지 짐작이 갔다.
천사들의 노래 소리는 귀를 즐겁게 했고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졌다. 선발대는 수호자를 위시해 근심 어린 표정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생존자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다.
어디 산 이 없는가? 누가 와 어찌된 일인지 얘기해 줄 이 없는가? 그들은 다행히도 한 생각을 해내고야 말았다.
수호자는 그제야 누군가를 향해 영언을 전달했다. 하지만 영언을 받는 이 아무도 없다. 여기도 해보고 저기도 해보고 생각나는 이마다 해보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은 것인지 대답이 없었다.
기다려 보아도 소식이 없다. 아난다가 가리킨 곳은 천사들 쪽이었다. 그들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란 말이리라. 수호자는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천사들에게로 갔다.
보일 만한 하늘 높이에 그들은 거닐고 있었지만 실상은 멀기도 했다. 그는 높이높이 올라갔다. 장막까지 닿은 수호자가 천사들 중에 하나를 불렀다.
“미카엘, 여기 있던 자들 중 살아남은 이가 하나도 없는가?”
대천사 미카엘은 수호자에게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메덴으로 가보세요. 그곳에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까진 안전합니다.”
기뻤다. 안심이 됐다. 그들이 안전하단 말에 수호자는 왜 파천의 얼굴을 먼저 떠올렸을까! 아직까진, 이란 말이 수호자는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떨쳐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천궁이 개입해줘서 반갑긴 하지만 의외로군.”
“그렇습니까? 예전에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지요. 장차 영계에 대혼란이 있을 때 사람들의 힘만으로 견뎌내지 못하면 나서달라고 했었지요.”
“그럼 지금이 그때인가? 그리고 그때의 부탁을 기억하고 나선 것인가?”
“절반쯤은 맞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저희들은 사람들과 달리 신의 부름에만 응답합니다. 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우리 전체가 천궁을 나설 일은 없었겠지요.”
수호자는 미카엘에게서 그 이상의 대답을 듣기는 어렵다는 걸 알았다.
그의 입은 무겁기 한량없다. 정말로 모르고 모른다 할 수도 있지만 알고 있어도 입을 열어 떠벌리진 않는다. 수호자는 미카엘에게 사의를 표하고 선발대에게로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메덴으로 공간이동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옛용이 나섰다 하니 별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은 안전하다 했었다. 그런 기대를 품고서 선발대는 메덴을 향해 떠났다.
불안한 건 마령이 아니라 사람 케플러였다. 마령을 제 몸으로 이끌어들였지만 그 자신이 마령은 아니다.
카오스라면 천사들의 등장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천사들 역시나 피조물에 다름 아니다. 그런 연유로 카오스는 두려움에 젖어있는 마령의 본주 케플러를 한심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영계의 중심을 메덴으로 보았다. 여기 온 건 메덴에서 큰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드리운 힘은 두려울 정도는 아니었으나 대결을 서두를 존재도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비밀차원에서 그랬듯이 카오스는 확실한 때가 아니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마령의 본주와 카르마에게 호기심을 나타냈다. 자신을 닮은 존재들, 하지만 허점이 많은 자들. 지금 자신의 실체를 싣고 있는 코모라보다 나을 게 없는 자들이었다.
케플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카르마는 지금 처음 대한다.
‘코모라와 캄파넬라가 힘을 주어 영계로 내보낸 자로구나. 네가 지닌 힘의 속성이 내게서 나왔음을 너는 모를 것이다.’
케플러가 관심을 두고 있는 메덴으로 시선을 두던 카오스는 비밀차원에서 보았던 자들이 다가온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차원과 함께 사라졌던 자들이 어찌 다시 소생했을까를 생각했다.
‘키케로에게 당했군. 그가 파동에 혼란을 줘 원하는 상태로 안정시켜 내 눈을 속였다.’
그는 억울해하지 않았다. 서로 주고받았으니 됐다고 생각했다. 그가 얻은 것이 저들의 생명이라면 자신은 영계로 나올 수 있었다.
‘누가 후회하게 될지는 두고 보면 알아.’
카오스는 케플러와 카르마가 아직 다가오고 있는 적들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둔다면 그들 간에 격돌이 있을 터이고 아쉬운 대로 써먹을 데가 있어 보이는 자들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카오스가 그들의 모습을 수호자와 선발대의 눈에서 감춰버렸다.
수호자와 선발대가 메덴 안으로 쏜살같이 쏘아가다 멈춰 섰다. 라미레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시죠?”
수호자가 돌아서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과민했나 보군. 아니다, 가자.”
방금 지나온 곳에서 뭔가의 흔적을 느꼈었다. 그건 확실하고도 분명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다시 집중해서 바라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착각했던 것이다.
선발대가 메덴 깊숙한 곳으로 자취를 감추자 케플러와 카르마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케플러와 카르마는 그제야 숨을 내쉬며 주변을 바라본다.
케플러는 누가 자신들의 눈을 속이고 이토록 감쪽같이 수단을 부릴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범위는 좁혀졌으며 대상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머릿속에 있는 자들 중 하나라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호자와 선발대에게서 자신을 숨겨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새 제압했는지 헤르파와 라아그, 헤렘은 까무러쳐 있었다.
케플러가 주변을 둘러보며 힘주어 외쳤다.
“누구냐?”
코모라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케플러는 비밀차원에 있어야 할 코모로가 자기 앞에 등장하자 너무도 놀란 나머지 뒤로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어찌 이곳에…….”
‘수호자와 선발대가 나타나고 코모라까지……. 그럼 그들이 모두 비밀차원을 벗어났단 말인가? 어쨌든 상황이 좋지 않게 되었다.’
기회를 틈타 몸을 숨길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상황이 좋지 않다면 잠시 숨어 지내는 것도 현명한 생각이다. 공들이지 않고서도 노획물을 건지는 방법이기도 했다.
코모라는 케플러에게는 은인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한 번도 대결을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마령을 얻고서도 버겁게 대했던 비밀차원의 강성을 대표하는 지도자였다.
아바돈의 배후 중 하나가 영계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케플러에겐 적 아니면 수하가 있을 뿐이다. 그의 윗전도 동료도 부정한다.
그들의 눈치를 보았던 건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얻을 게 있었고 이용할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순 없었다.
“코모라님이셨군요. 혼자…… 온 건가요?”
카르마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코모라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카오스가 케플러와 카르마의 의식에 혼란을 일으켰다.
“허억.”
“끄으억. 무,무슨……짓을…….”
케플러가 좀더 오래 저항했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자 얼굴을 찡그리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그들은 지금 무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카오스가 펼쳐 보이는 것은 자신의 실체였으며 그것은 순리와 역행하는 혼란이었다.
카오스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케플러와 카르마는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했다. 그들의 의식은 부정과 긍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기억해냈고, 그 과정을 되짚어 가며 뚜렷한 형태의 소멸을 체험하고 있었다.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화인과도 같은 암시가 그들의 의식 가운데 선명하게 자리잡는 순간이기도 했다.
카오스는 케플러와 카오스, 헤렘 등을 자기 안에 감추고서 그 곳을 떠났다.
메덴 안까지는 들어갔지만 막상 옛용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 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마르시온은 그럴수록 수하들을 독려하며 제 자신도 힘을 냈다.
그들은 연합군의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보이는 위치까지 와서 멈췄다.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마르시온의 못 볼 걸 본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케플러에 의해 마령의 공격을 받았던 판드아의 제왕과 연합군의 수뇌들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연합군의 앞에 서서 지휘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옛용이 자신들을 들여보낸 것을, 자신들과 연합군의 싸움엔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인 마르시온의 자신이 있었다. 그만 가만있어 준다면 승산은 많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런 계산이 나온 데는 판드아의 제왕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전혀 기대해도 좋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려다가 그만뒀다. 보아하니 저쪽에서도 적극적으로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대치하고 있으면 별일 없겠단 생각을 했다.
상황이 좋지 않다면 그때 가서 퇴각 명령을 내려도 된다. 어차피 연합군도 메덴을 벗어나려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천사들이 나타나 혼을 빼놓았다. 그것에 정신이 팔려 허둥지둥 대고 있을 때 쿠사누스들이 진언을 했다.
“점점 상황이 엉망이 되어 갑니다. 차라리 우리들의 세계로 돌아가 관망하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판드아의 제왕이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배신의 낙인이 찍힌 이상엔 그 대가를 치르려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다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유리한 쪽에 붙어 기사회생하고 싶은 욕망은 여전했다. 힘 있는 그늘이 필요했다.
그는 메타트론의 등장을 간절하게 기원하게 되었다. 비밀차원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다지 오래지 않은데 또다시 생각이 바뀐 것이다.